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검협전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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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화
작성일 : 16-07-14     조회 : 491     추천 : 0     분량 : 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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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되었다. 찬바람이 씽씽 불고 눈이 온 산을 뒤덮었다.

 운몽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반정도관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중에 불쑥 말했다.

 “사부님, 나도 무공이라는 걸 배우고 싶어요.”

 광명존자는 의아해했다.

 “왜?”

 “무공을 배우면 힘이 세지고 몸이 가벼워진다던데요?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왜?”

 “그러면 혼자서 멀리까지 갈 수도 있잖아요. 지금처럼 눈이 가득 왔어도 갈 수 있고요.”

 “왜?”

 “아이, 참. 사부님은 언제나 그 소리만 해.”

 운몽이 발을 비비며 짜증을 내자 광명존자가 빙그레 웃었다.

 “요 고약한 녀석아, 솔직히 말해라. 복호사가 그리 좋더냐?”

 “어? 아셨어요?”

 “복호사의 무엇이 그리도 좋더냐?”

 “히― 거기에 가면 작은 여자 중이 있거든요.”

 “작은 여자 중?”

 “운지라고 하는데, 만나면 내 엉덩이를 꼬집고 머리를 쥐어박아요. 못됐어요.”

 “그럼 안 보면 되겠구나.”

 “히― 그래도 예쁘거든요.”

 “쯧쯧…… 요 쥐방울만 한 녀석이 장차 무엇이 되려고 이럴꼬…….”

 광명존자가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혀를 차며 째려보지만 운몽의 눈길은 어느덧 몽롱해져 있었다. 먼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서 히죽히죽 웃는다.

 ‘인연이라는 것이 이토록 질기고 고약한 것이로구나. 그러기에 불도에 매진하는 중들이 죄다 인연 끊는 걸 최대의 목표로 삼고 정진하는 거겠지. 아, 오고 가는 바람을 뉘라서 막을 것이며, 흘러가는 강물을 뉘라서 멈추게 할 것이냐. 불어가다 제 스스로 소멸되고, 흘러가다 바다에 이르러 사라질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게 정법인지도 모르지.’

 광명존자는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란 역시 억지로 이래라저래라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광명존자가 그런 자신의 생각은 묻어두고, 한숨을 쉬고 나서 말했다.

 “그러잖아도 이제부터는 공부 외에 무공이라는 것도 가르쳐 줄 생각이었는데 너에게 이미 그런 마음이 들었다니 잘되었다.”

 “어라? 사부님도 무공을 할 줄 아세요?”

 운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사부는 늘 잠만 자고 글만 읽고 쓸 줄 안다고 여겼는데,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니 놀란 것이다.

 “그럼 너는 왜 나에게 무공을 배우겠다고 했느냐?”

 “다른 곳에서라도 배우고 싶다는 거였어요.”

 “왜?”

 “사부님은 무공을 가르쳐 줄 수 없을 테니까요.”

 “왜?”

 “아이, 참. 그만 해요.”

 “이 조그만 개구쟁이 녀석아. 너는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느냐? 사부를 놔두고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공을 배우려고 생각했던 거냐?”

 “복호사에서요.”

 “응?”

 운몽의 말이 의외인 듯 광명존자가 흰 눈썹을 꿈틀거렸다.

 “복호사에 가면 무공이라는 걸 배울 수 있어요. 작은 여자 중도 거기서 배우고 있는걸요?”

 “그만두어라. 다시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광명존자가 근엄한 얼굴로 꾸짖듯 말했으므로 운몽은 ‘왜?’라고 물을 수 없었다.

 사부가 저런 얼굴을 할 때는 공손하게 ‘예’라고 대답해야 혼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마.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무공을 배울 때는 조금도 한눈을 팔거나 게으름을 부려서는 안 된다. 잠잘 때도 무공을 생각하고 꿈속에서도 수련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럴 수 있겠느냐?”

 “자면서 어떻게 수련을 해요?”

 “하겠느냐, 말겠느냐?”

 “알았어요. 할게요.”

