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제일보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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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작성일 : 16-07-21     조회 : 682     추천 : 0     분량 : 7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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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몇 마디의 말을 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마저 맺힌 채 얼굴이 벌게져서 씩씩거리는 모습이 두위를 안타깝게 했다.

 “요즘 보기 드물게 의리를 아는 놈이었다. 그런 자와는 싸우기가 싫었던 거다.”

 옛 친구의 덧없는 죽음을 잊지 않고 몇 날 며칠 밤을 달려온 자였다. 온몸에 내려앉은 땀과 먼지, 그리고 이슬에 젖어 있는 옷이 그걸 알게 해주었다.

 그렇게 달려와서는 한 푼의 돈도 되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심성이 독하고 칼질이 사나웠지만 협기가 있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과연 그자를 이길 수 있었을까?’

 두위는 생각 끝에 다시 그런 의문을 떠올려 보았다.

 

 번풍의 칼은 무시무시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칼바람에 뼛골이 시려올 정도였다.

 빠른 것도 빠른 것이었으려니와 그 칼에 실려 있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몇 번 어쩔 수 없이 칼을 부딪쳤고, 그때마다 손목이 얼얼해지는 충격을 받아야 했다.

 오래 끌 싸움이 되지 못했다. 이긴다고 해도 마음이 찜찜할 것이고, 진다면 죽음이 있을 뿐인 그런 싸움은 싫었다.

 두위는 그때 번풍의 칼을 피해 파고들면서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오래전부터 익혀와 이제는 본능 속에 녹아들어 있는 혈마삼도(血魔三刀)였다.

 칼바람이 미치는 곳에 흙과 자갈들이 날려 흩어졌다.

 모래먼지가 자욱이 일어 그들의 몸을 가두어 버렸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뇌성 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일었다.

 두위의 칼이 사방을 살기의 그물로 가두고 쇠뇌처럼 꽂혀들 때 번풍은 이마에 굵은 힘줄을 불끈 일으켜 세운 채 이를 갈며 그 무서운 칼바람 속을 헤치고 종횡으로 달렸다.

 무시무시한 힘이 실린 그의 쌍수도가 십자로 허공을 그어댔다.

 사나운 바람이 회오리치며 먹구름을 흩쳐 버리는 것처럼 두위가 펼쳐 낸 마풍번천(魔風飜天)의 수법을 이리저리 갈라오는 솜씨가 대단했다.

 두위에게 있어서 죽음을 바라보는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이 호승심이었고, 지지 않겠다는 오기였다.

 번풍의 처음 보는 도법 앞에서 터질 듯한 긴장과 흥분으로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런 것이 바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 절박한 순간에도 머리 속을 스쳐 갔다.

 한소리 기합과 함께 맹렬하게 칼을 쳐 올렸다. 동시에 번풍의 칼도 소리없이 떨어져 내렸다.

 쨍―!

 허공에서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손아귀를 저리게 하는 칼의 진동에 팔목이 마비될 듯했다.

 이번에는 두위도 온 힘을 다했기 때문에 번풍 또한 그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가 쌍수도를 움켜쥔 채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어느새 당했는지, 턱 밑에서부터 볼을 타고 이마에 이르기까지 살가죽이 붉은 속을 내보이며 쩍 벌어져 있었다.

 폭풍처럼 몰아쳐 오던 기세가 잠시 멎은 그 틈을 타고 뒤꿈치로 힘껏 땅을 찍은 두위가 그대로 몸을 돌려 맹렬하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어?”

 “저놈이?”

 뒤에서 당황하여 외치는 사내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두위는 한가롭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석산은 큰 몸집을 구부정하게 굽힌 채 그 곁에 앉아 있었다.

 아직도 그의 얼굴에는 불만스러워하는 기색이 남아 있었다. 적 앞에서 등을 보이고 달아났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잊어버려. 언제나 쳐들어가기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론 달아날 수도 있는 거야.”

 ‘죽을망정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한 게 너 아니었냐?’

 마석산이 두위의 가슴을 가리키고 제 가슴을 두드렸다.

 “나는 그자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비겁할 것도 없어.”

 마석산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졌다.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자가 적이 아니라면 누가 적이란 말인가? 하고 마음속으로 투덜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더 이상 그 일을 두고 말한다면 구차한 변명이 될 뿐이다. 두위가 슬그머니 외면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멀리 구름에 씻기고 있는 황산(黃山)의 영봉(靈峰)들이 보였다.

