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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반려(伴侶)
작가 : 미로
작품등록일 : 2017.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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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때가 되면 떠날 사람
작성일 : 17-06-17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6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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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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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색이 멋있어서 좋은데. 세련되고.”

 

 “찬성은 그렇잖아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이잖아요. 실버가 더 나아요. 깨끗해 보이고.”

 

 “요샌 시퍼런 블루도 잘 나가는 편입니다. 색이 예쁘게 잘 나왔어요.”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기호와 이익에 기반한 주장을 펼쳤다.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남자, 그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여자, 그리고 비인기 색상의 재고를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은 판매자.

 

 일전의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연락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상호 동의했다. 그렇게 찬성의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위해 대리점을 찾은 두 사람은 스마트폰의 색을 두고 공방을 펼치고 있었다.

 

 

 “내가 사주는 건데, 내 말대로 하면 안돼요?”

 

 “내가 살 거야. 내 돈으로.”

 

 “찬성이 돈이 어디 있어요?”

 

 

 말로 대답하는 대신, 안주머니에서 꺼낸 흰색 봉투를 별에게 건네는 찬성이다. 봉투 안엔 스마트폰의 가격을 훌쩍 넘는 십수장의 지폐가 들어있었다.

 

 

 “실버로 하겠습니다.”

 

 

 찬성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이들의 기묘한 대화를 들으며, 쭈뼛쭈뼛 스마트폰 박스를 꺼내어 개봉했다.

 

 그는 남이 보는 앞에서 남자친구가 돈 없다며 무시하는 저 여자를, 참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자친구의 의견을 따라주는 이 남자를,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바보거나, 아니면 정말 엄청 좋아하거나.

 

 직원의 이런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별은, 또 한 번 츤데레스러운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이 양파 같은 남자에게

 

 

 “잘 생각했어요. 말 참 잘 듣네요, 우리 찬성.”

 

 

 하며 찬성의 등을 툭, 툭 두드렸다.

 

 

 “애 취급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말 참 안 듣는군, ...별.”

 

 

 찬성이 별을 내려다보며 받아쳤다. 차마 ‘우리 별’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겠는지, 말끝에 별의 이름을 붙이는 데에 수 초의 시간이 걸렸다.

 

 그의 표정 속에 기분이 상한 기색은 없었다. 사실, 이런 식의 칭찬도 가끔은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값을 계산하고 스마트폰을 받아 가게를 나오는 길.

 

 스마트폰의 가격 전액을 현금으로 받아든 직원은, 헤실헤실 웃으며 별과 찬성에게 흰색 비닐로 포장된 동그랗고 납작한 비타민사탕을 건넸다.

 

 별은 신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찬성은 “이거 괜찮네!”라고 극찬하며 꼭꼭 씹어서 별의 몫까지 다 먹어버렸다.

 

 두 개를 다 먹고도 살짝 모자르다는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별은 그렇게 맘에 들었으면서 ‘맛있다’라는 표현 놔두고 왜 ‘괜찮다’라는 어정쩡한 표현을 사용하는지 의아해 했다.

 

 

 “그런데 진짜, 돈은 어디서 났어요? 생각보다 금액이 너무 많던데요.”

 

 

 별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찬성이 대답을 망설였다.

 

 이를 본 별이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골똘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역시 좋지 않은 경로로 얻게 된 걸까? 주웠을까? 훔친 걸 수도? 그게 아니면...’

 

 

 그 찰나의 순간, 별의 상상력이 총동원되며 매 초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갱신했다.

 

 별의 그런 표정을 찬성이 읽어내지 못할 리 없었다. 찬성은 한숨을 작게 내쉬며

 

 

 “지니고 있던 장신구를 판 것이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를 해쳤을까 걱정하는 그런 눈빛은 거둬주었으면 좋겠군.”

 

 

 라고 말했다. 생각을 읽힌 별은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찬성 옆에 찰싹 붙어 질문공세를 재개했다.

