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무협물
고독검-필부지행
작가 : 로구탄
작품등록일 : 201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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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장부. 유석인. 착수금 5전짜리 고기국수 한 그릇. 미행.下/敗
작성일 : 17-06-11     조회 : 395     추천 : 1     분량 : 14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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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구한 사연이라도 있는 석영식당과는 다르게, 이가 반점은 평범한 식당이였다. 외곽 지역에서도 가난한 축에 속하는 곳 답지 않게 식당이 큼지막하다는 것을 빼면, 힘을 쓰는 농부거나 일꾼들이 자주 이용하는 기름지고 싼 음식을 파는 서민 식당 그 자체였다. 술도 싸구려 화주 외에는 거의 다루지 않았고, 박리다매를 경영 방침으로 삼고 있는지, 안주류도 주로 싸고 기름진 그리고 배부른 것들 위주였다. 한동안 일을 쉴 때 건가촌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술자리를 갖곤 했는데, 이가 반점은 가끔씩 찾던 괜찮은 곳이였다. 그래서 석영 농장처럼 두리번 거리면서 숨어 들지 않고, 늘 하던 것처럼 사람들 몇 몇이 앉아 있는 구석에 끼어 탁자에 자리 잡고 주인장을 불렀다.

 

 " 한 동안 안보이더니? 뭐하고 살았대 ? "

 

 건가촌 사람들도 지금 처럼 이런 저런 잡일이 없을 때 찾았던 단골집 비슷한 느낌이여서 그랬는지, 그들과 같이 왔던 북궁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린듯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 딱히 별 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같이 마시는 형님들이 안 오시니까 안 오게 된것 같습니다. 하하. 제가 술을 별로 안 좋아하시잖습니까 "

 

 건가촌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안주만 내세운다고 혼자 따로 시키라고 투덜거리면서 면박을 받을 만큼 생각보다 북궁진은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부의 방침이거나 깊은 역사가 있어 술을 꺼리는 편은 아니였지만, 술에 깊이 취해서 몸이나 정신이 통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그 느낌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잊고 싶을 만큼 힘든 기억은 오로지 하나 였고, 술을 마실 때 마다 사라지지 않고 되려 떠올랐기에, 더욱 입 가까이에 술 한 방울 뭍히지 않으려고 했었다.

 

 " 뭐 자네야 안주만 먹다가 머리통 뻑뻑 하고 얻어맞곤 했으니 그거야 그렇겠군. 오늘은 그럼 뭐 먹을텐가? "

 

 " 전 채소 볶음이나 하나 주세요. 돼지비계로 고소하게 볶아서. "

 

 " 채소 볶음이면 채소 볶음이지, 돼지 비계로 고소하게 볶아? "

 

 " 그래야 맛있지 않겠습니까 ? "

 

  싸구려 하나 주문하면서 까탈스럽게 하긴 하며 장난스레 면박을 준 가게 주인이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북궁진의 눈길을 이가 반점의 입구를 향했다. 자신의 보폭과 그들의 덩치 그리고 고기를 먹던 모습을 본다면 늦어도 그가 채소 볶음을 다 먹을 때 즈음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 예상했다. 남은 것은 그들이 오기 전에 얼굴을 확인하는 일이였다. 주인과 알고는 있는 사이라지만, 놈들의 주된 활동 지역이기도 하니 그리 사람 좋게 믿을 수 만은 없었기에, 초상화를 남몰래 꾸깃 거리면서 펼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보긴 했지만 괜히 엄한 사람 가슴팍에 검을 꼽을 순 없는 일이였으니, 확인차 보자는 생각이였다.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느릿하게 꺼내들고, 펼쳐보였다. 까막 눈이 서신을 보는 것처럼 별 흥미 없는 눈초리로 스윽 훑었다.

 평범한 인상. 눈에 띄는 것은 길쭉한 눈꼬리와 그 끝에 나 있는 자그마한 상처. 그리고 화상자국이라고 따로 첨부까지 쓰여진 턱 부근의 흉터자국이였다. 실제 얼굴 보다는 한참 못한 자세함이였지만, 이 정도라면 유석인이라는 자를 알아 보기에 그리 어렵진 않을듯 싶었다. 주로 자주 입는 의복은 청색이라고 귀퉁이에 쓰여 있는 것 까지 확인 하자, 미리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이 살짝웠다. 꼼꼼히 보기만 했어도 그 추위에 떨진 않았을 텐데 하며 투덜거리면서 종이를 품 속에 도로 집어 넣은 채 탁자를 톡톡 하고 두드렸다.

