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건들면 뒈진다.
남자들의 행동은 기민했다.
동료가 당한 것을 보자마자 강진혁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제법 무공을 제대로 익힌 듯 네 사람의 공격은 틀이 잡혀 있었다.
나름대로 절도도 있어 보였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력이었다.
무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꼽히는 내력이 네 사람에게는 거의 없었다.
파라라락!
아무리 화려한 공세도, 강력한 초식도 내력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는 공격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강진혁은 네 명에게 제대로 각인시켜 주었다.
“크아악!”
“케륵!”
짧고 간결한 받아치기로 네 명을 한 방에 쓰러뜨린 강진혁은 두 손을 가볍게 털었다.
그런 그의 발밑에는 입에 게거품을 문 채로 기절해 있는 네 명이 있었다.
“방해물이 너무 많은데.”
강진혁은 쓰러져 있는 다섯 명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상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해 귀찮았다.
이렇게 일일이 상대하는 게.
그래서 그는 최대한 빠르고 간단하게 일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파앗!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강진혁의 신형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이다.
잠시 후 강진혁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정호철이 머물고 있는 거처의 창가였다.
소리 없이 창문 앞에 내려선 강진혁은 방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그에 강진혁은 맨 처음 만났던 청년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그 순간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거칠게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상당히 안정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묵직하면서도 가볍고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
바로 무공을 익힌 무인 특유의 발자국 소리였다.
그 소리에 강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찾아 헤맸던 이를 찾은 것 같아서였다.
이윽고 강진혁은 단숨에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웬 놈이냐!”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표정과 달리 반응은 상당히 빨랐다.
강진혁이 안에 들어온 것과 동시에 허리춤에 메고 있던 도를 뽑아들고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강진혁은 그런 중년인을 보며 물었다.
“당신이 정호철인가?”
“누구냐고 내가 먼저 물었다.”
중년인은 강진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진혁을 샅샅이 훑어보며 되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회를 살폈다.
“미리 말해두지만, 당신 부하들은 이 안에 못 들어와. 왜냐하면 당신과 나의 대화는 밖에서 전혀 들리지 않거든.”
“뭐라고?”
내심 목소리를 크게 해서 수하들을 불러 모으려 했던 그가 강진혁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속내를 간파당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강진혁이 보기와는 달리 고수라는 점 때문이었다.
음파를 차단할 정도의 기막을 만들어내는 건 웬만한 고수라도 힘겨운 일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강진혁은 그러한 일을 너무나 쉽게 해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는 오늘 길보다 흉이 많을 것임을 깨달았다.
“원하는 게 뭐지?”
기가 한 풀 꺾인 그가 몰래 침을 삼키며 물었다.
최대한 담담한 신색을 보이려 애를 썼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동공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우선은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은데.”
“맞다. 내가 정호철이다.”
“제대로 찾아왔군.”
“왜 나를 찾아왔지?”
정호철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강진혁은 그의 질문을 받았음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을 고수했다.
그러다가 반 각쯤 지났을 때 강진혁이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유를 짐작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날 죽이러 왔나?”
“정답.”
단번에 맞추는 정호철을 향해 강진혁이 씨익 웃어보였다.
하지만 정호철은 마주 웃을 수 없었다.
자신을 죽이러 온 자를 향해 웃어줄 정도로 그는 강심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나지?”
“건드려선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거든. 당신의 수하가. 그래서 죽는 거야. 깔끔한 일처리를 위해서.”
“자, 잠깐만! 굳이 날 죽이지 않더라도 일을 해결할 방도가 있지 않겠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웃고 있던 강진혁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러나 그 말에 정호철은 대답할 수 없었다.
살기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고, 압박하는 기세가 뿜어져 나온 것도 아니었다.
강진혁은 그저 담담하게 물었을 뿐이다.
하지만 정호철은 입을 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속내를 강진혁이 꿰뚫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였다.
스윽.
그 사실을 느낀 것과 동시에 정호철은 늘어뜨렸던 도를 다시 들어올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강진혁을 쓰러뜨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무위가 상당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일말의 가능성을 포기 하지 않았다.