 이쪽에서는 주봉(主峰)인 시신봉(始信峰)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동쪽으로 치우쳐 절강성(浙江省) 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름에 씻기고 있는 저 봉우리는 연화봉(蓮花峰)이다. 황산 칠십이 봉 중 가장 높이 솟아 있는 그것은 무려 육천이백여 척(尺)에 달했다.

 그 연화봉의 북서쪽 줄기를 타고 한참을 내려온 곳에 세 개의 험한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구쳐 있는데, 산 아래 마을의 사람들은 그것을 삼우각(三佑角)이라고 불렀다.

 

 두위와 마석산이 삼우각이 보이는 능선에 이른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언덕 아래는 벌써 짙은 땅거미가 깔려 있었다.

 해양촌(楷陽村)의 사람들은 언제나 부지런했다. 이른 새벽부터 낮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어두워지면 곧 잠이 들었다.

 오늘도 그와 같아서, 하루의 피곤을 씻기 위한 긴 안식의 시간이 해양촌을 두텁게 덮어가고 있었다.

 ‘나의 유년을 보낸 곳.’

 막막한 정적에 잠겨들고 있는 해양촌을 내려다보면서 두위는 다시 옛날의 아련한 기억들을 순서없이 떠올렸다.

 언제나 이곳에 오면 곤한 발길을 멈추고 지금처럼 이렇게 서서 멍하니 해양촌을 내려다보며 떠올리는 생각들이 있었다.

 천천히 언덕을 내려와 마을을 지나가자 어둠 속에서 개들이 컹컹 짖었다. 습하고 차가운 바람 속에 옅은 물 냄새가 맡아졌다.

 멀지 않은 곳에 풍천강(風仟江)이 있는 것이다.

 말이 강이지, 실은 조금 큰 개울에 다름없었다. 여름이면 그래도 제법 많은 물이 급류를 이루며 흘러갔지만, 이처럼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면 거의 바닥이 드러나 강 가운데까지 첨벙거리며 들어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춘 두위의 눈길이 저만큼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대나무 숲이 쏴, 쏴 하고 먼 데서 파도가 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오른쪽으로 굽고 휘어진 낙락장송들이 빼곡한 송림(松林)이 있고, 송림 한가운데에 오래된 신당(神堂)이 있었다.

 어느 마을에나 흔한 것이 관공(關公)의 사당이듯이 해양촌에 모셔져 있는 신(神)도 그 관공이었다.

 지금도 사당 안에는 옻칠이 벗겨진 관공이 청룡도를 세워 든 채 근엄하게 앉아 있을 것이고, 낡은 청동의 향로에는 저물녘에 촌장이 꽂아두고 간 향이 거의 다 탄 채 희미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밤 부엉이가 울었다.

 ‘그날 밤도 이랬었다.’

 두위는 어둠 속에 더욱 어둡게 잠겨 있는 송림을 바라보며 그녀를 생각했다. 언제나 이곳을 지나갈 때면 떠오르는 그날 밤이었다.

 

 “채영경(菜玲璥)이야.”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는 붉은 입술이 열에 들떠 파르르 떨렸다.

 흑룡보(黑龍堡) 안에서는 누구든 그녀를 단지 채 소저라고만 불렀기 때문에 두위는 그때까지도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

 떨고 있는 두위에게 하얗게 눈을 흘겨 보인 영경이 무너지듯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두위는 불과 열여섯 살에 지나지 않은 아이였다.

 덩치는 이미 장정(壯丁)만해져 있었지만, 열여덟인 그녀와는 세상을 알고 남녀의 일을 아는 데 있어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녀가 보의 서쪽 구석에 있는 대장간 뒤에서 손등을 살짝 꼬집으며 쪽지를 건네주었을 때 두위는 얼떨떨하기만 했다.

 해가 지고 달이 삼우각(三佑角) 위에 걸릴 무렵 관제묘에서 만나자는 글귀를 읽고는 그게 무언지도 알지 못한 채 풀무처럼 가슴만 뜨겁게 달아올라 벌렁벌렁 뛰었다.

 이른 저녁을 마치고 곤히 잠든 아버지를 보고 나서 살금살금 보를 나와 송림을 보고 뛰어가는 걸음이 구름을 탄 것처럼 허둥거려졌다.

 발바닥에 와 닿는 땅의 감촉이 솜덩이인 양 물렁거리기만 했던 것이다.

