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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옥구슬
작가 : 말순이
작품등록일 : 20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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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한밤중의 납치 사건
작성일 : 17-06-10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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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의 납치 사건

 

 

 *

 

 

 한밤 중. 꿈도 꾸지 않고 단잠에 빠져있는데 똑똑똑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비몽사몽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어보니 아까 봤던 서역인 중 한 명이 있었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죠?"

 

 

 서역인은 꾸벅 인사를 하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잠이 덜 깨 멍하니 앉아있는데 그는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절 왜 부르는 거죠?"

 

 

 진은 현이 도령과 늦게까지 이야기를 마친 후 이불에 고단한 몸을 뉘었다.

 

 서역인들은 건방지게 감히 구슬 아씨를 탐냈다.

 

 현이 도령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는 당연했고 이제 그들과는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낮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아직 살펴보지 못한 기둥이 하나 남아있었다.

 

 아씨는 아직 어려서 놀아줄 상대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일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몸을 일으켜 호롱 불을 들고 기둥을 살피러 갔다.

 

 

 다그닥 다그닥...

 

 

 이 밤중에 웬 말 달리는 소리지?

 

 신경 끄고 가던 길을 가는데 아씨의 방문이 살짝 열려있는 걸 발견했다.

 

 혹시나 하고 방문을 홱 열어젖혔더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급히 마구간으로 달려가 잠들어있던 말을 깨우고 채찍을 잡았다.

 

 반드시 따라잡아야 한다!

 

 

 어릴 적 유괘를 당한 현이는 그 뒤로 푹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잠귀가 무척 얇은 편인데 말이 히이힝! 우는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뜩이나 서역인들 때문에 불쾌해 죽겠는데 저 소리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마구간을 살폈다.

 

 진 형의 말이 없었다.

 

 설마... 그대로 구슬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제길,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구슬이는 보이지 않았다.

 

 젠장! 그 서역인들이 기어코 일을 만드는구나!

 

 

 한참을 달린 끝에 마차가 멈춰 섰다.

 

 밤이 늦은 터라 거리는 고요했고 그들이 묵는 숙소 앞에 도착했다.

 

 서역인이 앞장섰고 방문을 똑똑 두드리니 아까 봤던 나머지 두 명이 안에 있었다.

 

 고개를 빼꼼 내민 날 발견하자 그들은 환하게 웃음 지었다.

 

 서역인이 의자에 날 앉힌 후 커다란 짐 보따리를 풀어 바닥에 전부 쏟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금은보화가 한가득이었고 그것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지금은 여행 중이라 이것밖에 없지만 저희 주인님 댁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날 데려온 서역인이 뿌듯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래서 날 여기에 데려온 이유가 뭔가요?"

 

 

 그랬더니 맞은편에 앉아있던 뚱뚱한 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같이 온 서역인이 통역했다.

 

 

 "저희는 낮에 아씨를 잠깐 보고 단박에 알아챘습니다. 아씨는 저희 주인님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짝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현이 도령께 아씨를 달라고 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저희는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금 아씨를 찾아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희와 같이 서역으로 가주십시오. 저희 마님이 되어주십시오."

 

 

 서역인들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나는 경악하며 손 서리 쳤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혼인하기 싫어요! 게다가 나이도 어린걸요? 이제 열한 살밖에 안됐다고요. 그리고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분이랑 혼인할 거예요. 그러니 이런 짓 그만두세요."

 

 

 통역인은 침울한 표정을 짓더니 내 말을 나머지 둘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그 둘도 통역인과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자, 이제 그만 날 보내주세요."

 

 

 치마를 탁탁 털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진 씨가 발로 방문을 차는 바람에 문짝이 떨어져 나가버렸다.

 

 

 "진 씨!"

 

 

 너무 놀란 나머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서역인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바로 진 씨가 허리춤에서 긴 칼을 뽑아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릴 틈도 없이 칼을 휘둘러 의자에 앉아있던 뚱뚱한 서역인을 찔렀다.

 

 

 "안 돼!"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뚱뚱한 서역인은 얼굴이 새파래진 채 뭐라 중얼거렸다.

 

 아... 다행히 그는 칼에 찔리지 않았다.

 

 진 씨가 일부러 그를 피해 벽에 칼을 꽂았다.

 

 

 "너희들을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지만 아씨가 계시니 참는다."

 

 

 통역인이 벌벌 떨며 뒷걸음질 쳤다.