 생각보다 요리와 흑사구견이 늦는다고 생각할 즈음, 고개를 갸웃거리며 둘러보던 북궁진의 눈동자와 근처 자리에서 밥을 조용히 먹고 있던 이름 모를 일꾼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슬쩍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어색함을 떨구고, 다시 음식이 나오지 않는 주방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방금 전의 눈을 마주쳤던 그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긋하게 이것 저것 먹고 있던 것 같더니, 자리를 뜬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머쓱해진 북궁진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은근하게 드는 민망한 느낌에 눈을 흘겨 반점 내부를 둘러봤다. 텅 비어 있는 내부. 방금 전까지 먹던 사람마저 사라진 객잔에선 주방에서 들려 오는 듯한 덜그럭 거리는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

 

 " 뭘 그리 쑥쓰러워 하는 건지 웬... 덩달아 찝찝하네. "

 

  도망치듯 나간 그 남자를 의식하며 아무도 없는 탁자들 사이에서 중얼거린 북궁진은 대상의 초상화나 다시 한 번 보자 하며 품 속에 손을 넣는 순간, 무언가 순간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식당 내부를 다시 한 번 눈으로 훑어 본 순간,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벌떡 일어 섰다.

 

 " 뭐야 시켜 놓고 어디 갈려고 하는거야? "

 

 그 모습에 언제 나타났는지 주인은 툴툴 거리며 입을 뾰족 내밀었고, 북궁진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답했다.

 

 " 하하. 요 탁자에 잠깐 놓으시면 뒷간 갔다가 오겠습니다. "

 

 " 도망치면 어떻게 할려고? "

 

 " 저 아시지 않습니까. 크지도 않은 동네, 고작 몇 전으로 도망자 신세가 되려구요. "

 

 여기까지 말이 나오자, 더 이상 주인도 할 말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옆 탁자의 먹다 만 손님이 놓고 간 식기를 하나 둘 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 거참.. 고기 볶음을 남겼단 말이야. 돈도 없는 양반이.. "

 

  누군가 들으라는 듯 반점 내부에서 목청을 높여 혼잣말을 하는 주인. 그 요상한 혼잣말을 듣자 더 이상 머뭇 거릴 수는 없었다. 북궁진은 조금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보통 반점에 화장실이 딸려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렇게 나올 땅값도 애매하거니와, 관리도 귀찮고 뜨내기들이 몰래 이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래서 이가 반점은 조금 구석진 골목, 한 번 꺾여 들어가야 하는 곳에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고, 자주 이용한 단골들 아니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지금 북궁진은 화장실로 가는 길은 아니였다. 화장실이 있는 곳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긴 했지만, 꺾어지기 전 갈라지는 골목이 있었고, 그 곳으로 나가게 되면 바로 탁 트인 번화가가 나왔다. 빠르게 흙과 아직은 거친 바닥을 밟는 그의 발소리 뿐이였던 골목에서 한 두개의 발자국 소리가 같이 들리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빠르군. '

 

  종종 조직력이 좋거나 영향력 있는 상대를 죽여 달라는 임무를 받곤 할 때 있었던 일였다. 평소에 그럴 때엔 훨씬 주의를 들여 미행을 하거나 척살행을 하곤 했는데, 이번 흑사구견이 사파 떨거지들 모임이라고 해서 너무 방심한 모양이였다.

 

 " 전우구가 다들 무림인들 손에 들어갈 때 까지 냅둔다고 했을 때 알아 봤어야 했는데. 제기럴.."

 

 흔치 않게 입에서 욕설을 뱉어낸 북궁진은 고개를 힐끔 젖혀 뒤 쪽을 바라봤다. 방금 전 음식을 먹다 나간 그 사내. 그리고 목장에서 봤던 흑사구견 중 한 명으로 보이는 흑색 무복의 사내였다. 워낙 어두 침침하고 정파의 따가운 시선이나 관아의 오해를 많이 받는 탓에 흑색 무복은 생각보다 입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얼굴을 몰라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 흑사구견, 아홉 중 두 명 빼고 다 검은 무복.. 그 중 하나 인가? '

 

 청색 옷의 유석인 그리고 적색 무복을 입고 있던 그 누군가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흑색 무복을 입었던 것을 상기해낸 북궁진은 발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놀리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에서 타닷으로 발소리가 변하기 시작할 때, 뒤에 따라 붙던 2명은 어느새 3명으로 변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 우광, 우철! 잡아라! "

 

  우렁찬 고함이 터져나왔고, 뛰어오는 무리를 보고 달음박질 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만 더 가면, 번화가로 나올 골목이였다. 그 틈까지만 안전하게 도달하면 될 듯 했다.

