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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반려(伴侶)
작가 : 미로
작품등록일 : 2017.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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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생 한 사람만 보는 사람
작성일 : 17-06-15     조회 : 342     추천 : 1     분량 : 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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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주 하실래요? 이인은 술을 좋아할 것 같은데.”

 

 “편견이다. 우리에게도 호불호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좋아하냐고요. 마실거냐구요.”

 

 “안 마셔. 난 술을 즐기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왜 즐거운지도 잘 모르겠고.”

 

 “음, 자기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요? 좋으면 그저 좋고, 즐거우면 그저 즐겁고.”

 

 

 찬성은 그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별은 어깨를 으쓱하며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로 걸어갔다.

 

 아직 초여름이라 그런지, 밤공기는 기분 좋게 시원했다.

 

 그 기분 좋은 시원함은, 별의 옆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함께 걷고 있는 찬성의 향기 덕분에 배가 되었다.

 

 별은 팔을 앞뒤로 크게 저으며 온 몸으로 '신남'을 표현하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찬성은 그런 어린아이같은 별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금세 도착한 별이 사는 빌라 앞.

 

 입구로 들어가려는 별과 찬성을 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붙잡아 세웠다.

 

 

 “야! 유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둠속에서 튀어나와 비틀거리며 별을 향해 걸어왔다.

 

 

 “너!! 나는 그렇게 개애 무시를 하더니!! 이 밤에 남자랑 같이 다녀?!! 역, 시이..”

 

 “네가 왜 여깄어. 뭐야, 너 술 마셨어?”

 

 “남자랑!! 이시간에!! 집엘 같이!! 어!!”

 

 

 태준은 별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는, 찬성쪽으로 몸을 돌려 2차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너!! 이 더러운...!! 너 뭐야 임마!! 뭐 하는 자식이야!!”

 

 “너 많이 취했어. 엄한 사람한테 행패부리지 말고 어서 집에 가.”

 

 

 별은 찬성에게 삿대질을 하며 다가가고 있는 태준의 팔을 잡고, 그를 찬성에게서 떼어놓으려 했다.

 

 다른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다니, 말도 안 돼. 너도 날 좋아했잖아...

 

 와락. 태준은 그런 별을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술에 절어 한껏 뜨거워진 태준의 숨이 목덜미를 타고 느껴지자, 별은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꺅, 이거 놔!”

 

 “별아아... 내가 미안해... 응? 내가 미안하다구우...”

 

 

 별은 태준의 양 어깨를 밀어내려 애썼지만, 작정하고 달려든 남성을 혼자의 힘으로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때였다.

 

 순간 별은 등 뒤에서 매서운 한기(寒氣)를 느꼈다.

 

 태준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별에게 파묻었던 고개를 슬금슬금 들어 올려 두리번거렸다.

 

 찬성의 주변을 푸른 불꽃처럼 생긴 오오라가 빙빙 감싸고 있었다.

 

 어쭙잖게 상대보다 더 강하다 하여 약자를 쉽게 다루려 하는 것.

 

 찬성이 가장 경멸하는 성향이었다. 그 자체로 찬성의 분노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는 별을 태준에게서 떼어내 옆으로 멀찍이 제쳐두고, 당장이라도 도망칠 듯한 태준의 멱살을 거세게 잡아 들어올렸다.

 

 달빛에 반사되어 은은히 빛나던 찬성의 회색 눈동자가, 맹렬한 살기(殺氣)와 함께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었다.

 

 

 “케켁..!”

 

 “찬성...! 안 돼요!”

 

 

 별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찬성을 뜯어말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찬성을 둘러싼 저 파란색 기류가, 마치 그의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별을 밀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찬성은 자신에게 멱살을 잡혀 바둥거리는 이 인간남자를 보며, 차오르는 분노를 통제하기위해 애썼다.

 

 애초에 크게 해칠 생각은 없었다. 곤란에 처한 별을 구하기 위한 것일 뿐.

 

 하지만 갑작스레 터져 나온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선, 찬성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대로 손에 힘을 주어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두어번 견뎌내고 나니, 찬성의 눈동자 색이 점차 원래의 회색으로 돌아왔다.