 해양촌의 신당까지는 삼우각을 등에 올려놓고 있는 험한 산 능선 하나를 넘어 이십여 리 길을 가야 했다.

 어둡고 적막한 그 산중을 두려운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려 내려왔다. 첨벙거리며 풍천강(風仟江)을 건너고 단숨에 마을을 지나 송림에 이르렀을 때는 숨이 턱에 차 있었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나무 가지 사이를 스쳐 가는 바람 소리가 우우, 우는 듯했다.

 머리 위를 낮게 날던 부엉이가 호리병을 부는 듯한 쉰 소리로 울었다. 왈칵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드는데, 어둠 속에서 작은 손 하나가 불쑥 뻗어 나와 팔목을 꽉 쥐었다.

 깜짝 놀라 소리치려는 그의 입을 부드러운 손바닥이 꼭 막았다. 귓전에 단 숨결이 뿜어졌다. 온몸이 간지러웠다.

 “벌써부터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온 거야?”

 눈을 흘긴 그녀가 두위의 손을 끌고 재빨리 관제묘 안으로 들어갔다.

 두위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영경의 둥글고 부드러운 어깨를 품어 안았다. 야릇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했다. 두위의 얼굴이 곧 울려는 듯 찡그려졌다.

 “바보.”

 영경이 더욱 품으로 파고들며 다시 더운 숨을 뱉어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고 어깨도 가늘게 떨렸다.

 두위의 가슴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방망이질을 쳤다. 가슴 앞 옷깃을 풀어 헤치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이, 이러지 마…… 보주님이 아시는 날이면…….”

 가슴에서 떼어놓으려고 할수록 영경은 더 큰 힘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온몸이 불덩이 같았다. 두위의 머리 속에 보주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온전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는 상관없어. 지금은 나만 생각해.”

 영경이 달뜬 음성으로 귓밥을 깨물며 속삭였다.

 큰 바위에 눌리듯 숨을 헐떡이며 가슴으로 연경을 안고 넘어졌다. 그녀의 몽롱한 눈동자가 이마에 떨어졌고, 붉은 입술이 불처럼 입술 위에 찍혔다.

 이런 느낌을, 이런 감정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두위는 기껏 열병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을 그 순간에 하고 있었다.

 언제던가, 열에 들떠 아득히 가라앉아 가기만 하는 꿈속에서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었다.

 곧 떨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과 아무것에도 매달려 있지 않은 자유로움. 그 꿈을 다시 꾸고 있다고 여겼다.

 그녀의 손가락들이 벌거벗겨진 가슴팍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였다.

 귓가를 달구어놓던 연경의 뜨거운 입술이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와들와들 떨리는 가늘고 고운 손가락들이 주춤거리다가 고의춤으로 쑥 파고들었다.

 “윽!”

 두위는 온몸을 펄떡거리며 놀란 비명을 터뜨리고 말았다.

 

 두 달 뒤 그녀는 생애에 있어서 가장 화려할 옷차림을 하고 머리에 화관(花冠)을 쓴 채 마차를 타고 멀리 귀주(貴州)로 떠났다.

 검령산(黔靈山) 상왕령(象王嶺)에 있다는 옥수궁(玉樹宮)의 소궁주(小宮主)와 혼약하기 위해서였다.

 오십 명이나 되는 흑룡보의 무사들이 오십 필의 흑마(黑馬)에 올라타고 늠름한 기상을 뽐내며 마차를 호위했다.

 예물을 실은 수레가 둘이었고, 계집 종 다섯이 영경을 따라 보를 나섰다.

 보주를 대신해서 염 집사가 그 거창한 행렬을 이끌고 떠날 때 두위는 사당이 있는 송림 앞에 넋을 잃고 서 있었다.

 해가 머리 위에 떠올랐을 무렵 영경의 마차가 해양촌을 향해 다가왔다.

 송림이 있는 언덕 아래를 지나가던 마차의 휘장이 살짝 걷히고 그리로 영경의 얼굴이 보였다.

 언덕 위의 송림과 그 앞에 서 있는 두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위는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어낸 영경이 창밖으로 그것을 떨어뜨렸다.

 

 두위의 손에 그때의 손수건이 들려져 있었다. 눈처럼 희던 그것은 지난 십여 년의 세월 동안 빛이 바랬고, 네 귀퉁이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분홍색 연꽃도 이제는 초라하게 시들어 있었다.

 ‘뭐야? 처음 보는 건데?’

 마석산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손수건을 가리켰다.