 

 " 몰아라! "

 

  눈 앞에 활로가 있는 골목을 앞에 두고 들려온 목소리. 방향이 여태껏 들려오던 뒤 쪽이 아니라, 코 앞 골목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머리 속으로 빠르게 지도를 그려봤을 때, 떠오르는 것은 막혀 있는 활로. 이 앞에 빠져 나갈 골목은 하나 뿐이였고, 들려온 외침이 몰아라 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능숙한 몰아잡기였다. 정말로 합격술이라도 펼치는 것처럼 손발이 맞아 들어가는 것이 손해가 많은 날인듯 싶었다.

 

 " 어쩐지 향아 감자 조림에, 전우구 그 새끼 오늘치 마지막 튀김이더니.."

 

 남은 길은 하나. 화장실 쪽 방향이였다. 막혀 있지만 일단 빠르게 몸을 돌려 화장실이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에이.. 거긴 뒤질 길인 걸 알면서 꼭 들어가시나... 일전객 나으리.."

 

 " 그러게 말이야.. 요새 잘 나간다고 꽤 뒷골목에서 이름표 좀 팔리더니, 눈에 뵈는 게 없으신가봐..?"

 

 양 옆 골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한층 느긋해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만 들어서는 흑사구견 전원이 온듯 싶었다. 그 의문의 객잔 손님까지 더해서 약 열 명.

 

 " 우리 석인이 형님 아닌가 또 ? "

 

 " 형님 요새 왜 이렇게 잘 나가십니까? 이 동네 해결사들 줄초상나네 그려."

 

 " 끌끌... 글쎄다. 우리 구사 연환진이 생각보다 쓸만 한가보다. 어이 형씨! "

 

  북궁진에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 앞 뒤 말을 들어보자하면 유석인 당사자 인듯 했다. 물론 틈새에 숨어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양 옆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을 통해서 오고 있는 것은 확실한 듯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울리면서 들려왔다. 건가촌 건우간이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칼로 바로 때려 잡으면서 들어갔겠지만, 북궁진의 칼은 그리 날카로운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반자 짧고 둔탁한 검. 있는 힘껏 휘두르거나 베지 않으면 먹히지도 않았다.

 

 ' 찌르기. '

 

  그 뿐만 아니라 이런 좁은 곳에서 베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에, 북궁진은 등에 매고 있던 검을 슬그머니 내려 두 손으로 잡아 들었다. 오른 손으로는 평범하게 쥐고, 왼 손을 살짝 아래로 받쳐 들었다. 손바닥이 검의 손잡이에 딱 하고 들어맞았을 때, 북궁진은 검을 꽈악하며 세게 쥐었다.

 

 ' 먹히려나. '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몸을 숙여 반쯤 접어들었다. 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그렇다고 요란하게 경고 하는 것도 초짜들이나 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였다. 소리를 내지 않으면 있을지 몰라 경계하게 되어 조심스러워 졌고, 너무 요란해지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정신이 산만해지기 마련이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말을 한 두마디면 충분했다. 진해지는 살기에 빼어들었던 검에 붙은 거친 피딱지 한 두개가 툭툭 소리내며 떨어지려 하기 시작할 때, 말소리가 상당히 가깝게 들려왔다.

 

 " 있으면 말 좀 하지? 우리가 닫힌 입 뚜껑 열기 전에? 누가 보냈는지 말만 하면 곱게 보내준다니까? "

 

  지금이였다.

 

 " 아! 아! 알겠어.. 알겠다구! "

 

  목청을 부르르 떨며 애원하듯 북궁진이 소리쳤다. 눈빛은 이미 충분히 가라앉아 금방이라도 목을 베어도 술잔을 기울일 만큼 무거웠지만, 목소리 만큼은 절박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말소리와 함께 서둘러 들려오는 빠르고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발소리. 점점 가까워져 지척에 이르렀고, 골목의 귀퉁이에 누군가의 발 끝이 보였다.

 

 "자..잠깐! "

 

 방금 전에 들려 왔던 유석인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지만, 이미 이름 모를 흑사 구견 중 한 명은 북궁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무언가 유석인이 눈치를 챘고, 북궁진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끄트머리에 뒤를 돌아보고 있는 한 남자의 목덜미가 보이자 마자, 북궁진이 거세게 쥐고 있던 칼자루가 앞으로 빠르게 튀어오르듯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찔러들어갔다.

 

 "왜 그러십니까 혀...."

 

 푸욱.

 

 아무 것도 모르는 눈초리로 뒤돌아 유석인을 바라보던 한 마리의 개의 눈동자에 핏기가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뼈가 갈리는 은근한 소리와 억지로 찢어들어가는 거친 흑검의 괴성에 좁은 골목에서 동료이자 형제나 다름 없던 한 사내의 몸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찌르자마자 쓰러지진 않았다. 찔러 들어간다기 보다 그의 목덜미를 비집고 박혀버린 흑검에 순간 그의 몸이 새우처럼 파닥거리며 움찔 거렸다.

