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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기협
작가 : 윤신현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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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490     추천 : 0     분량 : 6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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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四章 보은(報恩).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오는 악만기를 향해 강진혁이 품에서 반으로 조각 난 옥패를 하나 꺼내보였다.

 물론 갑자기 품속에 손을 넣는 행동에 악만기가 창을 들기는 했으나 강진혁은 그것 말고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악만기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품속에 손을 집어넣기에 그는 강진혁이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허험!”

 얼굴이 화끈거리는 무안함에 악만기는 헛기침을 크게 몇 번 하고는 강진혁의 손에 들린 옥패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왜냐하면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옥패와 너무나 똑같은 색깔, 그리고 모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나신 모양이군요.”

 “그러네. 분명히 친부께선 자네가 들고 있는 옥패와 비슷한 것을 내게 물려주셨네.”

 “그럼 혹 물려받으면서 들으신 얘기도 있으십니까?”

 “특별한 건 없네. 그저 나중에 이 옥패로 인해 한 번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 정도랄까. 하지만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것인지, 또는 어떤 종류의 도움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해 주지 않으셨지. 그냥 지니고 있으면 요긴하게 쓸 때가 오리라고만 말씀하셨네.”

 과거를 회상하는 듯 떨떠름하게 말하는 악만기의 표정에 거짓은 없었다.

 그 모습에서 강진혁은 악만기가 옥패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흐음. 그러시군요.”

 가만히 악만기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혁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살수의 뒷목을 잡고는 그대로 들어올렸다.

 “할 얘기가 많지만 그건 나중으로 좀 미뤄두지요. 지금은 이쪽 일이 더 급한 것 같으니까요.”

 “그렇군.”

 갑자기 나타난 강진혁과 옥패로 인해 악만기는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살수에게서 배후를 알아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것을 뒤늦게 떠올린 악만기가 서늘한 눈빛으로 살수를 건네받았다.

 그러면서 강진혁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만약 강진혁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큰 봉변을 당했을 터였다.

 그러나 강진혁은 그의 말에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한데 그게 악만기에는 묘하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시면 불러주시길.”

 “그리하겠네.”

 “그럼.”

 강진혁은 정중하게 악만기에게 읍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곤 나타났던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악만기가 이내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강진혁이란 존재가 궁금하긴 했으나 지금 중요한 것은 살수에게서 이번 일의 배후를 캐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악만기는 굳은 얼굴로 살수를 옆구리에 끼고서 연무장을 나섰다.

 

 

 이른 아침. 밤을 꼬박 새운 듯 악만기의 눈 밑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물론 초일류의 무위를 지닌 그가 고작 하룻밤을 샜다고 이처럼 피곤해 할 리는 없었다.

 비록 무위는 다른 명문세가의 주인들보다 떨어질지 모르나 체력만큼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였으니까.

 그런데도 악만기가 이처럼 극도로 피로함을 느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살수를 보내온 곳을 그가 알아냈기 때문이다.

 사실 악만기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에게 살수를 보내올 만 한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아니, 바보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살수를 보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부상을 당하게 되면 가장 좋아할 곳은 단 한 곳 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짐작하는 것하고 확인하는 것하고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정말 이렇게 나올 줄이야.”

 살수의 입을 열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비록 몰락해가고 있는 산동악가라고 하나 다른 이도 아니고 가주를 암습하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비밀은 절대 엄수였다.

 하지만 청부자나 살수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한때 잘나갔던 산동악가는 군문에도 투신한 이가 적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전해져 내려오는 고문기술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상당히 극악할 정도로 무서운 고문기술이.

 얼마나 극악하냐면 오직 가주에게만 전해질 정도였다.

 세간에 알려져서 좋을 일이 없었으므로.

 어찌됐든 고문을 통해 악만기는 살수에게 청부를 한 배후를 알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어찌 해야 하나.”

 악만기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건 배후를 알아냈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다.

 예전의 산동악가였다면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배후가 지닌 힘이, 세력이 너무 컸다.

 “하아.”

 그러자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분명 명분은 이쪽이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명분 말고는 산동악가가 쥐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악만기는 답답했다.

 또한 자신의 무위에 실망감만 생겼다.

 만약 자신이 강했다면, 절정의 벽을 넘어 그 이상에 도달했다면 이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홀로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움이라.”

 자괴감에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서 웅크리고 있던 악만기는 일순 어제 만났던 강진혁을 떠올랐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부친이 했던 말도 동시에 생각이 났다.

 도움을 받을 거란 말.

 그 말이 묘하게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분명 강진혁은 그보다 강해보이기는 했다.

 하나 강진혁의 나이는 아직 이립이 채 되어 보이지 않았으며 또한 세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괜한 기대를 품었다고 생각했다.

 강진혁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그 도움으로 현재 상황을 타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난감하구나.”

 명분을 쥐고 있음에도 오히려 먹혀 버릴까봐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에 악만기는 냉소를 지으며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악만기가 장고하고 있는 시각에 강진혁은 오늘도 어김없이 장이, 장삼 형제와 함께 연무장을 돌고 있었다.

 물론 두 형제만큼 무식하게 많이 돌지는 않았다.

 그저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만 달렸다.

 그래서 그런지 강진혁의 움직임에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어떤 부탁을 하려나.’

 장이, 장삼 형제와 보조를 맞추면서 뛰고 있던 강진혁은 어제의 상황을 떠올렸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뜻은 분명히 전했다.

