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제일보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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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화
작성일 : 16-07-21     조회 : 741     추천 : 0     분량 : 8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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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자루의 박도(撲刀)를 잘 써서 제법 인정을 받고 있는 장가구(張可九)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가 버럭 노성(怒聲)을 지르고는 곁에 세워두고 있던 박도를 쥐고 벌떡 일어섰다.

 의자를 걷어차고 한 번 훌쩍 뛰자 그의 큰 몸집이 새처럼 가볍게 탁자를 건너뛰어서 단번에 양사명의 면전으로 쇄도해 들었다.

 귀역에 모여 있는 자들이 아무리 흉악하다고 해도 모두가 목적없이 살인을 하는 살귀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에 비로소 인정사정없이 칼을 휘둘러 상대의 목을 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와 조건이라는 것이 대게는 돈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자에게 자신의 솜씨를 빌려주고 그 대가를 받아 살아가는 무사들인 것이다.

 조건만 맞는다면 그곳이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제 목숨을 담보 삼아서 살아가는 자들일수록 쓸데없는 일에 흥분하여 칼을 뽑아 드는 경우란 없었다.

 그것은 능숙한 장사꾼이 아무 곳에서나 좌판을 펼치지 않고, 도박꾼이 함부로 자신의 주사위를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 장가구는 낯선 청년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도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여 그의 애병(愛兵)을 휘두르고 있었다.

 조금 전 백의검대와 하도욱으로부터 받았던 모멸감 때문이었고, 진사후라는 거물 앞에서 잔뜩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자괴감 때문이었다.

 씨이잉―

 미처 말릴 새도 없었다. 앗! 하고 놀랐을 때는 장가구의 박도가 이미 시퍼런 귀광(鬼光)을 뿌리며 양사명의 정수리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모두의 눈이 성급하게 낯선 청년의 최후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 양사명은 정수리가 두 쪽으로 쩍 벌어진 채 모로 쓰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태연하게 서 있던 양사명이 한 발을 번쩍 들어 앞에 있던 의자를 힘껏 걷어찼던 것이다.

 그것이 자로 잰 듯 적절한 때에 알맞은 힘으로 장가구의 정강이를 때렸다.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의자와 함께 정강이뼈가 깨지는 듯한 고통이 장가구의 머리 속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는 자신의 칼이 내리꽂힐 곳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그리고 옆구리에 인두로 지져지는 듯한 통증이 파고들었다.

 박도는 덧없이 벽을 찍고 멎어 있었다.

 슬며시 몸을 기울여 이미 기세를 잃은 그것을 가볍게 비낀 양사명이 한 주먹으로 장가구의 옆구리를 후려치며 바짝 다가서 있었다.

 그가 왼손으로 박도의 자루를 밀쳐 내며 팔꿈치를 돌려 힘껏 장가구의 볼을 찍었다. 우지끈 하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저런 개자식이 있나!”

 “죽일 놈!”

 장가구가 단 두 번의 주먹질에 주저앉는 걸 본 자들이 불끈하여 병장기를 쥐고 우르르 일어섰다.

 순식간에 만금루 안에는 터질 듯한 살기와 긴장이 가득 차 공기마저 싸늘하게 얼려 버렸다.

 이제는 피를 보아야만 그들의 흉성이 가라앉을 것이었다.

 한번 폭발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처박혀 있는 자들의 흉포함이었다.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앞쪽에 있던 세 명이 검을 뽑아 들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서로 선두를 다투는 것이 조금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괴청년의 가슴을 쪼개야만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했다.

 “억!”

 가장 먼저 뛰어들던 자가 짧고 격한 비명을 지르며 퉁겨지듯 단번에 다섯 걸음이나 뛰어 옆으로 비켜났다.

 “윽!”

 바짝 뒤따르던 두 명의 입에서도 동시에 격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 또한 앞선 자가 그랬듯이 몸을 흔들며 분분히 갈라서기에 바빠 검을 휘두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저건 재미있는걸?”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반천수가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두위의 눈 깊은 곳에도 언뜻 놀람의 기색이 일렁이며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괴청년의 두 손이 아주 잠깐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세 가닥의 창백한 빛이 번쩍였다.

 양사명은 여전히 냉막하기만 한 표정으로 오연하게 서 있었다.

