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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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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579     추천 : 0     분량 : 8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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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마륵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그야말로 땡볕이었다. 정말 말이 없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날씨였다.

 그는 옆의 마가난타를 보았다. 비록 꼿꼿이 서 있지만 고개를 조금씩 까닥이는 것이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사형,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사제. 그런 자네는 많이 힘들어 보이는구만.”

 “하하하, 견뎌내야죠.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붙이며 타마륵은 싱긋이 웃어 보였다. 확실히 이런 날씨에는 무공도 별 소용없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두 분 존자님. 이제 저녁 무렵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 마라불(魔羅佛)님께서 두 분이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계실 겁니다.”

 선두에 섰던 인솔자인 듯한 사람이 말의 속력을 늦추며 두 라마에게 넌지시 말을 붙였다.

 신강을 넘고 장성을 넘어 들어올 때부터 호위하던 사람인데 꽤 붙임성이 있었다.

 “하하, 사부님께서 거기에 계시다니, 중원에 한참 계신다고 찾지 말라 하실 때는 언제고 서신 한 장 달랑 주시어 부르시…….”

 “사제, 조심하게!”

 마가난타는 어렴풋이 주위에서 살기를 읽었다. 아니, 느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뒤쪽의 궁기병이 쓰러지고 있었다.

 “커헉!”

 “악!”

 정확하게 궁수만 떨어뜨리는 솜씨에 마가난타는 전방을 노려보았다.

 오십 보 정도 떨어진 곳에 호를 파 위장한 곳으로 보이는 땅이 들썩이고 있었다. 한 번 들썩일 때마다 화살이 날아왔다.

 활은 상당히 빠른 속력으로 날아왔다. 기갑병의 호심경도 소용없었다.

 호심경을 뚫고 들어간 것으로 봐서 분명 이것은 강전, 그중 가장 위력이 강한 고려 강전이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무기는 명군 외에는 없으니 명군의 매복이 확실했다.

 “전원 하마! 방패를 전방에 내세워 반원진을 형성하라! 두 분 존자는 어서 진 안쪽으로 오십시오!”

 인솔자는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장점은 기마 공격이었으나 적의 병력도 무장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정은 이십 보 정도의 거리에서 공격해 한순간에 끝낼 생각이었다. 한데 저 라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왠지 한 수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사정거리가 어느 정도 됨 직한 오십 보쯤에서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적이 원진을 만드는 것을 보고 두 번째 활을 먹여 남은 궁수를 향해 보냈을 때 맨손으로 강궁을 쳐내는 것을 보았다.

 무정은 눈을 가늘게 뜨며 궁을 던졌다. 그의 손에 초우가 들려지며 유개호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러자 그를 위시한 나머지 대원들도 용수철처럼 달려 나갔다.

 인솔자는 화살 공격이 멈춘 것을 알고는 살며시 방패를 내렸다. 그리고는 경악했다.

 긴 흑발을 날리며 섬전처럼 뛰어오른 인물. 왼팔 전체에 갑주를 달고 양손에 수투를 끼고 그 손에 칠 척이 넘는 참마도를 든 자. 게다가 결정적으로 저 소름 끼치는 오른 뺨의 검상.

 “혈, 혈, 혈귀!”

 인솔자와 기보병들의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마가난타는 그런 호위대를 의아한 눈으로 보더니 안력을 높여 그자를 주시했다.

 피풍의 안으로 언뜻 보이는 잘 발달된 근육은 그자가 외공을 연마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눈에는 그냥 일반적인 군졸로만 보여 별로 두렵지 않았다.

 이미 육십 년에 가까운 내공을 지닌 그였기에 그의 눈에 그자가 도약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손을 올렸다. 제아무리 외공의 고수라도 자신의 내가중수법이면 소용없었다.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손을 휘돌리며 일갈을 토했다.

 “마화수(魔火手)!”

 무정은 라마가 손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기가 있을 것이지만 들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녀석은 방심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는 분명 벽공장류의 무공을 쓸 것이다.

 그런 유의 무공이라면 낭인대의 비무를 통해 지겹도록 상대해 봤다.

 그가 공중으로 날았을 때 라마의 외침과 함께 무언가 음유한 느낌이 가슴 쪽으로 오는 것이 느껴졌다.

 공중에서 무정은 왼팔을 가슴에 붙였다. 그리고는 장력이 도달하기 직전에 왼쪽으로 힘차게 휘둘렀다.

 쩌엉!

 중후한 금속음이 들리면서 무정의 신형이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졌다.

 그곳에는 살아남은 두 명의 궁기병이 살을 먹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무정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스파앗!

 칠 척의 초우가 휘둘려졌다. 제대로 휘두르면 말과 사람을 함께 토막 내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저 육중한 몸에서 나온 힘이 더해진다면…….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뿌연 붉은 안개가 초원의 아지랑이와 섞였다.

