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산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숲을 가리키고 자신의 발 밑을 가리켰다. 험상궂은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래?”
어깨를 으쓱 해보인 두위가 잘되었다는 듯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몇 걸음 걷지 못했다.
땅을 쿵쿵 울리며 멧돼지처럼 달려온 마석산이 뒤에서 그의 몸을 꽉 부둥켜 안아버린 것이다.
“하하, 요괴 따위는 없어. 네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거다.”
그래도 마석산은 막무가내였다. 두위에게 매달려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 남아 있기도 두렵고, 두위를 따라 저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무서운 것이다.
혀를 찬 두위는 마석산의 솥뚜껑 같은 손을 꼭 쥐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석산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밤새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날아가도 화들짝 놀랐고, 작은 짐승이 풀숲에서 뛰쳐나와 달아나도 펄쩍 뛰며 우억, 우억! 하고 괴이한 비명을 질러댔다.
숲을 흔드는 그 비명 소리가 오히려 요괴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
썩은 나뭇잎들이 축축하게 발목을 감아왔다.
얼굴을 찔러대는 어지러운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넝쿨을 걷어내며 한참을 그렇게 걷자 숲이 끝나고 훤한 달빛이 다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곳에 흑룡보(黑龍堡)의 잔해가 있었다.
높았던 담은 군데군데 무너져 짐승들이 넘어 다니는 길이 되었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전각(殿閣)이며 망루(望樓)들도 이제는 주추만 남아 두텁게 이끼를 두르고 있었다.
흐린 달빛 아래 타다 만 기둥과 불에 그슬린 기와 조각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처량함을 더해주었다.
흑룡보는 넓은 분지를 모두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천여 명의 사람들을 담고 있던 그것이 지금은 처참한 잔해가 되어 쓰러져 있을 뿐, 어디에도 낯익은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억!”
발끝에 차이는 해골을 본 마석산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폐허의 돌더미 사이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인골(人骨)들이 푸르스름한 인광(燐光)을 피워 올리고 있었는데, 그 위를 개똥벌레들이 푸른빛을 꽁무니에 달고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귀화(鬼火)처럼 반짝이며 폐허를 온통 뒤덮다시피 한 화무(火舞)였다.
“어떻게 네가 도끼를 휘둘러 사람들의 머리통을 장작처럼 쪼개놓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제는 발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줄 모르고 덜덜 떨며 팔을 움켜쥐고 있기만 한 마석산을 보던 두위가 혀를 찼다.
마석산은 한 번 살기가 솟구치면 입에서 거품을 뿜어내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는 자였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그를 혈부야차(血斧夜叉)라고 하겠는가.
그의 도끼는 만족할 줄을 몰랐고 지칠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흠뻑 피를 빨아들여 거무튀튀하던 무쇠의 빛이 붉게 변했어도 여전히 상대를 찍고 또 찍어댔다.
열 명, 스무 명의 뼈를 쪼개고 박살냈지만 여전히 넘치는 힘으로 휘파람 소리를 내며 허공을 휘저었던 것이다.
그 무게와 그것에 더하여 실린 무지막지한 힘 앞에서는 천하의 명검(名劍) 보도(寶刀)가 다 소용없었다.
새파랗게 번쩍이는 도끼날 아래에 있는 것들은 무엇이 되었든 쪼개지거나 부서져 날렸다.
그때의 마석산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저승의 악귀 그 자체였다.
그런 놈이 지금은 이렇게 무서움에 사로잡혀 눈물마저 찔끔찔끔 내보이고 있다는 것이 두위에게는 불가사의하기만 했다.
한동안 마석산을 바라보던 두위가 혀를 쯧쯧 차고 천천히 폐허 속을 거닐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놀란 개똥벌레들이 안개처럼 쓸려 흩어졌다. 새파란 불똥들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것이 장관을 이루었다.
“이리 와봐라.”
저만큼의 어둠 속에서 두위가 소리쳐 불렀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떨고 있기만 하던 마석산이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두위를 찾아 나아갔다.
잡풀들 속에 희미하게 주추와 기둥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돌더미 앞에 두위는 서 있었다. 그가 마석산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돌더미를 가리켰다.
“내가 살았던 곳이다.”
한 칸의 작은 방과 부엌. 갈대를 엮어 얹은 지붕들이 일자로 길게 뻗어 있었고, 그 아래 이십여 개의 방들이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흑룡보에 몸담고 있는 자들 중 가족이 딸린 하급 무사들이 기거하던 곳이었다.
