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하하하하하하하"
식당 안에 마녀같은 율리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그...하아.. 그 오바이트녀가 너야?"
"작게 말해요 언니."
"꺄하하하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새로운 사실을 안 기쁨을 주체못한 율리는 온몸을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식탁, 의자, 바닥까지 구분없이 쿵쾅소음을 내며 웃자 혜선은 챙피해서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괜히 말했어."
이제 온 동네방네에 소문나는건 시간문제 이구나 싶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 친구였으면 입이라도 막을텐데 언니라 그러지 못하는게 억울해 애꿏은 자기 머리만 쥐어 뜯는 혜선이었다.
그러게 한참을 웃던 율리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정색을 하더니 주먹으로 식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아니지."
"네?"
후우.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풀럭거린 율리의 두 눈이 날카로와졌다.
어머나 이건 또 뭐람. 혹시나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걸까 싶어 혜선의 동공이 흔들렸다.
"너구나? 내 가발에 오바이트 쏟은게."
"그게 언니꺼였어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혜선이 두 손을 모아 자신의 입을 가렸다.
"그럼 그게 내꺼지, 진탁대표꺼겠어?"
"모...몰랐어요."
"내가 그걸 어떻게 구한건데.. 이걸 증말!!"
"어..언니!"
숟가락을 들고 한대 때릴듯이 일어나는 율리에 혜선이 본능적으로 두손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곤 몸을 숙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많이 경험해본 듯한 모양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타고 건너들어온 자신의 소듕한 가발을 버리게 만든 사람이 혜선이라는 사실에 끓어 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대 때리려고 일어났건만 잔뜩 쭈꾸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정수리를 보니 마음이 약해지는 율리였다.
에이씨. 탁 소리가 나게 숟가락을 내려놓곤 다시 자리에 앉으며 팔짱을 끼곤 다리를 꼬았다.
"그래서?"
"네?"
"그게 끝은 아닐꺼 아니야."
"아.. 그게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_
"아으..머리야.."
귀 바로 옆에서 누가 징을 치는지 혜선은 뎅뎅 정신없이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제일 먼저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아.. 진짜."
핸드폰을 확인하던 혜선이 별안간 곡소리를 내더니만 이불위로 핸드폰을 집어던지곤 머리를 부여잡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제 제대로 넘어진건지 핸드폰 액정이 보기 좋게 박살이 나 있었다.
에이씨, 작게 욕을 해본 혜선은 이불을 걷어 발목부터 무릎까지 그리고 팔꿈치에서 손바닥까지 어디 스크래치난곳은 없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친데는 없는데.."
도대체 뭐하다 깨먹은건지, 회사에서 잘린마당에 이젠 임직원특가로 싸게 구매하지도 못하는데 쩍쩍 갈라진 화면을 보니 속상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오기 전에 새로 하나 장만할걸 그랬나 싶었다.
"아이고.. 내 멘탈과도 같구나."
꼭 지금 자신의 모습같았다.
작게 한숨을 쉬며 홈버튼을 누르자 04:44라는 숫자가 보였다. 왜 하필 숫자도 444인지.
"아우, 도대체 얼마나 잔거야."
푹 잔거 같지만 뻐근해져 오는 등줄기에 앉은 자리에서 좌우로 몸을 틀어본 혜선은 으쌰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엄마아."
잔뜩 쓰려오는 속을 어찌할바를 몰라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고 배를 쓰다듬으며 나오자 거실에서 티비를 보던 엄마의 잔소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벼르고 계셨을까, 혜선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잘한다. 잘해."
"나 몇시에 들어왔어요?"
"새벽에 처 들어와서 이제 일어나? 왜? 그냥 그대로 쭉 자지 그래. 아주 그냥 내년까지 자지 그랬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어우, 머리야."
식탁에 자리를 잡곤 양 손으로 관자놀이를 살살 맛사지하기 시작했다.
손을 열심히 놀리기도 잠시, 혜선은 식탁 한켠에 있는 비상약 바구니를 뒤적거렸다. 평소엔 이러면 좀 낳았는데 어제는 꽤 무리를 했는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두통약이 어디있더라.."
"어이고, 내가 나이 서른넘은 딸 술국이나 끓이고 있고 말이야."
"1절만 해요."
"이젠 하다 못해 변태한테 업혀 들어와?"
"변태?"
"그래 이것아."
