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들과 오랜만에 돼지껍질에 소주 한잔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친구 현화의 지적이 시작 되었다.
“야! 당연히 그런 남자는 허들이 높지. 왠지 알아? 일단 혈관 튼튼한 남자가 몸이 안 좋을 수는 없다고 봐야지. 건강한 혈관이 뚱뚱하거나 삐쩍 곯아빠진 약골들에게 있는지 아니? 그건 적당히 체격이 있는 남자에게만 탑재 된 보너스 같은 거라고.”
그 옆에 앉아서 현화의 말을 경청하던 해유도 격렬히 공감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 신이 나 있다.
“맞아. 너 말이야. 어찌 보면 되게 양심 없는 말을 뱉은 것 같다는 생각 안 드니?”
“아니. 안 드는데? 내가 왜 양심 없는 년 소릴 들어야 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두 친구 모두 나를 황당하다는 듯 흘겨보며 번갈아 조곤조곤 설명한다.
“튼튼한 혈관? 개뿔도 없는 인간이 튼튼한 혈관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애초부터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일단 몸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재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어야 그런 몸을 만들 여력도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게다가 그런 남자들은 얼굴도 잘났다? 너무 근사한거지. 몸이 근사하니, 평범한 얼굴이어도 매력이 줄줄 흘러넘치는 얼굴처럼 보이는 건 너무도 당연한 건데, 이런 남자들이 평범한 남자일 리는 더더욱 없거든. 이미 1세대, 2세대 재벌이나 준 재벌 급 남자들이 종자 개량을 마쳤으니, 얼마나 우월한 종자들만 남았겠어? 1세대. 2세대 쭈구리들은 멸종한 지 오래라고.”
“그런 남자들이 패션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은?”
“희박하지.”
“그런 남자들이 말귀 잘 알아먹는 머슴 타입일 확률은?”
“더더욱 희박하지.”
“돈 많아. 몸 좋아. 잘생기고 우월한 두뇌까지 갖췄을 게 분명한 그놈의 혈관 미남 씨가 너같은 변녀 기질 투철한 여자를 좋아할 확률은?”
“굉장히 무리일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런 것이지.”
친구들의 신랄한 지적에 술맛이 뚝 떨어진다.
‘이런 것들도 친구라고.’
“아, 몰라. 나간다!”
“어? 고기 먹다 말고 어디 가!”
“남자 낚으러 간다. 왜!”
괜히 성질 한 번 부려보고 나가는데 두 친구들이 기어이 신랄한 독설을 날린다.
“무리 하지 마라. 차라리 그냥 얼굴이나 몸 좋은 남자를 찾아.”
“맞아. 아니면 나처럼 돈 많은 남잘 찾거나. 돈 많은 남잔 다른 부분에서도 꽤 참아줄 만하다니까?”
열 좀 식히려고 했더니 열을 더 받게 만드는 친구들. 내보기엔 니들이 나한테 무리인 것 같다.
나가려다가 돌아서서 친구들을 노려보니 저들도 좀 심했다고 느끼는 듯 ‘찔끔’ 놀라는 기색이다.
‘그렇다고 내가 봐줄 줄 알고?’
“내가 취향인 남자 좀 찾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아니꼽니? 아무리 내가 비현실적인 이상형을 찾고 있어도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너무 하잖아. 난 어지간하면 같이 웃고 떠들며 실없는 소리도 실속 있는 소린 것처럼 도란도란 얘기 나눌 친구를 원했던 건데. 너무 하잖아.”
“그건 네가 너무 현실감각이 없어서······.”
현화의 말이 맞다 해도 인정 하고 싶진 않다. 여기서 내가 져버리는데 어떻게 마음에 꼭 맞는 남자를 만난단 말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사귀기만 하든, 결혼을 하든, 일단 서로가 맘에 들어야 되는 거 아냐?”
“맘에 들면 되지?”
“서로가 동시에 반한다는 게 가능하긴 해?”
“양쪽이 원하는 조건이 맞으면 가능 하겠지.”
징그러운 것들. 처음에도 그러더니 두 번째에서도 앵무새처럼 둘이 똑같은 말을 한다.
“그럼······.취향이나 성격은?”
“그것도 조건 중에 하나니까.”
“날 변녀로 생각 안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아마도 드물겠지만 없진 않겠지. 세상에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표정 썩으면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독설을 듣는 동안 나 또한 그런 조건을 다 갖춘 남자를 찾는 건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하나만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혈관 미남.
‘팔뚝은 절대 양보 할 수 없어!’
친구들의 독설은 오히려 전투게이지만 상승 시킬 뿐이다.
“내가 오늘부터 혈관 미남 찾는다.”
“부디 찾기를 바란다.”
“나 찾으러 간다. 진짜 찾는다?”
“응. 그러라니까?”
‘씨······. 말 잘 듣고 혈관 미남인 똘똘한 머슴 어디 없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