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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택시 (Pink Taxi)
작가 : 정유진
작품등록일 : 2017.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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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작성일 : 17-06-16     조회 : 355     추천 : 0     분량 : 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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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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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혜선이 죽기보다 싫었던 날이었다.

 

 기념일의 축복과 한 해의 마무리가 맞물려 1년의 어느때보다 모두의 마음이 들뜨는 밤. 그런 전야제를 즐기듯 강남의 모든 술집이란 술집은 만석을 이루고있었다.

 강남의 핫플레이스라 불려지는 유명한 펍에는 늦지 않게 도착해 자리를 잡고 신나게 놀고 있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적당한 비트의 가요가 섞여 가만히 있어도 어깨가 들썩일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안쪽 구석.

 

 "흐어어엉."

 "언니 그만 울어요."

 "그래요 혜선씨."

 

 딱 보아도 직장 동료쯤으로 보이는 4명의 무리가 있었다

 테이블에 엎드려서 울고 있는 여자와 양 옆에 자리 잡고 앉아 그녀를 달래고 있는 또 다른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그 모습을 마주 보고 앉아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는 또 하나의 여자.

 들썩거리는 주변과는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소리를 내어 울던 여자가 별안간 고개를 들더니 주먹으로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박지은. 이 나쁜기집애."

 

 혜선이었다.

 눈물로 범벅이되어 앞에 잘 보이지 않는 눈가를 손등으로 쓱 한번 문지르곤 눈 앞에 놓여져 있는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크으..."

 

 꽤 많이 마셔서 정신이 없는지 먹는것보다 흘리는것이 더 많았다.

 축축하게 젖은 턱주변을 손으로 쓱 닦아내었다. 그리곤 다시금 쪼르르 술잔 가득 소주를 채워넣는 혜선을 지켜보던 남자, 승현은 더이상 먹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녀 손에 들려있는 소주병을 빼앗았다.

 

 "혜선씨 그만 마셔요."

 "왜? 나 더 마실꺼야."

 "이미 많이 마셨어요."

 

 술을 먹고 울어보았지만 분이 풀리지가 않았다.

 꽤 오랜시간동안 운것 같것만 아직도 나올 눈물이 있는지 혜선의 양볼은 검은색 물줄기가 계속해서 흘러 내렸다.

 

 "이게 다 박지은때문이야."

 "언니이."

 "은혜야. 그렇잖아. 어떻게 걔가.. 흐읍."

 "혜선씨."

 "승현. 안그래? 어떻게 걔가 정직원이 돼. 내가 더 먼저 들어왔단 말이야. 어리고 이쁘면 다야? 말해봐!"

 

 쾅! 이번엔 양손으로 또 한번 테이블을 내려치며 혜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빈 술병들이 넘어져 굴러다니기 시작했고 크고 작은 소음을 만들었다. 앉아 있을때도 흐느적거리던게 일어선다고 안그럴까, 혜선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승현에게 향했고.

 

 "혜선씨.. 이..이것 좀 놔봐요."

 

 가만히 앉아 있던 승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남자들은 다 그런거야? 어리고 이쁜애 뽑는거야?"

 "ㄴ..네?"

 "박지은 나쁜년!!"

 "혜..혜선씨."

 "실력보단 얼굴인거야? 얼굴이 인격이야? 나이가 깡패냐고!"

 "제..제가 안뽑았어요."

 

 생각보다 강한 아귀힘에 놀란 승현이 당황해 혜선의 손을 말려보지만 승현도 꽤 많이 마셨는지 손이 자꾸 헛나가 맘대로 되질 않았다.

 

 "김과장 이 나쁜 자식!!"

 

 점점 감정이 격해졌는지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전 김과장님이 아니에요!"

 "남자들은 다 똑같애!!"

 "혜..혜선씨? 저 김승현이에요. 김승현."

 "박지은 이 나쁜년!!!"

 

 말 그대로 애꿏은데 화풀이었다.

 혜선은 눈 앞에 있는게 김과장이던, 김승현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냥 눈 앞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다 한대씩 쥐어박고 싶었고 이 모든게 다 박지은 그기지배 떄문이었다. 그저 화풀이 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멈추게 한건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던 여자, 혜은이었다.

 

 "그게 왜 지은이 잘못이야. 윗대가리가 웃긴거지."

 

 상황이 상황이니 편을 들어줘도 되줄법하건만 술을 마시고 있던 여자, 아니 혜은의 입에서 냉정한 말이 나오자 승현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말렸다.

 

 "이대리님."

 "왜? 내말이 틀려?"

 "대리님, 쫌."

 "애꿏은 승현이한테 화풀이야."

 

 타박하는 승현의 말에 혜은은 어깨를 으쓱하더니만 마침 옆을 지나가는 종업원을 붙잡곤 비어 있는 초록색 병을 가르켰다.

 

 "2병 더 주세요."

 

 혜선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뭘 봐?"

 "......."

 "어쭈, 얼굴 뚫어지겠다?"

