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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도무혼
작가 : 도검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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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화
작성일 : 16-07-14     조회 : 597     추천 : 0     분량 : 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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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각오가 되셨습니까? (1)

 

 

 

 서둘러 식당으로 가보니 왕노인과 여노인, 고노인, 감노인 그리고 최 씨 아저씨가 술잔을 앞에 두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왔으면 앉아라.”

 왕노인의 말에 철혼은 빈 자리에 가 앉았다.

 그때까지 여노인과 고노인 등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왜들 그러요? 이놈이 남이오? 뭔 눈치들을 그렇게 보고 지랄들이요?”

 왕노인이 네 사람을 향해 퉁명하게 쏘아붙였다.

 네 사람은 헛기침을 하는가 하면 괜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우리도 미안한 줄 알아서 그러는 게 아닌가? 서문대협을 생각하면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담력이라는 게 있기나 하던가? 그저 입에 풀칠만 하고 있어도 만족하는 무지렁이들이거늘······.”

 “그럼 막지나 말든가?”

 여노인의 말에 왕노인이 호통을 쳤다.

 “그렇게 감정을 내세울 일이 아니지 않는가. 늙은이 한둘의 목숨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서른이 넘는 목숨이 걸렸거늘 어찌 그리 화만 내고 그러는가?”

 고노인이 끼어들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왕노인의 입이 다물어졌다.

 고노인은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철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서문대협께 받은 구명지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네. 그렇게 가실 분이 아니었지. 그분이 살아올 수만 있다면 이 천한 목숨을 내줄 수도 있네. 하지만 자네는 아직 젊지 않은가? 자네가 복수를 한답시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꼴을 어찌 내버려두겠는가? 서문대협께서도 그걸 바라지는 않을 것일세.”

 하루 종일 생각해 두었던 말을 꺼내는 고노인.

 철혼은 그런 고노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말을 아십니까?”

 철혼의 음성이 너무 차가웠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돌아섰기를 기대했던 노인들이 흠칫 쳐다봤다.

 “십 년 동안 서문노야의 죽음을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는데······ 서른이 넘는 목숨이라고요? 그 목숨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너무나 차갑다.

 냉랭하다 못해 냉혹하다.

 왕노인까지 깜짝 놀라 철혼을 쳐다봤다.

 “이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법이다. 서문 어르신께서 들으셨다면······!”

 왕노인이 엄하게 소리쳤으나 철혼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서문노야의 주검조차 내버려두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

 “그, 그렇지 않네. 오해일세. 당시에 그들이 칼로 위협해서······.”

 “말이나 꺼내 보셨습니까? 시체라도 수습하겠다고 하면 그들이 목을 자를까 두려웠습니까?”

 왕노인이 눈을 부릅뜨며 세 노인을 번갈아봤다.

 당시에 왕노인은 주방의 칼을 가지고 날뛰다가 철중양을 비롯한 몇 사람에게 붙잡혀 주방에 감금되다시피 해야만 했다.

 “노야의 팔이 굴러다니고, 핏물이 거리를 넘쳐흐르는데도, 누구 한 사람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가주께서 직접 나서실 때까지 그 목숨을 붙잡고 쳐다보지도 않았잖습니까.”

 어린 나이에 본 광경은 철혼의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저들은 어른들이니 뭔가를 해줄 것이라 믿었는데, 끝까지 시선을 돌린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십 년 전의 일이 다시 벌어질 겁니다. 그들이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서른 명의 목을 자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그렇게 목숨을 붙잡고 숨어 있는지 두고 보겠습니다.”

 화가 나 떠오르는 대로 쏟아낸 철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염병! 그날, 저 어린놈한테 무슨 꼴을 보여준 것이오?”

 왕노인이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자 세 명의 노인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왕노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식탁 위의 술병 중 하나를 집어 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술병이 박살이 났다.

 복수라는 꽃말을 가진 제절초(弟切草)로 담근 술이 사방으로 튀었다.

 “옘병할 세상!”

 

 가슴이 답답하다.

 십전철가의 공기만 유독 무겁게 깔린 느낌이다.

 시간을 가늠해보니 해시 초(亥時初, 저녁 9시-10시)가 된 것 같다.

 술 좋아하는 이들이 한참 술에 빠져 있을 시각이다.

 딱 좋다.

 귀신의 손을 가진 이리를 낚기에는.

 

 홍화루(紅花樓).

 술과 창기가 있는 곳이다.