 뜨거운 초원의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더니 청년의 긴 머리가 휘날리는 가운데 안개가 걷혀 나가자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그의 발밑에는 두 명의 궁수가 허리부터 양단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무정은 뒤돌아 전황을 살폈다. 예상대로였다. 고죽노인, 상귀와 하귀, 비연, 반뇌는 그간의 경험을 보여주듯이 보기병을 몰아치고 있었고 그 뒤에는 광검과 패도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듯 눈을 빛내며 전장을 보고 있었다.

 적이 안심이 된 그는 이번엔 라마들을 보았다. 그들은 어느새 동발을 들고 있었다.

 마가난타는 자신의 장력을 사내가 흘려버리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마화수는 음유한 장력이다. 끈적끈적하게 눌어붙는 장력으로 흘릴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한데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연출한 사내는 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방향을 틀어 두 궁수를 한꺼번에 베기까지 했다.

 눈 뜨고 당한 셈인데 애당초 목표는 자신이 아니라 두 궁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가난타는 죽은 궁수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궁수를 한꺼번에 베어내는 사내의 동작은 완벽했다. 다리의 힘과 이동, 허리의 유연한 흔들림, 상체의 전달이나 팔의 원심력을 그대로 칠 척의 참마도에 전달하는 데도 전혀 흔들리는 않는 그의 도.

 마가난타는 재빨리 품속의 동발을 꺼내며 눈앞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전황이 불리하기는 했지만 그리 걱정은 안 되었다. 문득 그는 사부의 서신 중 한 부분이 생각났다.

 

 우량하 족이 있는 곳으로 올 때 명군을 조심하거라. 특히 칠 척의 참마도를 쓰면서 얼굴에 검상이 있는 자를 각별히 조심해라. 이곳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혈귀라고 하더라. 너 정도면 별일이야 있겠느냐마는 혹시 모르니 조심 또 조심하도록 해라.

 

 마가난타는 대제자다. 이제 몇 년 후면 소뢰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신분이었다.

 한데 저런 낭인의 손에 놀아났다고 느껴지자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아군 측 궁병의 허리가 양단된 순간 그는 수중의 동발을 들고 뇌격보(雷擊步)를 시전하며 달렸다.

 무정은 마치 번개처럼 좌우로 신형을 흔들고 달려오는 라마를 보았다. 흔들며 오는데도 상당히 빨랐다. 그도 상체를 숙이며 맞받아 나갔다.

 라마의 두 손이 들리자 동발에 옅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강기…….”

 대원들과 비무할 때 가끔 보는 형상이었다. 그들이 그것을 검기나 도기, 혹은 강기라고 불렀던 기억이 났다. 위력은 상당했다. 역시 느낌대로 쉽게 볼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두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무정은 도배가 땅을 향하도록 돌린 후 그자와의 사이가 일 장이 조금 넘었을 때 손을 쭉 뻗었다.

 파가강!

 참마도는 장병기다. 아무래도 동발과는 사정거리가 비교조차 안 되었다.

 마가난타는 공격을 하려다가 양손을 교차시켜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마가난타의 동발이 교차되면서 참마도를 막았다.

  동발은 일반적으로 기괴하게 날리면서 공격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소뢰음사에서도 장로 급이나 되어야 가능한 것이고 마가난타는 겨우 강기를 담을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정도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는 동발 사이에 낀 참마도를 확인하고 힘을 주었다. 아마 그의 강기에 이 칼은 무 썰듯이 잘려질 것이다. 마가난타는 다음 수순을 생각하다가 순간 흠칫했다.

 “……!”

 마가난타는 눈을 크게 떴다. 힘을 주어도 참마도는 잘리지 않았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무정이 동발 사이에 초우가 낀 것을 확인하고 거꾸로 돌려진 초우를 힘껏 비틀자 엄청난 힘에 의해 초우가 회전하며 순식간에 동발의 틈이 벌어진 것이다.

 벌어진 동발을 보며 마가난타는 경악하며 급하게 동발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그자의 참마도 역시 같이 올라가자 그제야 마가난타의 시선이 전방으로 돌려졌다.

 한데 그자의 눈이 보였다. 섬뜩한 눈이. 일 장 밖의 거리가 아니었다.

 “이, 이런…….”

 창은 멈췄지만 이자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반 장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마가난타는 배의 중완혈 부근에 극렬한 통증을 느꼈다. 기혈이 위로 치솟아 오르는 느낌에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지만 타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가난타가 쓰러지지 않고 뒤로 물러서고 있는 것을 보고 무정의 발끝에 힘이 들어가며 최단 거리로 무정의 권격과 각법이 터져 나간 것이다.

 스팡! 파파팡!