 

 설마 도망치려고?

 

 나는 재빨리 그에게 몸을 던져 그를 쓰러뜨렸다.

 

 방 안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서역인들은 진 씨에 의해 손과 발이 밧줄로 꽁꽁 묶여져버렸다.

 

 나는 진 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진 씨, 저들은 나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협박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내가 순순히 따라온 것뿐이에요."

 

 "그래서 도련님을 떠나시겠다?"

 

 

 진 씨가 굉장히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순간 온몸이 싸늘하게 얼어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나는 저들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대답했어요. 막 일어나려던 찰나에 진 씨가 들이닥친 거라고요. 그러니 어서 저들을 풀어주세요."

 

 

 애원이 잔뜩 담긴 눈동자 여섯 개가 동시에 나를 향했다.

 

 

 "풀어줄 수 없습니다. 이들은 관아에 고발할 예정입니다."

 

 

 턱도 없다는 듯 진 씨가 코웃음 쳤다.

 

 

 "봐요. 저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그랬다면 날 여기에 안전하게 데려왔겠어요? 자고 있던 날 기절시켜서 납치라도 했으면 모를까."

 

 "구슬이 말대로 그만 풀어줘."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온 건지 현이 오라버니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벽에 기대어 서역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오라버니의 눈동자는 몹시 쓸쓸하고 서글퍼 보였다.

 

 내가 방금 한 말을 들은 거야.

 

 오라버니는 납치라는 단어에 굉장히 민감해서 말조심해야 하는데!

 

 아이, 바보 멍청이.

 

 나는 내 주둥아리를 찰싹 때렸다.

 

 

 "내가 이들을 처리할 테니까 형은 구슬이를 데리고 집에 먼저 가."

 

 "하지만 오라버니...!"

 

 

 오라버니에게 가려는 것을 진 씨가 막았다.

 

 그리고 나에게 고개를 살짝 내저어 보였다.

 

 나는 그만 포기하고 오라버니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내 쪽은 단 한 번도 쳐다봐주질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동트고 있었다.

 

 현이 오라버니만 남겨두고 가려니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련님을 믿지 그러세요."

 

 "오라버니를 못 믿는 게 아니에요. 그냥... 오라버니가 자꾸만 걱정이 돼서요."

 

 "아씨가 집에 안 돌아가시면 더 걱정하십니다. 어서 말에 오르시죠."

 

 

 진 씨가 나를 번쩍 들어 말에 태웠다.

 

 

 "아야... 아파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세게 잡았습니다."

 

 

 정말 왜들 그렇게 힘 조절들을 못 하는지!

 

 집 떠나던 날, 할머니와 말 탔을 때도 같은 상황이었다.

 

 진 씨가 내 뒤에 올라타자 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을까? 살아계시긴 한 걸까?

 

 하긴, 힘도 무진장 셌으니 도적들한테 잡히진 않았을 거야.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머리를 비웠다.

 

 

 "가만히 계시죠. 떨어지고 싶습니까?"

 

 

 나는 뒤돌아서 진 씨를 힘껏 째려봐주었다.

 

 

 진 씨는 나보고 한숨 자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라버니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이 판국에서 두 발 뻗고 편하게 잠이나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일은 오로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 나한테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오라버니가 나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것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오라버니, 화난 걸까...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당을 왔다 갔다 하니 진 씨가 내게 빗자루를 쥐여주었다.

 

 나는 그 행동에 어이가 없어졌다.

 

 

 "진 씨는 이 상황에서 장난이 나와요?"

 

 "아무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할 바엔 빗자루라도 들면 마당이 깨끗해지지 않습니까?"

 

 "네네, 그렇게 원하신다면야."

 

 

 나는 보란 듯이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서 진 씨 쪽으로 먼지를 뿌렸다.

 

 

 "콜록콜록, 뭐 하는 짓입니까?"

 

 "진 씨의 장단에 맞춰 주고 있잖아요."

 

 "도련님 오셨습니까!"

 

 

 마당쇠의 외침에 나는 재빨리 빗자루를 던져버리고 현이 오라버니에게 뛰어갔다.

 

 몹시 피곤한 듯 지쳐 보였고 눈에는 초점이 없는 것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신기할 정도였다.

 

 

 "오라버니!"

 

 

 오라버니의 연푸른색 옷깃을 잡고 마구 흔들자, 그제야 날 봐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이리 늦었어요!"

 

 "구슬아..."