 광주에는 다섯 개의 기루가 있고, 그중 규모로 따지면 세 번째인 곳이다.

 홍화루의 주인은 등룡곡주다.

 등룡곡(登龍谷)은 광주에서 제법 멀다. 작은 산을 넘어야 한다.

 거리로 보면 광주가 가깝지만, 불산(佛山)으로 가는 길이 더 잘 닦여있다.

 등룡곡주는 광주에 홍화루만 남기고, 불산에 전념했다.

 불산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영웅루(英雄樓)가 있지만, 영웅루만 무너트릴 수 있다면 불산을 거머쥘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홍화루에는 귀장랑(鬼掌狼)을 남겨 두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귀도림, 백룡보 등이 함부로 엿보지 못할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다시 말해 홍화루는 귀장랑의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셔라! 마셔! 나 귀장랑이 뭘 두려워하겠느냐! 야, 뭐해? 홀라당 벗겨 놓아야 출래?”

 술 취한 목소리가 홍화루 삼층을 통째로 울렸고, 진한 술 냄새가 창밖으로 흘러나왔다.

 창문에는 창기들의 몸짓이 사내들의 음욕을 자극할 정도로 음탕한 춤사위가 그려졌다.

 하늘에는 손톱달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지붕 위에 우뚝 선 묵빛의 그림자를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콰직!

 돌연 묵빛의 그림자가 지붕을 뚫고 사라졌다.

 한참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삼층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음악이 멈추고, 춤을 추던 창기들의 비명이 어지러운가 싶더니 이내 쥐 죽은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오십 쌍의 시선과 오십 개의 칼.

 그리고 육중한 체구의 중늙은이.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지만, 술을 입에 댄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철방의 늙은이한테 덮어씌운 일은 내가 한 일이니, 날 찾아와야 했겠지.”

 묵직한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실내의 한 가운데에 선 철혼은 오십 명의 살기를 담담히 받아내며 전방의 중늙은이를 똑바로 바라봤다.

 귀장랑(鬼掌狼).

 십 년 전, 귀면살(鬼面殺)과 함께 서문노인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고 복귀하는 귀도림의 무인들을 중간에 죽였던 자다.

 “놈! 내가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몰랐을 게다.”

 “과연 그럴까?”

 “뭐?”

 철그럭! 철그럭!

 귀장랑이 이맛살을 찌푸린 순간, 철혼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귀장랑은 당당한 철혼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크게 일갈했다.

 “죽여라!”

 사방에서 귀장랑의 수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충분치 않은 공간을 더욱 비좁게 만들며 사방에서 밀고 들어왔다.

 귀장랑은 양손에 살기어린 공력을 운집하며 철혼을 주시했다.

 수하들을 상대하느라 틈이 보이면 벼락 같이 파고들어 일장에 머리통을 으스러트릴 채비를 갖추었다.

 ‘멍청한 놈, 이렇게 비좁은 상황에서 철곤 따위로 무얼 할 수 있단 말이냐!’

 두 자루의 묵곤을 뽑아드는 철혼의 모습에 비웃음을 흘리는 귀장랑, 허나 그 비웃음이 놀람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빠악!

 측면에서 달려들던 자의 머리통이 일격에 부서지고, 크게 휘두른 왼손의 철곤이 반대편에서 달려드는 칼들을 한꺼번에 쳐냈다.

 그리고 빙글 도는 신형을 따라.

 퍽! 퍼퍽! 빠바바박!

 두 자루의 묵곤이 광풍을 일으켰다.

 걸리는 족족 두들기고 박살을 냈다.

 가장 앞쪽의 여섯 명이 단숨에 쓰러지자 주춤하는 적들.

 철혼은 귀장랑을 향해 성큼 한 걸음 내디디며 좌수의 철곤을 빛살처럼 뻗었다.

 회전하는 전사경을 머금은 철곤이 한 놈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컥!”

 외마디 비명.

 심장이 으스러져 뒤로 넘어갔다.

 이때 허공을 쪼개며 날아드는 칼, 철혼의 머리를 쪼갤 기세다.

 허나 소용없다.

 오른손의 철곤이 강하게 후려치자 맥없이 튕겨나가 옆의 동료의 얼굴을 때리고 만다.

 “엇!”

 “악!”

 깜짝 놀라 비명을 토하는 자.

 그럴 새가 어딨나? 전광 같이 휘둘러진 두 자루의 철곤이 얼굴을 가격하고, 어깨를 후려친다.

 얼굴이 함몰한 자는 즉사였고, 어깨가 부서진 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죽어라!”