 환상적인 몸의 움직임이었다. 어릴 때 수련해 온 양생법의 결과였다. 마치 온몸의 뼈가 다 없어진 듯 불가능한 각도에서도 공격은 가능했다.

 더구나 무정은 손에는 수투를, 발에는 철각을 끼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이 다시 들려지며 초우가 수평으로 누웠다. 그는 그대로 돌리려다 멈추었다.

 온몸을 엄습하는 고통 속에서 마가난타는 입을 벌릴 수 없어 이상했다. 아무리 맞아도 몸에 직접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신강기 위에 타격을 받기에 고통은 있을 수 없었다.

 한데 그자의 권격은 이상했다. 자신의 호신강기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데 더구나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의 몸 안에서는 마치 그자의 타격과 공명하듯 엄청난 나선형의 충격이 울렸다.

 “커억!”

 결국 마가난타는 피를 쏟았고 무정은 그 모습을 보고 멈추었다. 마가난타는 동공이 풀어지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사, 사형!”

 타마륵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이토록 허무하게 당할 줄이야. 사형은 후기지수 중 최고였다.

 중원의 구대문파 장문인 급은 안 돼도 능히 후기지수들은 꺾을 수 있다던 평판을 사부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한데 가진 무공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당하다니……. 그가 응원할 새조차 없이 저 혈귀란 자의 속도는 기이할 정도로 빨랐다. 그는 사형에게 달려갔다.

 어느새 장내는 정리되었다. 낭인대는 이미 손 털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궁기병은 열둘, 기보병은 열다섯이었다.

 상귀와 하귀는 익숙한 듯 시체 속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기고 있었고 고죽노인은 그런 그들을 못마땅한 듯 흘겨보고 있었다.

 무정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 그가 차고 있는 한 쌍의 각철과 수투, 그리고 왼팔을 감싸는 갑주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섬서성 전체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영중의 대장장이 목 노야가 만든 것이다.

 순철(純鐵) 중의 순철을 제련한 후 다시 그 위에 몇 겹의 다른 철을 올려놓고 불 속에 넣고 녹인 후 이를 얇게 두들겨 편다.

 이후 종이를 말듯 돌돌 말아 다시 망치질로 펴고 또다시 말기를 수십 번 이상 한 후 비로소 형이 만들어지는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뜨거운 채로 흑유(黑油)에 담가 일체의 광택을 죽인 후 다시 몇 달에 걸쳐 오로지 면포로만 닦아 은은한 묵광을 내야 끝이 난다. 그 정성이 보통 이상인 무구였다.

 무게는 일반 갑주보다 가볍지만 강도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는 발경도 전장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해 미친 소도 한 주먹에 머리가 깨져 죽는 위력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녀석의 몸엔 손댈 수 없었다. 저자의 몸 반 촌 정도에서 주먹이 멈추어진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자는 살았다. 그는 눈을 들어 두 라마가 쓰러진 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천축의 무승들이 이곳까지는 웬일이지?”

 묵직한 저음의 톤이 타마륵의 귀에 들리자 타마륵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사내를 보았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육 척이 훨씬 넘는 체구의 사내에게 위압감을 느낀 그는 자신의 품 안에서 항마저(抗魔杵)를 꺼냈다.

 “어이구, 상귀 성님, 이 뻘건 쉐이 거의 상황 판단이 안 되나 봅니다.”

 “니기미, 이 씁새가 뒈질라구 환장했나? 이 새끼, 자세 안 풀어? 엉?”

 “허허, 넋이 나갔나? 참 용기가 가상하구먼.”

 상귀와 하귀, 고죽노인은 나름대로 혀를 찼다. 보아하니 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놈보다 약해 보이는데 빳빳이 서 있는 게 꽤나 앞뒤 구분 못하는 놈인 것 같았다.

 갑자기 뒤에서 확 살기가 느껴진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패도 구서력이 성큼 나오고 있었다.

 “살기 싫은 모양이군. 그럼 죽여주지.”

 “…됐다, 패도. 잠시 물러나 있도록.”

 칠 척이 넘는 거도를 꼬나 쥐고 성큼 다가오면서 으르렁거리는 패도를 향해 무정은 손을 흔들었다. 심문이 우선이었다.

 “차근차근 시작하지. 먼저 누군지부터 밝혀라.”

 무정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타마륵은 눈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미 싸울 의욕은 잃었다.

 대사형도 어쩌지 못하는 자를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일단은 원하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우… 우리는 자랑스러운 소뢰음사의 무승이다. 나는 타마륵, 여기 쓰러… 있는 분은 대사형 마가난타 사형이시다!”

 “쓰벌, 대사형은 무슨, 대장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게!”

 문득 일행의 시선들이 한꺼번에 상귀를 향해 눈길을 돌려졌다. ‘그럼 넌 이기냐?’라는 듯한 도끼눈이 전부였다.

