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너 되게 웃긴다."
"내가 뭘."
"아무리 그래도 사람 면전 앞에서 재수 없다니."
율리의 타박에 힘을 얻은 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안으로 숟가락 가득 큼지막하게 밥을 우겨넣었다.
"싫다그랬지 누가 재수없데?"
"그게 그거야."
"다른거야. 그리고 이건 솔직한거야."
"그건 솔직한게 아니라 싸가지가 없는거야."
격한 공감을 하며 혜선의 고개가 사정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율리는 쓴웃음을 지어보곤 손을 뻗어 혜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왜 싫어 혜선이가?"
율리의 질문에 정신없이 움직이던 혜선의 고개가 멈추었고 진탁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물어보진 못했지만 혜선은 정말궁금했었다.
왜 자신이 싫은지 말이다. 말끝마다 재수없다에 혀차는것은 기본이요 표정부터 싫다는게 팍팍 티나는 그의 속마음이 정말로 궁금했었다.
용기가 없어 물어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힐끔 곁눈질로 혜선을 쳐다본 진탁은 입안에 있는 밥알을 씹어 넘기며 쿨하게 말했다.
"우리 누나 같아서."
"엥?"
진탁의 대답에 혜선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어이없는 이유일 줄이야. 바로 앞에서 입을 벌리곤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헤선이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던 진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뭐야. 그게 대답이야?"
"가만히 있어봐."
손바닥을 보이며 율리의 입을 막곤 한참을 손가락을 움직이던 진탁은 이내 툭 하고 테이블위로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화면 가득 누군가의 사진이 있었다. 그것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알 법한 그런 얼굴말이다.
"정민아? 모델?"
"캐나다에서 살다왔다면서 뭐 그래 발음이 토속적이야?"
"마들이라고 해줄까? 마들?"
"그래. 탑마들. 그게 내 누나."
"왓?? 거짓말."
"진짜야."
진탁의 말에 멀찌감치 쳐다보던 혜선이 고개를 화면 앞으로 가져다 댔다.
"정말 정민아다.."
헤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티비를 돌릴때마다, 길을 걸을때마다 화면이든 전광판이든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177cm의 길쭉한 키에 깡마르지만 볼륨감넘치는 몸매로 17살에 데뷔하자마자 명품브랜드 L사의 전속모델로 발탁되 전세게 모델랭킹 1위에 올랐을 정도의 타고난 모델이었다.
찬란했던 시간이 지나 1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모든 여성의 워너비아이콘이었고 지금도 베테랑 현역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뽑내고 있었다.
혜선도 어린시절, 정민아를 보며 모델을 꿈꿨던 적이있었다.
근데 그런 정진아가 정진탁의 친누나라니. 혜선과 율리의 눈이 저절로 진탁의 다리로 향했다.
"뭘봐?"
"좋은 유전자는 다 누나한테 몰빵했니?"
"무슨 소리야."
차마 혜선은 그렇게 하질 못했지만 율리는 대놓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누나는 모델할정도로 큰데 너는..."
"콱, 진짜."
진탁이 숟가락을 세우며 한대칠듯 위협을 해보이자 율리가 여시같이 웃어보이곤 진탁의 핸드폰을 잡아 자신의 바로 코앞으로 가져다 댔다.
"안 닮았는데?"
"나랑 안닮았어."
율리의 말에 혜선은 진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정진아와 그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쟤랑 닮았지."
까닥, 진탁이 어느곳을 향해, 아니 누군가를 향해 고개짓을 했다.
"혜선이?"
"어."
혜선이었다.
"어디가?"
진탁이 율리의 손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뺏어와 영혼없이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무심한 그의 대답에 혜선의 양볼이 발그랗게 달아올랐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 언젠가, 그녀는 모델을 꿈꾼적이 있었다. 자신의 아이돌이나 마찬가지인 정민아랑 닮았다니, 본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2,30대 여성들의 워너비인 정민아랑 나랑 닮았다니. 최고의 칭찬이나 마찬가지였다.
"똑같애."
"어디가?"
기대를 가득 담은듯 혜선의 두눈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 올랐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닮았다는 것일까? 그녀의 두 눈은 대답이 나올 그의 입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런 혜선을 비웃듯, 진탁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녀의 기대감을 짓밟아 놓았다.