 고함을 지르고 달려들어 보지만, 소용없다.

 현격한 힘의 차이를 결코 극복할 수 없어서다.

 빡!

 얼굴의 반이 뭉개지고, 의식은 황천강을 건넌 채 픽 고꾸라진다.

 양떼 속으로 뛰어든 맹수.

 딱 그런 형국이다. 애초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동시에 공격해라!”

 귀장랑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한꺼번에 달려든다.

 허나 두 자루의 철곤은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다. 이런 난전이라면 더더욱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땅으로 꺼지듯 철혼의 신형이 확 낮아지더니 두 자루의 철곤이 빙글 도는 신형을 따라 사방을 후려갈겼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다리뼈가 부러진 자들이 한꺼번에 쓰러지고, 그와 동시에 철혼의 신형이 쏜살처럼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퍽퍽!

 당황하는 자들의 머리통을 두들기고, 맹수가 갈대밭을 가로지르듯 일순간에 통과해 버렸다.

 “헉!”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깜짝 놀라는 귀장랑.

 철혼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싶더니 앞쪽의 수하들이 물살 갈라지듯 갈라지며 눈앞에서 불쑥 튀어나오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귀장랑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자답게 당황하지 않고 쌍장을 거푸 뿌렸다.

 “······!”

 걸리는 게 없다.

 철혼이 두 걸음 앞에 가만히 서 있으니 그럴 수밖에.

 “묻고 싶은 건 딱 하나다.”

 “흥! 내 목이 떨어진다 한들 입을 열 것 같으냐!”

 “그래. 제발 그래라. 그래야 맘껏 두들길 수 있지.”

 이십여 명을 쓰러트리고도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철혼이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그 새하얀 미소를 보니 귀장랑의 가슴이 덜컥 주저앉았다.

 

 ***

 

 “홍화루가 공격을 받았답니다.”

 “뭐야?”

 난데없는 보고에 등룡곡주가 고개를 확 쳐들었다.

 “간밤에 괴한이 난입하여 이십여 명을 죽이고 루주를 잡아갔다고 합니다.”

 루주는 귀장랑을 말한다.

 등룡곡주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보고를 하는 총관을 쳐다봤다.

 “십전철가의 애송이가 돌아왔다는 보고를 드렸지 않습니까.”

 “그놈이라는 거야?”

 “복장이 그렇다고 합니다.”

 “무공은?”

 “철곤 두 자루를 썼다고 합니다.”

 “놈이 철마방도를 둘로 쪼개고, 흑살필(黑殺筆) 원적기의 목을 잘랐다며?”

 “예.”

 “그럼 놈이 서문늙은이의 굉뢰도를 일통경(一通境)까지 익혔다는 거잖아?”

 “그렇겠지요.”

 “그런 놈이 쌍곤까지 익혀? 그것도 이십을 죽이고 귀장랑을 납치할 수준까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놈의 나이 이제 스물둘에서 서넛 정도잖아?”

 “하지만 괴한의 복장과 얼굴의 흉터가······.”

 “다시 설명해 봐.”

 “뭘 말입니까?”

 “괴한이 홍화루를 어떻게 공격했는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해 보란 말이다.”

 “예. 루주는 철마방의 애송이가 자신을 찾아올 것 같았는지 수하들을 오십이나 삼층으로 불러 함정을 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놈이 지붕을 뚫고 들어와······.”

 총관의 보고가 자세히 이어졌다.

 등룡곡주는 다 듣고 나자 이맛살을 찌푸렸다.

 “복면을 한 것도 아니고, 복장을 달리 한 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정체를 감추지 않겠다는 거잖아?”

 “그렇지요.”

 “그런 놈이 지붕을 뚫고 들어와?”

 “기습을 하려고 그랬겠지요.”

 “귀장랑 앞에서 태연히 말까지 했다며?”

 “예.”

 “그렇다면 귀장랑의 무위를 우습게 여기는 거잖아?”

 “그, 그렇지요.”

 “그 정도의 실력자가 기습을 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그랬겠지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자신의 정체를 감추지 않으려고 복장과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작자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어둠을 틈타 지붕을 뚫고 기습을 해? 뭔가 이상하잖아?”

 “그럼 곡주님의 생각은 놈이 아니라는 겁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찌 마다할까?”

 “그 말씀은······?”

 “사람의 눈은 믿을 게 못 돼. 기다려봐. 아직 확실치 않으니 지켜보면 답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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