 그의 다섯 걸음 앞에까지 밀려들어 와 있던 세 명의 얼굴이 고통과 경악으로 잔뜩 일그러진 채 경련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비로소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챘다.

 한 자루의 얇은 비도(飛刀)였다. 그것이 한결같이 세 놈의 어깨 속 깊숙이 박혀서 끝에 둥근 고리가 달린 가느다란 자루만 삐죽 솟아 나와 있었다.

 대체 언제 손을 움직여 비도를 날린 것인지 제대로 본 자가 아무도 없었다.

 양사명은 그대로 서 있고, 어디선가 비도가 제 스스로 날아와 목표를 찾아 들어간 것 같았다.

 아니면 허공을 떠돌던 뇌전(雷電) 한 조각이 갑자기 셋으로 나뉘어져 떨어진 것 같기도 했다.

 세 놈의 어깨 속에 파고들어 있는 비도를 보면서도 그것이 좀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음에는 미간을 꿰뚫어주지. 믿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시험해 봐도 좋아.”

 고통과 놀라움으로 일그러졌던 세 놈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주루 안에 다시 숨 막힐 것 같은 적막이 괴괴하게 흘렀다.

 “대단한 놈이었군.”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동건유가 처음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양사명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흥분하여 날뛰는데 오직 두위의 탁자에 둘러앉아 있는 다섯 사람들은 끝까지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양사명은 즉시 그들이 이곳에서 가장 어려운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부딪쳐야 할 자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처음부터 기가 죽어서는 함께 발뻗고 살아가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주인이 누구지?”

 거침없이 다가온 그가 두위 일행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동건유에게 시선을 못 박고 차갑게 말했다.

 동건유의 눈이 생기라고는 실려 있지 않은 무기력함으로 가라앉은 채 그런 양사명을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술이 필요한가?”

 “계집도 곁들여서.”

 양사명이 곁에 있던 규화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만한 계집이면 충분해. 얼마지?”

 “우억!”

 마석산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투박한 손이 번개처럼 양사명의 손목을 낚아챘다.

 “어?”

 손아귀의 그 무시무시한 힘에 놀란 양사명이 외마디 소리를 냈다. 손목이 으스러져 버리는 것 같았다.

 마석산이 두 눈 가득 노한 기색을 띤 채 벌떡 일어섰다. 양사명은 고통 중에도 다시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앉아 있을 때는 그저 좀 큰 놈이군, 하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일어선 마석산을 대하자 이건 마치 거대한 청동의 역사(力士) 상을 보는 듯했던 것이다.

 미처 대응할 정신이 없었다.

 양사명의 몸이 가볍게 들려지더니 한 바퀴 휘둘려서는 사납게 내팽개쳐졌다. 돌덩이처럼 허공을 날아 처박히면서도 자유로워진 그의 손목이 꿈틀 하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싯―!

 작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났다. 창백한 빛 한줄기가 반짝 했을 뿐, 비도는 그 형체가 보이지도 않았다.

 내던져지는 양사명의 손목이 꿈틀거렸을 때, 빙글빙글 웃으며 구경하기만 하던 반천수의 손목도 같이 움직였다.

 쨍―!

 그의 철검이 낡은 검집을 빠져나오는 소리와 날카로운 쇳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창백한 빛줄기가 유성처럼 퉁겨져 날았다.

 방향을 꺾인 그것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마석산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 들보에 깊이 꽂혔다. 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웅웅거리는 울림을 토해냈다.

 탁자를 부수고 처박히면서도 양사명의 눈은 반천수를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반천수가 검을 허공에 우아하게 휘둘러서 다시 검집에 꽂아 넣는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등이 바닥에 닿은 순간 어깨가 부서질 듯한 충격이 왔지만 양사명은 이를 악물고 몸을 퉁겨 일어섰다. 마치 오뚝이처럼 보였다.

 그가 허리를 낮추고 두 손을 품에 넣었을 때였다.

 “한 번 더 잔재주를 부리면 죽는다.”

 낮고 무거운 음성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품속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엉거주춤하게 선 양사명이 목소리의 임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두위가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투박해 보이는 칼집을 움켜쥔 채였다.

 양사명이 처음으로 그 눈 속에 긴장의 빛을 담고 두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상대를 저울질해 보기에는 두위나 양사명이나 모두 충분했다.

