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 횟집 국화 룸.
난 병원 앞에서 가장 맛있기로 소문 난 신선 횟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회인지, 회를 가장한 비닐조각인지 헷갈릴 정도로 불편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조용히 내가 알지 못하는 의학 용어를 남발하며 그간에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져서 자리만 옮겨진 회의실에서 있는 느낌이 1차적으로 들었다.
이 다음으로는 뭘 좀 먹어보려고 하는 순간, 태클 박 원장님의 말씀에 부드럽고 쫄깃한 광어회가 고무튜브처럼 느껴져 버렸다.
체한 것은 당연한 결과.
“커-컥-! 예?”
“그동안 날 피해 다닌 것은 아니었겠지요?”
“그, 그럴 리가요. 제가 왜 병원장님을 피해 다니나요.”
나는 차마 제대로 거짓말을 완수 할 자신이 없어져 슬쩍 눈을 옆으로 흘겼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재밌는 듯 쳐다보는 그.
나는 정말로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워보였다.
‘하…….이럴 때 남자가 좀 좋게, 좋게 말이라도 거들어주면 어디 덧나나?’
그는 열심히 병원장의 술잔에 그득하게 술을 부어주고 있었고 나는 진땀을 흘리며 병원장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시간.
병원장은 내가 숨 쉴 겨를도 없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예? 저는 그동안…….열심히, 일 했죠.”
“무슨 일을?”
“그러니까.”
‘가만. 그러고 보니 열심히 이 남자를 피해 다니느라고 실질적으로 사회복지 업무는 거의 등한시하다시피 했고, 이걸 그대로 말하자니 상사 앞이라 제대로 밉보일 게 분명해. 그렇다고 거짓말을 말하자니 이 능구렁이 변태영감이 이미 사실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하지?’
나는 그예 울상이 되어 쩔쩔매고 있었다.
“혹시, 나 몰래 땡땡이 쳐서 애인이라도 만나고 다닌 건 아니고?”
“아뇨~ 원장님. 제가 그럴 리가요.”
“정말?”
“그럼요. 제가 어떻게 신성한 병원에서 땡땡이를…….어~후 저, 그런 거 못합니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기 신공.
“그래도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앞으로 결혼 할 때를 대비해서 애인을 좀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땡땡이를 치지 않고 얌전히 일만 했다고 말하니 이번엔 남의 사생활에 대해서 잔소리 폭격을 가하는 병원장.
‘이거, 어째…….잔소리가 늘어지고 오래 걸릴 각인데.’
“지금 황휘 양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던가? 여덟 살이던가?”
“스물아홉입니다.”
“호~ 그렇게나 먹었단 말인가?”
“그…….네.”
“이거, 큰일이군. 서른이면 이미 꺾어지고 시든 꽃이 아닌가. 큰일이야. 큰일. 애인 만날 여건이 안 된다면 내가 주선 해 줄 수도 있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병원장’이라 입을 쉽게 뗄 수도 없었다.
‘우라질. 젠장. 왜 내가 이런 엿 같은 소릴 듣고 있어야 하는 거냐고~ 아까 전부터 왜~~에~!’
“인연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연애도 하고 그렇게 되겠죠. 하하.”
“그럼 아직 인연이 안 나타났단 말인가? 그것도 참, 큰일이구먼.”
에둘러서 말했음에도 병원장의 말은 여전히 끝나지 않을 도돌이표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언제 끝나지?’
이 와중에도 이 인간은 태연하게 술만 ‘조르륵-’따르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어떻게 좀 해 봐요.
그러나 이렇게 눈치를 주는 내 입모양과 시선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의뭉스러운 웃음만 실실 흘리며 자세하나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었다.
좋아서 쫓아다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이렇게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남자.
이 남잘 어쩌면 좋지?
“저기요.”
“응?”
내가 그의 등을 슬쩍 찌르며 말을 걸었지만 그는 한마디 의성어를 내뱉고 또 어딘가 딴 곳에 집중하는 태도를 연발했다.
아, 쫌! 나를 보라고!
나는 정말 짜증이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그러다 이 남자가 이러는 것이 그를 자꾸 피하려 애쓰는 내게 보복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져갔다.
‘쪼잔 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불쾌함과 막막함으로 쩔쩔매다가 결국 체기로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을 무렵,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병원장님이 왜 이래요?”
“뭐가 말이죠?”
“병원장님이…….병원장님이…….”
“응?”
‘떡 실신 하셨잖아요!’
나는 휘둥그레 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고 그는 여전히 빙글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택시에 병원장님을 그야말로 매다 꽂듯이 우겨넣은 뒤에야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한 숨 놓겠네. 가죠!”
“예?”
“가자니까요. 뒷정리도 끝났으니까. 이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죠.”
“…….”
“어서요?!”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