보의 외성에는 그러한 숙사들이 동서남북 네 곳에 걸쳐 있었으니 모두 팔십여 호의 가구가 모여 살았던 셈이다.
가족이 딸리지 않은 무사들은 그 직급에 따라 숙소를 달리했다. 그런 장정들이 무려 일천 명이었다.
한창 때는 넓은 연무장 가득 곰 같고 황소 같은 장정들이 들어차 무술을 단련했다.
그들이 내지르는 기합 소리에 온 산이 떠나갈 듯했다.
교두(敎頭)들은 엄격했고 장정들 사이에 규율과 질서가 뚜렷했다. 아버지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어두운 사당 안에서 채영경을 안았던 그해 봄부터 두위는 처음으로 장정들 속에 섞여 본격적으로 무술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그를 맡아 가르쳤던 교두는 강호에서 진삼수(振三手)로 불리던 악필(岳弼)이었다.
그는 삼십 대 후반의 사내였는데 기력이 충실하고 권법과 장법, 경신의 공부가 뛰어나 강호에서 일류고수로 꼽히던 자였다.
“네놈에게는 타고난 천성이 있다. 네 아비와는 전혀 달라.”
두위를 며칠 가르쳐 본 진삼수 악필은 그런 말로 놀라움을 대신했다. 두위는 그에게서 두 달 동안 권법과 장법의 기초를 배웠다.
그리고 곧 보주인 열화천도(熱火千刀) 채군걸(寀君傑)의 눈에 띄었다.
윤사월이었을 것이다. 해가 길어서 늦게까지 연무를 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무슨 일인지 교두들은 성화를 부리다시피 해가며 보 내의 장정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곧 커다란 싸움이 있을 거라는 말들이 장정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떠다니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평소에는 좀체 얼굴을 볼 수도 없는 보주가 연무장에 자주 나타나 수련을 지켜보고 때로는 소를 잡아 격려하기도 했다.
보주가 한번 다녀갈 때마다 장정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보주의 격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그녀, 채 소저 때문이었다.
보주는 평소 장정들에게 ‘너희들 중 가장 뛰어난 자가 내 여식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던 것이다.
흑룡보 내에서 채 소저는 모든 장정들의 우상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녀의 부용꽃 같으면서 활짝 핀 도화(桃花) 같기도 한 그 상반된 아름다움은 그녀의 나이 열네 살이었을 때 이미 안휘성(安徽省) 내에서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두위가 보주의 눈에 띈 건 행운이기도 했지만, 평소 보주의 호법을 서고 있는 교두 악필의 공이기도 했다.
악필은 두위를 가르치는 일에 신이 나 있어서 보주에게도 몇 번인가 어쩌면 자신이 뛰어난 놈 하나를 제자로 삼게 될지도 모른다고 자랑을 했던 것이다.
“악 호법에게서 배운 것을 좀 보자.”
맨 끝 말석에 서 있던 두위에게 다가온 보주가 그렇게 말하자 연무장 안은 곧 일천 장정들의 수군거림으로 술렁댔다.
악필과 마찬가지로 권각법을 지도하고 있던 교두 당우석(唐宇石)이 상대가 되어주었다.
본격적으로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두어 달이 되었을 뿐인 두위에게 그것은 감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특전이었다.
삼 년, 사 년을 배운 자들도 교두를 상대로 연무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위는 최선을 다했다. 보주 앞에서 교두를 이겨 보이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어볼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악 교두로부터 그동안 배운 것들을 유감없이 펼쳐 보일 뿐이다.
가볍게 십여 초를 상대해 주던 당 교두가 무슨 마음이 들었던지 갑자기 그의 자랑인 철량권(鐵輛拳) 중 무거운 한 초식을 때려냈다.
제대로 맞으면 그 즉시 숨이 끊어질 것이고, 가볍더라도 중상을 면치 못할 만한 무서운 권력이 휩쓸어왔다. 두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람의 비명을 터뜨렸다.
“당우석! 그게 무슨 짓…….”
대경한 악필이 뛰어들려다가 멈칫 멈추어 섰다. 두위의 반응을 본 것이다.
주저앉는 것도 아니고 물러서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엉덩이를 빼고 서서 우직하게도 용호권(龍虎拳)의 기본자세 중 하나인 풍운삼수(風雲三手)를 뻗어내고 있었다.
