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뭐, 뭐, 뭐…… 냐?”
그가 엉덩이를 밀어 두위 곁에 다가앉으며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두위의 손이 슬그머니 곁에 놓아두었던 칼을 잡아가고 있었다.
“정 나오기 싫다면 가라. 그것도 싫다면 내가 쫓아주지.”
와락 칼을 움켜쥔 그가 고개를 홱 돌려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덩달아 바라보는 마석산의 눈에 희끗희끗한 무엇이 보였다.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창백한 줄기를 드러내고 있는 자작나무 숲 앞이었다. 가벼운 바람결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것이 옷자락이 분명했다.
마석산이 주먹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여자였다.
“요, 요…… 요, 요괴다!”
검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허리춤에서 옷자락과 함께 물결치듯 흔들리고 있었다. 마석산이 그것을 가리키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두위가 칼을 굳게 움켜쥔 채 천천히 일어섰다.
아버지의 무덤 앞이었다. 초라한 그것이 마음속에 한이 되어 맺혀 있는데, 요괴까지 나와 날뛰게 둘 수는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내 아버지의 안식처를 어지럽히는 것이라면 가차없이 베어버리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눈에 더욱 힘을 실었을 때였다.
“상공.”
낮으나 맑고 청아한 음성이 두위를 불러 세웠다. 마석산은 이제 제 머리통을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젖은 땅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소녀는 요괴가 아닙니다.”
흰 옷자락이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노려보는 두위의 눈에 아리따운 소녀의 모습이 비로소 생생하게 들어왔다.
그녀가 옥처럼 투명한 손을 들어 이마 앞에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앳된 얼굴이었다. 두려움도 없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는데 살짝 흘겨보는 눈길에 교태가 묻어났다.
“웬 낭자인가?”
야심한 시간에 이처럼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을 배회하고 있었으니 좋은 뜻을 지닌 자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계를 풀지 않으며 엄한 음성으로 묻자 다시 몇 걸음을 다가온 소녀가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더욱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두위, 두 상공이시죠?”
“응?”
생면부지의 여자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대뜸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두위를 놀라게 했다.
마음속에 이것은 정말 요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두위의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소녀가 입을 가리고 배시시 웃었다.
“주인께서 가르쳐 주셔서 알았답니다. 상공을 모셔 오라고 하셨어요.”
“주인이라니? 그가 누구이며 어떻게 나를 알고 있고, 이곳에는 언제, 왜 왔단 말이냐?”
“그렇게 한꺼번에 물으시면 무엇을 먼저 대답해야 하는 건지 머리 속이 복잡해져요.”
소녀가 머리를 기울이고 귀엽게 이마를 찡그리며 흘겨보았다.
“나쁜 뜻은 없답니다. 가서 주인님을 만나보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예요.”
“가, 가지 마! 저, 저, 저…… 요괴의 마, 마, 말을……!”
마석산이 와락 두위의 종아리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마음은 급하고 두려운데 말이 뜻대로 나오지 않으니 더욱 답답했다.
마석산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눈치 챈 소녀가 그를 노려보며 흥! 하고 쌀쌀맞게 코웃음을 쳤다.
“덩치는 황소만한 사람이 저렇게 겁이 많으니 무엇에 쓴담. 데려다가 주인님의 수레를 끌게 하면 딱 좋겠다.”
소녀의 새침한 말에 두위가 비로소 긴장을 풀고 마석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생각처럼 요괴는 아닌 모양이다.”
***
“아, 강한 놈이었다.”
음침한 불 그늘이 동굴 안을 어슴푸레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메아리치며 들려왔다.
“그러게 복수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했잖아. 죽은 놈은 죽은 놈이다. 제 명이 거기까지인 걸 어떻게 하겠어. 우리도 언제 어느 놈의 손에 죽을지 모르는데 남의 죽음을 가지고 분해할 건 없잖아.”
번풍(樊風)의 얼굴 한쪽을 온통 붕대로 감아주던 놈이 투덜댔다. 허리에 유성추를 두르고 있던 땅딸막한 자였다.
“시끄러!”
번풍이 그자의 손을 밀쳐 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제는 세상에 하나 남아 있을 뿐인 내 고향 친구란 말이다. 부모 형제도 다 죽고 없는 불쌍한 놈이다. 악착같이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땅을 사고 집을 짓겠다고 나선 놈이지. 멍청하기는 해도 어쨌든 내게는 소중한 친구였다. 그런데 칼에 맞아 죽었다. 복수를 해주지 않는다면 그놈이 저승에서 나를 원망하며 서럽게 울 게다.”
“우리에게는 당장 돈이 필요해. 이러다가는 도둑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복수는 그 다음에 천천히 하자.”
등 뒤에 두 자루 단창(短槍)을 엇갈려 메고 있는 자가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동굴 벽을 밀치고 일어나 앉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번풍의 번쩍이는 외눈이 사납게 그자를 노려보았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말할 양이면 꺼져 버려! 동업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다!”
유성추의 사내 호두개(胡斗愷)가 서운하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
“우리가 함께 뭉쳐 다닌 지도 벌써 삼 년이 되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싸움도 수십 차례나 했지. 생사를 함께 나눈 세월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너는 우리를 귀찮은 객꾼으로만 생각한다. 어, 이건 서운한 일인걸?”
