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우각(三佑角)을 떠난 두위와 마석산은 지름길을 잡아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밤을 새며 사흘을 꼬박 걸어 두 개의 산을 넘고 한 개의 큰 강을 건넜다. 이제 귀역까지는 이틀 길이 남았을 뿐이다.
그들의 눈앞에 제법 험해 보이는 준령(峻嶺)이 버티고 섰다. 형주산이었다.
공교롭게도 형주산은 삼우각과 귀역의 중간쯤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곳을 돌아가면 닷새 길이지만, 험하고 가파른 호음령(狐飮嶺)을 넘으면 이틀 길이다.
고개를 넘고 나면 여우도 지쳐서 헐떡거리며 목을 축인다고 해서 호음령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고개는 형주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산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밝은 낮에도 행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지금은 찬 새벽 안개가 숲을 적시며 천천히 흐르고 있는 이른 아침이었다.
어쩌면 아직 먹이를 얻지 못한 범과 늑대가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런 시간에 고개를 넘을 사람은 더더구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두위에게 그런 것은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잰걸음으로 경사가 심하고 굴곡진 능선 하나를 타넘은 두위가 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바위 하나를 가리켰다.
“좀 쉬었다 가자.”
령을 넘는 길은 어디나 울창한 수림으로 하늘이 가려져 있었다. 음침하고 적막한 것이 요괴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음산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
마석산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천성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싫어했다. 아니, 두려워했다.
바위에 맺혀 있는 이슬 방울들을 털어낸 두위가 옷이 젖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편하게 앉았다. 마석산이 엉덩이를 뭉기적거리며 바짝 붙어 앉았다.
“괜찮아. 날이 밝았는데도 출몰하는 요괴는 없다.”
“어, 어……!”
마석산이 짐짓 제 가슴을 두드리며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꺼려하고 주저하는 기색이 남아 있어서 두위는 웃고 말았다.
도끼 자루를 꼭 쥐고 있는 마석산을 바라보던 두위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행낭(行囊)을 풀어 술과 건포(乾脯)를 꺼냈다.
이른 아침 끼니로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주막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산중에서는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
딱딱한 그것을 시큼한 술에 적셔 우물거리자 입 안 가득 말린 쇠고기의 구수함과 주향(酒香)이 퍼져 제법 먹을 만했다. 건포는 오래 씹어야 한다.
침으로 천천히 녹이며 누글누글해질 때까지 씹고 또 씹어야 제 맛이 우러나는 것이다.
두어 조각의 건포를 씹어 넘긴 두위가 넓적한 바위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얼굴 위에 빼곡한 나뭇가지와 그 사이 사이로 조각나 보이는 새벽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아득해졌다.
‘내 아버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눈동자에 회한이 서려 흐려졌다. 제물로 지니고 갔던 건포를 씹고 있자니 문득 아버지가 떠오른 것이다.
어머니는 얼굴도 모른다. 사람을 알아볼 무렵부터 내내 아버지와 붙어 살았다.
“이놈아, 세상에 어미 없는 자식이 너 하나뿐인 줄 아느냐? 네놈은 아비라도 곁에 있어서 돌봐주니 다행인 줄 알아.”
소가죽을 벗기고 포를 떠내고 있는 아버지 곁에서 울며 묻자 이마를 쥐어박으며 그렇게 면박을 주던 시커먼 얼굴이 눈앞에 가득 다가왔다.
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네 엄마는 바람나서 낙양으로 달아났다. 자고로 반반한 계집은 꼴값을 하기 마련이지. 장가 놈이 언제던가 낙양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곳의 기루에서 네 엄마를 봤다더라. 히히, 의리 때문에 품어보지 못했다니 그놈도 착한 구석이 있는 놈이지.”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평화로운 한낮. 무료하게 망루를 지키던 술꾼 소팔에게 엉금엉금 기어 올라온 두위는 좋은 놀림감이었다.
