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검협전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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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470     추천 : 0     분량 : 5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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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독한 마음으로 사부가 다려주는 쓰디쓴 시커먼 약을 꼬박꼬박, 하루에 두 번씩 받아 마셨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자 더는 못 버틸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무슨 약재를 어떻게 다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부가 몸소 아미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돌아다니며 채집해 온 것들이라는 걸 알 뿐이다.

 늙은 사부가 자신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게 고맙고 미안해서 다시 한 달을 버텼다.

 그동안 운몽의 몸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는데, 얼굴이며 몸뚱이에 생겼던 그 끔찍한 상처들도 아물어 딱지가 벗겨졌다.

 희한한 일은, 한 번만 딱지가 앉고 벗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딱지가 떨어진 흉한 자리에 다시 딱지가 생기고 또 떨어지기를 무려 세 번이나 거듭했다.

 그리고 더 희한한 건, 얼굴에 남을까 봐 은근히 걱정했던 상처 자국이 대패로 깎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새 살이 돋아 나오기를 세 번이나 했는데, 그건 상처 자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온몸이 근질거리면서 각질처럼 변해 버린 피부 조각이 훌렁훌렁 벗겨지곤 했던 것이다.

 그것 역시 세 번이나 그렇게 벗겨지고 새 살이 나오고 또 벗겨졌다.

 그래서 운몽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맑고 투명한 피부를 갖게 되었다. 두 달 동안이나 곡기를 끊었는데도 자르르 윤기가 돌고, 오히려 그전보다 더 탱탱해졌으며 부드러워졌다.

 운몽은 나이 들고 머리가 커져 가면서 제 사부 광명존자가 대단한 이인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두 달이 지나고 나서는 정말 학정봉의 살아 있는 신령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건 자신의 몸에 생긴 희한한 일 때문이었다. 상처가 아물면서 내공 또한 부쩍부쩍 높아져 갔던 것이다.

 약을 장복하자 생긴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이기도 했다.

 운몽은 하루에 세 번씩 정좌하고 앉아 조용히 운기삼매에 들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부의 신공인 삼양신공을 수련했는데, 그때마다 마치 장맛비에 개울물이 불어나듯이 불어나는 내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운몽은 그런 현상에 대해 사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광명존자가 흘흘, 웃었다.

 “이놈아, 우선 약부터 한 사발 들이켜라.”

 운몽은 오만상을 썼지만 마다하지 않고 약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커흠, 잘 들어라. 무슨 일이든지 더 높은 성취를 이루기 직전에는 반드시 장애에 부딪치느니라. 성장하는 아이들이 성장통을 겪는 것과 같지. 그래야만 뼈마디가 굵어지고 커지니 말이다. 그것과 같은 게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해주세요.”

 “너의 삼양신공이 드디어 그 벽에 다다랐단 말이다. 기를 쓰고 그것을 깨뜨리려고 하는데, 네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

 “……?”

 “내가 해줄 작정이었다. 나의 내공으로 너의 운기를 도와 단번에 벽을 깨뜨리고 상승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줄 생각이었어. 그렇지 않으면 십 년이 걸려야 할 테니 얼마나 갑갑한 일이냐, 안 그래?”

 “그런데요?”

 “그래서 누구든 공력을 수련하는 자는 그것이 어느 정도 성취를 보이면 그때는 곁에 인도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주화입마에 빠져 허덕이게 되지. 다행히 너에게는 이 사부가 있으니 걱정없어. 어때? 사부가 고마운 존재 아니냐?”

 “그런데 사부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요?”

 “흘흘,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역시 알 수 없는 말이다.

 “기특하게도 그 못된 소령 사태가 그 일을 해주었거든.”

 “예?”

 운몽이 어리둥절해서 멍청한 얼굴을 하고 제 사부를 바라본다. 광명존자가 수염을 쓸며 벙긋벙긋 웃었다.