“맞다. 우리는 언제나 손발이 잘 맞는 삼인조였다. 그런 무례한 말을 해서는 안 돼.”
두 자루 단창을 지닌 사내 막고성(莫高星)마저 심각한 얼굴로 꾸짖자 번풍의 기세가 한결 누그러졌다. 그가 음, 하고 신음하고 나서 머리를 끄덕였다.
“사과하지. 내가 분한 마음에 너무 흥분했다.”
잔뜩 찌푸려졌던 호두개와 막고성의 얼굴이 비로소 풀렸다. 호두개가 다시 번풍의 한쪽 얼굴에 붕대를 감아주며 중얼거렸다.
“당장 내일 아침 요깃거리를 장만할 돈도 없다. 무슨 수를 내야 해.”
번풍의 얼굴은 이제 반쪽이 완전히 붕대로 감겨 괴이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두위의 한 칼에 당한 얼굴의 상처가 그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원한으로 쌓였다.
다행히 눈은 무사했지만 턱 밑에서부터 이마에 이르기까지 긴 상처 자국이 보기 흉하게 남을 것이다.
‘얼굴을 버린 것은 좋다. 참을 수 없는 건 그 애송이에게 졌다는 거다.’
부드득 이를 간 번풍이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말해 주었다. 아직까지 쌍수도를 휘둘러서 이겨보지 못한 자가 없었다.
이건 내 상대가 아니다 싶으면 적당한 선에서 달아날 줄도 아는 영리함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위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자라고 여겼기에 강력하게 가로막고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자신의 생각과는 영 달랐다.
“언제고 그 애송이 놈에게 나 번풍의 칼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말 테다.”
“그래, 그래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지.”
막고성이 반색을 하고 번풍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그가 고집을 버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형주산(炯珠山)에 도적놈들의 산채(山寨)가 있다고 들었다. 날이 밝으면 그곳으로 가자.”
형주산이라면 그들이 있는 곳에서 불과 삼십여 리 떨어진 옥성현(玉珹縣)에 있는 험한 산이었다.
옛날에는 옥이 많이 생산되었으므로 지금도 곳곳에 그때의 채광 터가 남아 있었다.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주변에 부유한 네 개 현이 있었고, 그들의 교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곳에 언제부터인가 산적들이 둥지를 틀고 들어앉아 제법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번풍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은 호두개와 막고성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맞다! 어째서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궁상만 떨었을까? 가서 그놈들에게 부탁하면 은자 한 궤짝쯤은 쉽게 얻어낼 수 있을 거다.”
말은 점잖게 하고 있었지만 결국 산적들을 털자는 얘기였다. 호두개의 말에 막고성이 주섬주섬 행랑을 꾸리기 시작했다.
“날이나 밝으면 떠나자.”
호두개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있으면 새벽이 밝아온다. 지금 떠나야 아침나절에 산채에 다다를 수 있을 거야.”
“제기랄. 산적놈들 눈곱도 떼지 못하고 달려나와 손님을 치르게 생겼구나.”
투덜대면서도 호두개 역시 풀어놓았던 자신의 행랑을 챙기기 시작했다.
산적 나부랭이나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당장 궁색한 꼴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굶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혀를 찬 번풍도 머리 속까지 울려오는 상처의 아픔을 꾹 눌러 참으며 칼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
초막은 급하게 지은 모양을 완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굵은 참나무를 찍어와 세운 사면의 기둥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였고, 지붕과 벽을 막은 갈대 잎들도 새파란 빛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엉성한 초막 앞에 두 명의 건장한 사내가 칼을 쥔 채 버티고 서 있었다. 다가오는 두위와 마석산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저곳이에요.”
앞서 안내해 온 소녀가 두위를 돌아보며 초막을 가리켰다. 마석산이 비로소 두려움을 떨쳐 버린 듯 어깨를 쭉 펴고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체구가 훨씬 더 크고 위압적으로 보였다. 초막 앞에서 번을 서고 있던 사내들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안에 들어가 주인님께 말씀드리죠.”
자신을 깜찍한 요괴, 매괴(魅怪)라고 장난스럽게 소개한 소녀가 구름을 타는 듯 가벼운 걸음으로 사내들을 스쳐 초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후 그녀가 다시 나왔는데 얼굴 가득 기쁨이 넘쳐흘렀다.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모양이었다.
“어서 들어가세요, 두 상공.”
그녀가 나긋나긋하게 허리를 굽히며 한껏 교태를 띠고 말했다.
하지만 마석산이 두위의 뒤를 따르려고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쌀쌀맞은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녀의 키는 마석산의 가슴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곰 같은 자가 앞을 가로막고 선 조그만 아가씨를 내려다보며 쓴 입맛을 다셨다.
마석산의 험상궂은 몰골이 조금도 두렵지 않은 듯 매괴는 두 손을 허리에 척 얹은 채 매섭게 흘겨보았다.
“당신은 주인님의 허락이 없으니 들어갈 수 없어요.”