그가 두위의 볼기를 두드리며 그렇게 놀렸다. 아직 어린 두위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지만 엄마와 자신을 놀리는 말이라는 것은 알았다.
대들다가 등짝을 맞은 두위는 울면서 아버지를 찾아 보(堡) 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개울가에서 멍석 위에 갓 잡은 커다란 소를 올려놓고 포를 떠내기에 여념이 없는 아버지를 찾았다.
햇빛이 쨍쨍한 여름 한낮이었다. 비린내를 맡은 쇠파리들이 윙윙거리며 수도 없이 달려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칼을 놀리는 아버지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화를 내자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섰다.
“내 이놈의 소팔, 이 개자식을!”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들이밀며 엄마를 찾아내라고 생때를 쓰던 끝에 소팔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숨을 씩씩거리며 듣고 있던 아버지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 눈빛에서 시퍼런 불길이 이는 듯했다.
주춤거리는 두위를 밀쳐 버린 아버지가 칼을 든 채 우르르 달려갔다.
그날 소팔은 아버지의 칼에 한 팔을 잃었다. 자칫 목이 달아날 뻔했으나 뒤따라 달려온 동료들이 기를 쓰고 막아준 결과였다.
아버지는 평소 온화하고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번 화가 나면 불 같았고 성난 물살 같았다.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의 성품을 물려받아서인지 두위 또한 스스로 화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한번 노기가 치솟으면 그 과격함을 자기 자신도 다스릴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 일로 소팔은 외팔이가 되어서 흑룡보를 떠나야 했다. 뒤에 들은 말로는 그때 보주가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며 은 다섯 관을 주었다니 먹고 살기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보 내의 형규(刑規) 대로라면 중벌을 받고 경문산(暻雯山)의 금광(金鑛)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삼 년간 노역을 해야 했다.
그러나 보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버지는 그로부터 삼 년 동안 보 내의 대장간에서 일을 했다.
물론 그 어떤 일보다 힘든 노동이었지만 아버지는 어린 두위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황소처럼 일했다.
보주가 아버지에게 그런 혜택을 준 것은 두위 때문이었다.
어린 것이 가족이라고는 하나뿐인 아버지와 떨어져 삼 년을 지낸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는 보주의 말에 형당을 책임지고 있는 최가려(崔加勵)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면 보주인 열화천도(熱火千刀) 채군걸(寀君傑)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두위가 어렸을 때부터 그를 무척 아끼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하긴, 자식이라고는 어린 딸 하나를 두었을 뿐인 보주에게 불알 달린 데다가 영특하기까지 한 두위는 부러움과 귀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당시 흑룡보 내에는 가족과 함께 기거하고 있는 무사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두위만큼 눈에 띄는 아들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채영경(菜玲璥)이라고 해.”
보주를 생각하자 문득 그녀의 그 음성이, 그 얼굴이 가슴 가득 떠올랐다.
그날 밤 어둠에 잠겨 있는 신당 안에서 열기로 뜨거워진 숨을 귓가에 불어대며 속삭이던 그녀. 꿀보다 더 달콤했고, 꿈속처럼 황홀했는가 하면, 온몸이 떨리던 두려움으로 정신을 잃어버렸던 그 밤의 기억이 이제는 싸한 아픔이 되어 가슴속으로 흘러내렸다.
‘잘 살고 있을 거다.’
그렇게 믿으며 애써 그녀의 음성을, 얼굴을 잊으려고 했다.
‘귀주(貴州)에 한번 다녀올까?’
문득 그런 충동이 들었다. 채 소저는 흑룡보가 멸문당하기 일 년 전에 귀주(貴州)의 검령산(黔靈山)으로 떠났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보주는 그 무렵 머지않아 흑룡보에 몰아닥칠 화를 예감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랬기에 채 소저가 떠난 후 자신마저 보를 떠나게 했던 것이리라.
‘나는 너무도 큰 신세를 졌다.’