짝소리가 나게 등짝을 내려치곤 혜선의 엄마는 언제 또 끓여놓으셨는지 그녀의 앞으로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꽤 아팠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죽지를 만지며 맑은 콩나물국을 한수저 떠먹었다.
"크으.."
"얼씨구."
"변태라니 무슨말이야?"
"크으.. 크으.. 아우 듣기싫어. 네 아빠 보는것 같아."
나이 서른 한창 이쁠나이에 시집도 못가고 술국먹고 아저씨처럼 크으라니. 참을수 없는 한심함에 혜선의 엄마는 홱 하니 매몰차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욕조에 니 빨래거리 있으니까 니가 하던가."
"빨래?"
"그래."
"엄마가 좀 해주지."
"난 죽었다 깨나도 못한다."
못볼 것을 본냥 정말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은 혜선의 엄마는 손을 절래절래 흔들곤 식탁위에 올려져 있던 지갑을 챙겨 들었다.
"어디가요?"
"장보러간다."
"엄마 나 아이스크림."
"한겨울에 무슨 얼어죽을 아이스크림."
"원래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먹는거야."
"나 돈없어. 니가 사먹어."
"에이, 사올꺼면서."
"빨리 먹고 화장실에 있는거나 치워!"
"네."
빼액 소리를 지르는 모친의 모습에 한마디만 더 거들면 진짜 쫓겨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입을 다물고 앞에 있는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럴땐 쭈구리고 있는게 상책이었다.
한참을 분주하게 준비하던 어머니가 쾅 소리를 내며 현관문 밖을 나가자 혜선은 긴장에 굳어있던 온몸에 힘을 풀며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변태?"
젓가락 끝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으며 혜선은 지난밤의 일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도대체 어제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무 기억도 나질 않았다.
혜선은 젓가락을 내려놓곤 욕실로 향했다. 엄마가 치우라고 소리질렀던 무언가를 보면 기억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쓰려오는 속을 부여잡으며 어기적어기적 걸어간 혜선은 집이 오래되 수평이 잘 맞지 않는지 뻑뻑한 욕실문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을 했다. 뻑 소리가 나며 열린 문을 붙잡고 더듬거리며 불을 키고 몸을 밀어넣자 욕조 안에 검은색의 무언가가 떠 있었다.
"저게 뭐야?"
엄마가 말한 욕조에 있는 빨랫거리가 저것이 확실한것 같은데, 문지방을 밟고 서있어 흐릿하게 보이는게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낯설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였다.
"설마.."
그 때 혜선이 무언가가 떠오른듯 빠른 발걸음으로 욕조로 향했고 검지손가락으로 검정색의 무언가를 건져 올려보았다.
"가발??"
왠 가발일까.
이미 긴머리의 풍성한 웨이브스타일의 혜선에겐 이런 가발이 필요하지 않았고 살 생각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건 누구의 것일까?
"뭐가 이렇게 붙어 있어."
무언가 덕지덕지 엉켜있고 희끄무리 한게 잔뜩 붙혀져 있는 모냥새에 가발을 코끝에 가져다대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우욱. 이게 뭐야. 우웩."
토사물의 흔적이었다.
혜선 본인은 기억이 나질 않겠지만 말이다.
비위가 약한 혜선은 구역질을 참지 못해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고 덕분에 몸속에서 올라오는 소주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황급히 욕실에서 뛰쳐나와 쾅 하고 문을 닫았고 혹여나 그 더러운 가발이 자신을 쫓아올까봐 등을 기대어 문을 막았다.
"후우."
정말 못볼 것을 본 혜선은 있는 힘껏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최혜선씨네 댁이죠?]
그때, 혜선의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네, 맞는데.. 에구머니나!!]
[목욕탕 좀 빌릴 수 있습니까.]
[누구세요?]
[택시기사입니다.]
[택시...기사?]
[보다싶이 이 집 따님이 이렇게 만들어서요.]
"남자였어???"
"망측해라. 어떻게 남자가 여장을 하고 다닐 수가 있다니."
"아 깜짝이야."
"뭘 놀래? 엄만데."
언제 들어왔는지 혜선의 엄마가 혀를차며 베란다 쪽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안갔어?"
"장바구니 안가져갔어."
"아.."
별일 아니었지만 엄마의 모습을 보자 놀란가슴이 왠지 모를 안심이 들어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르륵 문을 타고내려와 바닥에 주저 앉은 혜선은 멍하니 제 엄마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아파오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다시금 살살 마사지를 했다.
'어제 해고통보받고.. 그대로 뛰쳐나와서 술을 마시고.. 혜은선배랑.. 은혜랑 승현이랑 술을 먹었는데..'