 

 그는 태준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털썩, 태준은 그대로 길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엎어졌다.

 

 찬성은 허리를 숙여 잔뜩 겁먹은 태준에게 내려갔다.

 

 

 “너는 오늘 나를 못본 것이다. 더 이상, 약자를 힘으로 제압하려 하지 마라.”

 

 

 그는 겁에 질려 창백해진 인간 남자의 얼굴을 이마에서부터 아래로 쓱 쓸어내렸다.

 

 찬성의 몸을 두르고 있던 파란색 오오라가 그가 쓸어내린 자리를 따라 연기처럼 흘러내렸다.

 

 

 “어...?”

 

 

 태준은 찰나의 순간 물 속으로 깊게 잠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래로... 아래로.

 

 그렇게 짧은 신음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그대로 잠에 빠져버렸다.

 

 

 “걱정 마, 잠든 것 뿐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굳어있는 별을 본 찬성이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얘... 괜찮은 거예요?”

 

 “그래. 아무 이상 없을거다. 목에 멍이 조금 들었을순 있겠군.”

 

 

 찬성은 쓰러져있는 인간의 목 부근을 멀리서 눈으로 훑었다.

 

 그는 저 멍자국을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아 그만두었다.

 

 별이 안절부절 못해 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내키지 않았다.

 

 

 “저 남자가 그렇게 걱정되나? 아무 이상 없을 거라고 했을텐데.”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자게 내버려두면 분명 감기들거고...”

 

 “나는 곤란해 보이길래 신세를 갚을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신세진 것이 늘어난 모양이군. 이렇게 걱정 하는 것을 보니.”

 

 

 찬성은 분노를 참은 것이 약간 후회됐다.

 

 

 “나는 이래서 술을 싫어한다. 술에 취한 사람은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접촉을 원하면 억지로 접촉하려 하지. 상대의 기분이 어떻든지 간에. 네 말대로 술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찬성은 평생 남 걱정만 하고 살 것만 같은 이 여자가 답답했다.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억지로 취하려 했던 남자를 흠씬 두들겨 패달라고는 못할망정.

 

 감기따위에 걸릴까봐 걱정이나 해주고 있다니.

 

 

 “신세라뇨, 그런건 아니예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저 혼자였으면 굉장히 위험했을 거예요. 고마워요.”

 

 

 태준이 진짜로 코까지 골아가며 자고 있음을 확인한 별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나를 못본거라니, 기억조작도 가능해요? 최면 같은 건가?”

 

 “힘이 온전했다면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살짝 혼란을 주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술기운이 있으니, 그 정도로 충분할테지.”

 

 “대단하네요...!”

 

 

 찬성은 별의 ‘대단하네요’가 그저 형식적인 반응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형식적인 아부를 받는 일에 익숙했다. 그리고 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별이 내뱉는 말들은 어쩐지 듣기 싫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온 별은 파출소에 전화해 집 앞에 취객이 쓰러져있노라고 신고했다.

 

 찬성은 끝까지 그 남자를 위한 행동을 하고야 마는 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찬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타성이였다.

 

 

 *****

 

 

 다음날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별의 스마트폰은 태준이 보낸 메시지들로 포화 상태였다.

 

 별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혹시 내가 어제 뭐 실수한거 있어?]

 

 [너희 집에 간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기억이 안나서...]

 

 [내가 실수한게 있다면 정말 미안해,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거든]

 

 [하지만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진심이야. 난 너랑 다시 잘해보고 싶어]

 

 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별은 그대로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나는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군.”

 

 

 별의 어깨너머로 메시지를 함께 읽은 찬성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러게요. 한동안은 창피해서 못올거예요. 그러니 이제 신경 안 쓰셔도 되요.”

 

 “그 남자의 어떤 점이 좋았던거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별의 말에도 불구하고, 찬성은 그에게 꽤나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자신에게 무례하게 대한 인간이라서? 막무가내로 구애중인 인간을 본 것이 신기해서?

 

 아니면, 싫어하는 듯 하면서도 뒤에선 그를 보호하려 했던 별의 태도 때문에?

 

 

 “글쎄요... 날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게 전부인가?”

