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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종이비행기
작가 : 길성진
작품등록일 : 20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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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6     조회 : 305     추천 : 0     분량 : 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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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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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집은 2층이 있을 정도로 천장이 높았다.

 내가 쓸 방을 안내해주겠다는 그녀들을 따라 목재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자 여기가 앞으로 가은이가 쓸 방이야."

 문을 열고서 조명 스위치를 누르자 환하게 비춰지는 넓은 방이 한 눈에 들어왔다.

 둘러보니 옷장과 더불어 책상이나 침대같은 가구들이 놓여있었다. 벽엔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

 이 곳이 내가 쓸 방이라며 태연하게 말한 아현씨지만 솔직히 이런 대접엔 기쁨이나 감사보단 부담스러움이 우선이었다.

 아현씨와 시선을 마주치자 내 속마음을 알아챘는지 생긋 웃었다.

 "이 집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이야. 이 방은 아버지가 친구분들 부르셔서 함께 마시고 자는 용도로 사용하셨던 방이고. 한마디로 손님방이지. 관리는 해왔지만 평소엔 원래 안쓰던 방이니까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

 평소 안쓰던 방이라는 소리에 조금이나마 무거운 마음이 덜어졌다. 그래도 아직까진 감사합니다라며 넙쭉 받아들이는 건 조금 섣부르지 않을까.

 이 방을 받아도 될 지 아직도 망설여진다.

 "1층엔 방이 두 개밖에 없어서 나랑 이 아이가 쓰고 있거든. 남은 방은 여기밖에 없어서 마음에 안들더라도 조금 참아줘."

 "마, 마음에 안든다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

 고개를 저으며 즉시 부정했다. 내가 쓰던 방보다 훨씬 넓고 1층과 마찬가지로 벽과 바닥이 목재라는 점에서 상당히 친환경적인 이미지가 매력적인 방이었다.

 다만, 역시 대답하기가 꺼려진다. 예전에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용돈을 내밀어주실 때 뜸을 들이며 섣불리 손을 못내미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럼 혹시 우리랑 같은 방을 쓰고 싶은거야?"

 짓궃은 미소를 띄우며 떠보듯 물어오는 아현씨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크흐흡."

 "푸흡."

 당황하며 손사레를 치자 소녀와 아현씨가 쿡쿡 웃었다.

 그래도 방금 그녀가 던진 농담에는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배려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감사를 전하자 아현씨가 친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이런, 가은이랑 좀 더 대화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늦었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새 새벽 2시에 가까워져있었다.

 "그러게요. 우리도 슬슬 돌아가요, 언니."

 "그러자."

 말을 주고받은 뒤 방을 나서는 그녀들이 뒤돌아보았다.

 "잘자렴, 가은아."

 "잘자."

 밤 인사를 건내는 소녀와 아현씨를 번갈아가며 나도 그녀들에게 어색하게 대답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문을 닫고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그녀들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간다.

 방에 혼자남게된 나는 방 안을 둘러보며 방의 모습을 눈에 새겼다.

 이 방이 앞으로 내가 자고 일어나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아직은 낯선 감이 있다.

 조명을 끄자 어두운 방 안을 비추는 환한 달빛이 창문 틈 사이로 새어들어온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스며드는 달빛을 멍하니 감상하며 어제 오늘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커다란 창문 틈새로 쏟아지는 아침햇살과 참새들의 맑은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혀댄다.

 점점 균열이 가는 아침의 의식속에서 확실한 두드림이 된 것은 누군가가 내 이마를 어루만지는 촉감이었다.

 스르륵 눈을 뜨자 누군가가 내 앞머리를 살포시 들춰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흐릿하게 들어온다.

 짧은 시간이 흘러 그게 검은색 반팔티를 입고있는 소녀라는 것을 알게됐을 땐 퍼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벌떡 일어나자 소녀는 이마에 대던 손을 치우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슬슬 아침밥 준비 다 돼가니까 씻고 내려오래."

 "어. 응……."

 소녀도 방금 일어난건지 머리카락엔 아직 물기가 있었다.

 "옷 입고 잔거야? 아, 가져온 옷이 없었지. 참."

 "응…. 오늘 시내에 가서 옷가게에 들러야겠네."

 여벌의 옷은 물론이고 잠옷이나 속옷조차 가져오지 못했다.

 이 집에 살게 된 이상 옷 말고도 칫솔이나 개인 컵같은 생활필수품들을 준비해야할 필요가 있다.

 "나도 시내 갈 생각인데 아침 먹고 같이 가자."

 "그래."

 계단을 밟으며 1층으로 내려가자 오븐 장갑으로 완성된 김치찌개를 테이블로 옮기던 중인 아현씨와 마주쳤다.

 "좋은 아침~. 잘잤니?"

 "아, 예……, 덕분에 편히 잘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싹싹하게 인사하자 아현씨가 생긋 웃었다.

 "씻고 와. 아침 다 됐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잠깐!"

 대답하고 세안을 하기위해 발길을 돌리던 그때, 아현씨가 멈춰세웠다.

 돌아보니 귀엽게 양 손을 허리에 올린 채 일부러 삐친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은이는 말투가 너무 딱딱해! 그렇게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까 좀 더 스무스하고 편하게. 친한 누나를 대하듯이."

 "누, 누나요?"

 "응. 한 번쯤은 가은이같은 남동생을 가져보고 싶었거든."

 "……."

 "빨리 누나라고 해봐."

 확실히 누나라고 부르는 게 어울린다. 오히려 그렇게 불러볼까 싶었지만 멋대로 누나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워 그만뒀다.

