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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도무혼
작가 : 도검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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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562     추천 : 0     분량 : 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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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칼은 뽑으라고 있는 거야 (2)

 

 

 

 철혼은 비릿하게 웃었다.

 귀도림에서 눈에 빤히 보이는 수작을 해왔다. 알면서도 호응해 준 건 저들이 알아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입구의 크기 밖에 보지 못하는 법, 저들은 자신들의 그릇만큼만 보고 느꼈을 것이다.

 그 그릇의 크기가 저들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거라는 걸 알지도 못한 채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고 재단할 터.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철혼은 비웃음을 흘리며 천리표국으로 방향을 잡았다.

 

 천리표국(千里鏢局).

 칼과 검을 쥔 표사가 오십여 명이고, 그 표사들을 거느리는 표두가 다섯이다.

 상당한 실력자라고 알려진 총표두가 있고, 표국주인 동중산이 있다.

 표행을 나서다 보면 표물을 노리는 무리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사라지는 건 사람의 목숨만이 아니다.

 검과 칼 역시 잃어버리거나 날이 상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찾는 곳이 철방이다.

 날을 세우고, 혹은 날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

 십전철가는 병기를 제작하는 솜씨가 여타 철방에 비해 월등하다.

 십 년 전, 아예 없애 버리지 않은 이유다.

 “너무 많습니다. 그 가격으로 하면 이문을 남기지 못합니다. 조금만 깎아 주십시오.”

 상인으로 여겨지는 화의 중노인이 넙죽 허리를 접는다.

 그러나 염소수염의 노인은 잔뜩 거드름을 피울 뿐 들어줄 생각이 없다.

 “지금 이문이라고 하였는가? 허허! 이 사람, 표국업이 어디 장난인 줄 아는가? 사람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일세. 자네 거래를 지켜주기 위해 열 명의 표사들이 목숨을 거는 것인데, 지금 이문 운운하는 것인가? 이문을 남길 때도 있으면 본전 할 때도 있는 것이 장사라는 걸 알아야지. 쯧쯧!”

 “지난번에도 이문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남기지 못한다면······.”

 “그럼 딴 데 가서 알아보게.”

 광주에 표국이라고는 딱 한 군데뿐이다.

 이미 십여 년 전에 광주의 모든 표국들이 문을 닫고 말았다. 표행을 나갔다 하면 표물은 잃어버리고, 표사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천리표국과 연계한 귀도림, 백룡보, 풍림당 등의 짓임은 확인해 보지 않아도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다.

 “서 총관 어르신, 제발!”

 “어허! 이 사람, 딴 데 가보라지 않은가? 자네 이문을 우리가 어찌······.”

 “돈 받으러 왔습니다.”

 “돈? 뭔 소리······?”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서 총관이란 자가 염소수염을 매만지며 돌아봤다.

 밝은 대낮에 칠흑처럼 어두운 복장을 한 사내가 철그럭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누굴까 의문을 표하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십, 십전철가?”

 “그렇습니다.”

 “돈, 돈이라면······?”

 더듬거리는 서 총관.

 철혼은 그런 서 총관에게서 눈을 떼 장부를 들춰보았다.

 “은으로 스무 냥이오. 무슨 금액인지도 알려드리리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철혼이 조곤조곤 말을 했기 때문일까. 금세 신색을 회복한 서 총관이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내원으로 사라졌다.

 서 총관에게 쩔쩔 매던 화의 중노인이 철혼을 쳐다봤다.

 십전철가에서 당당히 돈 받으러 왔다고? 그런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다.

 철혼과 관련한 근자의 일을 알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영세한 상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쉴 틈 없이 몸을 놀린다.

 그 때문에 흔히 접할 수 있는 풍문조차 듣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돈을 주지 않을 텐데······.”

 염려 가득한 눈길로 중얼거린다.

 제 코가 석자인 양반이 남 걱정을 하는 꼴이다. 하지만 그게 인지상정이다. 사람이라면 억울한 일을 보면 마땅히 분노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럼 그 억울한 일을 만드는 이들은 뭔가.

 탐욕 덩어리다.

 누군가를 짓밟아서라도 자신의 탐심을 채우고야마는 탐욕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돈을 주도록 만들면 됩니다.”

 철혼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감사의 의미고, 걱정 말라는 뜻이다.

 화의 중노인은 그제야 철혼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병장기로 시선을 돌렸다.

 “십전철가에서 고용한 거요?”

 철혼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 총관이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국주 동중산과 함께였다.

 “네놈이냐?”

