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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도무혼
작가 : 도검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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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564     추천 : 0     분량 : 6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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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잊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3)

 

 

 

 비가 그치자 십전철가의 사람들이 바빠졌다.

 철기들이 빗물에 젖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거푸집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폈다.

 바쁘게 오가는 철가의 일꾼들을 독려하던 철중양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살폈다.

 지나가는 비인지 아니면 잠시 쉬고 있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그러나 요 근래 복잡하고 무거운 심사만큼이나 우중충해 보일뿐 쉽사리 판단할 수가 없다.

 “큰놈은 이미 꼬리가 지나갔고, 새로 오는 놈은 무거워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마장(鍊磨匠)인 감노인의 목소리다.

 철중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노인의 말을 듣고 보니 지나가는 놈이라는 게 확연히 보였다.

 심사가 무거우니 판단이 흐려진 모양이다.

 철중양은 한숨을 내쉬며 감노인을 돌아봤다.

 “남을 생각인가?”

 “이곳을 두고 어딜 가겠습니까?”

 “화영이가 있잖은가?”

 “정가 놈에게 집을 떠나 있으라고 언질을 해두었으니 괜찮습니다.”

 “사위에게 정가 놈이 뭔가?”

 “입에 붙으니 잘 고쳐지지가 않는군요.”

 “하긴 나 역시 화영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 버렸구만. 시집 간 몸이니 호칭을 바꾸어야 할 텐데.”

 “가주님께서 예뻐해 주셔서 그렇다는 걸 잘 압니다. 저희들을 일꾼이 아닌 식구로 대해주셨는데, 소인들이 어찌 이곳을 떠나겠습니까?”

 “목숨이 걸린 일이네.”

 “그래서 더더욱 못 떠나겠습니다.”

 “내가 헛살지는 않은 모양이군.”

 철중양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십전철가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식구들의 앞날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철혼에게서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서문노인이 죽던 날 철혼과 단단히 약속을 하였다.

 

 - 네가 돌아오면 맘껏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터이니, 개죽음 당하지 말고 날 믿고 떠나거라.

 

 울며불며 난리치는 철혼을 그렇게 다독이며 떠나보냈다.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것이라고는 깊이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철혼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 아이 역시 한 식구이거늘 어찌 등을 돌린단 말인가. 허나 피가 흐를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걱정이구나.’

 철중양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그때 십전철가의 정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무리들이 보였다.

 “······!”

 선두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성질이 고약해 보이는 장한이 입매를 비틀어 웃고 있었다.

 독질(毒蛭) 두곽.

 인간 이하의 짓만 골라 한다고 알려진 홍등가의 포주다.

 성정이 잔혹하여 한 번 걸리면 반병신이 되기 일쑤고, 혹여 성질이 폭발이라도 하는 날에는 개천에 시체가 굴러다니곤 했다.

 그의 뒤로는 회색장포에 방립을 깊이 눌러쓴 세 명의 낭인, 삼귀(三鬼)들도 보였다.

 “여어! 마침 나와 있었군.”

 “무슨 일인가?”

 “닥치고, 전부 모이도록 해.”

 “백주에 어디서 이런 행패요? 어서 나가시오!”

 감노인이 나섰다.

 그러나 두곽의 인정사정없는 발길질에 저만큼 나가떨어졌다.

 철중양이 다급히 달려갔다.

 “괜찮은가?”

 “괜,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아 보였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위험한 곳을 걷어차인 게 분명했다.

 “가주님!”

 “썩 물러가라!”

 십전철가의 일꾼들이 망치를 비롯한 온갖 철기들을 가지고 달려와 철중양의 앞을 막아섰다.

 철중양은 감노인을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며 앞으로 나섰다.

 “누가 시킨 것인가? 내가 만나볼 터이니, 나와 함께 가도록 하세.”

 “늙은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여차 하면 모조리 죽어! 살고 싶으면 놈이 죽기를 바라야 할 거야. 뭣들 하느냐! 모조리 무릎 꿇려라.”

 철중양을 향해 빈정거린 두곽이 명을 내리자 그의 수하들이 흉악한 칼을 앞세우고 다가왔다.

 십전철가의 일꾼들은 당황하여 철중양을 쳐다봤다.

 철중양은 어찌 해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그때 주방의 왕노인이 식칼을 들고 달려 나왔다.

 “이놈들! 어디서 횡포냐! 한 놈도 움직이지 마라! 아주 조각조각 잘라버릴 테다!”

 “멈추게!”

 철중양이 살기등등한 왕노인의 앞을 막았다.

 “이거 놓으십시오.”