 “너에게 지독한 아미 금강선공을 때려대지 않았느냔 말이다. 흘흘, 그때 그 망할 늙은 비구니는 너를 당장 때려죽이려는 심보에서 그랬을 거야. 하지만 복이 변하여 화가 되고, 화가 변하여 복이 되는 세상사의 이치를 어찌 고집 센 늙은 비구니가 다 알 수 있으랴.”

 “그럼 그 일장이 저에게 오히려 약이 되었다는 건가요?”

 “흘흘, 바로 그거야.”

 “저는 여전히 알 수 없군요.”

 “그거야 네가 멍청한 놈이라 그렇지. 잘 생각해 봐라. 가죽 부대 속에 물이 잔뜩 들어 있어. 하지만 부대의 주둥이가 꽉 막혀 있으니 쏟아져 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누가 자꾸 물을 부어 넣어준다고 해봐. 그럼 어떻게 되겠느냐?”

 “결국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대가 터져 버리겠지요.”

 “흐흐, 이제 알겠느냐?”

 “아!”

 운몽이 놀란 외침을 터뜨렸다.

 비로소 제 몸의 변화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찾은 것이다.

 소령 사태의 막중한 내력이 그대로 가슴을 통해 온몸의 기혈에 쏟아져 들어오지 않았던가.

 자신의 삼양신공으로는 그것에 대항할 수 없어서 크나큰 내상을 입고 거의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소령 사태의 금강선공은 공교롭게도 운몽의 자생적인 반발력을 촉발시킬 만큼만 되었던 것이다.

 그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했더라면 운몽은 내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부족했더라면 그처럼 심각한 내상은 입지 않았을 테지만, 저의 공력만으로는 뚫지 못했던 폐혈들을 일시에 뚫어버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태의 금강선공에 의해 촉발되어 강력하게 일어난 자생적인 반발력은 운몽의 세맥 속에 흩어져 있던 모든 기운이었다.

 그것들이 성을 내며 노도처럼 기해로 모여들었고,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난 것처럼 삼양신공의 기운이 급격히 불어나 폭발을 일으켰다.

 그 힘이 단번에 폐혈을 뚫어버렸다.

 운몽으로서는 뜻하지 않게 대성의 기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 임독양맥을 타통할 근거가 마련된 셈이니 그렇다.

 그 공교로운 일에 운몽은 거듭 감탄성을 터뜨렸다.

 “흘흘, 네 명줄이 길었던 게야. 하늘이 아직 네놈을 데려갈 때가 안 되었다고 여긴 거지. 그러니 부지런히 약이나 처먹고 버텨라. 이제 한 달만 견디면 된다. 그러면 내가 조금 도와주도록 하지. 임독양맥은 들끓어 오르는 네놈의 공력을 이끌어주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타통될 것이고, 생사현관은…… 모르겠다. 그거야 네놈의 운이 닿으면 언제고 뻥, 뚫려 버리겠지 뭐.”

 

 

 

 

 제10장 아미산을 떠나다

 

 

 

 사부가 말한 석 달이 지났을 때, 운몽은 과연 제 몸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곡기를 끊은 지 석 달이 되었지만 기력은 오히려 더욱 충실해졌고, 정신도 비교할 수 없이 맑아졌다.

 몸이 날아갈 듯해서 걸음 걷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운기를 하면 공력이 마구 샘솟아 올라 주체하기 힘들어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광명존자는 용케 알고 운몽의 명문에 장심을 붙였다.

 그러면 사부의 무궁무진한 내력이 불덩이처럼 쏟아져 들어와 운몽의 날뛰는 공력을 잘 이끌어주곤 했다.

 운몽은 그동안 자신의 공력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뻔한 위기를 두 번 맞았고, 매번 사부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나면 공력은 봄비에 죽순 자라듯 쑥쑥 커져만 갔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사부가 운몽을 앉혀놓고 말했다. 조금의 장난기도 없다.