 “돌아온 어린놈이냐고 묻는 것입니까? 아니면 귀한 아드님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린 놈이냐고 묻는 것입니까? 같은 대답이니 그냥 예라고 대답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철혼은 보란 듯이 히죽 웃었다.

 참지 말고 검을 뽑으라는 도발이었다.

 “이, 이놈!”

 동중산이 불 같이 화를 냈다.

 그러나 진저리를 치듯 부르르 떨 뿐 검을 뽑지 않았다.

 “돈! 그 돈을 주지 못하겠다면 어찌할 것이냐?”

 “철가에서 총 예순아홉 자루나 되는 병기를 날을 세워주거나 새로이 만들어주었더군요. 그 숫자만큼 망가트려드리겠습니다.”

 태연히 말하는 철혼의 태도에 동중산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으나 꾹 눌러 참았다.

 “가지고 꺼지거라. 가서 철가주한테 전하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게 쉬울지 아니면 네놈 머리통이 잘리는 게 쉬울지 잘 생각해 보라고.”

 “열흘입니다.”

 동중산이 전낭을 던졌고, 철혼이 그 전낭을 낚아채며 대꾸했다.

 “뭐?”

 “그 안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열흘도 길다.

 이삼일이면 족하다.

 열흘이라고 말한 건 이쪽이 그 날짜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을 도모하라는 뜻이다.

 “진즉 이렇게 공정한 거래를 하였다면 서로 낯을 붉힐 일이 없었을 겁니다.”

 “놈! 꺼져라!”

 “아드님을 살려드렸으니 제게 빚진 겁니다.”

 “뭐라?”

 “건방지게 저한테 검을 휘두르더군요. 일도에 참해버리려다가 한 번이라 용서해주었습니다. 잘 가르치십시오. 다음에 또 그러면 가차 없이 베어버릴 겁니다.”

 철혼은 씩 웃었다.

 이렇게 말하는데도 꾹 참는 동중산의 모습이 우스웠다.

 광주의 사람들을 짓밟을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여겼으면서 제 자신이 당하는 건 저렇게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격분하고 있다.

 수치가 맞다.

 하지만 그걸 알아야 한다. 광주 사람들이 당한 것도 수치라는 걸,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조차 짓밟힌 것임을 저들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의 목숨으로 깨닫게 해 주마.’

 철혼은 조소를 남기고 돌아섰다.

 철그럭! 철그럭!

 철혼이 멀어져 갔다.

 “넌 뭐야?”

 동중산이 애먼 화의 중노인에게 화풀이를 했다.

 “송구합니다.”

 화의 중노인이 넙죽 허리를 숙이고는 종종히 도망쳤다.

 “어! 거래는 마저······.”

 서 총관이 손을 뻗었지만 화의 중노인은 저만큼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때였다.

 “저 놈이 맞다고 하는군.”

 살기가 무겁게 실린 중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서 총관과 동중산의 뒤로 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룡곡주와 몇 명의 무인들이었다. 무인들은 철혼이 귀장랑의 홍화루(紅花樓)에 나타났을 때 그곳에 있었던 무인들이었다.

 좀 전에 철혼의 얼굴을 확인한 것이다.

 “잘 참았네. 저 놈 뭔가 심상치가 않네. 좀 더 주의를 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저놈 혓바닥은 내가 뽑을 것이니 그리 알게.”

 “그렇게 함세.”

 등룡곡주와 동중산의 살의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철그럭! 철그럭!

 철마방, 백룡보, 풍림당, 등룡곡, 귀도림 그리고 천리표국.

 광주를 지배하고 있는 거머리들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암적인 존재들이다.

 철마방의 무인들을 도륙했고, 총관 흑살필(黑殺筆) 원적기의 머리통을 잘랐다.

 백룡보에서는 보주 백문초와 의형제인 전추광의 가슴을 베었고, 백우가 반응하기도 전에 칼을 목에 들이대 자존심을 뭉개주었다.

 풍림당에서는 순순히 나왔기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 틀림없고, 등룡곡과 귀도림 역시 마찬가지다.

 건드릴 만큼 건드렸고, 보여줄 만큼 보여주었다.

 피를 보았고, 자존심을 짓밟아 주었으니 가만히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마지막 미끼를 던질 시간이다.

 마지막 미끼는 선착장에 있다.

 

 ***

 

 불산(佛山) 영웅루(英雄樓).

 불산에서 영웅협객들을 만나려면 영웅루로 가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허언이 아닌 듯 땅거미가 지기도 전이건만 무인들과 주객들로 북적거렸다.

