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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도무혼
작가 : 도검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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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574     추천 : 0     분량 : 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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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약육강식을 안다면 날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3)

 

 

 

 “누구지?”

 “분주인가?”

 “널 죽일 사람.”

 “분주라고 하더군.”

 동시에 묻고 동시에 답한 두 사람.

 철혼의 기운은 차가웠고, 사내의 기운은 들끓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한 모금 할 수 있을까?”

 사내가 물었고, 철혼은 다가가 술병을 내밀었다.

 사내는 잠시 바라보더니 술병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꿀꺽!

 목울대가 시원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크! 좋군!”

 소맷자락으로 입을 닦으며 술병을 돌려주는 사내.

 철혼은 말없이 돌려받았다.

 “자신감인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군.”

 사내가 스윽 쳐다보며 말했다.

 철혼은 할 말이 없는 듯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철마방주를 건드렸더군. 실수했어. 보기보다 무서운 자거든. 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혈육도 버릴 정도지.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거야. 철마방의 이름으로.”

 “철마방이 그리 대단한가?”

 “대단하지.”

 “그릇이 작군.”

 “뭐?”

 “배포가 작다고 해야 하나?”

 “무슨 뜻이지?”

 “그 검, 주인을 잘못 만난 것 같군. 철마방 따위에 얽매여 있으니까, 검이 길을 찾지 못하는 거다.”

 철혼의 말에 흠칫하는 사내.

 의표를 찔린 듯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더니 곧 퉁명스레 내뱉었다.

 “도발하지 마라. 오늘은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그럼 왜 왔지?”

 “철마방주를 그토록 살기등등하게 만든 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와 봤다. 겸사겸사 확인할 것도 있고 말이야.”

 “그래, 궁금증이 풀렸나?”

 “그런 것 같아.”

 “잘됐군.”

 철혼의 말에 사내는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조소라기보다는 흥미롭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에 볼 때는 내 검을 보여주지.”

 사내가 한쪽으로 비켜섰다.

 철혼은 잠시 사내를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다섯 걸음 정도 걸을 때였다.

 “그 복장, 들은 적이 있다.”

 사내가 말했다.

 그러나 철혼은 무시하고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상관없다는 건가?”

 사내가 혼자 중얼거렸다.

 

 ***

 

 “철혼이 분명하다고 하더군.”

 “역시 그랬군. 그때는 참으로 쾌활한 아이였는데······.”

 “그런 일을 겪었는데, 누군들 변하지 않겠는가?”

 “그런 소리나 하자고 모인 게 아니지 않나?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찌할 것인지나 말해 보게.”

 “흠······ 안 되겠지?”

 “서문노야도 당해내질 못했는데, 그 아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세력이 더 커졌잖은가? 아무래도 혼자서는······.”

 “그러니까, 어찌할 거냔 말일세.”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네.”

 “지켜보자고? 그 아이 혼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꼴을 숨어서 지켜보자는 건가?”

 “그럼, 어찌하는가? 함께 계란으로 바위를 칠까? 그때처럼 앞뒤 안 가리고 나설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저들을 위해서 살 작정인가? 자네, 며칠 전에 비단 열 필 석 자를 반값에 넘겼지? 그리고 자네는 돼지 스무 마리를 대가없이 잡아주었지? 자네는 또 어떤가? 산서성에만 가면 누구나 알아 낼 수 있는 분주 제조법을 은 열 냥에 억지로 사들였지 않은가? 계속 그리 살겠다고? 모두들 그런 생각인 것인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미안하네.”

 “이해해주게.”

 “저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일 아닌가?”

 “됐네. 모두들 그렇게 살게. 철혼이 돌아왔으니 난 더 이상 그리 살지 않을 것이네.”

 십여 척의 어로선(漁撈船)을 가지고 있는 석노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은 이들은 서로의 눈치만을 살폈다.