 “규화에게는 임자가 있다. 누구든 건드릴 수 없어. 귀역에 머물기를 원한다면 그 첫 번째 묵계를 지켜야 한다.”

 반천수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양사명의 입술 끝이 비틀려 올라갔다.

 “제기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잖아?”

 양사명이 눈빛을 풀고 품에서 손을 빼냈다. 턱이 부서진 채 구석에 처박혀 있는 장가구를 부축해 일으키던 장 노대가 삿대질을 하며 핏대를 세웠다.

 “개자식아, 물어보기는 했더냐?”

 “양사명(楊射明)이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부르지 마.”

 양사명이 다시 냉막한 표정으로 장 노대에게 하얗게 눈을 흘기며 그렇게 말했다.

 “저자가 바로 그 추혼비(追魂匕)였군.”

 동건유가 머리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양사명이 옷을 털고 다시 태연하게 다가와 두위 곁에 앉았다. 발딱 일어난 규화가 매섭게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양사명의 얼굴이 반쯤 꺾여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빈 술잔을 집어 든 그가 마석산을 향해 처음으로 흰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였다. 뺨에 선명한 손자국이 남은 채였다.

 “한 잔 주지 않겠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일 것이다.

 굳이 새침하니 외면한 채 새벽빛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창밖만 바라보고 앉아서 규화는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두위나 풍 노인은 그것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곰방대에 앵속(罌粟)을 새로 쟁여 넣는 노인의 손놀림이 느긋하기만 했다.

 “바깥 공기가 어떻더냐?”

 노인이 불을 당겨 몇 모금 빨아들이고 나서 나른한 음성으로 물었다.

 “평온합니다.”

 “그럴 테지. 군웅성이 독패하고 있는데 누가 나서서 소란을 떨려고 하겠느냐? 하지만 말이다…….”

 노인이 잠시 두위의 기색을 살피고 규화의 눈치를 보았다. 그의 주름진 입가에 고소(苦笑)가 매달렸다.

 “에휴, 젊다는 건 어쨌든 좋은 거다. 부럽다.”

 한숨을 쉬고 난 노인이 아득한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나간 세월과 젊음을 돌아보고 그때의 열정을 그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번 손짓으로 백 개의 검을 꺾어버리고, 한 번 눈을 흘겨 강호를 떨게 했던 위엄도 이제는 먼 옛날의 일일 뿐이었다.

 가슴을 태웠던 호기(豪氣)는 어느덧 사라지고 덧없이 죽음을 바라보는 무기력함만 남아 있었다.

 한 줌의 기운도 담겨 있지 않은 자신의 늙은 몸이 원망스러웠다.

 “쿨럭, 쿨럭…….”

 풍 노인이 얼굴을 달구며 심하게 기침을 했다. 숨이 턱에 치받쳐 올라 목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한 사발의 피를 토해내 앞자락을 적신 노인이 창백해진 얼굴로 눈을 감았다.

 남의 피를 볼 때는 그렇게 통쾌하기만 하더니 이렇게 자신의 피를 보자 그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안타까움이고 아픔인지 비로소 알아졌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방울져 맺혔다.

 “그러게 너무 자주 피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잠자코 있던 두위가 노인의 손에서 곰방대를 빼앗았다.

 “놔라, 이놈아. 차라리 내 목을 가져가라!”

 노인이 온통 인상을 쓰며 곰방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악을 했다. 하지만 이미 늙고 힘없는 몸이었다. 두위의 우악스런 손길을 당할 수 없었다.

 맥없이 곰방대를 뺐기고 난 노인이 처량한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볼 뿐 더 무어라고 모진 말을 하지 못했다.

 두위는 그것이 노인의 꺼져 가는 생명을 가까스로 지탱시켜 주는 마지막 즐거움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결국 앵속은 그나마 남아 있는 실오라기 같은 목숨을 더 빨리 끊어줄 뿐, 영원한 기쁨이 될 수 없었다.

 두위는 풍 노인이 과거에 어떠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의 그 심술만 남아 있는 초라하고 기괴한 모습과 신마(神魔)라는 별호 사이에는 어떤 연관도 없어 보였다.