 

 

 “장신구라면, 소중한 물건이었다던가 그런 건 아니죠? 어떤 장신구였는데요? 보석이 박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별의 질문에 찬성은 나지막이 사파이어로 장식된 백금 넥타이 핀이었음을 설명했다. 선물 받은 것이긴 하지만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좋아요. 그럼 바로 말해주면 되지 왜 말 안하려고 했어요?”

 

 “보석상이 너무 선심 쓰듯 가격을 부르길래, 수상해보여서 힘을 조금 들여 재차 물어봤었다. 정당한 가격으로 불러달라고. 이렇게 말하면 안 좋아할 것 같아서...”

 

 

 찬성의 우려대로 찬성이 보석상을 ‘위협’했다고 잘못 알아들은 별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물론, 아주 살-짝. 살짝 써서 솔직해지게 만들었을 뿐이다. 겁을 주거나 한건 아니야. 손 하나 까딱 않고 말로만. 그래.”

 

 

 찬성은 허겁지겁 말을 덧붙이며 ‘살짝’을 높은 톤으로 강조했다.

 

 

 “처음엔, 보석상이 얼마에 산다고 했었는데요?”

 

 “20만원. 그런데 내 바로 앞에 60만원짜리 사파이어 반지가 진열되어 있더군. 보석 크기가 네 눈 밑에 있는 그 점만큼 작았는데 말이지.”

 

 

 피식. 인상 가득하던 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돌아왔다.

 

 

 “잘했네요. 꼬치꼬치 물어보고 괜히 인상 쓰고 해서 미안해요.”

 

 “난 네 질문들이 좋다. 그러니 나에 대해서 더 꼬치꼬치 물어봐도 된다.”

 

 

 찬성은 허락하듯 부탁했다. 그는 그녀의 호기심으로 자신을 더 욕심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별은 묘한 표정을 한 채 얕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별과 찬성이 바다 근처에 위치한 한 민박집 안으로 들어갔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부산에 도착해 지금까지 밖을 돌아다녔던 두 사람은,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지만, 당장부터 잘 수 있을 만큼 피곤한 상태였다.

 

 민박집의 입구 유리문에서 쨔릉쨔릉하는 차임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입구 바로 옆방에 있던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아유 어서와요.”

 

 “안녕하세요, 빈 방 있죠?”

 

 “있지, 있지. 그런데 어쩌나 방이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괜찮지?”

 

 

 주인아줌마는 광대를 바짝 올린채로 별과 찬성을 번갈아가며 훑어보며 말했다.

 

 아무도 방 두 개 있냐고 물어보지 않았는데 말이지. 방이 없다기엔 민박집 안은 너무 조용하고.

 

 ‘빈 방이 없다’는 핑계로 남녀를 한 방에 밀어 넣어주는 민박집 주인들의 선심 내지는 그들만의 오래된 인지상정이 아직까지도 상용되고 있는 듯 했다.

 

 원래도 방 하나를 빌리려 했던 별은, 찬성과 ‘한 방’을 써야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의식되어 선뜻 괜찮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뒤에서 불쑥,

 

 

 “괜찮습니다. 남은 방이라도 주시겠습니까.”

 

 

 찬성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선수를 쳤다.

 

 

 “어머, 잘생긴 청년이 성격도 화끈하네. 호홍홍.”

 

 

 주인은 괜히 자신이 얼굴을 붉히며 두 사람에게 방 열쇠와 일회용품 키트를 건넸다.

 

 별은 열쇠에 쓰여진 109호를 찾아 들어가며, 뒤에서 들리는 ‘좋을때네, 부럽다앙’하는 주인의 중얼거림을 애써 모른 척 했다.

 

 방에 들어온 별은 방 안에 놓여있던 작은 테이블 위에 일회용 키트의 내용물을 와르르 쏟아냈다. 그리고는 그 중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내어 집어 들었다.

 

 

 “먼저 씻을게요, 쉬고 계세요.”

 

 

 별은 널려있는 일회용 여행용품들이 신기한 듯 뒤적거리고 있는 찬성에게 그렇게 말한 후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은 작았다. 욕조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따뜻한 물은 잘 나왔다.

 

 별은 샤워기를 최대수압으로 틀어놓은 채 샤워기 앞에 섰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그녀의 곡선을 따라 착 가라앉았다.