 “카악, 퉤! 알았수다! 아가리 닥칠 테니 일들 보쇼!”

 말을 마친 상귀는 하귀와 함께 저쪽 구석으로 갔다. 그리곤 오늘의 수확물을 펴고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무정은 눈을 돌려 타마륵에게 시선을 주며 다시 물었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우량하 족의 근거지가 나온다.”

 “……”

 “되지도 않는 중생 계도니 축원이니 하는 말이 나오면 저 뒤의 거도 든 친구가 가만 안 있을 게다.”

 “…….”

 “…목적은?”

 “…….”

 타마륵은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은 아는 것이라곤 없었고 편지를 받은 것도 왜 오라고 했는지 아는 것도 쓰러진 대사형뿐이었다.

 자신만 아는 것을 말한다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목숨이었다. 이 점만은 생각해야 했다.

 “말하면… 살려줄 거요?”

 잔뜩 움츠린 자세로 타마륵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금강저를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아니,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몸은 자꾸만 떨려왔다. 그러다 이어 나온 무정의 말에 그는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말을 하든 안 하든 살려준다.”

 “…….”

 “어차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네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

 타마륵뿐만 아니라 일행도 모두 의아한 눈으로 무정을 쳐다보았다. 단 한 사람, 반뇌만이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타마륵은 천천히 무기를 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은 단지 사부의 부름을 받고 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상귀와 하귀가 똑바로 불지 않으면 아가리를 찢는다는 둥 허리를 접어버린다는 둥 별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바람에 잠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무정이 노획한 말 중 두 마리를 타마륵에게 직접 내어주자 해결되었다.

 타마륵은 대사형을 말안장 위에 얹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혈귀라는 자가 서 있었다.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소.”

 타마륵은 의연하게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무정이 피식 웃었다.

 “무정이라고 한다.”

 “무정(無情), 무정… 정이 없다……. 당신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타마륵은 고개를 끄떡이며 떨리는 신형을 말 위에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못했다. 어떤 인간의 걸쭉한 입담이 들렸기 때문이다.

 “카악, 퉤! 엣? 묻었네, 시벌! 야, 이 씁새야! 쥐뿔도 모르는 게 아는 척하기는… 그 정(情)이 아니고 바를 정(正), 즉 설라무니… 바른 것은 없다. 다 삐뚤어졌다, 이 말이다, 이 씁새야! 알것냐?”

 상귀의 말에 일행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저걸 저렇게 확대 해석하다니……. 확실히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릴 인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런 가래침이 묻은 옷을 손으로 벅벅 문질러 대던 상귀의 뒤통수에서 별이 번쩍였다.

 “이런, 썅! 니미, 언 넘의 쉐이야?”

 뒤통수의 충격에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던 상귀는 가뜩이나 작은 눈을 더욱 가늘게 만들어 뒤를 홱 돌아보고는 바로 눈을 풀었다.

 칠 척의 거대한 도를 들고 있는 패도가 떡하니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하하하! 그게 아니라 바른 것은 없으니 모든 것은 자신이 결정하고 따르라는 뜻으로 옛 성현의 말씀 중…….”

 “아, 쓰벌! 잘못했어, 반뇌! 하지 마! 그 성현, 공자 머시기 하는 쉐이들, 말도 꺼내지 마! 반뇌, 하지 마! 그만 해!”

 한 손으로 귀를 막고 한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상귀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런 그들을 타마륵은 유심히 살폈다. 어찌 되었든 이곳은 적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도 저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건 아마도 저 혈귀 무정이란 자의 능력일 것이다. 생각할수록 두려워지는 자였다. 그는 말에 올랐다.

 “아, 알겠소, 혈귀 무정. 오늘의 수모는… 이, 잊지 않겠소.”

 타마륵은 말을 마치고 힘차게 두 발로 말을 찼다. 그는 한 손으로는 사형이 탄 말의 고삐를 한 손으로는 자신의 말고삐를 잡으며 그렇게 사라졌다.

 “차라리 말이나 안 했으면 좀 무서웠겠다.”

 절대로 안 무섭다는 표정으로 광검이 말했다. 벌벌 떨면서도, 곧 죽을 상황인데도 객기라니 무림인이란 어쩔 수 없었다.

 무정은 그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아니, 보고 있으나 신경은 딴 데 가 있는 듯했다. 이윽고 그가 몸을 돌렸다.

 “전원 회군한다!”

 일행은 그 말에 몸을 돌렸다. 노획한 말에 올라 천천히 고삐를 돌리기 시작했다. 무정은 초원의 바람에 긴 머리를 날리며 새로운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강호라…….”

 확실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에다 기이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사는 강호, 그리고 대원들이 겪었던 강호. 문득 그곳이 신비하게 느껴지는 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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