 

 처억.

 

  뜨거운 피가 목덜미에서 울컥 하고 튀어나오면서 허공에서 번쩍 하고 나타났던 흑검이 사라지고 나서야 천천히 무너지는 이의 얼굴엔 고통보다는 찰나의 놀라움만 담겨져 있었다. 차마 다 놀라지도 못하고.

 

 털썩

 

 "우각! "

 

 " 우각아! "

 

  하나는 쓰러지는 우각을 부축하기 위해 팔을 뻗어 등과 팔뚝을 움켜쥐었고, 반대 편에서 오던 다른 이름 모를 흑사구견 역시 등을 받쳐내기 위해 두 손을 황급히 뻗으면서 다가 왔다.

 

  좁은 골목길. 뒤에서 비쳐오는 달빛 그리고 북궁진의 무거운 시야 속에 다시 한 번 한 쌍의 팔과 다른 이의 옆 머리가 잡혀 들어왔다.

 

  "야 이 시팔! 빼! 이 새.."

 

 유석인의 고함이 다시 들려왔지만, 그보다 북궁진이 한 발 빨랐다.

 

 퍼억. 서걱!

 

  이번에도 머리가 먼저였다. 우각의 머리를 부쉈던 것보다는 좀 더 빠르고 간결하게 흑사구견의 누군가의 머리. 부위를 말하자면 관자놀이를 향해 그대로 흑검이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찌르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경쾌한 칼놀림. 그리고 그대로 흑검의 극에 묻어 있던 핏방울과 드문 드문 보이는 흰 색 덩어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위 아래로 흔들리듯 꺽여 움직였다.

 

  그리고 떨어지는 하나의 손목. 붓으로 종이에 붓질을 하듯 부드럽게 그어내렸다 치켜 올린 그 검이 지나간 곳에 너무나 손 쉽게 토막이 나버린 손목이 두 어 바퀴 회전하며 떨어지고 있었다.

 

 툭

 

 " 크아아아! 시..팔! 개새끼! "

 

 손목이 떨어지고나서야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그림 같았던 칼솜씨. 흑사 구견 중 두 명의 목숨과 한 명의 무인의 심장과 같은 손목이 제 자리를 잃어버리기 까지 걸린 시간은 유석인 그가 두 마디의 말을 채 내뱉기도 전이였다.

 

  순식간에 변소로 들어가는 골목이였던 그 곳에는 피냄새가 물씬 풍겨져 나왔다. 여태 느껴졌던 찌린내와 구릿한 냄새는 어디로 갔는지, 금방이라도 토할 듯한 혈향이 자욱하게 밀려 퍼져나가고 있었다. 다시 탁 트인 좁은 골목 속에는 머리가 온전치 않은 두 구의 시선과 손목을 읽고 발버둥치는 무인의 발끝이 까딱거리고 있었다. 분명 손목을 잃은 사내의 고함은 들려오고있었지만, 북궁진은 콧 속까지 파고들어오는 혈향에 문득 과거의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피어나는 그 당시의 전율을 뒤로 하고, 다시 피를 식힌 북궁진이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 후우.. 시팔 어떤 새끼가 보냈는 지는 몰라도 제대로 보냈구만 그래 으응? "

 

 유석인의 목소리가 잔뜩 씩씩 거리며 들려왔다.

 

 " 자식들이... 눈치를 좀 보고서 해야할 거 아니냐! "

 

 따악

 

 거세게 뒤통수를 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유석인의 성난 목소리가 북궁진 그도 알아채지 못한 점을 짚었다.

 

 " 임마 벽에 비친 그림자가 낮게 엎드리고 뭔가를 들고 있는데, 왜 그냥 들어가는거야! 제기랄! "

 

  뒤에 달이 떠있어 적이 환하게 잘 보인다고 우세라고 생각했는데, 그 만큼 그의 그림자도 막혀 있던 벽에 비췄던 모양이였다. 어째서 그 스스로가 눈치채지 못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벽에 그의 그림자가 비춰져 있었다. 이로서 구석에서 오는 적을 습격한다는 계획인 둘의 목 그리고 한 명의 손목을 취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었다.

 

 " 후우.. "

 

  그제서야 숨소리를 내쉬면서 북궁진은 자리에서 일어 났다. 상대의 칼을 피하고 찌르기 위해서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니, 그의 그림자가 훤히 비춰진다면 굳히 힘든 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었다. 일어나 그림자도 같이 크게 변하자, 주춤 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만 듣고 어떻게 아는지 궁금할 수 있겠지만, 별 다른 요령이라던가 비법 따위는 아니였다. 그저 칼날 위에 오래 서서 살다보면 알게 되는 자잘한 생존 방법이였다. 요리사가 돼지 잡내를 없앨 때, 술을 조금 뿌리는 것 처럼.