 도움을 줄 것이라고. 그러니 도움을 받든, 받지 않든 선택하는 것은 악만기의 몫이었다.

 ‘첫 번째부터 무지하게 어렵구만. 쉽게 쉽게 되는 일은 없다 이건가.’

 뛰면서 딴 생각을 하는 것 정도야 강진혁에게 있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강진혁은 생각에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아주 오래 전 자신이 사부에게 물었던 말이 떠올랐다.

 

 “왜 저 같은 놈을 선택하셨습니까?”

 죽음을 넘나드는 수련을 끝나고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힐 때, 그러니까 어느 정도 사문의 무공을 익힐 기틀이 잡혔을 때 강진혁은 사부에게 따지듯이 물었었다.

 뒷골목을 전전하는 천애고아에 세상에 분노만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이만 한 힘을 주려는 사부의 마음이 문득 궁금해졌던 것이다.

 만약 그가 힘을 잘못 사용한다면 세상을 피에 잠기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궁금했었다.

 이 정도의 힘을, 이러한 힘을 주려는 사부가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렇다고 사부가 세상에 숨어 있는 마인이라든지 악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선인(仙人)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부였기에 더욱 궁금했었다.

 도대체 자신을 왜 제자로 선택했는지를.

 “허허허. 이유가 궁금 하느냐?”

 “예.”

 “가장 큰 이유는 네가 풍혈지체(風血之體)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런 이유가 널 이해시키진 못하겠지?”

 언제나 그렇듯 부드러운 표정으로 물어오는 사부를 향해 강진혁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의 사부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바람이라고 해서 꼭 좋은 바람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선풍(善風)과 온풍(溫風)이 있는 반면에 광풍(狂風)과 폭풍(暴風)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제가 광풍이 되려 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강진혁이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그에 사부가 심유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너의 선택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

 이어진 사부의 대답에 강진혁이 눈을 부릅떴다.

 그가 예상한 대답과는 전혀 다른 대답에 놀랐던 것이다.

 “다만 본문의 맥만은 끊지 말아다오. 신풍(神風)이 계속 존재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거면 되었다.”

 시원한 바람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사부를 떠올리는 것으로 강진혁의 회상은 끝났다. 그리고 강진혁은 문득 사부가 그리워졌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아이 같이 맑았던 눈동자와 소년이 지을 법한 싱그러운 미소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저기 형님?”

 “음?”

 잠깐의 회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깊게 빠져들었던 모양이다.

 옆에 있는 장이가 말을 걸어왔는데도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였으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아아, 잠시 옛날 생각을 하느라고. 그런데 왜?”

 그래도 며칠 꾸준히 훈련을 했다고 이제는 제법 호흡이 규칙적인 장이였다.

 하지만 얼굴만큼은 여전히 폭발 직전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저기.”

 잠시 장이, 장삼의 상태를 둘러보던 강진혁이 장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새치름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악소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가씨께서 웬일로?”

 “우리 아빠랑 아는 사이에요?”

 “호오.”

 먼저 물었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 말에 강진혁이 씨익 웃었다.

 그러나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장난스러운 미소만을 지었다.

 “가주님께서 저를 찾으신 모양이군요.”

 “대답 안 해줄 거예요?”

 “다녀와서 해드리지요.”

 “치사해!”

 “그럼 전 급해서 이만.”

 강진혁은 악소련에게 눈을 찡긋거리고는 땅을 박찼다.

 그러던 중 잠시 일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악평후를 만났지만 강진혁은 짧게 목례를 하고선 가주전을 향해 달려갔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

 황급히 달려 나가는 강진혁의 모습이 의아한지 악평후가 멀뚱히 서 있는 악소련에게 물었다.

 그러나 악소련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근데 아빠가 어디 있는 줄 알고 가는 거지?”

 악소련은 악만기가 강진혁을 찾는다고 은연중에 인정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어디에 있다고 말해주지는 않았다.

 한데 강진혁은 마치 악만기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게 악소련은 의아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해줄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똑똑똑.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창밖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던 악만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들어오게.”

 그의 짧은 말과 함께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강진혁이었다.

 체력단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그가 악만기를 바라보며 다가왔다.

 “앉게나.”

 가주전에 들어왔는데도 긴장하나 하지 않는 모습에 악만기는 피식 웃었다.

 왠지 모르게 지금의 모습이 강진혁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결정을 하신 모양이군요.”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구체적으로 내게, 아니 우리 가문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악만기의 말을 듣던 강진혁이 순간 얼굴을 굳혔다.

 어떻게 해서 옥패가 반으로 나눠졌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도와주게 되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함에도 악만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강진혁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태안예가로 인해 마음이 다급해진 악만기는 그러한 강진혁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전에 이 옥패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게 먼저 아닙니까?”

 툭.

 강진혁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품속에서 반 토막 난 옥패를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그러자 악만기가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는지 얼굴을 살짝 굳혔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이 옥패에 꼭 맞는 나머지 옥패를 보여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요.”

 사실은 그냥, 무조건적으로 도와주어야 했지만 지금 보이는 악만기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강진혁은 괜히 심술을 부렸다.

 그런데 악만기는 강진혁의 말을 순순히 믿는 모양인지 기분 나쁜 표정 하나 없이 나머지 반쪽 옥패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두 개의 옥패를 맞췄다. 그러자 두 개로 나눠진 옥패가 마치 톱니바퀴 이빨이 맞듯이 딱 맞았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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