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몽이 입술을 악물고 연신 주먹과 발을 날리지만 화운평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슬쩍슬쩍 피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조롱하고 이죽거린다. 그게 운몽을 더욱 미치게 했다.
연신 날카로운 기합성을 터뜨리며 죽기 살기로 달려들지만 마음만 급했을 뿐, 손과 발이 점점 어지러워졌다.
화운평은 아예 뒷짐마저 진 채 이리저리 돌고 몸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면서 운몽의 주먹질을 모두 피해 버렸다.
아무리 기를 써도 그의 옷자락 하나 건드릴 수 없자 운몽은 제 분을 참지 못해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털썩 주저앉아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리고, 두 발로 땅을 마구 비벼대며 우왕! 하고 커다랗게 운다.
운지가 한쪽에서 멍하니 구경만 할 뿐 제 역성을 들어주지도 않고, 제 편은 더더욱 들어주지 않았다는 게 화운평에게 놀림을 당한 것보다 더 서럽고 분하다.
운지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어린 운몽을 끌어안고 달래주고 싶었다. 하지만 화운평이 지켜보고 있는데 차마 그럴 수 없어 마음만 달아오를 뿐이었다.
화운평이 운몽을 흘겨보며 쯧쯧, 혀를 차더니 운지의 손을 냉큼 붙잡았다.
“버릇없는 아이들은 그저 맘껏 울게 놔두는 게 제일이야. 울다가 지치면 스스로 그치거든. 자, 우리는 어서 나한전으로 가자.”
마구 손을 이끄니 운지는 부끄러웠다. 꽉 붙잡힌 손목을 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화운평이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는 탓에 뺄 수 없었다.
거의 반은 그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며 운몽을 돌아보는 운지의 눈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나는 갈 거야!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그렇게 멀어지는 두 사람의 등에 대고 운몽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감이 가득했을 뿐, 다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화운평이라는 이름과 얼굴만 더욱 깊이 각인되었고, 운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미움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정말 그녀를 다시 보지 않으리라고 독하게 마음먹는다.
무슨 수를 쓰던, 화운평보다 뛰어난 무공을 배워서 혼내주고 말겠다는 오기가 불처럼 일었다.
복호사의 소정 사태며 그 많은 비구니들도 죄다 미워졌다. 화운평과 한통속인 것 같은 생각만 든 것이다.
“다 미워! 미워!”
아이의 악쓰는 소리가 고요하던 정원을 요란하게 했지만 와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운몽은 내내 울면서 두 개의 높은 봉우리와, 세 개의 깊은 골짜기와, 다섯 개의 크고 작은 개울을 넘어 터덜터덜 학정봉의 풍소애로 돌아왔다.
제4장 골짜기에 피는 사랑
귀에 들리는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도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봄풀의 파릇함과 신록의 영롱함도 더 이상 눈부시지 않다.
세상이 온통 암담한 절망의 어둠으로 덮여 있는 것 같을 뿐이다.
이 세상에서 제 편은 아무도 없다는 것.
이제는 저와 놀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저를 업어줄 사람도 없고, 목에 매달려 응석을 부려볼 사람도 없다는 것.
그러한 모든 절망의 요소들보다 더 운몽을 절망하게 한 건 운지를 잃어버렸다는 아픔이었다.
그녀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붙잡는 비구니들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듯 복호사를 떠났는데, 낙일봉(落日峰) 정상에 우뚝 서자 문득 후회가 되기도 했다.
못 이기는 척 그냥 머물러 있었으면 운지가 화운평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와 제 잘못을 빌며 안아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건 자기 자신의 바람을 상상해 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몽에게는 그게 정말 그렇게 될 일이었던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아쉬움과 후회가 담긴 눈길로 복호사가 있음직한 산자락을 더듬었다.
지금이라도 운지가 숨을 헐떡이며 저 아래 아스라이 보이는 하얀 길을 마구 달려올 것만 같았다.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너를 버리지 않을게! 제발 나를 용서해 줘!”
