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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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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화
작성일 : 16-07-20     조회 : 616     추천 : 0     분량 : 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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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일 사태는 긴장했다. 애당초 이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되었다.

 살기를 뿜어내는 것이 무공의 척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라는 게 있다. 눈앞의 사내가 내는 살기는 설사 마기(魔氣)로 온몸을 감싼 사람이라도 내기 힘든 것이었다.

 오로지 그냥 사람을 죽이면 생기는 본능적인 살기였던 것이다. 은은히 올린 불문의 금강선공(金剛善功)을 담아 사태는 나직하게 일행을 일깨웠다.

 무정의 압박에서 잠시나마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마무리하게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버렸다.

 항마후(降魔吼)의 기운이 서린 음성에 정신이 들자 자신들이 움찔했었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다. 신중하지 못한 언사가 다시 튀어나오는 순간 조일은 생각했다.

 손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녀는 급히 본신 내력 전부를 끌어올린 후 다가오는 무정을 막기 위해 손을 올렸다.

 스슷!

 바람 소리인가? 한줄기 청량한 공기의 흐름만이 작은 소리를 내는 가운데 조일 사태의 눈이 커졌다.

 “……!”

 없었다. 무정은 거기 없었다. 대신 등 뒤에서 기괴한 육음(肉音)이 들려왔다.

 우둑!

 조일 사태는 급히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경악했다. 그곳엔 가기연이 무정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던 것이다.

 

 무정은 저 같잖은 여인이 말을 내뱉는 순간 몸을 움직였다. 인당혈과 몸의 관절에서 따스한 기운이 돌았다. 이젠 생각보다 몸이 먼저 느끼는 것 같다.

 역시나 모든 것은 느려져 있었다. 그는 단 두 걸음 만에 가기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오른손을 들어 그녀의 목을 반쯤 꺾었다. 그가 보기에는 모두 멍하니 자신이 서 있던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가사매! 어떻게…….”

 이제야 눈치챘는지 한 놈이 무정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새파랗게 눈을 빛내며 무정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는 중이었다.

 놈이 노려보든 말든 무정은 여인의 목을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목이 반쯤 꺾인 채 꺽꺽대는 중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름답지 못했다. 꽃 같은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고 낯빛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두 손은 무정의 묵빛 수투에 매달려 의미 없이 버둥댈 뿐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정이 입을 열자 묵직한 목소리가 중인들의 귀를 울렸다.

 “왜 네놈들이 사람을 이리 대하는지…….”

 그의 눈이 고주석을 향했다. 고주석은 사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에도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난 감숙에서 왔다.”

 이번에는 종음을 향했다. 무변검 종음은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그곳의 전장에서 십 년을 넘게 싸웠지.”

 다시 그의 시선이 문세원을 향하자 그는 목울대를 크게 놀리며 침을 삼켰다.

 지금 검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목숨을 걸고 싸운 이유가…….”

 당패성과 무정의 시선이 마주쳤다. 당패성의 두 손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너희 같은 연놈들을 위해서라곤…….”

 당혜는 주저앉았다. 무정과 눈이 부딪치는 순간 그녀는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생각하기도 싫다!”

 그의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다시 한 번 폭사되면서 몸에서 묵빛 기류가 폭사되었다. 가기연은 그 눈을 보는 순간 의식을 놓았다. 그녀의 눈은 이미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툭! 투둑! 주르르!

 그녀의 하체에서 무엇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흐르는 누런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극심한 공포에 오줌을 지린 것이다. 무정은 손을 털었다.

 쿠웅!

 허물어지듯 가기연은 쓰러졌다. 화검지점이라는 점창파의 아름다운 여검사가 일순간에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돕는 사람은 없었다. 무정의 오른손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기에 어느 순간 자신의 목이 저기 잡힐지 모르는 것이었다.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음은 당연했다.

 “…….”

 당패성은 무정의 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제 보니 파풍의 안쪽으로 드러난 그의 몸은 정말 대단했다.

