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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종이비행기
작가 : 길성진
작품등록일 : 20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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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장난
작성일 : 17-06-08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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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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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희는 청소당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처해서 날 도와주었다.

 서로 대걸레로 교실 바닥을 닦는 도중, 문득 궁금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다시 온거야? 교실에 뭐 두고간거라도 있었어?"

 "리코더를 깜빡했거든. 내일 음악수업 준비물이잖아."

 "그럼 그냥 두고가면 되지않아?"

 "그건 안돼. 안그럼 이수진 그 도둑년이 또 훔쳐갈 것 같아서."

 "……걔가 네 리코더를 훔쳐갔다고?"

 "그래."

 나에게 심한 상처를 새기던 그 아이의 방패가 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조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세희는 그런 내 표정을 확실하게 읽었는지, 대걸레를 내려놓고 이수진의 사물함으로 걸어갔다.

 자물쇠는 걸려있지 않았다. 그녀는 사물함을 열더니 보란듯이 리코더를 꺼내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로 박세희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정말이네."

 "없어져서 당황했거든. 그런데 자연스럽게 지가 쓰고있더라. 내거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억울한듯이 화를 내는거 있지?"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적당히 사과하고 끝냈지. 더이상 쏘아봤자 아까처럼 질질 짜면서 지 친구들 불러올테니까."

 "조금 화나네."

 

 실제로 그랬다. 나는 여자를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이었다. 그저 그 아이의 발랄한 겉모습에 보기좋게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화난 이유는 다른 대에 있다. 세희의 물건을 마음대로 훔쳐가놓고 오히려 화를 냈다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복수할 생각이야. 지금 막 떠오른 거지만."

 "복수?"

 "응, 복수. 솔직하게 말해봐. 너도 걔가 원망스럽지?"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여자애들은 날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러려니 해."

 "바보야. 그런건 다 뻔한 내숭이야. 걔들은 그런 걸로 단합하는 거라구. 그리고 '여자애들'중에서 난 빼고."

 "……."

 세희는 멍하니 쳐다보는 날 향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자, 다시 한 번 말할게. 너도 걔가 미워죽겠지?"

 "…응."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세희의 미소는 더욱 짓궂어졌다.

 "그럼 같이 복수할래?"

 "…응. 복수할래. 같이 복수하자."

 정답이야. 내 대답을 들은 세희의 표정이 그렇게 말했다.

 "따라와. 엄청 재밌을거야!"

 세희는 설렘 가득한 말투로 말하더니 내 손을 잡고서 교실을 나섰다.

 

 

 

 

 향한 곳은 남자 화장실, 목적은 탈수기 통이었다.

 대걸레를 빨아 탈수기에 짜내니 구정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잘봐."

 그리고나서 신남을 주체 못하겠다는 표정을 한 세희는, 교실에서 가져온 리코더의 마우스피스 부분을 담궈버렸다.

 그 순간, 죄책감 따위보단 마치 신세계를 경험하는 모험감 비스무리 한 것이 가득 채워졌다.

 너무나 짜릿하고 재밌고, 설레고, 흥미로웠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어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린다.

 나와 세희는 킥킥웃으며 리코더의 마우스피스 부분을 구정물에 계속 담궜다 뺐다를 반복했다.

 "걘 이제 세상물정 모르고 이 더러운 리코더를 입에 무는거야."

 그 말을 들으니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다.

 "나도 해볼래."

 "자, 여기."

 나는 리코더를 이어받은 뒤, 마법사가 마법의 물약을 만들듯 구정물을 젓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세희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배를 쥐여잡는다.

 어느정도 웃음이 사그라들고 이번엔 변기통 물에 넣었다.

 이러다간 배에 초콜릿 복근이 드러나는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더할 나위없이 깔깔 웃어댔다.

 조금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미안한 감정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 뿐만 아니라 세희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엄청나게 신난 그녀의 표정으로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좋아하는 여자애와 이렇게 신나게 장난을 치다니. 함께하는 동안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물기를 말린 뒤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마음껏 복수를 하고나니 우리 둘 사이에 특별한 유대감이 형성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의 마지막을 장식해줄 6교시.

 리코더를 불어야 하는 음악 시간이 다가왔다.

 운이 좋게도 나와 세희의 자리는 교실의 중앙부분 맨 뒷자리로, 반 녀석들의 동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담임 교사는 악보 밑부분에 계이름이 적힌 프린트물을 나눠주고는 10분간 자유연습을 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적당히 부는 척을 하며 창가 자리의 중간 부분에 앉아있는 이수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대망의 순간. 그 아이는 리코더를 입에 가져가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는 안에서부터 팽창되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누르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우리들의 장난은 계속되었다.