 

 “음, 네. 내 옆에만 있을 것 같아서요.”

 

 “남자 고르는 눈이 없군. 저런 막무가내인 남자를 선택했다니.”

 

 

 피식. 저런 놈인 줄 미리 알았다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을 텐데.

 

 

 “전 그냥 나만 바라보는 사람이면 족했는데. 요즘 세상에 평생 나만 보는 사람을 만난다는 거, 불가능한 이야기더라구요.”

 

 

 별은 약 5초간 감상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런 얘기를 왜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는 거야. 그냥 대충 둘러댔으면 됐잖아.’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찬성에게 씩 웃어보였다.

 

 찬성은 자신이 굳이 불편한 질문을 했음에도 그런 찬성을 나무라기는커녕 도리어 웃음으로 분위기를 무마하려 노력하는 이 바보 같은 여자를 어쩌면 좋을지 감이 서지 않았다.

 

 

 ‘나는 많이 보았다, 평생 한 사람만 보는 사람.’

 

 

 찬성은 이 말로 별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오늘도 귀환석 찾으러 나갈 건가요?”

 

 “아니. 오늘은 좀 쉬고 싶군.”

 

 “왜요? 피곤해요?”

 

 “아니... 이곳은 너무 덥다.”

 

 

 사실 찬성이 쉬려는 이유는 그렇잖아도 회복이 더딘 기운을 어제 태준에게 (미량이었지만)사용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별은 자신 때문이라며 미안해 할 것이 분명했다.

 

 요 며칠 찬성이 본 별은, 그런 사람이었다.

 

 

 “제가 내일부터 며칠간 학교에 왔다갔다 해야 해서요. 귀환석 찾는걸 못 도와드릴지도 몰라요.”

 

 “상관없다. 혼자 찾아보면 되니까.”

 

 “혼자 다닐 수 있겠어요?”

 

 “그래. 어린아이 취급하지 마라.”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근처 지리를 잘 모를까봐 걱정한 것 뿐인데.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별의 눈썹이 팔(八)자로 기울어졌다.

 

 미안해하고 있군. 찬성은 이 여자의 바보같음이 이제 어이없기까지 했다.

 

 염치없이 남의 집에 눌러 붙은 것은 자신인데. 누가 누구 눈치를 보고 있는 건지.

 

 

 *****

 

 

 찬성이 혼자 집 밖으로 나선 첫 날.

 

 한 벌의 옷으로 지내기 불편했다며(게다가 그 옷이 정장이었으니) 옷가지 몇 벌을 바리바리 들고 들어왔다.

 

 별은 저 옷을 어디서 구한건지 매우 궁금했지만, 구태여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닐 것이 분명했으니.

 

 그 후로 며칠간 별은 성적확인과 휴학준비 등을 위해 자주 학교에 가야했고, 찬성은 별이 나갈 때 함께 집에서 나서선 밤 늦게 돌아오곤 했다.

 

 돌아온 찬성을 맞으며 “단서 좀 얻은게 있나요?” 라고 묻는 별에게, 찬성은 매번 고개를 좌우로 저을 뿐이었다.

 

 찬성이 처음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한건, 나흘째 밤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귀환석에 관련된건 아니지만 다른 옅은 기운을 찾았다.”

 

 “다른 기운이요?”

 

 

 평소 표정이 잘 없는 찬성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 이인의 기운. 아무래도 서울에 기사단의 지부가 있는 듯 하다.”

 

 

 이인계의 기사단.

 

 이인계 뿐 만 아니라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인들의 행적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였다.

 

 찬성이 느낀 기운이 기사단의 지부가 맞다면, 찬성의 귀환은 시간문제였다.

 

 그 기운이 100% 확실히 기사단의 지부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찬성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평온히 얘기를 꺼냈다.

 

 희망이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니까.

 

 하지만 이미 당사자보다 더 희망에 가득 취한 별은, 잘됐다며 찬성의 앞에서 방방거리고 있었다.

 

 찬성은 그녀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본인이 왜 더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군. 좋아해야 할건 내 쪽인데.

 

 하지만... 즐거워하니, 보기는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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