 엉덩이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

 

 “심장이 찔리거나 목이 베어져 죽었습니다. 세 놈은 손목이 잘렸는데, 한 놈은 손도끼에 당했고, 두 놈은 단도에 의해 잘렸습니다.”

 “단도하고 손도끼라고?”

 “자신들의 병기에 당했습니다.”

 “뭐야?”

 “놈은 자신의 무공을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으음.”

 “뭔가······.”

 “말해 보게.”

 “경고가 아닐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놈에게 보낸 네 명은 강문오악(江門五惡)이라는 놈들입니다. 한 놈이 죽어 넷입니다만, 제법 악독한 데가 있어 만만치 않은 걸로 압니다. 그런 자들을 상대하면서도 굳이 무공을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좀 더 제대로 된 자들로 보내라는 경고가 아닐지.”

 “흠, 감히 경고를 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만사불여튼튼이니 그렇게 보는 것이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 굉뢰도를 완성했다고 보고, 그에 걸맞게 대우해 주지.”

 

 ***

 

 “최소한 우리들과 동격으로 여겨지오.”

 “유 당주께서 그리 보셨다면 그렇겠지요.”

 천리표국의 국주인 동중산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표정에 심각성이 엿보이지 않았다.

 백룡보의 보주 백문초와 풍림당의 당주 유가원만이 돌처럼 굳어있을 뿐이다.

 유가원은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모두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자신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음을 잘 안다.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닌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비웃음을 감춘 채 대등하게 대해준다.

 수치스럽지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들의 오만일 뿐인가?

 백룡보의 일로 확연하게 깨달았다.

 자신은 철혼을 직접 보고서야 가늠했지만, 백문초는 싸움의 흔적만을 가지고 가늠해냈다.

 십 년을 절치부심 했건만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길 바라지만 그게 현실이다.

 현실을 인지하니 말수가 적어지고,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다.

 유가원은 홀로 동떨어져 갔다.

 “내가 맡겠소.”

 백문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유가원은 백문초의 표정을 살폈다.

 단호한 표정이다. 무언가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조급해 보인다.

 ‘결국 참지 못하는군.’

 전총관이 칼을 먹었고, 자식은 수치를 당했다. 그럼에도 놈을 치지 않았다.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고 자중했다. 보통의 심기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참지 않았을 것이다. 한 걸음에 달려가 칼부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백문초는 참았다.

 자신에 비해 무공이 앞서고, 심기마저도 앞서고 있다. 어쩌면 절정에 올라선 것일 수도 있다. 그리 여겼다.

 ‘완전치 않아! 아직 흔들리고 있어!’

 지금껏 억누르고 억누른 게 틀림없다. 결국 도움을 청한 것일 뿐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눈 깊숙이 비웃음을 담고서.

 ‘마찬가지야! 심기일체를 이루지 못했어.’

 결국 한 걸음 앞서고 있을 뿐이다. 모두들 절정을 이루지는 못했다.

 절정은 깨어나야만 하는 경지. 지금의 격차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도 백 보주께서 맡는 게 좋겠소.”

 천리표국주 동중산이 한 말이다.

 필요한 인력은 얼마든지 동원해 줄 것이니, 누가 맡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백룡보는 다르다. 수치를 당했으니,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

 방법은 하나다. 놈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서는 것이다.

 물론 놈을 죽이는 일은 정해진 결과일 뿐이다.

 “좋소. 백 보주가 맡겠다면 믿고 맡기겠소. 허나 한 가지 명심할 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손을 써야 한다는 거요.”

 “여부가 있겠소? 놈을 유야무야 방치한다면 세상이 우릴 어떻게 보겠소? 광주의 호랑이가 아니라 살쾡이라며 우습게 여길 것이오. 그러니 서문노인 때처럼 제대로 죽여야 할 것이오.”

 귀도림주와 등룡표국주가 단호히 말한다. 나머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백룡보주는 고맙다는 듯 가볍게 포권한다.

 속내는 감추고, 겉으로는 화기애애하다.

 십 년이 넘게 보아온 모습들이다.