“어, 어……!”
마석산이 말을 더듬다가 답답한지 제 가슴을 쿵쿵 두드리고 두위를 가리켰다. 가까이에서 보자 매괴는 훨씬 아름답고 매력적인 소녀였다.
그것이 마석산을 더욱 당황하게 했다. 그가 얼굴을 붉힌 채 발을 동동 구르는 모양이 재미있던지 매괴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어울리지 않게 재롱도 곧잘 떠는군요. 그러니까 꼭 이제 말을 배우는 아기 같아서 귀엽기도 한데?”
마석산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매괴가 안아주기라도 할 듯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자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던 마석산이 후닥닥 뛰어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숲 속으로 달려 들어가 버렸다.
매괴가 손가락질하며 더욱 큰 소리로 웃어댔다.
밖에서는 엉성해 보이던 초막이었는데 안에 들어서자 제법 아늑했다. 가운데 숯불이 이글거리는 화로가 있어서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백색의 얇은 휘장이 초막 한쪽을 가리고 있었고, 그 너머로 침상이 어른거려 보였다.
그 위에 한 사람이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휘장 때문에 흐릿한 형체만 분간할 수 있을 뿐 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두위라고 하오. 무슨 이유로 소생을 부른 건지 알고 싶소.”
한참이 지나도 상대로부터 아무런 말을 들을 수 없자 두위가 먼저 가볍게 포권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휘장 건너의 상대로부터는 대꾸가 없었다. 조금 더 기다리던 두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에 불쾌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사람을 불러놓고 이처럼 박대하다니…… 용건이 없다면 돌아가겠소.”
거친 손길로 옷자락을 턴 두위가 성큼 돌아섰다.
“거기 서요!”
그가 두어 걸음을 떼어놓자 비로소 휘장 뒤에서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였군?’
그 목소리가 짜랑짜랑한 젊은 여자의 것이었으므로 두위는 더욱 의아하게 여겼다.
매괴라는 소녀가 찾아오고, 초옥에 들어섰을 때부터 두위는 상대가 여자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것을 확인하자 곤란하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처럼 젊고 신비롭게 보이기를 원하는 여자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천천히 돌아서서 다시 휘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당신은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무사라지요?”
휘장 건너편에서 훨씬 가라앉은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의뢰를 하려고 해요. 당신이 그것을 잘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무슨 일이오?”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에요.”
제3장 또 다른 만남
“살인 청부?”
두위의 이마가 다시 찌푸려졌다.
돈을 받고 의뢰인을 위해 그가 원하는 일을 해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용된 무사로서 대신해 싸워주는 일이었지 이처럼 살인을 청부받아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찾아보면 살인을 전문으로 해주는 청부업자들이 있을 텐데?”
“나는 당신을 사고 싶어요.”
“허!”
두위가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휘장 뒤의 여인이 달래듯 차근차근하게 말했다.
“당신은 돈을 받고 의뢰인을 위해서 싸움을 하지요?”
“그렇소.”
“그것이 천륜에 어긋나고 인륜에 반하는 일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칼을 휘둘러 싸움터를 휘젓고 다닐 수 있지요?”
“그렇소.”
“그때 한 사람도 죽이지 않나요?”
두위는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의뢰인을 위해 대신 싸워준다지만 싸움에는 언제나 죽음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자신의 칼에 그렇게 죽은 자만도 벌써 십여 명이 넘었다.
두위가 대꾸하지 못하자 여인이 그것 보라는 듯 의기양양하여 다시 말했다.
“그렇게 살인을 하는 것과 한 사람을 지목해서 죽여달라는 청을 받고 그 일을 하는 것과 다를 게 뭐지요?”
“그게 누구요?”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해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길게 한숨을 쉰 두위가 쓸쓸한 어조로 물었다.
여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자신은 그래도 비열하게 자객 행각을 하는 살인 청부업자들과는 다르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이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침통해졌다.
어차피 돈에 팔려서 타인의 목숨을 빼앗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것이 드러내 놓고 하는 것과 어둠 속에 숨어서 은밀히 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결국은 같았던 것이다.
“당신의 말이 모두 옳으니 나는 거절할 수 없게 되었구려.”
“잘 생각했어요. 우선 청부의 대가를 지불하죠.”
휘장이 펄럭이더니 그 안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 한 개가 던져졌다. 손바닥에 내려앉는 무게가 묵직했다.
매듭을 풀고 기울이자 안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다섯 개의 구슬이 쏟아져 나왔다.
“아, 이것은, 이것은…….”
그것을 본 두위가 놀람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한 개의 크기가 잘 익은 호두알만한 그것은 두위 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보통의 물건이 아니었다.
“돈으로 바꾸면 그것 한 알이 황금 한 관의 값어치를 할 거예요. 일이 성사되고 나면 그만큼을 더 드리죠.”
대체 이처럼 귀한 것을 대가로 주고 목숨을 빼앗으려는 자가 누구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 두위가 갈라진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대체 누구의 목을 원하는 거요?”
“백운장주(白雲莊主) 이릉운(李凌雲).”
“아!”
휘장 안에서 들려온 싸늘한 말을 들은 두위가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