 바보같은 교사를 골탕 먹이기 위해 몰래 교무실에 들어가 중요한 서류를 가져온다든가,

 조금이라도 원망스러운 녀석들의 필통에 몰래 바퀴벌레 모형을 넣는다든가,

 슬리퍼를 시청각실에 숨겨놓는다든가,

 혹은 완벽한 시간상의 알리바이를 위하여 방과 후 하교를 하고 모두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린 다음, 다시금 교실에 들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의 자리에 풀칠을 해놓는다든가.

 처음에는 대부분이 세희의 제안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따라 내 쪽에서도 재밌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큰 소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우리 두 사람의 이미지는 그런 장난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여서 걱정할 필요따윈 처음부터 없었지만.

 나 뿐만 아니라 세희 또한 쉬는 시간을 혼자 지내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엔 노트를 찢어 쪽지를 주고받았다. 심지어 시험 시간엔 서로가 만든 은밀한 제스처로 정답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성적이 좋은 편에 속해있어서, 모르는 답을 공유하기보다는 서로의 답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용도였다.

 시험에서 전과목 만점을 받은 사람은 전교에서 나와 세희가 다였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가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 당당해졌다.

 그도 그럴게 우리들은 외모 뿐 만 아니라 성적 또한 확실하게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명백하게 너희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라는 아우라를 뿜으면서 보다 확실하게 녀석들을 바보 취급했다.

 우리들의 분위기는 녀석들의 간섭을 확실하게 차단했다.

 어느새부터인가 반에서는 우리들이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더욱 마음놓고 장난을 쳐댔다.

 세희와 함께했던 매일 매일이 즐거웠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겨울이 다가왔다.

 앞으로 조금만 지나면 우리는 중학생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린 서로 다른 중학교를 지망하게 되었다.

 겨울 방학때 세희네 집은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다고 한다.

 그 곳과 가까운 중학교에 입학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도 세희가 지망한 중학교까진 꽤 거리가 있어 지망을 바꾸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이때 당시엔 우리 둘 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편지라든가 PC메신저, 혹은 집전화등 연락을 취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계속 세희와 함께 하고싶었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이별 또한 더욱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싶은 말들이 잔뜩 있다는 것을.

 

 

 

 

 졸업식 전 날, 모두가 하교를 하고 둘만 남은 허전한 교실.

 창가에서 스며드는 겨울 날의 햇빛이 교실을 은은하게 비춘다.

 "벌써 내일이네. 졸업식."

 먼저 말을 꺼낸 건 세희였다.

 쓸쓸함이 묻어져나오는 그녀의 한마디는, 서로가 줄곧 시선을 피해왔던 사실을 똑바로 마주하게끔 만들었다.

 이젠 숨기지 말자. 쓴웃음을 지으며 책상을 내려다보는 세희의 모습이 그렇게 말했다.

 "작년에 자리 바꾸기 시간때 있었던 일. 기억해?"

 "당연하지. 넌 그때 교실에서 혼자 훌쩍이고 있었어."

 "네가 위로해주었어. 게다가 그 날은 함께 리코더를 더러운 물에 담궈버리는 복수도 했었지."

 "함께…. 응. 함께."

 세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흘렸다.

 힐끗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을 정도로 눈가가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는, 시선을 다시 책상으로 내리깔고 상냥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응."

 "어째서 그때, 내 짝이 되겠다고 손을 들어준거야?"

 줄곧 궁금해왔던 사실이다. 얼떨결의 동정심이 그녀를 행동하게 만들었어도, 딱히 기분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고마움을 느끼겠지. 계기가 뭐든간에 그녀는 내 옆으로 와주었으니까.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가은이 너를 좋아했으니까."

 고개를 돌려 세희를 쳐다보자 세희 역시 날 마주보고 있었다.

 촉촉히 젖다못해 살짝 붉어진 여린 눈엔 거짓 한 톨 담겨있지 않았고, 그 대신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본 순간의 나는, 세희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도 너를, 세희를 좋아했어."

 나의 진심을 전하는 순간, 세희는 "응."이라고 대답하더니 기어이 눈물을 흘려버렸다.

 하지만 아직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서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 세희의 손을 잡았다.

 "나랑 사귀자."

 그리고나서 마지막 한마디를, 나의 진심을 그녀에게 꺼냈다.

 "……응. 사귀자."

 세희가 내 손을 꼬옥 잡아왔다.

 그 뒤로 졸업식을 맞이한 우리는,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진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걸었다.

 서로의 모습을 보진 못해도,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중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나는 들뜬 마음으로 세희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귓가에 들려오는 건 언제나 듣던 세희의 맑은 목소리가 아닌,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성이었다.

 재차 확인해보아도 번호를 잘못 입력하진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행복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말이다.

 너무나 뜬금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헤어지자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세시간 정도가 지나고나서야 겨우 이해했다.

 내가 슬퍼할까봐 직접 말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귀찮거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다려보자. 불안한 마음으로 우선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번호는 우리집 번호도 알려줬으니 말이다. 전화기가 망가진 것이면 나중에 다시 세희쪽에서 전화를 걸겠지.

 그런 희망을 품고서.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나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반 년이 지날 무렵에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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