 여인의 머리보다도 큰 팔 근육과 번들거리는 묵빛 수투, 그리고 이제야 보이는 수많은 자상들. 사내는 지독한 실전 경험을 쌓은 것이 분명했다.

 문득 그 팔을 보면서 당패성은 생각했다.

 언젠가 가주에게 무공 고하가 있는 사람이 목숨을 건 승부를 했을 경우 무공이 높아도 반드시 이길 수 없는 이유를 물었을 때 가주 천밀무격(天密武擊) 당세극(唐勢極)은 이렇게 말했다.

 

 ‘실전에서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과 싸워서 얻은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는 초식조차 없다. 그런 상대를 만만히 보고 어떻게 해보려 하다가는 생각하는 순간 이미 당하지. 그는 몸이 먼저 말을 할 테니…….’

 

 당패성은 이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 생각했다.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대였던 것이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무정은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곤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소이를 불러 그는 자신이 묵을 방을 묻자 점소이는 떨리는 걸음으로 안내했다.

 방으로 올라가다 아직도 서서 떨고 있는 려군을 보았다. 잠깐 그녀를 일별(一瞥)한 그는 방문의 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군. 그녀… 같았군.”

 화, 아주 어릴 때 죽었던 그의 여동생. 왠지 려군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젠 기억의 저편에서 사라진 인물인 그녀가 려군을 통해 또렷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던 무정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방문이 닫혔다. 그러자 그동안의 살기가 마치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하나 남아 있는 당패성 일행은 굳은 표정으로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 가기연만이 차디찬 객잔 바닥에 모로 누워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무정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여인 미려군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후~”

 긴 한숨과 함께 무정은 상체를 일으켜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아까의 일을 되짚어보았다.

 군에서는 모든 것이 거칠다. 행동도 그들의 말도. 무정은 그런 분위기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았기에 몇 마디의 언사에는 도발은커녕 관심도 가지 않았다.

 한데 무정은 그 순간 흥분했다. 그답지 않았다.

 “후~”

 연이어 터지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머릿속이 복잡했다. 려군이라는 여인의 생각이 왠지 떨쳐지지를 않았다.

 무정은 열어놓은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교교(皎皎)한 달빛이 어두운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불을 아예 켜지도 않은 채 언제나 야영하던 습관대로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있었다.

 오랜 습관처럼 무정은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때,

 똑똑.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무정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왼쪽 어깨를 앞쪽으로 향한 비스듬한 자세를 취하며 초우를 오른손에 쥐었다.

 “…….”

 문 앞의 불청객은 아무 말도 없었다. 무정도 아무 말 없이 경계의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이곳에는 자신을 찾아오기는커녕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적이라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험험, 무사님, 아까 봤던 당패성이라고 합니다. 여쭐 것이 있는데…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헛기침과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자신과 시비가 붙었던 탁자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무정이 오감을 집중하자 문 앞에 다섯 명쯤 있는 것 같았는데 그중 단 한 명만이 미약한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무정은 조금 긴장했다. 전장이었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베면 그만이지만 이곳은 전장이 아니다. 함부로 피를 볼 수는 없었다.

 “들어… 오시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무정의 초우가 도갑에서 한 치 정도 벗어났다. 준비는 완료되었다.

 “아, 감사합니다.”

 문 바깥쪽에서 마음을 졸이던 당패성은 무정의 허락이 떨어지자 적이 안심이 되었다.

 강호는 무서운 곳이다. 친구는 몰라도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행으로 맞은 구성원은 최악이었다. 친구는커녕 거의 적을 만들 것이 확실한 인원 구성이다.

 임무는 완수하지 못했어도 당패성은 이제 자신의 일행이 깨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일행에게 방으로 가서 이 일을 무공이 아닌 말로써 풀어보자고 말했다.

 결과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예상대로 점창과 청성은 표독한 눈을 빛내며 사라졌다.

 이후 그는 자신의 사제, 사매와 아미의 조일 사태, 미려군을 데리고 무정이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그는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

 방에 들어선 일행은 숨을 멈추었다. 컴컴한 어둠 속에 새파란 눈동자를 지닌 사내가 사 척이 넘는 도를 들고 있었다.