"아!!"
"아구! 깜짝이야!"
드디어 기억이 난듯 혜선이 짝하고 박수소리를 내며 소리를 쳤다.
분명히 어제 마지막에 자신은...
"핑크택시탔는데..."
"뭔 택시?"
[여성전용 안심귀가 핑크택시 ]
언젠가 승현이 자신의 선배가 하는곳이라며 이야기해준곳이 있었다.
꽤 빈번하게 SNS에 후기라던가 광고가 노출이되 언젠간 타봐야지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여성기사들만 채용하고 있다고 본것 같았는데, 그럼 어제 자신이 본 그 여장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단편적인 조각이 하나 둘씩 모이며 혜선의 머릿속은 어마무시한 상상력으로 가득차올랐다.
"설마..신종범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아찔한듯 혜선이 두 팔을 감싸 안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곤 어디 이상한데 없는지 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더듬 만지며 체크를 해보았다.
"아! 그리고 이거."
그때 혜선의 엄마가 기억이 난 듯 쇼파 옆 테이블에서 작은 종이를 들고와 주저 앉아있는 혜선에게 건내었다.
"이게 뭔데."
핑크색의 정사각형의 모서리가 뾰족한 아주 뻣뻣한 종이. 명함이었다.
"그 변태 명함. 눈뜨면 연락달라 하더라."
[택시비 16,730원.
세탁 및 세차비 30,000원.
계좌번호 한국은행 ***-***-****** 예금주 정진탁]
"정진탁? 누구지?"
"뒤에도 뭐라 써있던데?"
[택시기사라도 해. 정직원이니까.
주식회사 핑크택시 대표이사 정진탁]
_
"그래서 전화했어?"
"아니요. 안했어요. 택시비랑 세차비만 계좌로 넣고 연락 안했어요."
"왜?"
"그건..."
정말 궁금한지 순수한 두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율리의 시선에 혜선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죽어도 못할것이다.
"그냥요. 무서워서."
택시기사는 하기 싫어서라고말이다.
"뭐가?"
"변태.."
"어? 변태?"
"변태..잖아요. 여장 막 하고.."
"꺄하하하하하."
또 다시 웃기 시작하는 율리의 모습에 혜선의 입이 삐죽하고 내밀어졌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자신은 지금 너무나도 진지한데 가볍게 넘기는것 같아 기분이 살짝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런 혜선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한참을 웃던 율리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천천히 숨을 고르더니만 말했다.
"그거 내가 시킨거야."
"네?"
의외의 사실에 혜선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그날 일하기 싫어서 억지로 여장시켜서 보낸거라고. 안 그랬으면 내가 너 데리러 갔을껄?"
"아..."
"그러니까 오해 풀어. 원흉은 나니까."
못미더웠지만 왠지 율리라면 그렇게 했을거란 생각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혜선을 바라보는 율리의 표정엔 엄마 미소가 가득했다.
"재미있는 인연이네."
두번다시는 상종하지않고도 남을 만한 강렬한 첫만남이건만, 어떻게 꼬셨는지 몰라도 혜선을 자신의 회사에 눌러 앉힌 진탁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끼는 율리였다.
혜선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탁은 그녀를 이곳에 있게 만들었을까?
"악연이라고 해둘래?
그 때, 탁 소리를 내며 율리의 옆에 식판이 올려졌다.
"진탁 안녕?"
"안녕 율리?"
살가운 인사를 하며 의자를 뒤로 끌곤 자리에 앉은 진탁의 모습에 혜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안녕?"
"안녕하세요."
정이라곤 하나도 느낄 수 없는 아주 딱딱한 말투였다.
진탁의 등장에 싸늘해진 공기를 느낀 율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팔꿈치로 그의 팔뚝을 툭 쳤다.
"양반은 못되네?"
애교있는 율리의 말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진탁은 젓가락을 집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 뒷이야기는 내가 해줄려고."
물어보기도 전에 알아서 궁금증을 해결해 주다니, 가만히듣기만 해도 신나는 이야기지만 율리는 더 일부러 오바를 하며 짝 손바닥을 부딪히곤 활짝 웃어 보았다.
"어머 신나라."
"그래 보여."
"진짜?"
"내가 말해도 돼?"
진탁의 질문에 혜선은 고개를 숙인채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보러 왔더라고."
"어디? 여기?"
"그럴리가."
"그럼 어디?"
"한의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