 

 " 넌 뒤졌어 임마. 천 년 만년 그 좁아 터진 곳에 숨어서 살 수 있을 것 같어? 안에 불질러 버리면 너 그대로 타죽는거여? 응? "

 

  유석인이라는 자는 눈썰미에 비해 그리 달변가는 아닌지 말을 이리 저리 더듬어 가면서 말하긴 했지만, 내용은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천 년 만년이고, 오늘 밤만 지나려 해도, 싸늘해 근육이 굳게 되면 아무리 북궁진 그라고 해도, 이 흑검을 지니고 있는 이상은 그리 무쌍검처럼 휘두를 순 없었다.

 

 ' 후우 이거 이거 또 말썽이네.. '

 

  따끈한 피에 씻겨 나간 검은 피 부스러기가 사라진 검에는 맑은 광택을 내는 검신이 요요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쳐다보고 있자, 빨려 들어 버릴 것 같은 순간의 착각이 들었고, 머리를 두 어번 휘휘 저어 정신을 차리고 북궁진이 정신을 차렸을 때엔 그의 흑검은 불길한 빛을 뿜고 있었다.

 

 " 야 빨리 불쏘시개 몆 개 정도 가져와! 골목에 있는 새끼 태워죽이게! "

 

  원래 유석인 그는 꽤나 예리하고 감이 좋은 사람이였을 것이다. 그가 착하건 착하지 않건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생존 감각은 늘 주인을 배신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그도 당장 벼락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악행을 저질러도 여태 알량한 목숨 연명하며 고기를 먹으면서 살아왔으니까. 대단한 무공이나 막강한 내공은 지니지 않았어도, 작은 풀 숲에서 어깨를 들썩 거릴 정도의 힘은 있었던 것이 그 였다. 하지만 두 아우의 죽음과 다른 한 명의 부축을 받으면서 울부짖던 한 명의 절규까지 머릿 속에 맴돌아서 그런지 판단력이 흐려진 듯 했다.

 

 ' 두 명 사망, 그리고 한 명은 손목이 없고, 외침이 멀어지는 것을 봐서는 혼자서가 아니라 부축 받아 나갔다. '

 

 " 예! 형님! "

 

  타닥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듣자 하니, 한 사람은 아니라 두 셋 되어 보였다. 명백한 패착. 아홉 중 둘이 죽고 둘이 부상으로 빠지고, 적어도 둘이 나갔다면 남은 것은 셋. 유석인의 피가 차갑게 식기 전에 빨리 선수를 쳐야 했다. 흑검의 끝에 맺힌 핏방울이 채 떨어지기 전에 벽에 비친 북궁진의 그림자가 희끗 사라지며 앞으로 내달렸다.

 

  한 보, 두 보. 다시 고개 숙여 빠른 발걸음으로 피가 흥건한 바닥을 찰박찰박하고 내딛었다.

 

 처적 처적.

 

  요란하지 않은 발소리. 속도와는 다르게 크게 울려 퍼지지 않는 사뿐한 발걸음이 여간 숙련된 몸놀림이 아니였다. 풀 숲에서 구렁이 한 마리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간 북궁진의 검 끝이 묘하게 떨리며 골목을 빠져 나갔다.

 

  " 이... 으컥! "

 

  복불복이였다. 유석인이 있는 곳에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많은 수가 있다고 생각 했던 터라, 막혀 있는 반대편으로 칼 끝을 향했다. 그리고 칼 끝이 정확하게 찔러 들어 간 곳은 이름 모를 흑사 구견 중 한 명의 턱 아래. 낮은 곳에서 위로 찔러 들어가는 것이였고, 흑사 구견이 반응속도가 대단한 고수도 아니였기 때문에, 대처 할 리가 없었다. 피로 닦여 요사한 빛을 뿜는 흑검은 연약한 턱 밑으로 파고 들어 그대로 머리 속 까지 꽂혀 들어 갔다.

 

 " 푸우 쿨럭 .. "

 

  입에서 울컥 거리며 터져 나오는 핏 덩어리를 제대로 토해내기도 전에 흑검이 빠져 나왔다. 죽어가 무너져 가는 사람의 신형 뒤로 아무도 없는 듯 텅 빈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고른 것은 정답이였다. 흑검을 빼며 바로 그대로 도망가려 발을 뻗었을 때.

 

 촤악!

