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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간 환자들만 주구장창 쳐다보고 있느라 기운이 빨리는 느낌이었다.
기가 왕창 빠진 몸에 생기를 부여하려면 외부에서 정상적인 몸 상태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라도 해야 기운이 날 수 있는데, 근래 들어선 병원과 협력 하려는 해외 병원 관계자들도 많이 들러서 시간을 낼 여유가 없었다.
병원장의 지시로 난 병원 안내를 맡는 직원으로 차출 되어 일주일간 일본, 중국, 독일 등의 다국적 관계자들과 환자. 직원들하고만 부대끼느라 기를 충전할 기회도 없었다.
외국어를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나게 병원을 설명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결론적으로 이 일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 없게 된 상황이었다.
(이직이라곤 했지만 사실상 그 중엔 퇴사가 더 많았다.)
얼마 못 가서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들이 겹쳐서 생체 리듬은 완전히 깨어져 버렸다.
자연스레 볼거리에 걸린 것처럼 얼굴부터 땡땡 부은 내 몸은 어지럽고 여기저기 근육통이 일어나며 체하는 등의 반응으로 위험신호를 보내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예약 첫날.
[휴진]
‘휴진이라니. 누구 맘대로 휴진이야!! 내가 평일에 시간 빼기가 얼마나 어려운 사람인데~~에~~’
초기엔 그러려니 하고 다시 시간을 빼야지 마음먹었다. 사실 누구라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 둘 순 있을 거라 여겼다.
둘째 날은 ‘일신상의 이유로 휴진을 무한 연기합니다.’ 라고 했다가 세 번째 날로부터 일주일간은 아예 휴진 통보도 없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
뻔히 바쁜 거 알면서 휴진을 이렇게 길게 잡는 건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황당한 일이었다.
결국 한 달이 다 되도록 뚜렷한 이유도 없이 휴진을 무기한 연기해 놓고 있던 한방외과 덕분에 볼거리마냥 띵띵 부은 내 몸은 도저히 돌아올 줄 모르고 나날이 더 부어가기 시작했다.
평상시엔 병원에서 가급적 우아하고 상냥한 아가씨를 연기하려 애써 왔으나 살찐 복어처럼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에 기분이 상한 이후로는 계속해서 주름이 펴질 날 없이 구겨져 있었다.
“살찐 복어 같다고?”
짜증이 났다. 기운도 없고 일엔 치인다. 여전히 주 단위로 내빈객이 오는 탓에 주 단위로 그들을 접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그들이 알게 모르게 내 첫인상을 복어에 대입해서 인식해버릴 것을 떠올리면 부아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는 갸름하다 못해 신경질적인 인상이란 평을 듣기 일쑤였으나 지금은 친근하고 귀엽기까지 하다는 말을 들었다.
몇몇 이들에게서는 이 모습이 도리어 사회복지사의 얼굴답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내게는 달갑지 않은 말이다.
예쁘다는 말도 아니고 복어 같이 퉁퉁 부어서 친근해 보인다는 비웃음이 좋은 여자는 없지 않은가.
“기분 나빠.”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휴진을 언제까지 할 건지, 뭐 때문에 휴진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환자는 무한정 기다리느라 치료를 받지 못한다.
얼굴이나 몸도 더 나빠졌음 나빠졌지 좋아질 일이 없으니 하루 종일 우중충한 얼굴로 돌아다녀서 내보기에도 정말 당장이라도 볼을 터트리고 죽어버릴 졸복 같은 인상이다.
‘화난다. 화나.’
한 달 내리 쌓인 화기는 도무지 참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저만 바빠? 저만 사정 있어? 자기가 한방 외과 과장이면 다야? 내가 사회복지사라서 제 아래라고 보는 거야, 뭐야? 내가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이 병원 모기업 주주라 이거야!”
한달하고도 이틀이 지나서 나는 바쁜 일을 올스톱 시켜놓고 말 그대로 한방 과장 실을 향해 돌진했다.