 

 

 ‘아까 그 주인아줌마에게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나.’

 

 

 온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온수에 나른해진 별은 오늘 하루를 회상했다.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의 과한 친절이, 별을 괜히 감성적이 되게끔 만들었다.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닌데. 아닌 것 맞나?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손은, 때론 장난스럽게 때론 진지하게 말을 걸어오던 그 목소리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그 눈동자는, 뜨겁게 전해지던 그 심장박동은, 무슨 의미였을까.

 

 애당초부터 의미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난 지금 나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마음은? 난? 나는 그 착각이, 착각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는 걸까?

 

 난, 그 사람이 날 특별하게 여겨줬으면 싶은 걸까?

 

 그 사람은, 내게, 특별해진건가?

 

 별은 샤워를 마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머릿속을 돌고 도는 그 물음들에 답을 내지 못했다. 애초부터 별 혼자서는 답을 낼 수 없는 물음들이었다.

 

 그리고 만약 혼자 답을 냈다고 해도, 별은 이를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찬성은 때가 되면 떠날 사람이니까.

 

 별은 버려지는 것엔 익숙했지만, 익숙하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별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톡톡 말리며 욕실에서 방으로 나왔다.

 

 찬성은 별이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에 서있던 그 테이블 옆에 그대로 서서, 무언가를 꼼지락꼼지락 만지고 있었다.

 

 

 “찬성, 뭐해요?”

 

 “무언가를 잘못 뜯었는데, 미끌거려서. 닦을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별은 물비누 같은 것을 손에 흘렸겠거니 하고 찬성에게 다가갔다.

 

 

 “봐 봐요. 뭘 흘렸길ㄹ...으익!”

 

 

 찬성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 별이 요상한 소리를 내며 그의 손을 옆으로 밀어버렸다. 그 반동으로 그에게 들려있던 기다랗고 미끌미끌한 고무풍선이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별의 반응에 더 놀란 찬성이 별에게 밀쳐진 그 자세 그대로 정지한 채 섰다. 그는 떨어진 저 것을 주워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했다.

 

 주워서 버리기라도 해야 할텐데. 하지만 별이 만지지 말라며 또 소리를 지르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저걸... 왜 뜯었어요?”

 

 

 별이 상상도 못한 상황전개에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른 후 찬성에게 물었다.

 

 

 “...아까 먹었던 사탕이랑 똑같이 생겨서 뜯었는데, 그 사탕이 아니더군.”

 

 “사, 사탕이요? 아까 그 비타민? 그건 줄 알고 뜯은 거예요?”

 

 

 찬성이 세상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별은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계산이 서지를 않았다.

 

 

 ‘저게 뭔지 모르고 뜯었다는 건가? 그래, 전철도 몰랐었으니까... 모르는 게 이상한건 아니지. 오히려 알고 뜯었으면 나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인거잖아. 표정을 보니까 정말 모르는거 같긴 한데. 그럼 나 되게 오버한 거잖아. 뭐라고 하고 넘겨야하지?’

 

 

 한참을 머리를 굴리던 별은, 결국 굉장히 어색한 표정과 말투로

 

 

 “어서, 씻어요. 미끌미끌 거리겠네. 아니 피곤하겠네. 쉬어야죠.”

 

 

 하고 찬성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말을 툭 던졌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바닥에 떨어진 고무풍선을 주워다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장롱을 열어 낑낑대며 이불을 꺼내는 척 하는 별을 뒤로하고 찬성은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차있었다. 김 서린 거울엔 별이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특정 부분만 손으로 슥슥 닦아놓은 듯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찬성에겐 쇄골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낮은 자리였다.

 

 욕실 안을 가득 채운 수증기에서 방금 전 별에게서 맡았던 과일샴푸향이 돌았다.

 

 순간적으로 찬성의 뇌리에 머리에 보글보글한 거품을 가득 얹은 채 샤워를 하고 있는 별의 뒷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현상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미친놈...’

 

 

 찬성은 별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본능은 상상속의 그녀에게 “내 쪽을 돌아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더욱 찬성을 자책하게 만들었다.

