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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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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623     추천 : 0     분량 : 6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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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정은 하귀의 몸을 느꼈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 두근거리는 하귀의 심장이 느껴졌다. 이후 최소한 세 번 이상의 충격이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대신해 하귀가 화살을 맞은 것이다. 무정의 눈에 핏물이 고이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발끝에 힘을 주었다. 억지로라도 그는 힘을 주었다. 그의 몸이 떨리면서 하귀의 신형이 오른쪽으로 쏟아지며 떨어졌다. 그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순간 그의 단전 부근이 따스해져 왔다. 아주 작은 그의 단전이었지만 그곳에서 약간의 힘이 느껴졌다. 그 작은 힘이 무정의 온몸으로 실처럼 가늘게 퍼졌다.

 으드드득!

 몸을 거치면서 힘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몸속의 통로를 거치면서 그 작은 힘들이 증폭되며 이완된 근육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사지에 도달한 힘은 절대로 작은 힘이 아니었다.

 “이눔아, 상귀야! 잠시 비켜봐라! 어서 하귀의 상처를……!”

 고죽노인은 상귀의 신형을 밀치며 하귀를 막 안으려다 동작을 정지했다. 그의 눈에 무정의 오른손이 보였다. 꽉 쥐어진 채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오른손이…….

 “무, 무 대주!”

 “응?”

 광검의 눈이 커졌다. 하귀의 신형이 흔들리며 밑에 있던 무정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죽노인이 얼른 하귀의 신형을 무정의 등에서 끌어내리고 응급조치를 시작할 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악!”

 쩌어어엉!

 단말마의 절규와 함께 무정의 초우가 허공에서 도신을 번쩍였다. 그가 일어선 것이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던 무정이 일어섰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그의 몸이 위태로워 보였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그의 눈만 붉은 혈광을 머금은 채 빛날 뿐이었다.

 “대, 대장!”

 상귀는 넋 나간 표정으로 무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무정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눈을 돌려 하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살을 맞고 헐떡이는 하귀를…….

 우두두둑!

 무정이 어금니를 악물고는 이윽고 눈을 돌려 적장으로 보이는 자를 찾았다. 그리곤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이미 한 차례의 화살비는 끝났다. 로얀은 두 번째 연사를 지시하고자 했다.

 그때 그의 눈에 긴 머리의 사내가 일어서는 것이 보이자 로얀의 눈이 번쩍였다. 아마도 저자가 대장일 것이다.

 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한참을 생각하다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궁을 꺼냈다.

 대천뇌궁(大天雷弓). 그의 활 이름이다. 육 척의 거대한 활로 그는 활에 사 척 짜리 쇠 화살을 먹이고는 손을 뒤로 잡아 젖혔다.

 키이이이이잉!

 시위가 뒤로 힘차게 당겨졌다. 오른쪽 눈가 가까이까지 힘차게 당기자 양 어깨에 뻐근함이 극명하게 느껴졌다.

 이감. 이 느낌이다. 단 한 번도 대천뇌궁은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이제 이 시위를 놓으면 눈 깜박할 사이에 저자는 쓰러질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에 적장을 스스로 잡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궁수들에게 신호를 해 저자를 죽일 수도 있었다. 하나 전투는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들을 죽이고 바로 감숙으로 가야 한다.

 병사들의 사기를 생각한다면 로얀 자신이 무정을 죽이는 것이 제일 좋았다.

 명군의 혈귀를 죽인 사람 밑에 있는 것으로도 병사들의 사기는 올라갈 것이기에.

 투웅!

 로얀의 오른손이 시위를 놓았다.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내리 치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화살이 발사되었다.

 씨이잉!

 엄청난 속도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곡선도 아닌 직선으로 근 육십여 장에 이르는 거리를 날아갔다.

 

 그자가 궁을 드는 순간부터 집중하고 있던 무정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크기의 강궁을 보는 순간 그 위력이 능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봐야만 했다. 흔들거리는 신형은 두 번째 문제고 온 힘을 다해 미간 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한데 뭔가 이상한 힘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단전 부근에서 작은 힘이 올라오더니 차분히 치달아 올라왔다. 가슴과 목을 지나 미간까지 올라오며 점점 힘이 커졌다.

