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검협전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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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476     추천 : 0     분량 : 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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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쑥 그런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해서이다.

 “사숙, 거기 무슨 일인가요? 누가 왔나요?”

 바깥의 동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운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소령 사태가 운몽을 잡기 위해 원자사수(元子四手)로 이리저리 손을 휘두르면서 대답한다.

 “별일 아니니 너는 꼼짝 말고 거기 있어라. 이 괘씸한 녀석을 붙잡은 다음에 너를 돌봐줄 테다.”

 운몽은 아무리 기를 써도 소령 사태를 따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사태 또한 그것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래야 때려눕히던지 붙잡던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꾸 이렇게 핍박하시면 소생도 더 참지 못하겠습니다.”

 운몽이 여전히 유운신법으로 이리저리 소령 사태의 움켜쥐고 낚아채려는 손길을 피하며 싸늘하게 말했다.

 다급해서 제 목소리를 감추어야 한다는 것마저 잊었다.

 절연암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운지가 ‘아!’ 하고 비명을 터뜨렸다. 잊을 수 없는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늘 귓전에 쟁쟁하고, 늘 꿈속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음성 아닌가.

 운지가 급히 갈라진 창문 틈에 눈을 붙였다. 흐릿한 달빛 아래 어지럽게 맴돌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짙은 남색의 옷을 입고 머리를 뒤로 묶은 건장한 젊은이의 뒷모습.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운지는 그것이 운몽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십 리 밖에 있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고 해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의 그림자만 휙, 스쳐 지나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를 확인한 운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이곳에 찾아온 것은 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소령 사태에게 저렇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금방이라도 운몽이 노사태의 손에 붙잡혀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호되게 내동댕이쳐질 것만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저 바보가, 저 바보가…….”

 입 안으로 계속 그 말만을 중얼거리며 운몽과 소령 사태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서 달아나, 제발…….’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지만 운몽은 소령 사태의 손 그물 안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태의 장영(掌影)은 그것이 미치는 사방의 공간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물샐틈도 없다.

 사실 사태의 그 아미산수(峨眉散手) 속에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운몽이 대단하고 대견한 일이었다. 하지만 운지는 마음이 닳아서 미처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놀라기는 그래서 그녀보다 소령 사태가 더 놀랐다.

 ‘이 못된 녀석의 재간이 제법이구나. 내 손에서 여태까지 버티다니. 좋다, 네 녀석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보자.’

 운몽의 신법을 보면서 사태는 눈앞의 잘생긴 청년이 누구인지 짐작했다. 그래서 더욱 미움이 생긴다. 그의 사부에 대한 미움까지 더해져서 마음이 더 독해졌다.

 펄럭이는 소맷자락에서 연신 웅장한 바람 소리가 쏟아지고, 어둠을 이리저리 찢고 쪼개며 어지럽게 쓸고 떨어지는 작은 손에서 매서운 암경이 뿜어진다.

 운몽은 사부와의 비무를 떠올리면서 조심조심 응수를 하고 있었다. 한 번 실수가 패배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른다.

 사부와의 비무에서는 패했다고 별일 있을 리 없었지만 소령 사태와의 싸움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운몽은 제가 아미소령으로 이름 높은 노고수를 맞아 이처럼 씩씩하게 잘 싸우고 있다는 걸 생각할 새가 없었다.

 휙―

 그의 소맷자락에서도 매서운 바람 소리가 토해졌다. 불쑥 내뻗은 손을 주먹에서 장으로 바꾸더니 이내 팡, 팡, 팡, 하며 세 번을 때리고 후려쳤다.

 육보장권(六步掌拳) 중 위력이 강하고 굳센 호두삼격(虎頭三擊)이다.

 내뻗는 손을 따라 웅장한 장력이 암경이 되어 뻗어나갔다. 후끈한 열기가 주위의 싸늘한 밤기운을 물리친다. 삼양신공을 운기한 것이다.

 그것을 본 소령 사태의 눈매가 더욱 매서워졌다.