무림이란 세계는 오묘해서 반드시 무공 수준으로만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잦은 일은 아니지만 간혹 가다 하수가 고수를 쓰러뜨리는 경우도 있었기에 정호철은 일단 붙어볼 작정이었다.
“하압!”
그러면서 선택한 방법은 기습이었다.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리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인 기습으로 정호철은 강진혁의 목을 노렸다.
제법 단련에 공을 들였는지 참격이 상당히 날카로웠다.
정호철의 도신이 정확하게 강진혁의 목을 노리며 파고들었던 것이다.
스윽.
빠르고 날카로운 일격이 강진혁의 목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하지만 정호철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쉽게 강진혁을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호철은 쉬지 않고 강진혁을 몰아붙였다.
지금 잡은 우세를 이용해 승기를 잡기 위해서.
쉬이익! 쉬익!
정호철의 도가 쉴 새 없이 허공을 갈랐다.
일격, 일격에 전심전력을 담아 휘두르는 정호철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또한 어느새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도는 강진혁의 몸에 닿질 못하고 있었다.
“으라압!”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내는 강진혁의 모습에 정호철이 다시 한 번 기합을 터트리며 도를 휘둘렀다.
온몸이 힘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멈추면 간신히 잡은 우세를 강진혁에게 넘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실력에서 밀리는데 기세까지 넘겨준다면, 그 후의 일은 뻔했다.
그래서 정호철은 정말 악착같이 공세를 유지했다.
‘조금만 더!’
한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으나 이상하게도 정호철의 눈빛은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노린다는 게 있다는 소리.
그것을 간파한 강진혁이 희미하게 웃으며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윽고 강진혁은 일부러 빈틈을 내보였다.
너무 티 나지 않게, 의도치 않은 것처럼. 그러자 정호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뒈져랏!”
암흑가의 지배자답지 않은 저급한 욕설을 내뱉으며 정호철이 도를 크게 휘둘렀다.
그런데 이번 참격은 지금까지의 참격과 상당히 달랐다.
놀랍게도 그의 도신에 희미하지만 도기(刀氣)가 서려 있었던 것이다.
비록 도기라고 하기에는 많이 모자라 보이는 게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도기를 생성해 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일류고수의 상징인 도기를 일으켰다는 것은 정호철의 무위가 일류지경에 거의 근접해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쌔애액!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기가 서린 참격은 그렇지 않은 참격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렇기에 들려오는 파공성이 달랐다.
좀 더 빠르고 예리하다고나 할까. 그런 소리가 들렸다.
정호철의 도는 허공을 단숨에 가르며 강진혁에게 쇄도했다.
그 모습에 정호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고수인 강진혁이라도 이처럼 의외의 일격을 받으면 당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자 웃음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변하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따앙!
“허업!”
정호철의 두 눈이 화등잔 만 하게 커졌다.
두 눈으로 보고도 정말 믿기지 않은 광경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강진혁은 도기가 서린 공격을 맨 손으로 튕겨냈다.
정확하게는 손가락으로.
그 광경에 정호철이 입을 쩍 벌렸다.
“배려는 이쯤 해두지.”
“뭐라고?”
“죽기 전에 원 없이 도는 휘둘러 봐야 아쉬움이 덜할 거 같아서 말이야.”
스윽.
아무렇지도 않게 도기가 서린 참격을 튕겨내고서 강진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게 정호철이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강진혁의 손이 느릿하게 올라오는 것을 본 순간 그의 기억은 끊어졌다.
철푸덕!
심장에 손이 닿기 무섭게 혼절하듯 바닥에 쓰러진 정호철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고통 없이 죽었는지 얼굴에는 조금의 찡그림도 없었다.
“머리를 잘랐으니 이제는 마무리를 해볼까.”
어느 조직이건 수장을 잃으면 지리멸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진혁이 원하는 수준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완벽한 적사파의 괴멸.
그는 또 다른 적사파가 나타나길 원치 않았다.
게다가 거래를 한 칠랑파가 무석현의 암흑가를 제대로 장악하기 위해선 적사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강진혁은 조금 귀찮더라도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콰직.