 이 힘이었다. 이 힘 때문에 그가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힘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무정의 신형이 흔들렸다. 머리가 깨지는 고통에 눈을 질끈 감자 순간 고통이 사라졌다.

 무정은 다시 눈을 크게 떴다. 어느 순간 화살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듯했다.

 믿을 수 없게도 자신의 왼쪽 눈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화살이 확실하게 보였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런 속도라면 몸을 움직여 피하는 것은 물론 손으로 쳐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화살이 천천히 그의 왼쪽 귓가를 지나갔다.

 

 “……!”

 광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화살은 아까 궁수들이 쏜 화살에 비하여 강도나 속도가 비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자신조차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데 비틀거리던 무정의 모습이 순간 흐릿해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달려 나가려던 신형을 멈추었다.

 어이가 없기는 로얀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낯빛을 굳힌 채 화살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시위를 먹여 날린다.

 팡! 파팡!

 두 개의 활이 연사되고 어떤 게 먼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왔다. 무정은 이를 악물며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무정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걸었다. 근육이 윙윙거리며 다 부서질 것만 같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빠르게 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마당에 가만있을 턱이 없었다.

 이상한 점은 초우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 무정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개의 화살을 보았다. 무정은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역시나 화살은 느리게 느껴졌다. 하나는 머리, 하나는 가슴이었다. 무정은 왼쪽으로 한 걸음 뛰었다.

 씨시시싱!

 두 발의 철시가 허공을 갈랐다. 헛되이 날아간 화살은 땅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땅바닥에 먼지를 내며 퉁기듯이 날아가더니 무정 일행 쪽으로 계속 땅에 퉁겨지며 날아갔다. 정말 대단한 힘이었다.

 콰악!

 화살이 멈추었다. 누군가의 발이 화살과 땅을 같이 밟고 있었다. 고죽노인의 발이었다.

 “…….”

 아무 말도 없이 고죽노인의 눈이 무정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굳은 얼굴로 손에 쥔 단창을 떨릴 정도로 꽉 쥔 채로.

 

 로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굳어졌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궁사 출신으로 대장이 된 자로 궁사들의 희망이었다. 오백 보 밖에서도 양의 눈을 맞추었고 백 보 안에서는 움직이는 무엇이든 맞힐 자신이 있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충격은 더욱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기에 그는 애써 정신을 추슬렀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다시 궁을 들었다. 분명히 놈은 움직였다. 아니, 움직였다고 보는 순간 사라지더니 옆에서 나타났다. 귀신같은 신법이었다.

 일대일로는 이길 수 없다. 그렇게 판단되는 순간 바로 손을 들었다.

 “궁수 부대 사격! 목표는 저 흑의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집중 공격!”

 씨시시시싱!

 수많은 화살이 무정에게 집중되었다. 쏟아지는 화살에 무정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패도는 박차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광검의 손이 그의 앞을 제지했다.

 “저길 봐라, 패도.”

 패도는 그의 손끝을 보았다. 거기엔 없었다. 무정이 있어야 할 곳인데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언뜻언뜻 검은 그림자가 보이긴 했다.

 패도는 멍해졌다.

 “저게… 그 이형환위(移形換位)… 라는 건가?”

 나지막한 패도의 목소리에 광검은 머리를 흔들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장은 거의 산송장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싸울 수 있을까? 이형환위라는 것은 본 적도 없었다. 하늘을 날았다는 소림사의 전전대 고승이라면 가능할까? 광검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모르겠어. 허허허.”

 공허한 광검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겨우 응급조치가 된 하귀조차 대장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에이, 치사하게……. 저렇게 잘만… 뛰댕기면서…….”

 “카악, 퉤! 조용히 해, 씁새야! 뒈지기 싫으면… 체력을 아껴! 쓰벌, 방쉐이 같으니!”

 눈을 부라리며 지껄이는 상귀의 얼굴에 하귀는 숨을 헐떡이며 조용히 웃었다.

 지저분한 상귀의 얼굴에는 두 줄기 허연 선이 눈 밑으로 길게 나 있었다.

 고죽노인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미소 지었다. 그의 시선이 무정에게 옮겨졌다.

 “전단격류(戰單擊類)의 무공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네.”

 무정의 신형이 점차 빨라졌다. 화살은 그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고 되려 무정은 기척도 없이 어느새 궁수 부대의 지척에 도달했다. 고죽노인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수련 방법도 없는 기록상의 이름이라 하더군…….”