 그렇게 해서 다음날부터 운몽은 사부로부터 무공이라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그건 매우 재미없고 지루하며 따분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사부가 그에게 전해준 건 몇 마디의 알쏭달쏭한 구결이었는데, 그게 무공의 기초가 되면서 근본이 되는 것이기도 한 내공심법(內功心法)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명존자는 어린 운몽에게 자신의 내공심법 중 기초가 되는 것을 전해주고 열심히 그것을 수련하도록 했다.

 그 수련이라는 게 신나게 뛰거나 뒹구는 것이었다면 운몽은 역시 무공은 재미난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광명존자가 그에게 시킨 일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법 구결에 따라 기운을 기르는 일이었다.

 해 뜨기 직전에 앉아 한 시진 동안이나 꼼짝하지 못했고, 사시(巳時)가 되면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 시진 동안 있어야 했다.

 술시(戌時)에도 그렇게 한 시진을 앉아 있은 다음에야 사부의 허락을 받고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글공부를 하고 청소며 사부 시중을 들어야 했으니 운몽에게는 눈코 뜰 새 없는 날들이었다.

 “쳇, 이렇게 눈 감고 앉아만 있는 게 무슨 무공이야? 이래서야 어디 노란 새를 잡을 수 있겠어?”

 쉴 새 없이 투덜댔지만 사부의 가르침이 워낙 엄격했고, 어린 마음에도 오기라는 게 생겼으므로 운몽은 미련한 곰처럼 졸음을 꾹꾹 참으며 심법을 운기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다.

 벌써부터 발바닥이 근질거렸지만 운몽은 용케도 참고 있었다.

 무공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면서 사부의 눈초리가 그전과는 달리 매서워졌고, 한시도 운몽에게서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으니 꼼짝할 수 없는 탓이기도 하다.

 작은 노란 새도 찾아오지 않는다.

 아직도 그때 보았던 그 고운 모습과, 그때 들었던 그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작은 새는 어디 먼 곳으로 영영 가버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산중에 여름이 오더니 붉은 단풍이 가득해졌다. 그러더니 곧 하얀 눈이 온 산을 뒤덮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겨울이 오고, 새 봄이 문을 열 때까지 운몽은 반정도관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사부의 엄명이 있기도 했지만, 저도 운지처럼 힘이 세지고 몸이 가벼워지기 전까지는 도관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고 단단히 결심했던 것이다.

 한번 놀란 기억 때문이기도 했고, 운지에게 저를 자랑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건 곧 그 작은 여자 중에 대한 애정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지만, 정작 작은 꼬마 아이는 아직 그런 것까지 생각할 만큼 여물지는 못했다.

 다만,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무언가 저를 돋보이게 하고 우쭐댈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게 된 것이다.

 적어도 그녀만큼 힘이 세지고 몸이 가벼워져서 혼자 아무 두려움 없이 산길을 다닐 수 있게 되어야 그녀 앞에서 우쭐댈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 일념으로 운몽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운지에 대하여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또 참았다.

 그가 한 번 본 운지에 대해서 그토록 집착하는 건 그녀를 만났던 상황이 워낙 잊을 수 없는 때문이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지쳐 갈 때 노란 새처럼 갑자기 찾아왔던 사람 아닌가.

 그것도 제 또래의 소녀였다.

 그 인상이 운몽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자리 잡았다. 산중에서 늘 사부의 얼굴만 보고 살았을 뿐이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나이에 제 자신을 억제할 만큼 지독하다는 건 운몽이 여간내기 꼬마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일 년이 지났을 때, 광명존자는 운몽에게 한층 높은 내공심법을 전수해 주는 한편, 비로소 무공이라고 할 수 있는 수법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선 권각법과 신법에서 시작했는데, 운몽으로서는 그야말로 고대해 마지않던 일이었던지라 힘든 줄을 몰랐다.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중심을 잡지 못해 나자빠져도 아이는 괴로운 줄 모르고 신나기만 했다.