낙일봉 정상에 서 있는 저를 바라보며 애절하게 소리쳐 부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참을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어도 운지는 달려오지 않았다.
호랑이도, 곰도, 늑대도 죄다 도망가 버린 길에는 산짐승 한 마리 어슬렁거리지 않는다.
분한 마음이 새롭게 들고, 낙심하는 마음이 더 깊어져서 운몽은 내내 발아래만 보며 걸었다.
그렇게 낙일봉을 내려왔고, 음침한 취운곡(聚雲谷)을 건넜다. 그리고 운대봉 정상에 올라섰다.
이제는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복호사가 어디쯤에 있는 건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새 발아래 밀려온 구름이 운해(雲海)를 이루고 온 산을 뒤덮어 버렸던 것이다.
하얀 구름의 바다 위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높은 봉우리들이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청승맞은 한숨을 내쉰 운몽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다시 터벅터벅 걸어 운대봉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걷는 동안 밀려온 구름이 안개가 되어서 작은 아이를 부드럽고 축축하게 감쌌다.
갑자기 밤이 된 것처럼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짙은 안개에 나무와 바위와 길이 모두 숨어버린다.
운몽은 막막했다.
아홉 살 어린 마음에도, ‘이와 같이 몽롱하고 알 수 없는 것이 내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쓸쓸하고 적막한 얼굴을 한 채 풍소애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의 잔도를 걸었다.
발아래 구름이 밀려가니 제가 잔도 위를 걷고 있는 건지,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건지 모호해졌다.
속세를 떠나 하늘로 오르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처음 든 생각이었다.
여태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이 잔도를 따라 풍소애를 오르내렸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구름길을 타고 올라가 반정도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제 영영 세상과는 인연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는 세상에 나갈 일도 없을 것이고, 또 그렇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없다는 마음이 되었다.
아홉 살 어린 꼬마가 느끼기에는 너무 심오하고 허무한 감정인데, 운몽은 그런 제 감정을 다른 그럴듯한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절실히 느낄 수는 있었다.
돌출된 차갑고 축축한 바위를 안고 돌자 저 앞에 반정도관이 보였다. 짙은 운무에 감싸여서 을씨년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칠 벗겨진 낡은 문 앞에 서서 운몽은 다시 한 번 제 마음속에 다짐을 했다.
“나도 사부님처럼 도관 안에서 꼼짝하지 않을 거야. 세상에 내려가 봐야 온통 기분 나쁜 일들뿐인 걸 뭐. 사부님처럼 조용히 수양이나 하면서 사는 게 더 좋아.”
운몽은 아미산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알고 자랐고, 지금도 그랬다.
아미산 밖에 더 넓은 세상이 있고 그곳에 강호라는 곳이 있으며, 무림이라는 이상한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돌아오는 길이지만, 여전히 아이에게는 아미산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 아미산에서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도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고 있다. 그건 마치 상처 입은 작은 짐승이 애써 신음을 참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제 굴로 피신하는 것과 같았다.
삐걱거리는 문소리가 유난히 크고 음침하게 들린다.
그리고 텅, 하고 다시 닫히는 소리가 가슴에 못질하는 소리처럼 아프게 들렸다.
“에휴―”
작은 아이의 입에서 절로 땅이 꺼질 듯한 탄식이 새 나온다.
“웬 한숨이냐? 어린 녀석이 자발스럽게.”
이름만 그럴듯할 뿐이지 다 쓰러져 가는 조그만 전각에 불과한 광명전(光明殿) 앞에서 사부의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여전히 그 모습이고 그 얼굴인 사부였다.
여전히 난간에 기대서서 자욱한 운무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늘 보던 모습이고, 늘 듣던 음성인데 이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사부님!”
크게 부르는 운몽의 음성이 반쯤은 울음이다.
아이가 와락 달려들어 사부의 가슴속으로 뛰어들었다.
“어허, 다 큰 녀석이…… 무슨 일이냐? 또 다치기라도 했어? 어디 보자.”