 밀치고 앞으로 나가려는 왕노인의 팔을 완강히 붙잡은 철중양은 손을 뻗어 식칼을 움켜잡았다.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주님!”

 왕노인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치며 손에서 힘을 뺐다.

 “철혼이를 믿어 보세.”

 철중양은 그 같이 말하며 칼날을 쥔 식칼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십전철가의 일꾼들 역시 손에 쥔 철기들을 내던졌다.

 “뭐야, 뭐가 이렇게 싱거워!”

 두곽이 빈정거리며 다가와 왕노인을 걷어찼다. 순간 철중양이 끼어들어 대신 발길질을 당해 저만큼 나가 떨어졌다.

 “가주님!”

 왕노인을 비롯한 십전철가의 일꾼들이 대경하여 달려갔다.

 철중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괜찮으니 경거망동하지 말게.”

 철중양은 흥분한 일꾼들을 다독였다.

 맞서 싸워보았자 당하는 건 이쪽일 뿐이니, 철혼을 믿고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어수선한 소란에 놀라 밖으로 달려나온 철화옥이 두곽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어이, 예쁜이! 또 본다. 반갑지? 크큭!”

 두곽이 반갑게 소리쳤다.

 

 ***

 

 “허허! 자리를 비운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런 꼴이 된단 말이오?”

 한껏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홍의장삼의 중년인은 광동성의 패주인 철혈문(鐵血門)의 고수로 철수검(鐵手劍) 유장해였다.

 양산철혈문(陽山鐵血門)!

 광동성 북부에 위치한 양산에서 문을 연 철혈문은 광동의 중심인 광주와 불산을 방치할 수가 없어 철수검 같은 고수들을 상주시켜 철혈문의 영향력 하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과시해왔다.

 열흘 전 철혈문의 연중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왔더니, 거리마다 경계심이 넘쳐났고, 군소문파의 주인이라는 작자들은 고작 한 놈을 잡고자 철쟁이들을 대거 붙잡아 인질극을 벌이겠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철마방의 총관을 비롯해서 수십 명이 죽었습니다. 철마방주가 그걸 따지러 갔는데, 또 얼마나 죽어 나갈지 모르겠습니다.”

 “객잔에서는 젊은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기 일쑤고, 벌써 피를 본 아이들이 몇 됩니다. 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건 객잔의 점소이도 다 아는 일이니······.”

 유장해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뭐라고 떠들어 대는데, 씨도 안 먹힐 소리다.

 이들이 하는 말이 과장에 과장을 한 것이라는 것쯤은 소상히 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받은 것이 있으니 적당히 동조해주어야 한다.

 “그런 불한당 같은 놈을 어찌 지금까지 내버려 두었단 말이오?”

 “놈의 칼이 워낙 날카로워 애꿎은 피해를 줄이려니 도리가 없었지요.”

 “아, 그러셨구려. 하면 내가 무얼 도와주면 되겠소? 요즘 맹주부의 행사가 요상하여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으나 불한당 하나 처리하는 것쯤이야 무슨 대수겠소?”

 곧이곧대로 들으면 곤란하다. 그냥 방관만 하겠다는 뜻이다.

 천하영웅맹의 맹주부를 언급한 건 그래서다.

 천하영웅맹이 어수선한 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이들 역시 잘 알고 있는 바다.

 작금의 천하영웅맹은 둘로 분열하였다. 맹주와 원로원의 십주들 사이가 틀어져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원로원을 지지하는 세력이 맹의 구 할 이상이었지만, 맹주라는 자리만으로도 만만치가 않았다.

 철혈문의 태상문주가 원로원의 십주 중 한 명이니, 맹주와 대립하는 형국인데, 맹주부에서는 원로들의 약점을 잡고자 별짓을 다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다. 가진 거라고는 흑영대(黑影隊) 뿐인 맹주가 무얼 할 수 있겠어?’

 이는 유장해만의 생각이 아니다.

 천하영웅맹을 이루고 있는 대소 서른여섯 개 문파가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십주가 주축이 된 원로원 역시 그 같은 생각을 한 터라 흑영대를 제외한 천하영웅맹의 모든 무력단에 대한 지휘권을 거둬들인 대가로 천룡패(天龍牌)를 넘겨주었다.

 절대 무상의 권력을 가진 천룡패이지만, 원로원에 봉황패가 있어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는 심산이었다.

 거기다 맹주의 손발이 되고 있는 흑영대마저 와해시키면 맹주는 이빨 빠진 호랑이일 뿐이니,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을 터였다.

 “아닙니다. 그저 자리만 지켜주십시오. 놈의 짓이 워낙 잔인무도하여 부득불 철쟁이들을 인질로 삼아 놈을 잡으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배경을 공증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그 정도야 뭐 어렵겠소? 염려 말고 일 보시오. 조금 멀긴 하지만 여기 창가가 그럭저럭 보이는 편이니 술 한 잔 들면서 지켜보리다.”