 기본이 되는 권법과 신법, 보법을 여름 동안 끝내 버렸으니 광명존자의 놀람과 기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년째에 접어들자 운몽의 어린 몸에는 점차 내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운이 자리 잡아갔다.

 몸이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벼워지고 튼튼해졌지만 운몽은 아직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수시로 그의 완맥을 쥐고 기혈의 흐름을 살펴보는 광명존자만이 그런 사실을 눈으로 보듯 잘 알았다.

 그리고 존자는 내심 많이 놀라고 있었다.

 ‘이 녀석의 성취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구나. 이 나이 때에 나도 이와 같은 빠른 진척을 보지는 못했다.’

 광명존자는 어린 운몽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한편, 그가 자만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더욱 엄하게 꾸짖고 독려할 뿐, 칭찬은 아주 조금만 해주었다.

 그게 운몽에게는 오기를 더해주는 일이었다.

 ‘사부님의 눈에 들고 인정을 받으리라.’

 그런 마음은 아들이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분발하는 것과 다름없는 마음이다.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가 우상이듯이 운몽에게는 광명존자가 본받고, 나아가 뛰어넘고 싶은 우상이었던 것이다.

 심법을 수련한 지 어느덧 이 년이 다 지나갔다.

 그 무렵부터 존자는 비로소 자신의 절기들을 운몽에게 전해주기 시작했다.

 뇌정신장(雷精神掌)을 익히기 위한 삼양신공(三陽神功)과 육보장권(六步掌拳), 연자십팔권(燕子十八拳)을 전해주었으며, 유성구천(流星九天) 신법의 관문이 되는 유운신법(流雲身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아직 운몽이 검법을 익힐 만한 체구와 체력이 되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뒤로 미루었는데, 검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우선 권법과 신법에 능해야 하는 탓도 있었다.

 운몽은 그새 여덟 살이 되었다.

 아직 앳된 티가 가득하고 개구진 용모였지만, 그에게서는 조금씩 사나이다운 기백과 늠름한 기상이 우러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절벽을 차고 오르는 몸놀림이 날랜 원숭이와 같았고, 주먹을 뻗으면 조막만 한 손에서 센 바람 소리가 났다.

 널찍한 곳이나 좁은 곳을 가리지 않고 힘껏 내닫고 이리저리 움직일 때면 검은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 그의 형체를 잘 알아볼 수 없다.

 하루 종일 그렇게 뛰어다녀도 지칠 줄 모르게 되고서야 운몽은 이것이 무공이라는 건가 보다 하는 생각에 기뻐했다.

 제 사부가 놀라서 혀를 내두른다는 건 꿈에도 모른다.

 “이제는 찾아가 볼 때가 되었어.”

 이듬해, 봄날.

 운지를 만난 지 삼 년째 되는 그날에 운몽은 비로소 다시 그녀를 찾아가 볼 작정을 했다. 그동안 고통과 지루함을 참고 견딘 게 모두 이날을 위해서였던 것처럼 설렌다.

 제3장 첫 시련

 

 

 

 아이는 이제 어엿한 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세상의 나이로는 아홉 살에 지나지 않았으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남다르다.

 세 번 겨울을 넘기는 동안 키도 훌쩍 자라서 같은 또래의 여느 아이보다 한 뼘은 족히 컸다.

 자박거리며 걷던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에 어느덧 당당함이 배어난다.

 삼 년 동안 사부에게서 배운 무공은 아이에게 자신감과 함께 의젓함을 더해주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걸려서 한밤중에야 도착하던 그 길을 운몽은 이제 한나절 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몸놀림이 날렵해졌고, 힘이 넘쳐 났으며, 지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아니, 네가 정말 그 꼬마란 말이냐?”

 “이를 어째? 이제는 총각이 다 되었잖아?”

 “어이구, 저 인물 좀 봐. 더 훤해졌어.”

 “어디 보자, 그새 얼마나 컸는지 한번 안아봐야지.”

 “요 통통한 볼 좀 봐. 젖살이 다 빠졌어도 여전하네?”

 운몽을 본 복호사의 비구니들이 모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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