 

  등이 화끈하게 불에 지진듯 뜨거워졌다. 그리고 축축해져 오는 등. 아찔한 고통이 밀려오는 것을 보니 그새 등 뒤에 있던 유석인과 이름 모를 나머지 흑사 구견이 검을 휘두른 듯 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금강불괴로 몸을 굳혀 도검을 막는 다는 이야기는 극소수의 이야기였다. 하늘 아래 오롯이 서게 한다는 마의 종주 천마신공의 마교주도, 무림 역사상 최악의 혈겁을 일으킨 혈법궁의 혈교주도, 검의 극의를 깨달아 하늘을 검에 담았다는 전대 남궁세가의 천검 남궁제 그 들 모두, 결국 칼을 맞고 살 순 없었다. 하물며 낭인으로 머물고 있는 북궁진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다.

 

 " 칼을 맞았다. 잡아! "

 

  유석인의 달아오른 고함에 발소리가 지저분하게 들려왔다. 찰박거리는 핏웅덩이 소리를 뒤로 하고, 북궁진은 서둘러 골목을 빠져 나왔다. 아무도 없어 비어 있는 통로의 끝에 두 셋은 되어 보이는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 타는 장작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흑사구견 무리인 듯 싶었다.

 

 " 그 새끼다! 잡아! "

 

  뒤에서 들려온 유석인의 목소리에 앞을 막고 있는 사내들의 눈길이 잔혹하게 내려 앉았다. 한 명은 가볍게 베고 지나간다고 해도, 나머지 한 명의 칼을 완벽히 피해낼 순 없었다. 그 정도로 통로는 좁았고, 적은 완벽한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화르륵 하며 타오르는 소리가 허공을 메웠고, 눈 따갑게 타오르는 불 쏘시개 들이 북궁진의 정면으로 날아왔다.

 

 ' 베는 것 보다는 흘리듯이 '

 

  들고 있던 흑검의 검신을 살짝 눕혀 넓직하게 치켜든 북궁진은 앞으로 내밀면서 불 장작을 슬쩍 쓸어 내렸다. 어려운 일은 아니였다. 불 화살이라면 모르겠지만, 그저 불 타고 있는 장작을 털어내는 것은. 남은 한 손으로 툭 쳐서 장작을 도로 앞으로 튕겨냈다. 쓸어내린 장작은 그의 펄럭이던 검은 망토를 타고 뒤를 따르던 유석인 무리를 향해 날아갔고, 손으로 튕겨낸 장작은 도로 밖에서 길을 틀어 막고 있던 흑사구견 두 명을 향해 날아 갔다.

 

 " 앗 뜨거워! "

 

  닿지도 않았지만, 크게 데인 것처럼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나는 두 명의 흑사구견을 바라보는 북궁진의 눈이 빛났다. 기회였다. 고작 불붙은 장작 하나가 날아온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는 정도라면 가능할 듯 싶었다. 간만에 초식이라는 것을 쓰기로 마음 먹은 북궁진의 손목이 살짝 우드득 거리며 시원하게 풀렸고, 앞에 서 있는 두 명을 보는 북궁진의 입가에 작은 소리가 흘려 나왔다.

 

  [ 쌍두룡격(雙頭龍擊) ]

 

 짙은 목소리를 업고 뻗쳐나가는 흑검. 군데군데 깨어진 곳에서 요사스런 빛을 뿜어내며 부드럽게 두 갈래로 갈라진 듯 흔들린 검의 날카로운 끝이 바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뻗쳐 나갔다. 아직도 불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그 두 명이 재빠른 검격을 피할리는 없었다.

 

 파팍!

 

 순식간에 가슴팍을 들어갔다 도로 나온 흑검의 끝엔 피 한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멀쩡한 듯 얼굴에 화색이 남아 있는 두 사람. 무언가 따끔함 만을 느껴 의아해하던 그들의 표정을 무시한 채, 북궁진은 코 앞까지 달려 나갔다.

 

 " 내리쳐! 죽여! "

 

  이대로 보낸 다면 그들의 명성도, 게다가 그들의 합격진도 약해져 이 근방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기에 유석인의 입장에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일전객의 목숨으로 어떻게 비벼볼까 라고 생각하며 유석인이 소리 높여 외쳤고, 그의 말에 북궁진을 가로 막던 두 사내는 지체 없이 팔을 높이 치켜 들었다.

 

 " 빌어먹을 새끼! "

 

 욕설과 동시에 높이 들린 팔. 그리고 내리기만 하면 바로 앞까지 다가온 북궁진의 어깨나 머리통을 반토막 낼 수 있었지만, 그들의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 어 ? "

 

 " 왜..왜 이러지? "

 

 그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져 있을 때, 북궁진은 유유히 그 사이를 빠져 나갔다.