 게다가 도가 도집에서 한 치 가량 빠져나와 있는 게 완전히 전투에 임박하기 직전의 군인을 보는 것 같았다.

 “아미타불. 시주, 저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외다. 모쪼록 오해가 없으시기를…….”

 나직한 불호성과 함께 조일 사태가 허리를 굽히자 무정은 조금 난처해졌다.

 종교라는 것은 절대 무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군문에서도 종교는 소중히 생각한다.

 일반 사람들도 불심이 깊으면 존중해 주는 것이 관례인데 하물며 스님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 저 여승은 고개까지 숙이고 있으니……. 일각의 시간이 흘렀다.

 딸깍.

 초우의 도신이 도갑으로 완전히 숨었다. 그와 함께 무정이 바로 서자 어찌나 큰 체구인지 좁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달빛조차 가려지는 것 같았다.

 “일단 앉으시지요.”

 무정의 입에서 조금은 정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곤 품속에서 부싯돌을 꺼내 유등에 불을 붙였다.

 딱.

 한 번의 소리에 바로 유등에 불이 붙었다. 상당히 능숙한 동작에 당패성의 눈이 빛났다.

 한 손으로 호두를 쥐듯이 해 켜진 유등을 보니 확실히 군문의 경험자임이 분명했다. 강호인이라면 화섭자를 썼을 것이다.

 당패성은 유등이 놓여 있는 탁자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곤 조일 사태에게 눈길을 보냈다. 조일 사태는 눈빛의 의미를 파악했다.

 “자, 시주, 우선 저희를 소개하는 것이 순서겠지요. 저는 아미의 조일이라고 합니다. 아미타불…….”

 조일 사태의 말을 시작으로 각자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처음 말을 붙인 청년은 일수십격(一手十擊) 당패성이었고 그 옆은 사제 당혜, 어려 보이는 소년은 사제 당소국이라 했다.

 그리고 화를 닮은 여인은 아미의 속가제자인 미려군이라 했다. 무정은 고개를 끄떡였다.

 “무정이라 하오.”

 간단한 무정의 대꾸에 당혜는 꿈틀했다.

 어디서 저런 건방진 자세가 나오는 것인가? 그것도 감히 당문의 사람들 앞에서…….

 명성 있는 무림인들조차 당문에 이토록 무례하지는 않았다.

 “흥! 감히 당문 제자 앞에서 이토록 무례하게 나오다니… 당문이 우습게 보이나요?”

 표독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일말의 두려움이 이는지 반말은 아니었다.

 당패성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혜는 본가 출신이 아니라 방계 출신이었다. 그렇기에 인정받으려는 마음에 남보다 독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에 독수화접(毒手花蝶)이라는 명호도 얻었지만 생각은 편협과 오만으로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혜를 쏘아보며 조용히 무정의 눈치를 살폈다.

 “……?”

 뜻밖에도 무정은 가만있었고 게다가 고개를 돌려 조일 사태를 바라보았다.

 아까 주루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에 당패성은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데 스님, 무슨 말씀이 있으신지요?”

 게다가 조일 사태에게 말까지 걸고 있었다. 갑자기 당패성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정은 당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가 감히 내 말을 무시해?’

 당혜가 새파란 눈을 빛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아까 점창의 가기연이 개망신을 당한 사건을 깨끗이 잊은 듯 살기를 풀풀 날리며 무정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 무정은 여전히 그녀를 보지 않았다.

 “이, 이… 이익!”

 당패성은 낭패한 기분이었다. 외마디 신음성과 함께 그녀의 손이 이미 품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자 그는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아채려 했다. 헌데…….

 팡!

 갑자기 공기를 찢는 북 하는 소리가 당혜의 얼굴 반 치 앞에서 일어났다.

 당혜의 얼굴 살이 세찬 경풍에 흉측한 모습으로 뒤로 밀리더니 급기야 고개가 뒤로 확 꺾였다가 돌아왔다.

 “헉!”