악필은 어이가 없었다. 용호권은 자신의 권법 중 가장 기초가 되는 것으로 하체의 단련과 기력을 높이기 위해 익히는 것이었지 실전의 권법이 아니었다.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그 풍운삼수로 철량권을 맞이하는 걸 본 당 교두가 한줄기 비웃음을 띠고 더욱 신속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사정없이 미간을 부수어 버리려는 듯했다. 크게 놀라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으면서도 두위의 응대는 침착하기만 했다.
그가 두 손을 엇갈리게 하여 밖으로 뿌리더니 팔목을 뒤집으며 오히려 당 교두의 주먹을 잡아갔다.
“어?”
당 교두의 입에서 당황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두위의 수법이 풍운삼수 중 두 번째 초식인 호권연주(虎拳連走) 같기는 한데 손목을 꺾고 뻗어오는 투로(套路)는 그게 또 아니었다.
일견 조악하기 짝이 없었으나 어찌 보면 정교한 초식을 흉내 내는 것 같기도 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부드럽고 질긴 것이 무당파의 양의권(養意拳)을 떠올리게 했다.
“고약한 어린 녀석이었군!”
외친 당 교두가 두 손을 가볍게 흔들어 두위의 팔목을 쳐내고 하하, 웃으며 훌쩍 뛰어 물러섰다.
골탕을 먹이려고 했다가 자신이 오히려 낭패를 당한 꼴이었으니 보주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두위는 얼떨떨한 채 가라앉지 않은 흥분과 당혹감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무당파와 인연이 있었느냐?”
보주인 열화천도(熱火千刀) 채군걸(寀君傑)이 근엄한 얼굴로 물었다. 두위는 감히 입을 열어 대답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보주 앞에서 고개를 든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가 세차게 머리를 저어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잠시 두위를 바라보던 채군걸이 웃음을 띠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좋다. 너의 자질이 악 호법으로부터 들은 그대로구나. 장차 크게 쓸 데가 있겠다.”
그렇게 해서 두위는 다음날부터 연무장을 떠나 보주가 기거하고 있는 청풍전(淸風殿)의 수직(守職)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파격적이다 못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 일을 두고 장정들은 한편으로 두위의 행운을 부러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노골적으로 질투했다.
내원 깊숙한 곳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청풍전은 흑룡보 내에서도 별천지였다.
가산과 폭포가 있었고 원숭이들이 뛰어다니는 절벽에 의지하여 날아갈 듯 세워진 정자도 있었다. 그곳에 기거하는 사람은 보주와 그의 딸인 채영경 둘뿐이었다.
세 명의 호법들과 총관 양우문(楊友文) 정도가 비교적 자유롭게 들락거렸을 뿐, 보 내의 사대전주와 당주들도 함부로 걸음하지 못했다.
“이곳은 떠들썩한 외성과는 달리 언제나 깊은 산중의 적막을 두르고 있었다.”
지금 두위는 그 내원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마석산이 신기한 듯 폐허를 둘러보았다.
맑은 물이 언제나 찰랑거리던 연못은 간데없고, 습기를 머금은 땅 위에 부들풀들이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자라 있어서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저 앞이 청풍전 뒤다. 보주님은 저곳에서 연공을 하셨지. 때때로 나를 불러 당신의 혈마삼도(血魔三刀)를 전해주셨다.”
“그, 그…… 네가 쓰는…… 도법이 그럼…….”
“열화천도(熱火千刀) 채군걸(寀君傑), 채 보주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
“그, 그…… 는…… 대단한 고수…… 였군…….”
두위의 무서운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마석산은 그것을 전해준 채군걸이야말로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라고 불릴 만한 고수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멍하니 마석산을 바라보던 두위가 쓸쓸하게 웃었다.
“죽은 다음에 명성이 다 무엇이고 살아서 쌓은 공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지금은 구천을 떠도는 혼백이 되었을 뿐이다.”
혼백이라는 말에 마석산이 다시 부르르 몸을 떨고 잔뜩 어깨를 움츠린 채 두리번거렸다.
두위는 더욱 적막한 심정이 되어서 폐허의 어둠 속을 서성거렸다.
‘저곳에서 처음 영경을 만났다.’
그의 눈길이 아련해진 채 석대(石臺)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의주(如意珠)를 쥔 흑룡(黑龍) 한 마리가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는 형상을 한 커다란 옥상(玉像)이 서 있었다.