잠겨 있다면 다음 타깃으로는 병원장 실이라는 마음가짐이었다.
일하던 도중에 다니기 편하고 주변 병원 어디를 돌아도 이 곳 한방과 만큼 내 몸에 잘 맞는 약을 찾을 수 없어서 다녔을 뿐인데, 이런 식으로 환자를 홀대하니 부아가 치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나는 병원답지 않게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복도를 지나갔다.
몇 번인가는 험하게 일그러진 내 표정에 ‘흠칫’놀라며 지나쳐 가는 직원들의 얼굴을 무심하게 흘겨보면서 걸었다.
쓸데없이 좁고 복잡하게 이어진 복도와 원무과를 지나 과장실 문을 열었을 때까진 이유도 알수 없이 무한정 예약 환자인 날 기다리게 만든 담당 과장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당황한 듯 홉뜬 눈을 하고 내게 달려오던 간호사의 팔도 저지한 채 과장실로 돌진 했던 것인데······.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지? 그것도 의사 가운을 입고.’
그곳엔 상상조차 못했던 인물이 있었다.
아니, 다른 상상으로는 간간히 그를 떠올렸지만 그가 이런 병원에 있을 것이라고는 절대 상상조차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이 남자가 여기 있다니. 그것도 샛노란 머리에 가까웠던 곱슬머리를 검은 색으로 염색하고, 짧게 자른 모습으로?
“혹시, 이거······.꿈인가?”
“황 휘 씨?”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앉으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어······.예······.”
그 남자다. 헌혈원에서 먹성 좋게 초코파이 한 박스 가까이 먹어 치웠던 남자. 팔뚝 한 쪽에 시퍼런 멍이 들어서는 헌혈원 직원이 무능력하다고 구시렁거리던 남자. 실컷 징징거려놓고는 마지막에 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허세를 부리던 그 남자.
[한방외과 과장 남구덕]
‘담당 과장이 바뀐 거구나.’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유를 알려주지 못할 어떤 사정으로 그동안 일해 왔던 한방과장이 병원을 그만뒀고, 그 자리에 이 남자가 앉아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나저나 이 남자. 검은 머리로 바뀌긴 했지만 의사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보이고 의사가 연상 되지 않을 외모다.
내가 여태껏 보아 온 담당과장님들은 배불뚝이에 후덕한 인상의 선생님이거나, 짜리몽땅한 키와 영심이 만화속 안경태 실사판인 얼굴을 한 분이 많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부분 신경질적인 인상의 깡마른 사람들이 담당의사들의 전부라고 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이런 병원에서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마치 모델 출신의 배우가
의사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어 보이지 않나.
“황휘 씨?”
“······.”
“황휘 씨. 많이 아프세요.”
“······네. 네?”
멍하니 있다가 봉변이라도 당한 듯 화들짝 놀라 대답하니 남자의 미소가 작게 비어져 나왔다가 점점 더 얼굴 전체로 번져간다. 얼마 못 가 그의 얼굴은 기쁜 듯 화사한 미소를 그렸다.
“여기서 또 보네요? 황휘 씨.”
낮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등줄기로 소름이 쫘-악- 끼친다.
‘이게 대체······.당황해서 소름이 돋은 거야. 좋아서 소름이 돋은 거야?’
“하······.하······.하······.네. 그러네요. 과장님.”
“구덕 씨라고 불러도 되는데.”
일순 남자는 탁상 위에 턱을 괴고 눈을 맞춰 왔다.
‘어어. 이러지 마시죠? 저 지금 환자로 여기 온 건데······.그렇게 눈을 맞추시면······.너무 감사하잖아요.’
나는 반쯤 설레는 기분으로 남자를 흘끔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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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같지만 남자의 손등과 팔뚝에 보이는 실핏줄은 정말 너무나 멋진 것 같습니다.
ㅠㅠ
울뚝 불뚝 튀어나오는 팔뚝의 실핏줄이 팔딱 팔딱 뛸 때의 그 생동감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