 “이제는 나도 너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의 공력이 무섭게 증진해서 내 힘으로도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단 말이다.”

 겨우 석 달이 지났을 뿐인데 자신이 그렇게 변했다니 어리둥절하다. 운몽은, ‘이러다가 석 달이 더 지나면 내가 혹시 괴물로 변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했다.

 사부가 다시 말했다.

 “너의 내공의 증진 속도는 내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나도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나의 영약 제조술이 언제 이렇게 높아졌을꼬? 내가 이제는 정말 지단법(地丹法)을 이루었단 말인가? 그럼 다음은 인단법(人丹法)을 실행해야 하는데…… 어허, 이 나이에 그거야 불가능한 일이고…….”

 제가 생각하고 말해놓고도 어처구니없었던 듯 광명존자가 커흠커흠, 하고 거푸 바튼기침을 했다.

 선도(仙道)에 전해지는 연단법(鍊丹法)에는 천단과 지단, 인단의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인단법이란 남녀의 음양 교접을 통해 양기를 또는 음기를 축기하여 공력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광명존자가 제 말에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건너뛰고, 이제는 선단(仙丹)을 조제하는 천단법을 시행해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어허, 그렇다면 연단로(鍊丹爐)부터 장만해야 하는데…… 돈이 없구나, 빌어먹을. 이제는 신선이 되려 해도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니…… 대체 언제부터 이런 빌어먹을 세상이 되었을꼬?”

 횡설수설이다.

 운몽은 사부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팔십을 넘긴 연세가 되시더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사부를 바라보는 눈길에 안타까움과 연민지정이 가득했다.

 “뭘 그렇게 보는 게냐?”

 광명존자가 즉각 눈을 흘긴다.

 

 그날부터 운몽은 존자의 비전 절학들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존자의 모든 것을 비로소 배우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십 년 동안이나 닦아온 운몽의 기초는 워낙 단단해서 존자는 두 번 말하고 시범 보일 필요가 없었다.

 한 가지를 보여주면 벌써 제 나름대로 파악하고 궁리해서 새로운 열 가지를 만들어낼 지경이니, 가르쳐 주는 존자가 머쓱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대서 존자는, ‘이거 내가 고수가 아니라 괴물을 하나 만들어낸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게 강호의 복이 될까, 화가 될까? 영 헷갈리는걸?’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운몽의 심성이 곧고 꿋꿋하다는 걸 잘 아는지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 타고난 팔자대로 가는 건데, 나의 신통력으로 봤을 때 저놈은 장차…….”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머리를 흔든다.

 “에이, 모르겠다. 제가 알아서 잘살아야 하는 거지 뭘.”

 운몽이 땀을 뻘뻘 흘리며 신공절초를 수련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존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운몽의 수준이 그만하면 되었다고 여긴 광명존자는 비로소 자신의 성명절학이라고 할 수 있는 분광십이검(分光十二劍)과 뇌정신장(雷精神掌), 그리고 경공신법의 정화라고 할 수 있는 유성구천(流星九天)을 전해주었는데, 운몽은 마치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사부의 신공절학들을 무섭게 흡수하고 있었다.

 그날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수련하던 운몽이 문득 사부를 바라보더니 불쑥 물었다.

 “이게 다예요? 다른 건 없나요?”

 “뭘 더 원하는데?”

 “이것저것 다양하게 배워두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운몽은 사부가 고작 세 가지의 절기를 가르쳐 주고 그걸로 끝내려는 것 같아 불만이었던 것이다.

 광명존자가 한심한 놈을 본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쯧쯧, 혀를 차고 말했다.

 “이놈아, 너는 손이 두 개지?”

 “예?”

 “밥 퍼먹을 때 한 손만 쓰지?”

 “……?”

 “어째서 두 손 다 쓰지 않느냐?”

 “그렇게 하는 건 가정교육이 형편없는 후레자식들이나 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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