 

 찬성은 정말로 자신이 들고 있던 고무풍선 같은 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지 못했다. 별의 반응을 보기 전 까지는.

 

 풍선의 기다란 모양새와 민망해하는 별의 태도로 보아 찬성은 풍선의 쓰임새를 어렴풋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짐작은 자신이 별에게 큰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별에게 사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찬성의 시름과 함께 밤이 깊어졌다.

 

 약 10분 후 찬성이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방의 중앙엔 이불이 한 채 덩그러니 깔려 있었다.

 

 이불 안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별이, 밖으로 나온 찬성을 발견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이불도 한 채밖에 안 남았데요. 계속 달라고 부탁하고 짜증까지 냈는데 ‘홍홍’하면서 웃기나 하고. 나만 이상한사람 만들고... 맘에 정말 안 드는 아줌마예요.”

 

 

 라고 하며 툴툴거렸다.

 

 찬성은 자신이 다시 부탁해보겠다고 하고 방을 나섰지만,

 

 

 “젊은 총각이 실망스럽게 왜이래? 정말 남는 이불이 없다니깐~ 그런데 총각 증말 잘생겼네, 모델인감? 여튼 잘 해봐요~ 홍홍”

 

 

 이란 말만 듣고는 수확 없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결국 두 사람은 불을 끄고 한 이불을 반으로 나눠 딱 붙어 누웠다. 몸이 닿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칫 잘못 뒤척였다가는 바로 서로 포개질만한 가까운 거리였다.

 

 주택가 안에 있는 민박집이어서 그런지, 주변은 굉장히 조용했다.

 

 오직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방 안을 메웠다.

 

 별은 평소에 왼쪽으로 돌아눕지 않으면 잠에 잘 들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왼쪽에 찬성이 누워있어 쉽사리 돌아누울 수가 없었다.

 

 2-3분간 천장을 보고 누워있던 별은, 찬성이 없는 쪽인 오른쪽으로 몸을 슬며시 돌려 누웠다. 하지만 그 자세로도 잠을 설치긴 마찬가지였다.

 

 피곤함에 짜증이 몰려왔지만, 자리를 잘못 잡은 자신의 탓이라 달리 원망을 돌릴 곳도 없었다.

 

 결국 별은 몸을 180도 돌려 (3번에 걸쳐 슬금슬금 돌려야만 했다)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바로 코앞에 찬성이 있다는 것을 눈을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찬성의 향기가 난다.

 

 

 “잠이 잘 안 오는 건가.”

 

 

 별의 뒤척임을 느낀 찬성이 작게 물어왔다.

 

 

 “네, 이젠 금방 잠들거예요.”

 

 “그래. 걱정 말고 자라, 건드리지 않을테니.”

 

 “그런 걱정은 안 해요.”

 

 

 별이 소곤거리며 대답하자, 찬성이 별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누웠다.

 

 

 “왜 걱정을 안 한다는 거지. 남자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누워있는데, 그런 걱정도 없이 잔다는 건 너무 안일한 것 아닌가.”

 

 

 찬성의 시선이 느껴진 탓인지 별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그 여자를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다.

 

 앞으로 살짝 내려와 그녀의 콧잔등과 입술 근처를 가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들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살짝 감긴 눈, 어둠속에서 홀로 오물거리고 있는 그녀의 작은 입술까지.

 

 

 “제가 걱정을 해야 하는지 마는지는, 제가 아니라 찬성이 알겠죠. 지금부터라도 걱정을 해야 할까요? 찬성을 상대로?”

 

 

 찬성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소리가 너무 컸던 탓에, 별이 덩달아 긴장이 될 정도였다.

 

 

 “만약, 내가 걱정해야한다고 하면...”

 

 

 찬성이 왼 손을 들어 별의 촉촉하게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별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이 사라지자, 그녀의 눈 코 입 얼굴 전체가 찬성의 시야에 들어왔다.

 

 찬성의 손길을 느낀 별이 살며시 눈을 떴다.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의 청회색 눈동자만이 어둠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젠 내가 널 건드리고 싶어졌다고, 그래서 조금은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한테서 도망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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