 두위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노인의 손가락이 아홉 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지신마라고 불렸을 거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신(神)과 마(魔)라는 호칭이 동시에 붙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무척이나 사납고 포악했던 게지.’

 기껏 그렇게 여겼을 뿐, 눈앞의 풍 노인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미 지난 일인 것이다.

 두위가 품속에서 밀랍에 싸인 단약(丹藥) 한 개를 꺼내 노인에게 내밀었다.

 굵은 밤알만했는데, 밀랍을 벗겨내자 차갑고 청량한 향기가 금방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속명환(續命丸)입니다. 먹어두면 기운이 날 것입니다.”

 그것은 소림의 대환단(大還丹)이나 무당의 자소단(紫霄丹)보다야 못했지만 청성산(靑城山)의 도사들이 그들만의 비전(秘傳)으로 연단해 낸 영약이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한 번 보기도 어려운 귀한 물건인 것이다.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것을 두위가 어떻게 지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일없다. 두었다가 급할 때 너나 처먹어라.”

 노인이 주름진 얼굴 가득 화난 기색을 지우지 않고 외면했다. 쓴웃음을 띠었던 두위가 와락 달려들어 노인을 꽉 붙잡고 강제로 입을 벌렸다.

 “이, 이, 쳐 죽일 놈이 이제는 늙은이를 우습게 여기는구나!”

 노인이 발악했지만 그의 뜻과는 달리 약은 벌써 녹아 흘러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입 안 가득 청량한 향기가 남아 정신을 맑게 했다. 뱃속에서 불끈 일어서는 한 가닥 열기가 오장육부를 태울 듯 달아올라 들끓기 시작했다.

 비교할 수 없는 상쾌함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두위가 꺽꺽대는 노인을 바로 눕히고 온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혈도를 눌러댈 때마다 시원한 기운이 뻗어 나와 노인이 혈맥 안으로 스며들었다.

 날뛰던 기운이 곧 잠잠해지더니 그것에 인도되어 순조롭게 기혈을 따라 순환하기 시작했다.

 한 시진 가까이 땀을 뻘뻘 흘리며 노인의 전신 대혈들을 세 차례나 되풀이해서 두드리고 문질러 준 두위가 비로소 손을 떼었다.

 그의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노인의 가슴이 고른 움직임을 보였다.

 탁하고 거칠었던 늙은 숨결이 잔잔해진 것을 확인한 두위가 침상을 떠나며 옷자락을 걷어 얼굴의 땀을 닦았다.

 “당신은 하는 일이 모두 그렇군요. 잔정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요.”

 그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던 규화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좀 더 부드럽고 자상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힘없는 노인을 윽박질러 강제로 약을 먹인 두위의 행동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노야는 아마도 죽을망정 끝까지 약을 먹지 않겠다고 고집 부렸을 것이다.”

 그게 귀찮은 일이라는 말이었다. 노인은 먹어야만 했고, 두위는 그에게 먹이려고 작정을 했다.

 그렇다면 쓸데없이 시간과 힘을 소비하면서 어렵게 달래고 설득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닭을 잡을 때도 사정을 보아주느라고 손에 힘을 느슨하게 하면 고통만 더해줄 뿐이다. 단번에 목을 비틀어 버려야 한다.

 닭을 위해서는 그게 보시(普施)하는 길이기도 했다.

 한 번 해야 한다고 결정하면 곧 행동에 옮겼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잘한 정 따위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것이 두위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규화가 원하는 것은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따뜻한 눈길과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거짓말이라도 좋았다. 달콤한 속삭임을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었다. 아니, 다정한 눈길만이라도 한 번 받아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새벽녘, 낯선 자가 불쑥 손목을 잡았을 때도 두위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기껏 칼을 쥐고 일어선 것이 양사명이 마석산에게 비도를 날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규화는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이 사람에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이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쩌면 자기 혼자서만 몸과 마음이 달아 안달하고 있을 뿐, 두위의 마음은 전혀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해졌고, 이렇게 두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의 무심한 눈길을 받으면 그뿐, 규화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원래 그런 사내라고, 그러니 내가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래야 했다.

 한숨을 쉰 규화가 가슴에 묻어두었던 손수건을 꺼내 두위의 땀을 닦아주었다. 달착지근한 그녀의 살 냄새가 코끝에 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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