 유장해가 앉아있는 이층 창밖으로 멀리 십전철가가 보였다.

 십전철가가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어 가장 가까운 객잔과도 거리가 오십 장 가까이 되었다.

 유장해가 시선을 돌린 사이 백문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모두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유장해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한 놈 잡자고 다섯 분이 모두 나선다면 그 또한 좋은 모습은 아니지 싶소.”

 명백한 비웃음이다.

 뭐가 그리 무서워 다섯이나 우르르 몰려 나가냐는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안 되냐는 조롱이 담긴 말이다.

 백문초 등은 낯빛을 굳혔다.

 얼굴을 붉히는 이도 있었다.

 “유대협의 말씀이 맞는 듯하오. 보는 눈이 많으니 두 분께서는 유대협을 모시고 이곳에 계십시오. 혹여 놈의 마성이 폭발하여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거든 그때 한 걸음에 달려와 철퇴를 가하여 주시면 될 겁니다.”

 백문초의 말에 귀도림주와 등룡곡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이번 일은 백문초가 주도하기로 합의하였기에 별 말없이 따랐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은 손 한 번 쓰지 않고 다른 세 사람의 무공을 살펴볼 기회이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럼, 유대협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러시오. 간만에 난화무영수(亂花無影手)의 절기를 기대하도록 하겠소.”

 유장해의 말이 끝나자 백문초와 풍림당주 유가원, 천리표국주 동중산 이렇게 세 사람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거리로 나갔다.

 철마방주 구포라는 이미 거리에 대기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연락이 왔소?”

 자신의 인사를 받지도 않고 묻는 백문초를 향해 구포라는 허리를 숙여야 했다.

 “아직입니다.”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가서 확인하라고 보낸 홍귀와 봉두난발한 사내를 말함이다.

 구포라는 두 사람에게 철혼이 해남도의 무인들과 싸워 살아남거든 죽여 버리라고 지시했다. 물론 놈을 죽일 수 없겠거든 서둘러 달려오라고 명했다.

 “놈이 서문노인의 굉뢰도를 팔성 이상 익혔다면 해남용가(海南龍家)의 소가주라도 어림없을 것이오. 그러니 어서 철가로 가서 놈을 기다리도록 합시다.”

 백문초의 말에 유가원과 동중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십전철가로 향하는 걸음이었다.

 

 ***

 

 십전철가로 돌아가는 길.

 철혼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그럭 소리가 났다.

 묵빛의 전포 안쪽에서 칼과 철곤들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였다.

 마치 진군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려와 기분이 좋았다.

 군데군데 고여 있는 흙탕물을 밟으며 성큼성큼 걷고 있으니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십전철가에 가지 못하도록 밀어내려는 것 같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서문노야께서 무덤에서 달려와 만류한다면 모를까. 그 누구도 이 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십 년 전에 예약된 걸음이다.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문득 궁금하다.

 이 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알기나 할까?

 모를 것이다.

 몰라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복수를 할 수 있다.

 십 년 전에는 처음 있는 일이라 저들도 당황하여 시간을 끌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자신이 무자비한 살상을 하였다는 가짜 증인들을 확보해두고 지금쯤이면 십전철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

 간단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함정을 파두고 있을 것이다.

 죽음.

 가장 완벽한 함정은 죽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변론할 기회조차 없으니 얼마나 완벽한 함정인가.

 십전철가의 식구들을 인질로 삼았으니 자신의 손발을 묶어 놓을 수 있을 거라 여길 터, 여차하면 다섯 이리가 한꺼번에 공격하면 될 것이라 여기겠지.

 허나 그들의 상대는 흑수라다.

 육식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다.

 무엇을 준비했든 십전철가는 그들에게 지옥이 될 것이다.

 “······!”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우측에 있는 객잔의 이층을 쳐다봤다.

 창가에 몇 사람이 보였다. 귀도림주와 등룡곡주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문제는 귀도림주와 등룡곡주다.

 자리를 이탈하고 있다. 죽음의 무대에서 벗어나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끌어들여야 한다.

 ‘방법은?’

 그들과 함께 있는 한 사람.

 누군지 알겠다.

 ‘철혈문이군.’

 어째 안 보인다 했다.

 이제라도 나타났으니 되었다.

 그가 있으니 귀도림주와 등룡곡주를 제자리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천하영웅맹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날 알아볼 수 있을 터, 그것이면 충분하다.’

 의미심장한 미소 한 번 던져주고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이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당황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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