 “이런, 발칙한 놈이 감히 발악을 하는구나!”

 매섭게 소리친 사태가 기어이 자신의 진산절예인 복호산수(伏虎散手)를 떨쳐 냈다.

 무릎을 살짝 굽혀 몸을 안정시키더니 열 손가락을 활짝 폈는데, 왼발을 성큼 내딛어 운몽의 장력 속으로 두려움없이 뛰어든다.

 운몽의 암경이 부딪쳐온 즉시 왼손을 휘둘러 그것을 물리치는 한편, 오른손으로는 손가락을 굽혔다 펴며 비수 같은 지력을 쏟아냈다.

 다섯 손가락이 마치 철침처럼 변하여 운몽의 가슴 앞 요혈을 노리고 무찔러 들어온다.

 그 기세가 날카롭고 예리하기 짝이 없어서 그대로 맞으면 당장 가슴에 다섯 개의 구멍이 뚫리고 말 것 같았다.

 자신의 굳센 장력을 대나무 쪼개듯 가르고 들어오는 사태의 손가락에 운몽은 더럭 겁을 먹었다.

 그녀의 아미신공이 상상보다 훨씬 웅장하고 컸던 것이다. 거뜬히 운몽의 삼양신공을 물리쳐 버린다.

 그때까지 운몽은 아미소령을 맞아 무려 이십여 초나 싸웠는데, 그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고, 소령 사태 또한 아미산에 칩거한 후 처음으로 겪는 해괴한 일이었다.

 운몽은 잔뜩 긴장한 데다가, 사태에게 잡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더해져서 자신의 능력보다 이 할을 더 쏟아 부었다.

 그에 비해 소령 사태는 운몽을 만만하게 보고 여유롭게 상대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확실히 사태를 놀라고 당황하게 할 만한 괴변이었다.

 소령 사태가 화가 나자 암자 안에서 창문 틈으로 바라보고 있던 운지는 더욱 조바심을 냈다.

 지금은 운몽이 잘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지 알 수 없는 일이고, 그가 소령 사숙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사숙의 무정한 손에 맞아 피를 토하며 거꾸러질 것만 같아 더 조마조마하다.

 그런 한편으로는 운몽이 어느덧 저렇게 성장했고, 제 사숙과 당당히 맞서 겨룰 만큼 무공이 높아졌다는 게 대견스러웠다.

 더욱 사랑스런 마음이 우러나 눈시울마저 붉어진다.

 

 운몽은 초수가 지날수록 처음의 당황함 대신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속으로는 여전히 입술이 탈 만큼 긴장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침착하게 소령 사태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상대하고 있는 노사태가 얼마나 무섭고 매서운 사람인지 잘 안다.

 제가 그런 소령 사태를 맞아 이십여 초가 지나도록 당당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이제는 새로운 놀라움이었다.

 사부의 절기를 풀어내는 데 있어서 조금도 막히거나 어색한 데가 없었는데, 특히 임기응변에 있어서는 어느새 저만의 틀과 품격을 갖출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건 사부와 비무할 때도 드러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비무라는 게 워낙 서로의 진솔한 수법으로 겨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부가 다그치는 속도와 강력함이 다른 아무것도 떠올리거나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부를 겪었던 경험이 있는 운몽에게 소령 사태는 한결 여유가 있는 상대였다.

 물론 그녀의 무서움 때문에 손발이 엇갈리는 매 순간마다 가슴이 저릿저릿해 오지만 제 사부를 상대할 때보다는 편했던 것이다.

 그게 운몽의 느낌이었고, 제 사부와 소령 사태와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기도 했다.

 소령 사태는 이십여 초가 넘도록 운몽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잡을 수 없게 되자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그녀가 잔뜩 화가 나서 나이와 신분을 잊고 버럭 소리쳤다.

 “이 녀석, 몸뚱이에 참기름을 바른 놈 같구나! 좋다. 네가 앞으로 나의 다섯 초식을 더 받아낸다면 오늘은 너를 무사히 보내줄 테다!”

