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운몽의 눈물
운지는 뇌음사 뒤의 절벽에 있는 참회동에 갇혔다.
사숙인 뇌음사의 소령 사태가 체벌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소정 사태는 어쩔 수 없이 운지를 내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날, 운수에 의해 복호사로 끌려온 운지가 사부로부터 큰 꾸지람을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는데, 소령 사태가 서릿발이 돋을 듯한 얼굴을 하고 달려왔다.
벌써 이십여 년 간 뇌음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던 노사태가 질풍처럼 들이닥칠 정도였으니 이 일을 그녀가 얼마나 크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미산에 그 빌어먹을 놈이 살고 있다는 게 사실이오?”
소령 사태는 복호사로 뛰어들자마자 그렇게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그녀의 카랑카랑한 음성을 들은 복호사의 비구니들이 모두 머리를 감싸고 달아나 버려서 넓은 도량이 한순간에 텅 빈 집처럼 되어버렸다.
“웬 소란이냐? 들어와 차부터 한잔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렴.”
소정 사태가 점잖은 말로 타일렀지만 소령 사태는 노기등등하여 자신의 사형인 소정 사태를 노려보기만 했다.
“언제부터지요? 사형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군요? 왜죠?”
선방에 들어와 앉자마자 눈을 흘기며 매섭게 따진다.
불같은 소령 사태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소정 사태는 절로 한숨이 새 나오는 걸 어쩌지 못했다.
“운지 고 깜찍한 것이 그 잡놈의 제자라는 놈과 놀아났다니, 그게 사실인가요?”
“아미타불…….”
소정 사태가 손을 모으고 불호를 외웠다. 마음의 격동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이다.
“너는 출가한 몸으로 어찌 그런 험악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흥, 부처님의 그 많은 제자들이 어찌 한결같을 수 있겠어요? 언니는 보살계를 행하고 나는 아라한계를 행하는 거지요. 비구니라고 아라한이 되지 못하겠어요?”
“지난 몇 년간의 참선으로 젊었을 때의 혈기가 사라진 줄 알았더니 소용없었구나. 너는 대체 뇌음사의 선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게냐?”
“법륜검(法輪劍)을 갈고닦았지요. 부처님을 대신해서 마귀의 무리를 베어버릴 호법사자(護法使者)가 되려고요.”
말에 가시가 잔뜩 돋아나 있다.
소령 사태는 폐관하고 들어가 신공절학을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정 사태가 혀를 찼다.
“쯧쯧, 너는 어째 나이가 그만큼 되었으면서도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흥! 불심은 언니가 닦으니 나는 항마법력(降魔法力)을 닦아야 하지 않겠어요? 자꾸 말 돌리지 말고 사실대로 얘기하세요. 언니는 정말 그 망할 놈이 아미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운지의 일로 인해 이미 드러난 이상 감출 수가 없다.
소정 사태가 어두워진 얼굴을 끄덕였다.
“이 넓은 아미산이 모두 아미파의 소유가 아닌데 그가 들어와 산다고 어찌 내쫓을 수 있단 말이냐?”
소령 사태의 얼굴이 더욱 차갑고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이럴 때의 그녀는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았으니 비구니이지, 강호의 노여협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그녀가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언니는 여태까지 나를 속여왔군요? 그 후레자식을 숨겨주고 있었던 거야. 흥, 그러니 운지 그 앙큼한 것이 놀아나는 것도 눈감아주었던 거지. 언니는 도대체 우리 아미파를 얼마나 더 웃음거리로 만들어야 만족하겠어?”
“아미타불, 아미타불…….”
날카로운 사매의 말에 소정 사태는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불호만 외웠다.
그녀의 보살 같은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리우고, 염주를 굴리는 주름진 손이 가늘게 떨린다.
사형을 매섭게 노려보던 소령 사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금정의 둘째 언니에게 이 일을 말하고 둘째 언니의 생각을 들어봐야겠어.”
“막내야.”
소정 사태가 다급하게 소령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장문 직을 맡고 있는 둘째 소화(素華)는 육십오 세의 비구니인데, 젊었을 때부터 성품이 바르고 강직한 아미파의 여고수로 강호에 명성이 자자했다. 정과 사마를 구분하는 데 추호의 사심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아미파의 진전을 가장 충실하게 물려받아, 그녀야말로 아미 무학의 대표이자 아미 불도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소화 장문 역시 남쪽 학정봉에 광명존자가 도관을 짓고 머물러 있다는 건 알지 못한다.