 

 계속 노려보았다. 얼굴이 뚫릴정도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혜은은 꿈쩍도 하질 않았고 주위에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는 은혜와 승현만 가시방석이었다.

 매몰찬 그녀의 말에 혜선은 붙잡고 있던 승현의 멱살을 놓곤 뚜벅뚜벅 이대리 앞으로 걸어가 우뚝 멈춰섰다.

 

 "왜. 나도 한대 치게? 이번엔 나야?"

 "아뇨."

 "그럼 왜?"

 "안길려구요."

 

 그리고 혜선은 그대로 이대리의 품에 안겼고

 

 "흑, 대리님."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얘 왜이러니."

 

 왜 그러냐는 말과는 다르게 혜은은 손을 들어 품에 안긴 혜선의 머리를 밀어내기는 커녕 살살 쓰다듬었다.

 겉으론 표현은 안했지만 혜은도 속이 상할대로 상한 상태였다. 그녀의 옆에 세워져 있는 빈 소주병들이 그 마음을 보여주었다.

 

 "선배. 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아시잖아요."

 "아우 흉해. 물티슈 있니? 마스카라 번진거 봐."

 "저요.. 작년에 버린신발만 4켤레에요."

 

 혜선은 보라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신고 있던 자신의 낡은 구두를 벗어 들어올리곤 혜은의 눈 앞으로 가져다댔다. 별안간 눈앞에 다가오는 더러운 물건에 헤은의 표정은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 신발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겨울이 시작될 때 쯔음, 자신이 직접 골라준 신발이었다.

 그래봤자 2-3개월쯤전의 일이었을텐데 혜선이 발걸음이 험한건지 반짝반짝 빛나던 애나멜소제의 로퍼의 앞코와 구두굽이 많이 닳아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열심히 걸어다니고 움직였다구요."

 "그러니까 내가 적당히 하랬잖아."

 "정직원은 계약직마음 몰라요."

  "그 놈의 정직원."

 

 속이 타는듯 들고 있던 소주잔을 들어 원샷하고는 눈앞에 있는 신발 위로 빈 잔을 탈탈 털었다.

 매몰차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혜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혜선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얼마나 미련하게 일을 했었는지.

 

 [HK 텔레콤]

 혜선은 국내에서 최고라 하는 통신사 대기업의 직원이었다.

 사회적으로 공평한 취업문화를 만들기위해 국가에서 여러가지 정책을 공표하던 시기, 4년대졸자만 받던 기업들이 유행처럼 학력을 보지 않는 고졸공채를 펼쳤던 때가 있었다.

 

 물론 당시 취준생이었던 그녀도 지원을 했었고 시기와 운이 맞아 떨어졌는지 엄청난 경쟁률을 이기곤 당당하게 합격을해 입사를 할 수 있었다.

 

 아직도 합격 통보를 확인한 그 날을 잊지 못했다.

 혜선은 자신이 행운아라 생각했다. 세상이 모두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딱딱 맞아가는 아귀에 강남의 고층빌딩 숲 사이 사원증을 목에 걸고 활보 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녀는 자신의 장미빛 인생을 꿈꿔보았다.

 

 하지만 막상 입사를 해보니 빛 좋은 개살구였다.

 세간에선 그들의 공평한 인사로 박수를 보내왔지만 실상은 주먹구구 보여주기식 인사였다.

 

 바로 정사원 채용이 아닌 계약직 사원 채용이었던 것이다.

 처음 반발을 하며 뛰쳐나간 동기들도 여럿있었다.

 

 하지만 혜선은 꾹 참아 냈다.

 독하다며 그만둔 동기들이 손가락질을 해왔지만 견딜 수 있었다. 딱 2년, 2년만 버티면 나도 정직원이 될 수 있고 진급을 할 수 있을꺼야라는 마음으로 버텨왔다.

 그만큼 배로 움직였고 주위에 좋은 평판과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대로라면 자신에게도 꽃길이 펼쳐 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2년 뒤 그녀에게 날라온 통보는 계약종료.

 혜선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의외의 결과에 충격에 휩싸였다. 주위의 그 아무도 혜선이 정직원이 되지 못할거란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벽은 넘기 힘든것이었다.

 그렇지만 혜선은 포기하지 않았었다.

 

 절박했다, 아까웠다, 그 2년이라는 시간이.

 몇번이고 인사과를 찾아가 납득할 수 없는 결과에 항의를 하기도 했고 제발 일하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빌기도 했다. 쪽팔렸지만 그런 자존심따윈 버릴 수가 있었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라는 마음으로 혜선은 그렇게 버텼고 또 다시 2년이란 시간을 받아냈고 그렇게 도합 4년이란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오늘, 혜선은 그 4년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또다시 자의가 아닌, 타의로 말이다.

 

 "야 무거워 저리가."

 "흑, 싫어요오.."

 "은혜야. 얘 좀 데려가. 오늘 니가 책임지기로 했잖아."

 

 이대리의 말에 은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쪼르르 혜선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곤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었다.

 

 "울지마요 언니."