"쓸데없이 큰 키."
"혜선아 키가 몇이야?"
"172정도..."
"기름기 없는 푸석한 피부에."
"정민아가? 뷰티의 아이콘 정민아가?"
"남의 누나이름 그렇게 친구처럼 부르지 말아줄래? 기분나쁘거든?"
"가족이라는거냐?"
"어. 가족은 건들이지 말자."
"피부는 그렇다 치자. 또 어디가 닮았는데?"
"흐리멍텅한 눈."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키자 혜선은 풀어져 있던 두눈의 근육에 잔뜩 힘을 주며 눈을 부릅떴다.
"카리스마 넘치는데?"
눈에 잔뜩 힘을 준 혜선을 똑바로 쳐다보며 진탁은 입을 뻐끔거렸다.
'놀고있네'
그 입모양을 읽었는지 혜선은 슬며니 눈에 힘을 풀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고 마찬가지로 그 입모양을 본 율리가 그의 팔뚝을 찰싹 내려쳤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모냥새랑 아주 똑같애."
"아..."
"뭐야. 그 아쉬운 감탄은. 설마 기대한거야?"
"아뇨. 그냥.."
혜선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닮았다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한 화보속의 모습 정민아가 아니라, 집에서 한껏 풀어져 있는 정민아의 모습이라니. 그러고 보니 진탁은 자기 누나랑 닮아서 혜선이 싫다고 했었다.
물론 눈으로 보질 않아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진탁이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는 뭐랄까, 좀 더 비약하자면 혜선이 마치 최악의 여자라는 것 처럼 들려왔다.
진탁은 멈추지 않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내 누나는 낫지."
"무슨말이야? 우리 혜선인가 어때서."
"몰라서 물어? 자기 할일은 확실하게 하잖아. 누구와는 다르게."
혜선의 정수리부근이 파르르 떨리는게 보였다. 율리가 냉큼 팔꿈치로 진탁의 팔뚝 부근을 가격했다.
"아, 아퍼."
"야."
"왜."
"너 왜그래. 우리 혜선이가 얼마나 일 잘하는데."
"하고 싶어서 하는거랑 어쩔 수 없이 하는건 천지 차이야."
율리의 표정이 아연질색으로 변해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헤선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도대체 이 아이의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들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지. 그것도 이렇게 대놓고 면전에서 말이다. 평소의 다정다감한 진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대로는 더이상 안되겠다싶은 율리가 한숨을 쉬곤 진탁에게 한마디 하기위헤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 찰나,
"저.."
별안간 혜선이 엉거주춤 일어나더니만 의자뒤에 걸려있는 가방을 매기 시작했다.
"왜 혜선?"
"집에 가봐야 할것 같아서요."
"어차피 집에가도 할 일 없잖아?"
"야. 정진탁."
율리는 혜선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져있는걸 알아챌 수가 있었다. 아니, 모르는 그 누군가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다. 평소 진탁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대놓고 독설을 퍼붙는 그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싸우지 않고 피하려 드는 혜선의 모습에 율리는 속이 상했다.
붙잡고 자신이 대신 싸워주고 싶었지만 이럴때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게 좋은거라는걸 알고 있기에 율리는 혜선을 붙잡기 위해 올렸던 손을 무릎위로 내렸다.
"어, 그래 조심히가 혜선아."
"네. 언니 푹쉬세요."
힘이 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는 혜선의 뒷모습을 율리가 자상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알아채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쳐다보았다. 그리고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혜선이 식당밖을 나가자 돌연 얼굴을 굳힌 율리는 아에 몸을 완전히 틀어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진탁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 뚫어지겠다."
"너 진짜 혜선이 한테 왜그래?"
"말했잖아. 싫다고."
"쟤가 뭘 잘못했는데."
"없어."
"야."
제법 연상의 모습을 티내며 진짜 그의 친누나가 된듯 율리는 쓰읍소릴내더니만 살포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다른사람에게 통할지 모르겠지만 진탁에겐 그런것 쯤은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연신 숟가락으로 나르던 국물이 조금 아쉬웠는지 진탁은 아에 국그릇들어 입으로 가져다댔다.
"그냥 싫어. 저런 맥아리 없는 애."
호로록소리가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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