벌써 이십여 년 동안이나 소정 사태가 두 사매들에게는 비밀로 붙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모두 들통이 났으니 모든 비난을 홀로 무릅써야 할 상황이었다.
소정 사태는 자신이 이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자한 노비구니가 두려워하는 건 이로 인해 다시 한차례 아미파에 분란이 생기고, 나아가 피를 흘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강직하기가 마른 대나무 같은 둘째, 소화가 알게 되면 당장 학정봉으로 고수들을 보낼 게 뻔했다. 그러면 막내 소령이 앞장을 서리라.
젊었을 때의 소령은 고양이 같았다. 유순할 때는 곧잘 재롱도 떨어서 두 사형을 즐겁게 했지만, 성질이 나면 사형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달려들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 성격 때문에 강호에서 활동하던 때에 크고 작은 말썽과 사고를 무수히 저질렀다.
그랬으면서 그 비정한 강호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건 모든 걸 큰언니인 소정 사태가 감당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문의 골칫덩이이면서 귀염둥이였던 그 소령도 어느덧 육십 살의 노비구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젊은 날의 그 팔팔한 성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게 소정 사태의 근심이었다.
강직한 둘째 소화와 막내 소령이 한통속이 되어 그를 몰아치면 아미산에 한차례 걷잡을 수 없는 풍파가 일 게 뻔한 일이다.
“막내야, 모든 건 나의 불찰이다. 둘째는 장문으로서 늘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이런 일까지 가지고 귀찮게 한다면 그 아이는 아마 제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설마 그걸 원하는 건 아니겠지?”
얼마나 다급했던지, 소정 사태는 저도 모르게 젊었을 때의 말투로 돌아가 있었다.
소령 사태가 그런 사형을 매섭게 흘겨보았다.
“흥, 그럼 큰언니는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작정이죠?”
“아, 나도 모르겠구나. 내가 어쩌다가 정해(情海)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한 번의 실수가 이토록 질긴 악업이 되어서 나를 괴롭게 할 줄 알았다면 내 어찌 그런 짓을 했으리요.”
큰언니의 처연한 말에 소령 또한 어느덧 처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가 언제 화를 냈었느냐는 듯, 소정 사태의 주름진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인연의 끈이 단번에 끊을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군들 성불하여 부처가 되지 못하겠어요? 큰언니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벌써 사십 년 전의 일이고, 지난 사십 년 동안 큰언니는 충분히 자중하면서 스스로를 벌주었어요. 때문에 사부님께서도 다 용서하고 열반에 드신 것 아니겠어요? 이제 와서 그때의 일로 괴로워할 것 없어요.”
“네가 나를 이처럼 위로해 주니 감격할 뿐이다.”
소정 사태가 정감이 넘치는 눈길로 사랑스러운 막내 사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소령 사태는 다시 쌀쌀맞은 얼굴로 눈을 흘겨댔다.
“흥, 좋아요. 둘째 언니한테는 잠시 말하지 않도록 하지요. 하지만 나는 운지 그것이 감히 제 사부와 나를 속이고 그런 못된 짓을 한 걸 용서할 수 없어요.”
“미리 막지 못한 나의 잘못이 더 크다. 그 아이는 어느덧 스무 살의 활짝 핀 꽃과 같아졌으니…….”
소정 사태가 그윽한 눈길로 한동안 막내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봄이 되면 초록이 싹트듯, 그 나이에는 정이 넘쳐 나서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더냐?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가두어 둔다고 해도 둑 터진 정의 물꼬는 붙잡아둘 수가 없지.”
소정 사태의 말에 다시 소령의 얼굴이 쓸쓸해졌다. 한껏 풀이 죽은 채 눈길마저 떨군다.
그런 막내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소정 사태가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 주겠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구나. 부처님께서 못난 나를 사랑하시듯 그 아이 또한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게야. 그러기에 일찍 이런 시련을 주어서 인간사의 무상함에 눈뜨도록 하시려는 거지.”
“언니는, 언니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군요…….”
소령의 주름진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정 사태가 떨리는 손으로 막내의 볼을 쓰다듬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얘야, 이 언니는 이미 다 잊었단다. 잊고 또 잊어서 더 잊을 게 없을 지경이지. 지금은 다만 그런 시련을 통해서 나를 더 가까이 두려 하신 부처님의 사랑에 감격할 뿐이란다.”
“흥! 그래서 언니는 사랑하는 꼬마 제자가 똑같은 일을 당하도록 방치했다는 건가요?”