 

 "왜 이렇게 정신이 나갔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오라버니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 일 아니란다. 피곤할 텐데 자고 있지 왜 기다리고 있었니?"

 

 "오라버니를 그렇게 남겨두고 왔는데 어떻게 자요? 무사한 걸 봤으니 됐어요. 서역인들은요?"

 

 

 오라버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내가 그들을 죽이기라도 했을까봐? 걱정하지 마렴. 나는 그런 짓 못하니까."

 

 "다 내 잘못이에요. 오라버니를 기다리면서 내내 어젯밤, 저를 위해 화내주셨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저를 지켜줬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홀랑 따라가버렸어요. 미안해요."

 

 

 울먹이며 땅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오라버니는 몸을 숙여 내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구슬아, 고마워. 따라가지 않고 여기에 남아줘서. 널 영영 못 보게 되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어. 그 자들이 그렇게 끈질길 줄은 몰랐지.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해."

 

 

 오라버니는 나를 품에 안아 다독여주었다.

 

 오라버니의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왔다.

 

 자신도 어릴 적 납치당해서 아직까지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데 나도 똑같은 일을 겪게 될까 봐 걱정했던 거야.

 

 더 이상 오라버니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

 

 

 그로부터 이 주가 흘렀다.

 

 나는 완전히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 버렸다.

 

 오라버니는 더 이상 나와 함께 외출하지 않았고 되도록이면 집에 손님을 들이지 않았다.

 

 설령 들이게 되더라도 나와의 접촉은 일체 금지시켰다.

 

 따분하고 답답한 날들의 지속이었다.

 

 오라버니의 표정은 그 뒤로도 쭈욱 좋지 않았고 웃더라도 억지로 웃는 것 같았다.

 

 아마 나를 꽁꽁 숨겨두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계속 이 상태라면 내가 답답해서 미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미 우물 밖 세상의 맛을 본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갇혀 있었던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결심을 하고 오라버니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이대로는 안돼요. 이게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예전처럼 다시 오라버니랑 이곳저곳 어디든 놀러 다니고 싶어요. 계속 이대로 지내긴 싫어요!"

 

 

 오라버니는 읽던 책을 덮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네가 우울해하는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단다. 하지만 다시 또 누군가가 너를 데려가려 한다면...!"

 

 

 탁자 위에 올려진 오라버니의 두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래서 내가 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오라버니가 약속하셨잖아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실 거라고요. 만약에 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그때처럼 오라버니가 절 지켜주시면 되죠!"

 

 

 절망감에 가득 차 있던 두 눈동자가 천천히 날 향했다.

 

 나는 그에 맞서 용감하게 씨익 웃어 보였다.

 

 

 "난 그런 거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오라버니가 곁에 있으니까요."

 

 

 그제야 오라버니도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진짜 웃음이었다.

 

 

 "확실히 넌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구나. 나보다 어리다고 무시해선 안 되겠어. 말로는 내가 널 지켜준다고 했지만 오히려 네가 날 지켜주는 것 같구나."

 

 "서로 지켜주면 되죠! 오라버니는 내 오라버니이고 나는 오라버니의 여동생이 되어주기로 했잖아요."

 

 

 그날 이후, 난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예전처럼 다시 활개치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자 진 씨는 못마땅해 했다.

 

 

 "참! 그러고 보니 기둥은 어떻게 됐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네! 진 씨를 보니까 기둥을 갉아먹던 쥐들이 떠올랐어요."

 

 

 진 씨가 기가 차서 뭐라 하기 전에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났다.

 

 몸을 숙여 기둥을 확인했더니 깨끗이 고쳐져있었다.

 

 일어나서 다시 진 씨에게로 갔더니 현이 오라버니가 와있었다.

 

 

 "언제 처리한 거예요?"

 

 "아씨가 멍 때리고 있던 며칠 사이에 해결했습니다."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오라버니가 내게로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는데 어떻게 알아챘니? 잘 때마다 지붕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종종 깨곤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소리가 나질 않는구나."

 

 "헤헤. 제가 키가 작잖아요! 그래서 땅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남들보다 잘 듣나 봐요. 키 작은 게 쓸모 있을 때가 있네요."

 

 "아직 어려서 그렇지. 나이를 더 먹게 되면 언젠가 훌쩍 커버릴 거야."

 

 

 우리는 동시에 키가 소나무처럼 큰 진 씨를 쳐다봤다.

 

 부끄러웠는지 진 씨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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