운몽은 사부의 가슴속으로 자꾸만 파고들며 익숙한 그 냄새를 맡았고, 익숙한 그 음성을 들었다. 익숙한 그 마음을 보았다. 그래서 더욱 설움이 복받친다.
아이가 기어이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사부의 가슴에 제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광명존자가 말없이 그런 운몽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마치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네 마음이 어떤지 다 안다는 듯 쓸쓸한 미소를 띠고 있다.
운몽은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고, 광명존자는 그날 밤이 새도록 어린 제자의 머리맡을 지켜주었다.
“내가 지은 악업이 너를 통하여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구나. 아, 이것이 하늘의 이치라는 것일까?”
중얼거리던 광명존자가 탄식했다. 물끄러미 운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려온다.
아이의 두 볼에 얼룩진 눈물 자국을 보자 더욱 애틋한 정이 우러나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 광명존자가 다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 어린것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벌써부터 이와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이것도 하늘의 이치라면 하늘은 얼마나 냉정한가. 사부를 잘못 만난 죄 때문이라면 나의 악업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한단 말이냐. 그 고리를 끊고자 벌써 사십 년을 자중하며 수양했건만 아직도 부족하다면 대체 이 세상에 누가 제 악업을 끊고 도를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사십 년을 더 고행하고 수양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이제는 존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철없는 어린 제자를 위해서였다.
운몽은 그날 이후 말이 없어졌다.
혼자 있을 때면 언제나 멍한 얼굴로 반정도관의 난간에 기대서 먼 하늘을 보거나, 발아래 가라앉아 있는 학정봉 기슭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제 사부의 모습을 빼닮은 것 같았다.
며칠이 그렇게 지났다. 그동안 운몽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무공을 수련하지도 않았다.
광명존자 또한 그런 어린 제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마음이 풀릴 때까지 몇 년이 되었든, 평생이 걸린다 해도 바위처럼 기다리겠다는 듯했다.
“사부님.”
어느 날, 모처럼 날이 맑아 밝고 따뜻한 햇빛이 도관 안으로 가득 밀려드는 오후에 운몽이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옷자락을 뒤적이며 이를 잡고 있던 존자가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사부님, 강호라는 곳이 있다면서요?”
“응?”
“무림이라는 곳도 있다던데 정말 그래요?”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는 게냐?”
“사부님은 무공을 할 줄 아시잖아요. 그럼 무림에서 고수로 꼽히나요? 소림이나 무당, 아미파의 사람들도 두려워하는 그런 고수 말이에요.”
운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광명존자의 얼굴이 점점 무심해져 갔다.
“다 잊었다.”
“잊었다니요?”
“무림을 잊었고, 강호를 잊었으며 내가 누구였는지도 다 잊었느니라.”
“왜요?”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니 그렇지.”
“그러니까 왜요?”
“그런 걸 두고 강호를 떠났다고 하느니라. 강호의 말로는 금분세수(金盆洗手)했다고도 하지. 그것도 오래전의 일이니 강호의 일은 다 잊었을 수밖에.”
“아이 참, 그러니까 왜 떠났느냐고요?”
“…….”
운몽의 그 물음에 존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쓸쓸해진 기색이 잠깐 얼굴에 스쳐 갔을 뿐이다.
존자가 다시 이를 잡는 일에 몰두했다.
그런 사부를 째려보던 운몽이 불쑥 물었다.
“낙산에 있다는 신검장을 아세요?”
“글쎄다.”
“거기 산다는 화 대인이라는 사람을 모르세요?”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라 소림이나 무당 아미파도 쩔쩔맨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흥.”
존자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이를 잡으며 가볍게 코웃음 쳤다.
“아닌가요?”
“낙산 화가(華哥)의 무공이 뛰어나기는 하지. 하지만 그뿐이니라.”
“어라? 정말 아시는군요? 그럼 좋아요. 사부님은 그 화 대인보다 무공이 높은가요?”
“흥.”
이번에는 존자의 코웃음 소리가 조금 전보다 컸다.
운몽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역시 사부님이 더 세군요? 그렇죠? 히히, 내가 그럴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