강진혁은 정호철의 방에서 의자 다리 하나를 부러뜨렸다.
다수를 상대할 때는 아무래도 맨손보다는 도구를 사용하는 게 편했기에 몽둥이로 쓸 겸 해서 부러뜨린 것이다.
몽둥이로 쓰기에는 살짝 짧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강진혁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만 해도 적사파를 쓸어버리는데 부족함은 없었으므로.
잠시 후 강진혁은 침입했을 때와는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동시다발적인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건물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일 각 정도가 지나 강진혁이 1층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피가 흥건하게 묻은 몽둥이에서 끈적한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피가 묻은 몽둥이를 한쪽 구석에 집어 던지며 강진혁은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시선은 한쪽 담벼락을 주시했다.
정확하게는 그 담벼락 너머에 있는 삼랑을.
잠시 그를 지켜본 강진혁은 몸을 돌렸다.
이내 그의 신형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참혹한 흔적만을 남기고서.
갑작스런 적사파의 괴멸 소식으로 무석현이 시끄럽게 들끓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소란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적사파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는 칠랑파가 너무나 안정적으로 무석현의 암흑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말들이 많았지만 대놓고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칠랑파가 지닌 힘이 강력하기도 했지만, 적사파와는 다른 통치가 상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컸다.
무조건적으로 보호비를 뜯어내던 적사파와는 달리 칠랑파는 적정 수준 이상의 금액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보호비를 받아내지도 않았고.
그래서 시전의 상인들은 오히려 칠랑파를 좋게 봤다.
그리고 그건 곧 높은 수확률로 이어졌다.
상인들의 시선이 좋아지자 보호비를 일일이 걷지 않아도 알아서 보호비를 내었던 것이다.
그러한 변화에 칠랑파의 수장인 일랑은 개인적으로 크게 놀랐다.
적사파가 걷었을 때보다 지금 거둬들이는 금액이 훨씬 더 컸던 탓이다.
그에 일랑은 생각의 차이가 지닌 힘이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왜 지배자들이 그토록 인재를 찾는지를 알게 되었다.
더불어 강진혁이 얼마나 무서운 이라는 것도.
“정말 갈 거냐?”
“잠깐 들른 거라고 했잖아.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사부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하러 가야지.”
아침을 지나 정오로 향해 가고 있을 시각에 강진혁은 친구들과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가장이고 직업이 있는 이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일은 친구인 강진혁을 배웅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진짜 말 안 해줄 거냐?”
“모르는 게 나으니까.”
장구식의 물음에 강진혁은 그저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다른 이들도 궁금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강진혁이 쉽사리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짜식이 말이야. 비밀만 늘어가지고. 우리는 감추는 거 없는데.”
“정말 알 필요가 없어서 그래. 그리고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다들 짐작하고 있잖아?”
“그래도 본인에게 듣는 거 하고, 짐작하는 거하고 같냐?”
“후후후.”
약간 섭섭하다는 듯이 말하는 양칠을 보며 강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끝내 적사파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잘 마무리하고 돌아와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알았다.”
“몸조심하고.”
“그래.”
노상덕과 하굉이 다가와 강진혁의 손을 잡았다.
뒤이어 양칠이 한 손에 들고 있던 보따리를 강진혁에게 내밀었다.
“간단하게 먹으라고 주먹밥 좀 만들어봤다. 출출할 때 꺼내 먹어라.”
“잘 먹으마.”
“받아라.”
정성이 담긴 주먹밥을 조심스레 받기 무섭게 장구식이 그에게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전낭으로 보이는 물건에 강진혁이 눈썹을 찡그리며 장구식을 바라봤다.
“우리가 십시일반 해서 만든 노잣돈이다. 먼 길 가는데 돈이 없으면 안 되지.”
“고맙게 잘 쓰마.”
“돌아 와서 곱절로 갚아라.”
“그러마.”
마지막까지 농이 섞인 장구식의 말에 강진혁은 웃으며 전낭을 받았다.
그러자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다녀오마.”
“그래!”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강진혁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