 그리고 꽤 사교적인 성격의 그녀에겐 그녀가 원하는대로 하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면 어느정도의 친밀감은 필요할테니 말이다.

 그 방법으로써 그녀의 제안은 좋은 방법이다.

 "……알겠어요. ……누나."

 역시 갑자기 부르기엔 조금 쑥쓰럽지만…….

 하지만 그런 나완 다르게 아현씨에겐, 아니. 아현 누나에겐 그게 반가운 소식이었는지 만족스럽다는 듯 흐뭇하게 웃었다.

 잠시 그 모습에 현혹된 나는 도망치듯 세안을 하러갔다.

 

 

 

 

 식탁위로 콩나물무침과 양념깻잎, 마늘장아찌등의 각종 반찬들이 김치찌개와 함께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소녀가 국자로 김치찌개를 퍼서 그릇에 적당량을 담더니 건내주었다.

 "고마워."

 그 다음은 아현 누나의 몫을 담아 그녀에게 "드세요."라며 건내준다.

 상냥한 미소로 고맙다는 말이 건너가고 테이블엔 훈훈함이 엿보였다.

 오히려 유령이 되어서 생활이 밝고 나아진다는 게 조금 우스꽝스러웠지만,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을 하며 수저를 집었다.

 "아참, 말해주는 걸 깜빡했네."

 식사 도중,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려던 아현 누나가 떠올랐다는 듯 손을 멈췄다.

 우물거리던 것을 꿀꺽 삼키며 그녀를 쳐다보자 이 집의 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집에 살게 된 이상 서로 지켜야 하는 룰이 있거든. 우선 가사당번. 하루에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가사당번을 해야해."

 "설거지라든가 청소 말씀하시는거죠?"

 "그렇지. 자기 옷은 자기가 빨래할 것. 청소도 자기 방은 자기가 청소할 것. 그리고 냉장고 안에 있는 간식거리들은 마음 껏 가져다먹어도 된다만 가져다먹은 만큼 나중에 채워넣을 것."

 납득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이버시의 존중이 묻어나오는 당연한 룰이었다.

 "가사당번은 설거지와 청소가 전부지만 청소는 그냥 부엌이랑 거실만 하면 돼~. 어때 간단하지?"

 "간단하네요. 오늘은 그럼 제가 할게요."

 "좋아. 그럼 내일은─."

 그때, 소녀를 바라보던 아현 누나가 순간 말을 멈췄다.

 "……부탁할게~."

 "네, 언니."

 살짝의 뜸을 들이고 뒤늦게 수습하듯 말하는 그녀에게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째서 둘은 나에게 이름을 숨기는 것일까. …아니. 그게 아니다.

 숨기는 것은 소녀 뿐이다. 어떠한 사정인지는 몰라도 소녀는 나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려하고, 아현 누나는 그걸 돕는 것이다.

 물론 소외감같은 건 전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에 어떠한 트라우마같은 것일테지.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캐묻지 않겠다는 배려를 하기로 했다.

 식사가 끝난 뒤엔 그릇들을 싱크대에 쌓아두고 미니 컵 아이스크림으로 디저트 타임을 가졌다.

 듣기론 여자의 위는 식사 따로 디저트 따로 공간이 나뉘어 있다고 한다.

 물론 가벼운 우스갯소리가 분명하겠지만 어제도 그렇고 그녀들은 식사 후엔 디저트를 꼭 챙기는가보다.

 그런 면에서 저 말은 누가 발견했는지는 몰라도 재밌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어른인 척을 하는 건 아니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디저트를 야금야금 먹는 그녀들의 모습은 뭔가 어린애같아 귀여웠다.

 디저트 타임 이후에는 설거지를 했다.

 스펀지에 주방세제를 묻혀 거품을 내고 그릇을 닦는 도중, 소녀는

 "도와줄게."

 "괜찮아. 그러지 않아도 이정도는……."

 미안한 마음에 사양하려했으나 소녀는 고무장갑을 끼우더니 다른 스펀지로 거품을 내고는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고마워. 여러모로."

 "별 거 아니야."

 소녀가 그릇을 닦고 건내주면 나는 그것을 받아 흐르는 물에 씻는다.

 처음엔 서로 그릇에 거품을 내고 씻었지만 곧이어 일의 순서가 정해지게 되었다.

 왠지 이렇게 나란히 설거지를 하는 우리의 모습이 부부같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유치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겐 별 거 아닐지도 모르는 걸로 흔한 착각에 빠지는 것. 남자들의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럼에도 의식하는 것을 그만두기는 힘들었다. 애초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저절로 들게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착각하지 말라며 자기암시를 하는 것 뿐이다.

 "니들 꼭 부부같다."

 "앗……!"

 그러나, 아현 누나가 적당히 내뱉은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씻던 그릇을 손에서 떨어뜨리게 되었다.

 "워~. 너무 티나잖아. 가은이는 연기하면 안되겠다."

 다행히도 그릇은 깨지지 않은 채였다. 나는 몇 번의 어색한 헛기침을 한 뒤에 떨어진 그릇을 집어 흐르는 물에 씻고 그릇거치대에 얹어놓았다.

 여전히 킥킥웃어대는 누나덕에 평상심을 되찾긴 힘들었다.

 학창시절 간혹 방금같은 농담에 악의를 담아 던져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내 옆자리의 여자애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하는 불안함에 흘끗 옆을 바라본 순간,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잠깐 멈칫하고서 우리는 다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자, 여기……."

 "으응……."

 미묘한 정적속에서 소녀가 그릇을 건네준다.

 흐르는 물에 거품이 씻겨나가지만 귓불이 빨갛게 물들어있던 소녀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우리 사이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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