 답답한 신음과 함께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는 흐트러진 초점을 바로 잡으려 애썼다.

 비틀거리며 겨우 초점을 잡은 그녀는 자신의 얼굴만 한 주먹이 눈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철갑으로 둘러싼 무정의 왼손이었다.

 “한마디만 더 해라.”

 주르륵…… 그녀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녀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번에는 죽는다!”

 차디찬 무정의 말에 당혜는 이제야 한 장면을 떠올렸다. 가기연의 목이 반쯤 꺾이고 실례를 했던 장면.

 코피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무정의 왼손을 쳐다보는 당혜의 품속에 있던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바라보던 조일 사태는 간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무공은 장문인에게도 그리 처지지 않는 것이다.

 정순한 내력도 이미 일 갑자는 가볍게 넘고 있었는데도 무정의 출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까 주루에서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창졸간의 일이라 경황이 없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대기하고 있음에도 막지 못하자 그녀는 조용히 침읍했다.

 놀라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당패성은 더했다. 그는 그림자조차도 못 봤다.

 게다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혜아를 말리는 손보다도 건너편의 무정이 더 빨랐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바로 무정일 터였다. 그저 짹짹거리는 것이 귀찮아서 내뻗은 일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코앞에 주먹만 갖다 댐으로써 입만 막을 생각이었다.

 한데 갑자기 주먹이 자신이 정한 임의의 점으로 잔상(殘像)을 남기며 빨리듯 나가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생각을 계속하며 이 느낌을 기억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기에 주먹을 거두었다.

 창백한 얼굴의 당혜는 두 귀가 멍멍한 것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문득 옆의 당소국이 면포를 내미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코밑의 축축한 느낌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면포를 코에 갖다 댔다. 코피라니…….

 무림인에게 이것은 중대한 증상이다. 진원지기(眞元之氣)가 손실된다든가 주화입마의 증세로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얼른 운기해 보았다. 하나 전혀 이상이 없었다. 저자는 내력이 아닌 권압만으로도 코의 혈관을 터뜨린 것이다.

 권압(拳壓), 혹은 권풍(拳風)은 실상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촛불 정도를 끄는 것은 숙련된 외공만 가지고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나 그녀가 당한 것은 그런 유가 아니었다.

 유령처럼 날아오는 주먹은 공기를 밀면서 해낸 것이 아니라 공기를 찢은 것이다.

 그 절대의 속도가 내력도 없이 빠르기로만 주먹으로 공기를 찢고 그 파동이 지금 자신의 귓속까지 공명하고 있었다.

 당혜는 확실히 저자가 자신의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손에 힘이 빠졌다. 그것도 현격한 차이가……. 그런 그녀의 귓가에 당패성의 전음이 들렸다.

 -이제야 느꼈느냐? 본가는 절대로 저자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지금 내가 너희들과 이 방에 있는 이유이니라.-

 당혜는 정신이 번쩍 들어 상황을 파악한 후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실 이 정도면 당패성도 많이 참은 것이다.

 아무리 현명하고 올곧은 인간이라 해도 문파를 걸고 말하는데 이렇게 나온다면 참지 않는 것이 정석이다. 설령 죽더라도 말이다.

 당패성의 전음은 계속되었다.

 -자존심을 접어라. 강한 가지는 멋대로 자라 잘리기 마련이다. 강하고 크게 자라 벨 수 없을 정도가 되지 못했다면 지금은 고개를 숙여라. 그것이 당문과 너를 위한 것이다.-

 당혜는 목면으로 코 주변을 깨끗이 닦은 후 목면을 돌려주며 흘깃 옆의 당소국을 보았다.

 녀석도 같이 전음을 들었는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리곤 일어섰다.

 -고인을 몰라 뵈었습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확실한 사과였다.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렸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당혜였다.