 한 번 웃어주고 지나쳐 온 송림을 돌아보는 두위의 얼굴이 아련한 아픔으로 젖어들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품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는 손수건이었다. 그것에 가득 배어 있던 달콤한 체취는 사라졌고, 뚜렷이 남았던 눈물 자국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두위는 손수건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느꼈다.

 무섭도록 외길로만 치달려 왔던 지난 십 년의 세월 속에서도 그때의 영경은 작은 손수건 한 장 속에 화석이 되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차가운 강물에 허벅지를 적시며 첨벙거리고 풍천강을 건넜다.

 천 가닥의 싸늘한 바람이 어지럽게 달려와 온몸을 할퀴어댔다.

 몇 굽이나 휘어져 있는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돌아 나오면서 갈기갈기 찢어진 바람은 미친 말처럼 종잡을 수 없이 날뛰었다.

 그것이 기승을 부리는 날은 사방이 날카로운 바람 소리들로 가득했다. 마치 천 명의 미친 여자들이 산발한 채 일제히 울어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귀기(鬼氣)가 서려서 누구도 강가로 나오지 않았다.

 풍천강(風仟江)은 그 바람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된 알려지지 않은 작은 강이었다.

 하지만 천 굽이를 꺾여져 있는 까마득한 절벽과 그곳에 박혀 있는 석송(石松)들. 매가 둥지를 틀고 있는 회백색(灰白色)의 절벽 아래 금빛으로 펼쳐져 있는 넓은 모래밭…….

 그것들이 건너편 언덕의 울창한 송림들과 어울려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절경(絶景)을 보여주었다.

 음산한 귀기(鬼氣)와 오묘한 선기(仙氣)를 함께 품고 있는 이상한 곳.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감추고 있는 곳. 풍천강은 두위에게 있어서 바로 그런 곳이었다.

 

 해양촌 밖, 황산으로 뻗은 관도의 길목을 지키고 있는 만산반점(滿山飯店)에서 늦은 저녁을 먹은 두위는 주인장에게 부탁하여 향과 지전(紙錢), 몇 가지 과일과 술 등을 준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주인은 그들이 삼우각(三佑角)으로 향한다는 말을 듣자 한사코 자고 갈 것을 권했다.

 이런 밤이면 맹수도 종종 출몰하려니와 무엇보다도 요괴(妖怪)가 얼마 전부터 그곳에 머물며 사람들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주인의 마음이 고마웠다.

 사례한 두위는 마석산과 함께 주루를 나서 텅 빈 자갈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은은한 달무리가 머리 위에 있었다.

 자갈을 밟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 적막한 어둠 속에 흩어졌을 뿐,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고요함이 좋았다.

 마석산은 주루를 나서면서부터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뜬 채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요괴가 나온다는 주인의 말이 잔뜩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그런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요괴니 귀신이니 하는 것들을 아이처럼 무서워했던 것이다.

 머리 위로 커다란 밤새 한 마리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낮게 날아가자 화들짝 놀란 마석산이 겅중겅중 뛰어 두위의 앞으로 나섰다.

 내내 무표정하기만 하던 두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 옛날, 영경을 만나기 위해 허겁지겁 넘었던 능선을 이제는 차분하게 올랐다.

 능선 아래에서는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 끝만 보이던 것이 능선 위에 올라서자 흐린 달빛 아래 완연하게 바라보였다.

 마치 칼로 깎아놓은 것처럼 날카로운 세 개의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삼면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는 모습은 기이하면서 신비로운 것이었다.

 “어, 어……!”

 그것을 처음 본 마석산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감탄성을 터뜨렸다.

 머리 위에 있는 만월(滿月) 아래 삼우각은 은은한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멀리서 저것을 본다면 마치 날카로운 비수 세 자루를 박아놓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 삼우각 아래쪽은 깊은 수림(樹林)이었는데, 달빛의 그늘을 가득 품고 어둠에 깊이 잠겨 있었다.

 “가자.”

 잠시 숨을 돌린 두위가 마석산의 어깨를 쳤다. 그때까지도 넋을 잃고 삼우각의 신비로운 모습에 취해 있던 마석산이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다시 울창한 숲을 헤치며 가파른 능선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는 비탈을 한참 내려가자 어느새 가파르게 서 있던 숲은 사라지고 넓은 분지(盆地)가 나타났다.

 어둠을 빨아들이고 있는 검은 숲이 눈앞에 다가섰다.

 ‘싫다. 나는 안 간다. 여기서 기다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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