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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번뇌에 사로잡혀 있다.
“좋은 아침.”
“…….”
“왜 그래?”
“아, 아니에요.”
‘브이넥 티셔츠.’
그가 씩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지만 난 그와 마주 웃을 수 없다.
전날 밤 블러드 메리를 마시며 갈망하는 눈으로 쳐다봤던 그의 목선을 드러내 놓고 있는 티셔츠에 진즉부터 홀려 버린 탓이기도 했지만 그가 내 거절에 복수하는 방법으로 이전보다 한층 유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숙취 때문인가? 눈이 많이 부어 보이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잠을 못자서 그래요.”
‘당신 때문에 눈이 판다가 됐다고.’
나는 원망스레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브이넥 티셔츠를 의도적으로 끌어내리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내려떴다.
‘뭐하자는 거야? 작정 하고 유혹하는 거야?’
그의 턱선 에서부터 딱 떨어지는 실핏줄 하나, 하나가 다 보인다. 이번에 병원의 전구를 모두 바꾸기라도 한 건지 오늘따라 유난히 흰 그의 피부에 푸른 핏줄이 도드라져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써 보아도 쉬이 고개가 돌려지지 않았다.
“저, 이만 갈게요.”
나는 뻣뻣한 걸음을 걸으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지만 그는 내가 다시 그를 쳐다볼 것을 안다는 듯 자신만만한 얼굴로 내 뒤통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그런 시선을 너무나 확연히 느낄 수 있었기에 태연한 척 해 봐도 완벽하게 태연할 수 없었다.
“얼었네.”
“아니거든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뒤에 서서 고개만 숙인 채 속삭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자연스럽게 보면 될 걸. 뭐 그렇게 내외하듯 행동하지?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바빠서 그렇거든요?”
“거짓말.”
“진짜라고요!”
그는 못 믿는다는 듯 내 귀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 휘돌다 귓불을 슬쩍 잡아당겼다.
“아야!”
“긴장한 게 다 느껴지는데 또 거짓말이지?”
“아, 아니에요. 그리고 이거 좀 놓으시죠? 제 나이가 몇인데.....애한테 그러는 것 같이 귀를 잡아요. 잡기를?”
“사귈 거야. 말 거야?”
그가 심술궂게 묻는다.
“안 사귈 거예요!”
나는 당연하게 단호한 대답을 내놓았고 그는 또다시
“아앗!!”
“이래도?”
귀를 좀 더 강하게 잡고 나를 끌어당겼다.
“아야, 얏!!”
“가자!”
“예?”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고 자꾸 달아나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기가 허한 것 같다.”
“예~에?”
“오빠가 보약 지어줄게.”
“뭐요?!”
이 남자. 이러고 있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어제의 여파로 그의 사냥 본능이 깨어난 듯 평상시의 10배는 더 될 것 같은 전투게이지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가련한 양이 되어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보약은…….왜, 왜요?”
“왜긴.”
그의 눈썹이 익살스럽게 꿈틀거리며 입술이 유혹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의 소리 없는 입술에서 그의 대답을 듣고 말았다.
한약 먹여서 잡아먹으려고 그러지. 토실토실하게 살찌워서!
***
열심히 글 쓰는 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