 일행은 모두 놀랐다. 당패성과 당소국은 이렇게 빨리 마음을 돌린 것에 놀랐고 조일 사태와 미려군은 정반대의 예상이 나온 것 때문이었으며 무정은 급변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무정은 또다시 난감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의식중에 코피를 터뜨려 꺼림칙했는데 사과까지 받으니 자신이 무슨 산도적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의 초우를 공중에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갑자기 일어나 도를 치켜 올리는 무정의 모습에 모두 긴장했다. 반사적으로 당패성 일행도 모두 일어서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출수도 살기도 없었다.

 “…….”

 조용한 적막 속에 무정의 고개가 살짝 숙여졌다. 그러자 도병과 머리가 부딪치며 탁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사과받을 정도의 일은 아니었소. 본의 아니게 몸을 상하게 한 점 미안하외다.”

 “…….”

 그제야 일행은 사태를 이해했다. 당패성은 저것이 군문의 인사법과 비슷함을 느끼며 무정이 자신들에게 화해를 청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긴장이 풀어진 듯 그가 조용히 웃으며 앉자 나머지도 당패성을 따라 얼떨결에 앉았다.

 무정도 서서히 초우를 내려놓고 막 앉으려는데 마침 창문으로 한줄기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엇!”

 일행은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그의 긴 머리칼이 벽을 휘도는 바람에 날려 올라가 그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는데 그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어렸다.

 이십 년을 전장에서 살았다기에 최소한 오십은 넘은 줄 알았는데 보니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또한 한쪽 얼굴은 흉측한 상처로 얼룩져 있지만 다른 한쪽은 상당히 준수한 면을 보여주었다.

 아니, 솔직히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약간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특히 정광은 빛나지만 전체적으로 보이는 눈의 쓸쓸함은 도저히 전장에서 살아온 사람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일행은 모두 입을 벌리고 무정을 쳐다보았다.

 일행 중 당혜와 미려군은 지금까지 무정이 보여주었던 행동은 까맣게 잊은 듯 두 볼이 살포시 발개졌다. 무정은 조용히 앉았다.

 “어흠흠, 아미타불…….”

 나직한 불호가 실내를 흔들자 일행은 모두 정신을 추슬렀다. 특히 당혜와 미려군은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핫핫핫! 이것 참…….”

 낭랑한 웃음과 함께 당패성은 무정을 보았다.

 “노형이… 그렇게 젊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소. 난 어디 은거 고인인 줄 알았는데… 핫핫핫!”

 “그렇습니다. 저조차도 시주를 제 윗분으로 보았으니… 아미타불…….”

 조용한 미소와 함께 조일 사태가 말했다.

 당혜와 미려군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말이 없었고 어린 당소국은 이제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무정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당패성은 지금이 분위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점소이를 불렀다.

 “어쨌거나 저희가 무 형에게 실례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벌로써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눈을 반짝이며 당패성이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심산인 듯 말했다. 무정은 살짝 웃음 지었다.

 군문에서 무정이 만나본 사람은 정말 많았다.

 그중에 당패성 같은 인물도 있었음은 당연했고 이런 자들은 솔직히 가까이하면 피곤해지는 부류였다. 장단을 맞추면 맞출수록 힘들어지는 부류.

 당패성이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당 형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오. 단, 나는 그리 술을 좋아하지 않소. 아마 많이 못 마실 거요.”

 당패성의 눈이 잠깐 굳었지만 웃는 얼굴은 그대로 유지했다. 힘만 센 철부지 강호 초출의 풋내기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란 것을 직감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무정을 구슬려 이용하려는 계획을 지웠다. 이런 자들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직감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것만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핫핫, 걱정 마시오, 무 형. 벌주로 저 혼자 다 마시고 가면 되잖소? 핫하하하!”

 어느새 말을 놓기 시작하는 당패성을 보고 무정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이 이상은 당패성도 깊게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무정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당패성은 크게 기뻐하며 들어온 점소이에게 술과 안주를 시켰다.

 “아미타불, 오해가 풀린 것 같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허허허, 부처님의 홍복입니다.”

 조일 사태가 웃으며 연신 불호를 헤아렸다. 무정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완연한 달빛이 중천에 떠 있는 것이 밤은 언제나 그렇게 지속될 듯 한없는 어둠만을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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