소령이 쌀쌀맞게 머리를 흔들어서 소정 사태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소정 사태가 멍한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시련을 막아주는 것만이 사부가 제자를 위해 사랑을 베푸는 게 아님을 잘 안다. 시련을 맞이한 제자에게 바른길을 가르쳐 주는 게 사부가 해야 할 일이야.”
“그래서요?”
“하지만 아직까지 그 아이는 제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저의 시련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다. 정이라는 것이 그 아이의 눈을 가리고 생각을 막아버린 것이야.”
잠시 말을 멈추었던 소정 사태가 휴, 하고 긴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했다.
“그럴 때에는 내가 곁에서 무슨 말을 해도 고깝게 들리기만 할 뿐, 그것이 저를 위해 진심으로 하는 충고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지.”
“흥.”
소령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어느덧 따사로운 정감이 우러났다.
젊었던 시절의 그 곱던 얼굴은 어디 가고 주름이 가득해 흉해진 사형을 바라보는 눈길에 안타까움과 함께 감사와 고마움의 빛이 일렁인다.
소정 사태가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지난 십 년간 가슴을 졸이며 그 아이와 운몽을 지켜보았단다. 다행히 불미스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그 두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럽던지…….”
소령은 회상에 잠긴 것처럼 멍한 얼굴을 한 채 제 사형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 소령을 바라보는 소정 사태의 눈가에 다정다감한 웃음이 감돌았다.
“너도 보았다면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게다.”
“흥!”
그 말에 다시 마음이 변한 소령의 코웃음 소리가 좀 더 높아졌다.
그녀가 주름진 볼을 씰룩이며 심술궂게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더욱 눈꼴시어서 봐줄 수가 없었을 테지. 나야 원래 심성이 곱고 바르지 못하니까 말이에요.”
사형이 과거의 저를 빗대 나무라는 걸로 곡해한 것이다.
“얘야, 그런 게 아니란다.”
소정 사태는 자신보다 열 살 아래인 소령이 언제나 철부지로만 여겨졌다. 지금 그녀는 육십이 된 노비구니이지만 여전히 철없는 막내인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이 서로를 열심히 위하고 아껴주는 걸 몰래 지켜보면서 부처님께서 나를 위해 보살을 내려보냈다고 생각했단다.”
“…….”
“나의 업장을 그 아이들을 통해 씻어주고, 악연의 질긴 끈을 그 아이들을 통해 끊어주려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 언니는 그 못된 놈을 용서하시겠다는 거예요?”
소령이 뾰족하게 소리치지만 소정 사태의 얼굴에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노비구니가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는 듯, 부처님의 대자대비함을 느끼는 듯, 따뜻하고 행복한 얼굴이 되어서 천천히 말했다.
“은원과 애증을 모두 잊고자 이처럼 머리를 깎았고, 청정한 아미산의 기슭에 들어앉아 지난 사십 년을 보냈지. 이제는 그 모든 게 한낱 어지러운 꿈과 같아졌는데, 어디에 미움이 있고 용서가 있겠느냐? 흐르는 물처럼 내 마음을 그냥 그대로 둘 뿐이니라.”
“흥! 언니는 불성이 깊어 해탈에 가까워졌으니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아직 못된 성미를 다 버리지 못했으니 그럴 수 없어요!”
“네 자신을 괴롭게 하고, 남을 괴롭게 하며, 불성을 괴롭게 하는 일이니라.”
“쳇, 나 같은 나한이 지켜주니까 언니 같은 보살도 있을 수 있는 거지.”
“네 말은 기어이 그 아이들을 벌주겠다는 것이냐?”
“흥, 운몽이라는, 이름도 괴상망측한 그녀석이야 못된 사부를 찾아가 따져야 할 일이지만, 운지 그것은 당장 죄를 물어야하지 않겠어요?”
“그 일로 네가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
막내의 고집 앞에서 소정 사태는 깊은 한숨을 쉬었을 뿐, 더 이상 말리거나 회유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어린 제자가 앙칼진 사숙의 손에 의해 혹독한 벌을 받는다는 게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것으로 아미산에 불어닥칠 뻔한 분란을 무마시킬 수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 늦기 전에 운지가 스스로 정의 그물에서 빠져나오게 되기를 바라는 한 가닥 기대도 해본다.
소령으로서는, 언니가 워낙 간곡하게 말리는 탓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못마땅하지만 끝까지 제 고집만 부려서 소정 사태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학정봉으로 달려가 한바탕 난리를 쳐대고 싶었다. 그래야 시원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으니 운지에게 화풀이하는 셈이기도 하다.
‘흥, 언제고 학정봉에 찾아가 그 염치없는 놈을 단단히 혼내주고 말 테다.’
소령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별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