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저녀석을 추방시켜!!"
4부대의 대장인 마류한이 병사들에게 추방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병사들은 황급히 쓰러져 있는 나에게 다가와 팔짱을 껴서 데리고 나갔다.
관람석에 구경하던 관람객들이 항의를 일으켜 결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킨씨는 괜찮은거에요?"
유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령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일단 킨에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킨 그런 놈한테 지다니 한심하군."
"둔이터 뭐해!? 빨리 킨한테 가보자."
"어.. 응.."
이령이 유은과 둔이터를 데리고 킨에게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결투장 가운데 한 사람이 나타나 소리쳤다.
"결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 순간 모든 시선은 그 사람한테로 쏠렸다. 그 자를 다들 처음보는것 같았지만 몇몇 알아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은.."
"부대장님 아시는 분이세요?"
이령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큘리를 바라보았다. 큘리는 그 자에게 시선을 고정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 지냈어? 여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
결투장에 가운데 있는 그 사람은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열심히 떠드는 와중에 4부대 대장 마류한이 그 자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당신은.."
"마류한이구나. 오랜만이네."
"여기 왜 있는거지!?"
"섭섭하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말 돌리지마. 여기 왜 있냐고 물었어."
"이 대결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 왔어."
"당신이? 무슨 힘으로? 아직도 당신이 대장인줄 아는 것 같은데 이제는 아니거든..!"
"마류한 너 내가 떠난 뒤로 많이 변했구나."
"아니 난 변하지 않았어. 그저 당신이 나에 대해 잘 몰랐던거야."
대화는 점점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둘만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리고 점차 마류한과 얘기중인 의문의 남성의 정체가 밝혀지고 있었다.
"더이상 돌아가지 않으면 강제로 끌고 나갈테니 어서 나가는게 좋을거야."
"너야말로 무슨 힘으로 날 끌고 나간다는거야?"
"뭐어? 아직도 옛날 생각때문에 내가 대장이란걸 잊은것 같군. 어서 저 사람을 끌어내!"
"넵!"
옆에 있던 4부대 병사 두명이 마류한의 명령을 듣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 끌고 나갈려고 하자 갑자기 그 사람은 갑자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그 두명의 병사에게 내밀었다.
"일단 이거나 한번 보고 얘기 해."
"이딴건 필요 없고 당장 나가."
"야 이거 봐봐. 이 사람..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뭐!? 이 종이가 어쨌다고.. 헉.."
갑자기 그 종이를 본 두 병사는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두 병사의 갑자스러운 태세 전환을 본 마류한의 표정에는 당황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너네들 뭐하는거지? 어서 저 자를 끌어내란 말이야!"
"하지만 대장님 저 사람은.."
"지금 너희들의 대장이 누군지 알아? 바로 나란 말이야!"
침착하던 마류한은 갑자기 초조해졌는지 아님 화가났는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니네가 내보내지 않겠다면 내가 하지."
"괜한 병사한테 화내지 말고 너도 이 종이 좀 보지?"
마류한은 종이를 낚아채서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임명장.. 전 4부대 대장인 아크렌이 그간 보여준 공로와 실력을 인정하여 그를 총대장으로 임명한다...? 무슨 이 말도 안되는 내용을.."
"종이 밑에 도장 보이지? 왕께서 직접 임명하셨어."
"뭐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어수선한 주위는 점차 조용해졌다. 그러자 그 아크렌이라는 사람이 말을 꺼냈다.
"모두 여기를 쳐다 보고있으니 얘기하지. 내이름은 아크렌 전 4부대 대장이었으니 물론 나를 아는 사람도 있을거야. 오늘부로 왕께서 나를 총대장으로 임명하셨어. 그래서 지금 정식은 아니지만 인사를 하도록 하지."
그의 인사 몇마디에 주위는 정적이 흘렀고 그 후 갑자기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그리고 여기 온 이유는 총대장의 권한으로 결투의 결과를 수정하려고 한다. 이의 없지?"
아크렌은 심판을 향해 노려 보면서 물어보았다. 심판은 겁을 먹었는지 아무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자 그럼 수정한 결투 결과를 발표하지. 4부대의 대장인 마류한은 가호 사용금지 규칙을 어겼음으로 마류한의 승리를 반칙패로 수정하고 그 상대였던 병사 킨의 패배를 승리로 수정하겠다."
관람석에서는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고 마류한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결투장에서 나갔다.
"젠장 이런 변수가 있었을줄이야.."
나가는 도중 입구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나와 마주쳤다.
"넌 여기 다시 왜 왔지?"
"재대결.. 이대로 억울해서 못 있겠어.."
"재대결은 필요없다."
마류한은 그렇게 말한 뒤 멀리 가버렸다.
"자..잠시만! 필요없다니.."
결투장에 다친 몸을 이끌고 힘겹게 가니 엄청난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터졌고 결투장에 한 가운데 아크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킨 승리를 축하한다."
