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의 중간,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보이는건 푸른색의 산 밖에 없는데 그 안 어딘가에 물이 흐르는지 물안개가 자욱하게 낀게 버스차고지 한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이 으스스하게 보여졌다.
핑크택시의 나이트근무 퇴근시간인 오전 6시30분.
휴게실 미닫이 문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열리며 혜선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입으로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했지만 이건 그저 습관이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어깨 가득 피곤이 느껴지는게 누가뭐라 할것 없이 다들 일찍 퇴근했을 것이고 그도 그럴것이 어제 몇몇이 모여 사우나를 간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과는 달리 휴게실 한가운데 율리와 건희가 누워있었다.
"혜선이도 수고했어."
발랄한 율리의 대답에 혜선의 입이 쭈욱 하고 내밀어졌다.
"안가셨네요.."
"쉬다 가려구요."
"이리와서 너도 누워."
그 모습을 봤는지 못봤는지, 그 둘은 세상 친근한 모습으로 서로의 팔을 배고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아, 저는 어서 들어가봐야해서.."
혜선은 발뒤꿈치를 살짝 들곤 구석에 있는 자신의 가방이 있는곳으로 향했고 쭈구리고 앉아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말이 가방정리지 딱히 정리 할 것도 없었다. 들고 간것도 없어서 그냥 그대로 가방을 들고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저 혹시 저들이 이 방에서 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시간벌이 겸, 눈치보기용 행동이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율리와 지영은 혜선의 뜻대로 해줄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배고프다."
"지금이 6시 30분.. 30분만 기다려요. 밥나와."
"아.. 진짜 배고픈데."
정말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은 듯 얇디 얇은 개미허리를 만지작 거리며 율리가 투덜거렸다.
언제나 완벽하게 꾸며진 모습만 보았건만, 아무리 화이팅 넘치는 율리라 해도 나이트근무는 꽤 힘들었는지 눈밑이 거뭇거뭇한게 피곤함이 역력하게 보였다.
"밥먹고 갈꺼지?"
"아뇨. 학원 가야해서 바로 나가야 해요."
"토익?"
"네."
"아, 아쉽네..오늘 메뉴가 뭐지?"
"글쎄요. 김씨아저씨 맘대로?"
"맛있는거였음 좋겠다."
"맛없는거였음 좋겠다."
"왜, 네가 못먹어서?"
"어떻게 알았지?"
"아오, 이걸 진짜."
혀를 낼름 내밀며 약올리는 지영과 손톱을 세워보이는 율리의 모습을 보자 기다리느니 자신이 나가는게 더 빠르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혜선은 한숨을 내쉬곤 가방을 들어 맸다.
"혜선, 어디가?!!"
혜선이 일어남과 동시에 율리가 별안간 괴성을 지르며 허리를 세워 일어났다.
"네?"
"가려고?"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자신을 노려보는 율리의 모습에 혜선은 자신도 모르게 가방을 품안에 넣고 꽉 껴안았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꼭 잘못을 한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움추려들었다.
"아... 집에가려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율리가 어기적거리며 자세를 바꾸더니 엉금엉금 혜선의 쪽을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밥 먹고가."
"아.. 저는.."
"먹고가. 나 혼자 먹어야돼."
긴 갈색의 웨이브 머리를 바닥에 흐트러트린채, 일부러 삐그덕 거리며 기어오는 모습이 마치,
"사..사다코..."
"나랑 같이 먹어."
아주 옛날에 보았던 공포영화 나왔던 귀신의 모습과 같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사실적인 모습에 혜선의 발걸음이 점점 뒤로 향했고 안타깝게도 얼마 가지도 않아 차가운 벽이 등에 닿았다. 그리고,
"엄마야!!"
"가자마!!"
율리가 혜선의 발목을 잡아 챘다.
그리곤 잔뜩 흘러내린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은채, 반쯤 가려진 얼굴을 들며 혜선에게 말했다.
"아님 나 먹는거 구경해. 나 되게 맛있게 먹어."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건희가 그 모습이 재미있어보였는지 잇따라 엉금엉금 기어오고는 엎드려 있는 율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나도. 나도."
"넌 저리꺼져. 가야한다면서."
"싫어 나도 할래."
"혜선아 먹고 갈꺼지?"
"네!!"
혜선은 고개를 정신없이 위아래로 흔들었다. 절대 손끝이 하애지도록 꽉 붙잡힌 발목이 아파서 그런것은 아니였다.
"진짜?"
"네. 먹고 갈게요."
꿈에 나올까 무서웠다.
혜선의 다급한 고개짓에 율리는 얼굴을 가리던 머리를 정리하곤 야살스럽게 웃어보이며 꽉 쥐었던 손을 풀어냈다.
"내려가자. 빨리가자. 나 배고파."
목적을 달성해 기분이 좋아졌는지 경쾌하게 일어나는 율리의 모습을 건희는 정말 부럽다는 듯 올려보았다.
"부럽다. 난 정말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는데."
"자랑이다."
입맛을 다시며 시무룩하게 말하는 건희의 머리를 율리가 손가락으로 툭 밀쳤다.
"아, 진짜 자꾸 때리지 마요."
"내가 언제 떄렸다고 그래."
또다시 티격거리는 둘의 모습을 보며 혜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가 시끄러웠다.
율리와 건희의 소리가 아니였다. 언제 밖으로 나갔는지 휴게실에는 혜선 혼자만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유리창 밖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목소리에 고개가 자연스레 창밖으로 향했다.