 “좋습니다! 기꺼이 모시지요!”

 운몽도 이제는 한결 자신감을 갖고 마주 소리쳤다.

 “흥!”

 소령 사태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와락 몸을 던지듯 부딪쳐 갔다.

 운몽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사문의 추운미종보(追雲迷從步)를 밟아 나아가는 한편, 좌우쌍박(左右雙搏)의 수법으로 두 손을 동시에 휘둘러 대항했다.

 처음과는 달리 침착하기 짝이 없고 장력의 굳셈과 공수의 어우러짐이 조화를 이룬 것이어서 소령 사태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합!”

 그녀가 짧고 날카롭게 기합성을 터뜨리며 척발의 수법으로 잡아오는 운몽의 손을 뿌리치고 일장을 내뻗었다.

 도향유운(桃香流雲)의 초식은 원래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고 질긴 것인데, 소령 사태의 그것은 마치 수천, 수만 개의 꽃송이가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날아드는 것처럼 맹렬하고 사납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사태의 막강한 신공이 실려 있으니 그 사나움이 가히 하늘을 놀라게 할 만하다.

 펄럭이는 소맷자락에서 쇠를 긁어대는 것처럼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넓은 승복 소매 속으로 하얀 손이 들락거리며 나오고 들어가는 게 눈부실 지경이다.

 소매 속으로 손이 들어갔을 때는 용이 잿빛 구름 속에 숨은 것 같았다. 언제 어느 방위에서 다시 튀어나올지 몰라 상대는 절로 긴장하게 된다.

 그것이 불쑥 튀어나올 때는 검집 속에서 보검이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그 예기와 일격필살의 기백이 상대를 놀라게 한다.

 운몽은 불과 두어 초식을 막고 피했을 뿐, 곧 노사태의 기세와 재간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게 되었다.

 “흥, 흥, 어린 녀석이 제법이구나? 그런데 언제까지 절기를 숨기고 있을 셈이지?”

 사태가 번개처럼 손발을 놀리는 와중에도 여유를 갖고 이죽거렸다.

 운몽은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이 얄미운 노사태를 냉큼 붙잡아 내팽개치고 싶은데, 손발이 전혀 뒷받침해 주지 못하니 애꿎은 제 손발에 화가 난다.

 “이얏!”

 그것에 화풀이를 하듯 매섭게 외친 운몽이 더욱 힘을 주어 주먹을 내뻗고 장을 밀어내며 팔꿈치를 들이밀었다.

 이와 같이 험악한 박투의 수법은 아미파의 장기인데 운몽이 오히려 소령 사태보다 더 악착같이 달려든다.

 사태가 말한 다섯 초식 중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초식이 지나갔다. 그만큼 두 사람은 자기를 돌볼 새도 없이 벼락처럼 부딪쳤고, 번개처럼 손속을 나누었던 것이다.

 이제는 사태의 마음이 급해졌다. 제 말을 지키지 못하면 망신이려니와, 장차 학정봉의 노괴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도 큰소리를 칠 수 없을 것이니 더욱 그렇다.

 소령 사태는 물이 흐르듯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운몽의 초식과 내력을 보면서 의아했다.

 ‘이 어린 녀석이 정말 그 노괴의 진전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단 말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 가슴이 서늘해지는 한편, 죽여 버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살려두면 장차 강호에 또 한 명의 마두가 될 것이다. 이 기회에 화근을 제거하는 게 낫겠다.’

 독하게 마음을 먹은 소령 사태가 금강선공(金剛禪功)을 칠팔 성에 이르도록 끌어올렸다.

 그리고 즉시 수법을 바꾸어 구음신장을 펼쳐 냈다.

 강하던 것이 부드러워지고, 곧던 것이 굽어져 나오는 변화에 운몽은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갑자기 상대의 수법은 물론 그 기세와 기운까지 바뀌어 버렸으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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