 유가원은 가볍게 웃었다.

 이제 자신도 저 모습에 맘껏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놈을 어떤 식으로 죽일지 논의해 봅시다. 혹 유 보주께서 생각해 두신 방안이 있소?”

 

 ***

 

 천리표국의 국주인 동중산은 성정이 차분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의 아들 동후평 이상으로 자존심 강하고, 불같은 성격이었다.

 도(刀)는 불같이 뜨거워야 하고, 검(劍)은 얼음같이 차가워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불같은 성정을 죽이고, 검로에 일로매진하여 추혼십이검식(追魂十二劍式)을 상당 수준까지 익혀냈다.

 표국으로 돌아온 동중산은 정말 오랜만에 불같이 대노하였다.

 어디서 곤죽처럼 두들겨 맞은 아들이 제 방의 기물들을 부수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짝!

 “아, 아버님!”

 “누구냐?”

 이글거리는 부친의 눈빛에 압도된 동후평은 가슴이 덜컥했다.

 “이놈! 누구냐고 묻지 않았느냐!”

 “십, 십전철가······.”

 “십전철가? 그놈한테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이냐?”

 “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동후평의 모습에 동중산의 두 눈에 불똥이 튀었다.

 “앞장서라!”

 “예?”

 “십전철가로 앞장서란 말이다!”

 동중산은 극도로 화가 났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귀도림, 풍림당, 백룡보 등과 연계하기로 하였으나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놈이 서문노인의 굉뢰도를 어느 수준까지 익혔는지는 모르지만, 자신 역시 그동안 상당한 진전을 얻었다.

 이젠 서문노인이 다시 살아와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동후평을 이 지경이 되도록 두들긴 게 술병이었고, 그 술병이 깨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술병이 쇠로 만들어지지 않은 바에야 그토록 강하게 후려쳤으면 산산이 박살이 나야 했다.

 하지만 술병은 멀쩡했다.

 실금조차 가지 않았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내력이 술병에 미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몸 안의 내력과 일념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하니 곧 일체경(一體境)이다.

 일각에서는 절정의 경지라고도 한다.

 이는 몸속의 내기(內氣)가 칼끝까지 넘쳐흐르는 일기관통(一氣貫通) 경지, 즉 모두가 철혼의 무경일 거라 여기고 있는 일통경(一通境) 보다 열 배는 더 무서운 경지다.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동중산은 동후평을 앞세우고 표국을 나섰다.

 두 사람의 뒤로 다섯 명의 표두와 오십여 명의 표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표국을 나선지 일각이 채 되지 못해 걸음을 멈추어야 했으니.

 “뭔가?”

 분기가 탱천하여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은 동중산 앞에 허리가 꾸부정한 노인이 길을 막고 섰다.

 “어르신께서 경거망동하지 말라십니다.”

 “뭐?”

 “놈의 무경이 심상치 않으니 한둘이 상대하기엔 벅찰지도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가겠다고 하면 막지 말라고 하셨으니, 선택은 국주께서 하십시오.”

 노인이 비켜섰다.

 동중산은 이를 갈았다.

 “내가 놈을 죽여 버리면 어쩔 텐가?”

 노인이 무슨 뜻이냐는 얼굴로 쳐다봤다.

 “어르신의 뜻을 거부하면 어쩌겠느냔 말이다.”

 “가겠다고 하면 막지 말라고 하셨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건 가지 말라는 뜻이지 않느냐!”

 “글쎄요, 소인은 그저 어르신의 뜻을 전할 뿐입니다.”

 “내 자식이 그런 꼴을 당했는데도, 참으라고? 좋다. 어르신의 뜻이 그와 같다고 하니, 참아주마! 하지만 다음부터는 참지 않을 것이니, 그리 전하라.”

 동중산은 싸늘히 돌아섰다.

 폭발할 것 같은 살심을 보보마다 짓눌렀다.

 노인은 그런 동중산의 뒷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자꾸 벗어나려고 들다간 끝이 좋지 않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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