 

 " 뭐하는 거야! 이 미친 자식들아! 빨리 안 잡아? "

 

 눈에 핏발이선 유석인의 외침에 치켜들었던 검을 내리려는 순간이였다.

 

 푸슈슉! 촤아악!

 

 막혔던 수로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줄기차게 새어나오는 핏줄기. 찔린 당사자들도 그리고 뒤따르다 그 핏줄기를 맞아야 했던 유석인 무리도 표정 속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 크..어.."

 

  뒤늦게 입에서 역류하는 피를 황급히 두 손으로 막으려 허둥거렸지만 무너지는 다리와 하얗게 변해만 가는 머리 속은 명료하게 죽음을 속삭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넷을 잃어버린 유석인과 흑사구견 나머지가 황급하게 손을 쓰고 있긴 했지만, 떠나버린 목숨도, 도망가버린 북궁진도 찾아낼 순 없었다.

 

 

 

 " 허억.. 허억.."

 

  이 정도 뛰었다고 숨이 거칠어질 그는 아니였지만, 등에 차가워질 정도로 피를 흘려버린 지라, 숨이 저절로 가쁘게 뛰었다. 번화가를 뛰어 다녔지만, 사실 흑사구견 일당의 주요 거점지역이고, 등에 피 냄새도 물씬 나는데다가, 발자국을 보아하니 피가 묻어 흔적이 남아있었기에 흑사구견 일당이 다시 쫓아오는 것까지 그리 오래걸리지 않을 듯 싶었다.

 

 " 이 녀석도 문제고.."

 

  처음 보는 목조 건물 사이의 어두운 벽에 기대어 쥐고 있던 검을 슬쩍 들어 물끄러미 쳐다봤다. 원래 덮여 있어야 할 검의 표면에, 닦이고 떨어진 틈사이로 불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서 일을 마쳐야 했다.

 

 " 이 근처라고 했어! 찾아봐라! 찾으면 소리쳐서 알리고! "

 

 " 네! "

 

 흑사구견 일당의 외침이 들려왔다. 과연 일대에 영향력이 있다 싶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곧추 선 북궁진의 눈 앞에 검은 무복의 사내가 흠칫 놀란 눈동자를 하고 부들부들 서 있었다.

 

 " 쉬.."

 

 " 여깁니다! "

 

  조용히 하라고 하기도 전 외쳐버린 모습에 가볍게 한숨을 쉬고 북궁진은 흑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다 죽이고 싶진 않았지만, 수를 하나라도 줄여야 유석인까지 마무리하고 쉬러 갈 수 있었다.

 

  새카만 그림자를 남기면서 반월로 그어진 검의 한 치 끝에, 소리치던 사내의 목젖이 걸렸다.

 

  사각!

 

  그리 크지 않은 소리를 내며 검이 깔끔하게 지나갔고, 베어진 검은 손가락 하나 도 안되는 깊이였지만, 베어들어간 곳이 목이였기에 결과는 참혹했다.

 

 " 꾸르르르.. "

 

 입에서 피와 침이 뒤섞인 피거품을 물으면서 목을 붙잡고 뒷걸음 치는 흑색 무복의 사내. 뒤로 물러나 쓰러진 곳이 번화가 끝자락이였기에 이리저리 비명 소리들이 들려왔다. 빨리 처리 하지 않으면 관군이 금방이라도 몰려 올 것 같았기에, 북궁진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흑색 무복을 입고 있는 나머지 흑사 구견 무리를 향해 검을 빼어든 채 달려 들었다.

 

 " 죽어! "

 

 카앙!

 

  내리친 검의 끝이 무뎠다. 속도도 느렸다. 동작은 잡혀 있었고, 틀이 얼핏 보였지만 익힌 사람의 근육에 뿌리내리지 못한 어설픈 마무리가 눈에 띄였다. 하수였다. 다시 초식조차 쓰지 않고, 정확히 목을 노려 횡으로 그었다,

 

 " 쿠하학! "

 

  방금 전 목을 베었던 것보다 깊숙히 손을 썼다. 단숨에 무너지는 흑사구견 한 명에 눈도 주지 않으면서 펄럭거리는 망토를 메고, 다음 검은 무복의 사내를 향해 달려 갔다. 이 사람 마저 베어내면 남은 것은 청색의 유석인 그리고 붉은 옷의 이름 모를 사내 뿐이였다. 잔가지를 쳐내야 큰 나무를 다듬기 편한 법이였다.