 “놈들이 이곳에 있단 말이지?”

 영웅루의 입구를 바라보며 차갑게 묻고 있는 얼굴이 악귀의 얼굴처럼 섬뜩하기 그지없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그저 귀면살(鬼面殺)이라고만 불린다.

 십 년 전, 귀장랑과 함께 서문노인에게 두들겨 맞고 돌아가던 귀도림의 무인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한 바로 그 귀면살이다.

 광주보다는 불산에 뜻을 두고 있는 등룡곡의 선봉장으로 불산에 와 있었다.

 반 시진 전, 귀면살의 수하들이 떠돌이 낭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것도 불산의 사람들이 대거 지켜보는 가운데.

 귀면살이 수하들을 이끌고 영웅루로 달려온 이유다.

 “다섯 놈이라고 했지?”

 “예. 분명 다섯이었습니다.”

 “좋아. 들어가자.”

 그러나 귀면살은 영웅루로 들어가지 못했다.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황 루주!”

 귀면살이 나직이 내뱉었다.

 반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중년인이 귀면살의 앞을 막고 섰다.

 영웅루의 주인인 황보중이었다.

 황보중은 황가취권(黃家醉拳), 황가무영각(黃家無影脚)의 고수로 불산에서는 권각쌍절(拳脚雙絶)로 유명했다.

 “술을 마시겠다면 환영이네. 하지만 싸움을 하겠다면 한 명도 들어갈 수 없네.”

 “알고 있었소?”

 “불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이곳 영웅루로 모이게 되어 있네.”

 “알면서도 날 막겠다는 것이오?”

 “영웅루는 황가만의 것이 아니네. 불산 무인들의 자존심이네. 이곳에서 싸움을 벌이겠다는 건 불산 무인들과 척을 지겠다는 것,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칼을 뽑도록 하게.”

 황보중은 팔짱을 끼고 섰다.

 귀면살은 살의가 북받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칼을 뽑을 수가 없었다.

 불산 무인들과 척을 질 수도 없었거니와 황보중의 실력이 만만치가 않았다.

 소문만 따르자면 자신 보다 우위에 있다.

 ‘흥! 소문 따위는 믿을 게 못 돼!’

 소문은 못 믿어도 황보중의 말은 믿어야 했다.

 영웅루가 불산 무인들의 자존심이라는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황보중을 밀고 들어가 싸움을 일으키면 영웅루 안에 있는 불산 무인들의 눈총을 받게 될 터, 은근히 술에 취하기 시작할 시간이니 결국엔 충돌이 벌어질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고 놈들이 나올 때까지 바깥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꼴도 우스웠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결코 그리할 수는 없는 일.

 귀면살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부아만 극도로 치밀고 있을 때였다.

 “불산에 왔으면 불산의 예의를 지켜야겠지요?”

 호탕한 음성과 함께 몇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털북숭이 장한과 날카로운 기도의 장정들 그리고 한 명의 여인.

 합쳐서 다섯 명이다. 그리고 낭인복장이다.

 숫자도 적고, 뜨내기 낭인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귀면살의 눈빛이 흠칫 가라앉았다.

 ‘평범한 놈들이 아니다.’

 살도를 익힌 귀면살이기에 살기에 민감하다.

 낭인들을 대면한 순간 그의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투기? 아니다. 호적수를 만나 겨뤄보고 싶은 투기가 아니다.

 먹잇감을 노리는 살기도 아니다.

 ‘이건······ 몸부림이야!’

 자신의 기운이 살고자 몸부림을 쳐?

 믿을 수 없다는 듯 귀면살이 두 눈을 부릅떴다.

 “시비가 붙었고, 싸웠소. 수긍하지 못해 이렇게 몰려왔으니 다시 싸우는 수밖에.”

 털북숭이 장한이 씨익 웃었다.

 여인을 포함한 네 명의 낭인들이 좌우로 벌려서며 자리를 잡았다.

 자신의 싸움이 아니기에 황보중은 한 발짝 물러났다.

 “환우멸절우주최강절대무적(寰宇滅絶宇宙最强絶對無敵)! 분쇄곤(分碎棍)! 널 두들겨 팰 이름이니까, 절대 잊지 마라!”

 털북숭이 장한이 호탕하게 외치며 귀면살을 덮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다.

 여인답지 않게 사내만큼 큰 체구의 여인이 질풍처럼 쇄도했다.

 “살려달라고 빌지 마! 그럼 죽여 버릴 테다!”

 그녀의 두 손에서 새까만 철곤 두 자루가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 강하다!’

 귀면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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