 

 항상 낭랑하고 발랄하던 은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울음을 참아 보려는 듯 아랫입술이 하얘질 정도로 꽉 깨물어 보았다. 하지만 맞닿은 등과 손에 혜선의 눈물이 은혜에게도 전달이 되었는지 결국 얼마안가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언니이.. 흑.."

 "흑, 은혜야아."

 "나, 언니 없으면 회사 어떻게 다녀요."

 "은헤야. 언니 어떻하지?"

 

 은혜는 와락 혜선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흡, 언니 가지마요."

 

 혜선도 와락 은혜의 허리를 껴안았다.

 

 "나도 가기 싫어 은혜야."

 

 그리곤 엉엉 큰소리를 내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지랄들을 한다. 쌍으로 지랄들을 해."

 

 그들의 아련한 대화를 바로 앞에서 듣고 보고있던 혜은은 테이블 위에 곱게 올려져 있던 소주병을 들어 신경질적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곤 그대로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한명도 챙피해죽겠건만, 울음소리가 하나 더해지자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에 불을 지피는것 같았다.

 

 "이대리니임.."

 

 승현이 손을 뻗어 소주병을 낚아챘다.

 

 "어쭈."

 "그만드세요."

 "이게 오늘따라 왜이리 구박질이야?

 "제가 언제 구박질 했다 그러세요."

 "너도 우냐?"

 

 은혜와 마찬가지로 말에서 같은 떨림이 느껴졌는지 혜은의 날카로운 눈이 승현의 두 눈가로 향했다. .

 움찔한 승현이 황급하게 마른 세수를 해보았지만 볼 위에 물자욱이 남아있었다.

 

 "가지가지들 해요."

 "따라드세요. 여자가 병나발하면 사람들이 흉봐요."

 

 큼, 헛기침을 해보인 승현은 빼앗은 술병읃 들어 비어있는 혜은의 잔에 따라주었다.

 

 "남자가 울어도 흉봐."

 "이 상황에 눈물안나는게 이상한거에요."

 "말대꾸는."

 

 병이아닌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대 다는 혜은을 확인한 승현은 엉엉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혜선과 은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까지 울려나."

 

 저러다 큰일나겠다 싶었다.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혜은도, 계속해서 울고 있는 두 사람도 말이다. 그렇지만 말리고 싶진 않았다. 점점 커져가는 울음소리에 주변사람들이 따가운 눈초리와 궁금증이 가득담긴 시선을 보내왔지만 그런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때,

 

 "어!"

 

 승현이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큰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왜?"

 "위험해!"

 

 그리고 그가 일어날 틈도 없이 우당탕하며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은혜와 혜은의 비명소리가 펍안을 가득 매웠다.

 그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놀란 승현과 혜은이 자리에서 벌떡일어났고 그 큰소리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 모든 시선이 향한곳은 바닥에 서로 부둥켜안고 쓰러져 있는 혜선과 은혜였다.

 

 "괜찮아요?"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바닥에 누워있자 깜짝 놀란 승현이 그녀들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혜은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있었다.

 

 "그만들 안해? 어?"

 "또 왜 이러세요. 다쳤을 수도 있잖아요.

 "다치긴 개뿔!"

 

 안그래도 휘청휘청거리던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싶더니만 혜은과 승현이 한 눈을 판사이, 서로 부둥켜 안고 펑펑 울던 은혜와 혜선이 한쪽으로 쏠리는 무게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의자와 함께 바닥에 함께 넘어져버린 것이었다.

 

 "이것들을 콱. "

 "왜이러세요. 참으세요."

 "놔봐. 내가 오늘 저것들 가만 안둘꺼야."

 

 치밀어 오는 화를 참지 못하고 양 손에 숟가락을 들곤 한대 때릴듯이 다가오는 모습에 승현은 냉큼 혜은에게로 달려가 양 팔목을 붙잡아 말리기 시작했다.

 

 "이거놔. 가만 안둘꺼야."

 "취했잖아요. 오늘은 좀 봐주세요."

 

 본의아니게 펼쳐진 소란에 술집안에 있던 모든 손님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쿵짝거리며 들려오던 음악은 언제 꺼졌는지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핸드폰을 들어 그들을 찍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그 누가 봐도 흔하게 볼 수 없는 장면이긴 했다.

 잘 차려입은 남녀 4명이, 둘은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고 둘은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니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야, 이거 놔봐.."

 

 한참을 실랑이 하던 혜은도 그런 주위의 시선을 느꼈는지 팔에 힘을 풀곤 꽉 잡힌 손목을 비틀며 풀어냈다.

 

 "아, 아파. 꼴에 남자라고 힘은 더럽게 쎼요."

 "하하.. 대리님도 만만치 않으시네요."

 "오늘 계속 까분다 너?"

 

 숨이 가파왔는지 쉼호흡을 한 혜은은 가방으로 향했다.

 

 "쪽팔려 진짜.

 

 계산하라는 듯 신경질적인 손길로 승현에게 카드를 건내준 그녀는 뒤도 안돌아보며 밖으로 향했다.

 

 "택시잡아라. 쟤네 보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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