 

  앞서 죽은 사람들 보다 하수였는지 손 하나 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려는 사내를 향해 거침 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베어 죽이면 고통 속에 몸부림 칠 테지만, 되려 급소를 단박에 부숴버리면 고통도 없이 절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이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자비. 그 수 많은 자비중 북궁진이 택한 것은 머리를 꿰뚫는 것이였다.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미간을 꿰뚫린 남자의 눈동자가 허공을 향하며 무너져 내렸다. 손도 쓰지 않은 적을 어찌 죽일 수 있느냐 하며 정파들이라면 길길이 날 뛸 일이였지만, 뒷 세계의 생태를 모르는 멍청한 소리였다. 애초에 그것이 무(武) 인지, 춤출 무 (舞)인지도 몰랐지만.

 

 남은 두 명의 흑사구견이 자신을 바라보고 거리를 벌려 놓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유석인 혼자 길길이 날뛰면서 북궁진을 향해 욕을 퍼붓고 있었지만, 다른 붉은 옷의 사내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 개새끼.. 호로새끼! "

 

  씩씩 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유석인이 붉은 옷의 사내에게 외쳤다.

 

 " 적혈쌍검! 저.. 저 녀석을 죽여주십시요. 원래 드렸던 돈에 반을 더 얹어드릴테니! "

 

 " 뭐.. 반이라면 어렵지 않지만, 재밌군 자네.. 재밌어."

 

  적혈쌍검. 북궁진도 들어본 바 있었다. 섬서 쪽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사파 낭인 중 하나 였다. 선천적으로 강한 사람이였고, 유명한 사파의 쌍검술 고수인 '비혈쌍쾌' 의 제자이기도 했다. 원래의 몸 상태라면 괜찮았지만, 흑검의 요사스런 빛이 강해지고 있었고, 등에서 흐르고 있는 피도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실이 컸다.

 

 " 흑사 구견이 아니란 말이요? "

 

 " 뭐 그렇지. 나는 그냥 돈 주면 가는 용병의 몸이야. 흑사구견 중 한 명이 전에 죽었다고 해서 그 자리를 메워주고 있을 뿐이지. 딱히 칼을 쓰지 않아도 고기가 나오니 얼마나 좋은가 ? 북경 여자도 보고 말이야. "

 

  한량 같이 느긋한 태도를 보이며 허리 춤의 쌍검에 손을 가져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북궁진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걸었다.

 

 " 우리가 굳이 싸워야 합니까 ? 고용주가 죽으면 더 이상 따르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

 

 " 뭐 그거야 그렇지만. 나도 아예 막되먹은 녀석은 아니라, 고용주가 지켜달라면 그 정도는 해주곤 하거든. 사파라고 해서 약속을 다 어기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스르릉. 스르릉.

 

 빼어든 쌍검에서 단려한 빛이 새어나왔다. 좋은 검이였고 길이 잘 들여져 있는듯 칼집에서 나올 때에 머뭇 거림이 없었다.

 

 " 아까 이상한 검법도 그렇고, 방금 세 명을 죽이는 솜씨도 그렇고.. 여간 내기가 아니구만? 자네. "

 

 풍차를 돌리듯 부드럽게 돌려가며 천천히 다가오는 발걸음. 자신감으로 가득해 있었다.

 

 " 적혈쌍검 장회 라고 하네. 뭐 자네한테 악의는 없다만, 의뢰를 받은 것도 있어서.. 내가 자네라면 일단 검을 들고 보겠네만. "

 

 " 후... 그렇다면 말입니다. "

 

 품 속의 작은 단환 몇 알을 만지작 거렸다.

 

 ' 비싼 거라 잘 쓰려 하진 않았는데... '

 

 구하기 힘든 물건이였다. 관아에 간다면 꽤 있을 법한 물건이였지만 이렇게 아무 곳에서나 굴러다니기 힘든, 가격보다는 빼내기가 어려운 물건이였다.

 

 ' 세 알. '

 

 기왕 쓰는 김에 통 크게 쓰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정해놓은 할 일도 있었거니와, 이럴 때 쓰지 않으면 언제 쓰지 라는 생각이였다. 그리고 북궁진 그가 정작 마지막으로 칼을 꽂을 상대한테는 이런 잔수가 통할리가 없었기에 비장의 한 수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 의뢰인 만 죽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 뭣? "

 

 갑자기 몸을 크게 펼치며 메고 있던 망토를 던지는 북궁진의 움직임에 적혈쌍검은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났다. 펄럭이는 거추장스런 검은 망토를 두 어번 검으로 빠르게 그어내고 앞으로 다시 도약하려는 찰나, 눈 앞에 떡 하니 나타나는 검은 단환들.

과하객 17-06-15 04:43
 
혹 못 보셨으면 시바다 렌자부로의 '네무리 교오시로'를 봐두세요. 일본식 무협물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국내에는 '바람바람바람'으로 해적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쓰신 글의 성향이 비슷하네요. 시바다 렌자부로의 글은 일본의 국민문학으로 보다 발전된 버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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