 무정이 드디어 궁수 부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뛰어든 것 같았다. 신형이 보이질 않으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얻는다고는 하지만…….”

 그의 도가 번뜩인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도광이 번뜩이고 핏물이 튀어 오르더니 부연 피안개가 점차 짙게 피어올랐다.

 “아무도 본 적이 없기에 나도 믿지 않았네.”

 혈무가 점점 커지며 적장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로얀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만일 정말 불패의 전단격류라는 무공이 있다면…….”

 적장 로얀은 말에 오르려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이미 말의 목이 깨끗하게 잘려 나가고 있었다.

 “정말 있다면…….”

 적장의 모습이 일행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백회혈부터 회음혈까지 양단되고 있었다.

 “그건 아마 무정 대주가 아닐까 하네.”

 그제야 무정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몸은 피로 칠해져 있었다. 엄청나게 솟아오르는 묵빛 기류는 검은 안개를 보는 것 같았다.

 핏물에 젖은 머리칼은 몸의 이곳저곳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그의 가슴은 쉴 새 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초우가 머금은 혈광만이 은은했다.

 이미 해는 넘어 어둑해지고 있는 초원에서 무정의 두 눈만이 야수마냥 번쩍였다.

 그저 미동도 없이 조용히 서 있을 뿐이지만 무정의 모습은 지옥에서 현신한 한 마리의 야차와도 같았다.

 부대장 기옌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었다. 기척도 모습도 없었고 신궁이라는 로얀 대장도 한 칼에 당했다. 그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순식간에 이미 백여 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기에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적에게 이렇게 될 수는 없는 일.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궁수! 정… 위치… 공…….”

 콰앙! 콰콰쾅!

 막 공격을 명령하던 기옌은 귀청을 찢는 폭음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남쪽에서 거대한 먼지 구름이 엄청난 소음과 함께 피어났다. 기옌의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화포였다. 그렇다면 몰려온 적은 일개 변방의 수비대가 아니다.

 “어림군(御臨軍)!”

 명나라 최강의 부대. 황실 직속으로 강력한 화포를 일만여 문이나 준비하고 있었다.

 기옌은 이를 악물었다. 화포는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이다. 그는 우각수를 불렀다.

 “퇴각! 퇴각이다! 이대로 본대와 합류한다!”

 긴 우각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그와 함께 명나라 북쪽 변방의 최대의 적 오이랏트가 뿔뿔이 흩어져 갔다.

 “이거였나, 반뇌?”

 광검은 여기저기 화살에 박혀 주저앉은 반뇌를 보며 입을 열었다. 반뇌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며칠 전 무정이 광검과 비무하던 날 야간에 어딘가 다녀온 것을 일행은 기억했다. 어딜 다녀왔는지 물어도 히죽 웃을 뿐 아무 말이 없던 반뇌였다.

 “쓰벌, 올 거면 좀 빨랑 오지. 니기미…….”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상귀가 투덜댔다. 긴장이 풀어지는 듯했다. 어깨와 허벅지가 그제야 쑤셔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몇 필의 인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왔다. 마 대인과 수하들이었다. 마 대인은 그들 앞에 멈추었다.

 “무정은, 무정은 어디 있나?”

 다급한 마 대인의 말에 패도는 조용히 거도를 들었다. 그의 칼끝에 무정의 신형이 보였다. 저기 칠십여 장 밖에 무정이 서 있었다. 마 대인은 말을 몰았다.

 무정은 적장을 벤 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이제 정말 움직이기도 싫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없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묵빛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그의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기운은 곧 사라지고 초우도 내려갔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인물, 마 대인이었다. 무정은 고개를 좀 더 들었다.

 일행이 마차에 옮겨지고 있었다. 저 아래서 상귀가 무정을 향해 창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이자 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칙칙해진 어둠의 축축함이 뺨에 눌어붙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무정! 무정! 정신 차려라! 정아! 정아야!”

 말에서 내린 마 대인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무정은 선 채로 기절해 있었다.

 무정과 일행을 실은 마차는 감숙성을 향해 달렸다. 빨리 몰라는 마 대인의 호통 소리에 마부는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로 함빡 젖은 이 대지는 감숙성 부근의 어느 이름 없는 초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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