"네? 누구신데 제 이름을 알고계신거죠? 그보다 축하한다고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렇게 결투가 끝난 후 큘리와 둔이터,이령,유은 등등 동료들과 함께 숙소에 왔고 내가 다친 후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아까 4부대 대장이 재대결은 필요없다고 그랬구나. 그보다 그 총대장이라는 분은 나를 모를텐데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이유를 잘 모르겠네.."
"그래서 싫다는거야?"
내가 대결에서 이겨서 기분이 좋은 큘리가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보다 오늘 대장님이 전혀 안 보여."
"왠지 난 어딨는지 알 것 같아. 내가 가볼게."
"야!! 킨... 무턱대고 나가네.."
동료들을 두고 왕국 밖으로 나왔다. 이나가 있는 곳은 저번에 이나를 찾으러 갔었던 그 호수 일 것만 같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헉..헉.."
그 호수를 찾기 위해 무작정 뛰었다. 저번에도 갔던 곳이지만 나는 길치여서 모든 길이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젠장.. 이럴줄 알았으면 지도 가져올걸.."
결국 길을 잃어버렸고 후회를 해봤지만 이미 늦었다..
한편 4부대 대장 마류한은 결투가 끝난 뒤 집무실에 있었다. 그리고 총대장인 아크렌이 따라 왔다.
"대장님 총대장님이 문 앞에서 기다리십니다."
"가라고 해."
아크렌이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말 할 줄 알았어~"
"가라 했는데!?"
"오랜만에 보는데 너무 차갑게 굴지 말라고~"
"여긴 왜 온거야?"
"그냥 너하고 얘기 하러왔지."
마류한은 자리에 앉았고 아크렌도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전혀 안 궁금해."
"전 총대장님을 찾고 있었어. 뭐 결국 못 찾았지만.."
"고작 그거 때문에 떠난거야?"
"....."
아크렌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보다 아크렌을 따르던 마류한을 두고 아크렌은 아무 말없이 떠났었기에 지금 아무리 변명을 해봤자 마류한에게는 들리지 않을게 분명했다.
아크렌이 떠난 날은 총대장님이 사라지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였다. 당시 아크렌을 엄청 따르던 마류한에게는 엄청 큰 충격이었다.
"대장님 어디 가셨어?"
"몰라.. 집무실에도 안보이시던데.."
"정말로 떠난거야..?"
마류한은 손에 있는 편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것은 떠나기전 아크렌이 마류한에게 남기고 간 편지였다.
"대장같은거 필요 없단말이야. 돌아오라고..."
아크렌은 편지에 마류한에게 대장을 위임한다는 내용과 앞으로 4부대를 잘 맡아달라는 내용만 담아두었다. 평소에 아크렌만 바라보아 오던 마류한에게는 대장자리 같은건 전혀 기쁘지 않았다.
마류한이 아크렌과 처음 만났을때는 마류한이 입단 시험을 합격해서 4부대에 들어왔을때였다. 왕국 병사가 되었을때는 최상위급 가문이라 모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마류한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시선들은 항상 자신을 감싸고 자신을 묻어버리는 가문에만 향해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문 덕분에 좋아진 실력이라는 편견 때문에 버려진 자신의 노력, 가문을 보고 접근하려는 사람들, 가문의 뒤를 이을 도구로만 취급하는 가족, 항상 자신을 가문으로 밖에 생각 안 하는 자기자신.. 이 모든게 가문으로부터 묻혀진 자신의 인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크렌만이 자신의 가문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봐주었다. 마류한은 그런 아크렌을 따랐고 점점 달라져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류한의 모든것이었던 아크렌이 떠났고 그의 사라짐은 마류한의 모든것을 잃어버린것과 같았다. 마류한에게 남은것은 좌절 그리고 그저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가문 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제 가문은 자신 그 자체라고..
그렇게 마류한은 변했다...
"네가 떠난 이후 모든게 변했어. 네가 알던 예전의 왕국이 아니야."
마류한이 아크렌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왔잖아."
"뭐..?"
갑자기 마류한의 목소리가 떨렸다.
"미안해. 아무말없이 떠나서.. 너한테만큼은 말했어야 했는데.."
"...."
"하지만 이제 내가 이 왕국을 다시 바꿔줄게. 그때 네가 바뀌었던 것처럼.."
"이제와서..? 난 이렇게 됬는데.. 이제와서!?"
"괜찮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마류한은 아크렌의 뜻을 예전처럼 쉽게 받아들일수 없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가문을 자신이라고 믿었기에 지금 바뀐다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이제 네 마음대로 해. 이제 난 상관 없으니까."
"마류한.."
"이제 가. 더이상 할 얘기 없으니까."
"그래.. 다음 회의때 보자."
마류한은 아크렌이 집무실을 나가는 모습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마류한은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빨리 오지.. 이미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