핑크택시옆에 있는 큰 건물, 그 건물의 주인인 버스회사의 기사님들이 출근하시는 모양이었다. 이른 토요일 아침. 모두들 쉬는 날이건만, 주말을 반납하고 일터로 나오는 목소리가 짜증은 커녕 즐거움이 가득했다.
뭐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걸까.
공감할 수 없는 감정에 혜선은 깊은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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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먹겠습니다!!"
"그래그래."
우렁찬 율리의 목소리와 김씨아저씨의 구수한 대답을 배경삼아 혜선은 고개를 끄덕해보이곤 젓가락을 집어올렸다.
"에쁘게 생겨서 밥은 참 머슴처럼 먹어."
"칭찬이죠?"
"그럼그럼."
김씨아저씨의 칭찬과 시끄러운 티비소리를 배경삼아 율리가 열심히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반 정도를 먹었을 때 혜선은 그 반의 반도 먹질 않았었다. 깨작거리는 젓가락질을 물끄럼히 쳐다보던 율리의 부지런한 주먹이 점점 속도를 늦춰갔고 어느순간 아에 멈추게 되었다.
이빨로 숟가락의 가상자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눈은 혜선으로 향해 있었다. 미간 가득 잔뜩 찌푸려진 주름이 그녀의 심기가 아주 약간은 불편하다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밥 먹는 모양이 맘에 안드는 것일까?
그녀에게로 향했던 눈을 아래로 깔며 숟가락을 내려놓곤 옆에 잘 놓아져 있던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아무 의미도 없이 습관적으로 SNS를 열여본 율리는 혜선을 불렀다.
"혜선아."
"네."
"넌 여기 왜 들어왔어?"
혜선은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율리를 바라보았다.
율리의 얼굴은 보였지만 그녀의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을뿐 혜선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혜선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게 대답할뻔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맛있어? 라는 느낌이랄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꽤 당황스러웠다.
"들어 보니 꽤 좋은 회사 다녔던것 같은데."
질문의 의도를 알 것같아 혜선은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이 있어서 그만뒀어요."
갑자기 생각하기 싫은게 떠올랐는지 혜선은 작게 인상을 쓰곤 계속해서 젓가락질을 했다.
먹기 위해 집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의미없이 뒤적거리는 거였다. 사실 율리의 부탁때문에 앉아 있는거지 그닥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네?"
"왜 들어왔는데."
핸드폰을 보며 내리깔고 있던 율리의 시선과 혜선의 시선이 마주했다.
죄를 진건 아니지면 날카로운 시선의 율리의 두 눈을 헤선은 마주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냉큼 시선을 내리며 다시금 고개를 푹 숙이곤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을 했다.
"대표님이.."
"뭐? 안들려. 대표님이 뭐?"
"대표님이 다니라 해서..."
"진탁이가?"
아. 소리를 내곤 율리는 젓가락으로 소시지를 집어 올려 입에 넣곤 우물거리며 팔짱을 끼곤 몸을 의자에 기대었다.
편해보이는 그녀의 모습과는 다르게 헤선은 불편해 보였다.
괜히 이야기 한걸까싶어 후회중이었다.
혜선은 본의아니게 대표인 진탁과 인연이면 인연이고 악연이라면 악연으로 얽혀 이곳에 들어왔다. 물론 솔직하게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었지만 그러기가 좀 껄끄러웠다.
낙하산이라면 낙하산이랄까? 그렇다고 무슨 요직이나 이런데 앉은건 아니였지만 공평한 기회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밀려오는 죄책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혜선은 율리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염려와는 다르게 율리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다들 비슷하구나."
혜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까와 다르게 율리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회사는 직원채용공고를 따로 내지 않거든."
"네?"
"어디서 알음알음으로 소개받고 오는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진탁대표가 와서 일해보는거 어떻냐고해서 데려온 경우가 많아."
율리는 다시금 팔장을 풀곤 젓가락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나 같은 경우도 우연히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아서 들어오게 된 케이스랄까?"
앞에 있는 콩나물무침을 젓가락으로 괜히 뒤적거리며 대가리가 없는 하얀 줄기를 들어 올리곤 입에 넣었다.
"내기했거든. 종목은 포커."
"내기요?"
"궁금하지 않아? 우리가 무슨 내기를 했는지?"
"네."
"맞춰봐."
갑자기 왠 수수께끼? 당황한 혜선과는 다르게 율리는 의기양양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잔뜩 솟아있는 율리의 어깨에 얼마나 대단한것이 있을까, 전혀 감을 잡지 못하던 혜선은 한참을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지면 여기와서 일하기?"
"아니."
"그럼요?"
"내가 이기면 여기 핑크택시 들어와서 일하기."
"아..."
"뭐야 그 반응은. 신기하지 않어?"
"네, 뭐.."
생각만큼 기발한 것도 아니라서 조금 허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괜시리 밀려오는 허무함에 혜선의 표정이 티가 나게 싸늘하게 굳어갔다. 하지만 율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보통 지면 일하기 이런 것 일텐데 말이야."
"......."
"참 이상한 사람이야. 우리 대표."
"네. 정말 그렇네요."
격한 공감을 하며 물을 마시는 혜선의 표정은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가득했다.
"어쨌든 나는 내기에서 이겼고 재미있을것 같아서 시작했어. 그게 벌써 1년아 다되가네."
"그러셨구나."
"넌?"
"네?"
"넌 어떻게 진탁대표를 만났냐고."
"아.. 전..."
말끝을 흐리며 혜선은 지난 겨울을 떠 올렸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때 대표님을 뵈었는데..."
"크리스마스?"
"네."
그날은 혜선이 죽기보다 싫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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