흑룡보의 상징이기도 한 그것은 보가 무너지던 날 사라져 버렸다.
그 석대 위에 과일 몇 개와 술잔을 올려놓고 향을 피운 두위가 이제는 백골이 되어 이곳에 살아 있었다는 흔적마저 삭아가는 일천여 명의 원혼들을 위해 절을 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달빛마저 스며들지 않고, 개똥벌레들의 푸른 불빛도 없는 외진 곳. 무너져 내린 석벽의 돌무더기들이 무덤처럼 군데군데 쌓여 있는 그 음산한 곳에서 두위와 마석산을 바라보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어둠 속에 박혀 있는 흰 창이 귀화처럼 창백하게 빛났다.
“가자.”
무릎을 꿇고 있던 두위가 일어섰다. 마석산이 겁먹은 얼굴로 그의 등 뒤에 바짝 붙었다.
검은 하늘을 향해 지전(紙錢)을 날린 두위가 걸음을 빨리하여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돌무더기 뒤에 숨어서 바라보던 한 쌍의 눈이 잠시 꼼짝하지 않고 두위를 쫓더니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성큼성큼 걸어 흑룡보의 폐허를 나온 두위는 무성한 억새의 숲을 헤치며 분지 아래쪽으로 뛰듯이 걸었다.
자작나무 숲 어디에선가 가만가만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들렸다. 잠시 멈추어 서서 방향을 확인한 두위가 곧장 자작나무 숲을 향해 나아갔다.
눈앞에 펼쳐든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어둠 속이었지만 두위는 그 길이 익숙한 듯 머뭇거림이 없었다.
콧등과 이마를 할퀴는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얼마나 나갔을까. 울창한 자작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머리 위에 뚫린 한 줌의 공간으로 달빛이 스며들어 주위를 어슴푸레하게 밝혀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막혔던 숨이 탁 풀리는 듯 마석산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터 한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초라한 무덤이 있었다.
두위가 제단이 있어야 할 곳에 대신 놓여 있는 넓적한 돌 위에 주섬주섬 제상(祭床)을 차리기 시작했다.
무덤만큼이나 초라하고 을씨년스러운 제물이었지만 그것을 벌려 놓는 두위의 모습은 사뭇 엄숙했다.
소매로 잔을 깨끗이 씻어 맑은 술 한 잔을 따른 두위가 마석산을 돌아보았다.
“이것이 내 아버지의 무덤이다.”
그 말 속에 깃들어 있는 커다란 슬픔과 분노와 회한을 마석산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초라한 무덤과 제상과 두위를 한꺼번에 바라보았다.
“평생을 보잘것없는 삼류무사로 살면서 한 번도 당신의 처지에 대하여 비관해 본 적이 없는 아버지셨다. 언젠가는 인연을 얻어 절정의 고수가 되리라고 죽는 그날까지도 굳게 믿고 살아가셨던 내 아버지란 말이다.”
두위의 음성이 갈수록 격한 흥분을 감추고 떨리더니 기어이 참지 못하고 고함이 되어 터져 나왔다.
“평생 남에게 억울한 일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었던 분이 어째서 그처럼 처참하게 도륙당해야 했단 말이냐!”
“누, 누가…… 그런 짓을…… 해, 했지……?”
“무존(武尊) 대무광(戴武光)!”
“억!”
두위가 이를 갈며 스산하게 말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마석산이 비명을 지르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머리 속이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천하제일인으로 꼽히는 군웅성의 무존이 성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삼류무사 한 명을 잔혹하게 죽였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는 의문이 일었지만 두위의 무섭게 굳은 얼굴을 보고는 입을 열어 물을 수가 없었다.
모닥불이 주위를 붉게 물들이며 타올랐다.
제상에 차려놓았던 건포(乾脯)를 물에 불린 다음 꼬치에 꿰어 숯불 위에 굽자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과일 몇 개와 술 한 모금으로 새벽녘의 시장기를 달랜 두위와 마석산은 마치 싸운 사람들처럼 서로 외면한 채 앉아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축축한 새벽 이슬이 내려 두 사람의 어깨를 적셨다. 아침이 올 때까지 그렇게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할 것 같던 두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요괴이든 아니든 상관없으니 왔으면 나와서 얼굴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응?”
두위의 뜬금없는 말에 마석산이 화들짝 놀라 돌아앉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불빛이 비치는 테두리 밖의 칠흑 같은 어둠일 뿐,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마석산을 더욱 두렵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