두위는 보주를 떠올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일말의 자책감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보주로부터 잊을 수 없는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동안 내게서 기초가 되는 심법과 도법을 배웠으니 삼 년이면 충분할 게다. 가라. 가서 폐관하고 반드시 도법을 다 익힌 다음에 돌아와라.”
그날, 두위를 서재로 불러들인 열화천도(熱火千刀) 채군걸(寀君傑)은 엄숙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열여섯 난 두위의 가슴속에는 아직 채영경과의 이별이 커다란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
손수건을 떨구어주고 떠났던 그녀. 두텁게 쳐진 채 열릴 줄 모르던 그 마차의 휘장을 보며 얼마나 그녀를 원망했던가.
금지옥엽(金枝玉葉)을 떠나보낸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아서 보주는 다시 자신마저 내보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주가 건네준 서책을 받아 드는 두위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책에는 <선풍삼도주해(旋風三刀註解)>라는 글자가 아직 먹 빛도 마르지 않은 채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후에 강호인들이 혈마삼도(血魔三刀)로 부른 바로 그 도법의 주해서였다.
“어, 어째서 이것을 저에게…….”
믿을 수 없는 일에 두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도법이야말로 당시 무림에서 보주를 강호 십대고수 중 제일도객(第一刀客)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해준 절학 중의 절학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보주가 사제의 연도 맺지 않은 채 자신의 도법을 손수 적어서 전해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두위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명심해라. 이것을 다 익히기 전에는 결코 돌아와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근엄하게 말한 보주가 손을 내저었다.
“네 아비에게는 내가 따로 말해 주마. 지금 즉시 떠나라.”
그날 밤, 두위는 보주의 명을 받고 은밀하게 흑룡보를 떠났다. 삼우각 아래에서 괴괴한 적막에 잠겨 있는 흑룡보를 보며 두 번 절했다.
한 번은 하직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떠나온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고, 한 번은 자신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베풀어준 보주에게 비로소 올리는 절이었다.
그 길로 삼우각을 떠나 보주가 가르쳐 준 대로 청태산(靑太山) 금쇄곡(禽鎖谷)에 찾아들었다. 보를 떠난 지 꼭 두 달이 지나서였다.
‘내가 비동(秘洞)에 들었을 때 흑룡보는 불타고 있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고 두위는 가슴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걸 느꼈다. 그의 몽롱하게 가라앉았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삼 년 뒤 선풍삼도를 완전히 익히고 마지막 책장을 뜯어 삼킨 뒤 비동을 나왔을 때는 이제 나도 고수의 반열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세상을 모두 가진 듯 의기양양하기만 했다.
아버지가 평생 지녀왔던 꿈을 단번에 이룬 것이다.
가장 먼저 자랑하고 보여주어야 할 사람은 역시 아버지였다.
아버지 앞에서 도법을 뽐내 보이겠다는 생각 하나로 쉬지 않고 달려온 삼우각. 그러나 그 날카로운 바위 봉우리 아래에서 바라보았을 때 흑룡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보주가 자신에게 도법 주해서를 전해주었던 것은 그것이 단절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폐허가 된 흑룡보에 돌아오고 나서야 두위는 그때의 보주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위가 그 일을 생각하며 이를 가는데 마석산이 옆구리를 찔러댔다.
‘누가 온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두위는 마석산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참나무 숲이 꺾이는 곳이었다.
두런거리는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긴장한 마석산이 곁에 놓아두었던 도끼 자루를 움켜쥐었다.
“고개를 넘는 장사꾼들이겠지. 신경 쓸 거 없다.”
그러나 두위의 그런 짐작은 그가 독한 화주를 두어 모금 넘기고 인상을 찡그리는 것과 동시에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다.
“어?”
막 참나무 숲을 돌아 나온 자들 중 선두에 섰던 자가 두위와 마석산을 발견하고 의외라는 듯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우두머리인 듯 제법 깨끗한 옷을 입었고 매끄럽게 생긴 삼십 대의 장한이었다.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여섯 놈들은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에 거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 너머 산채에 있다는 산적 놈들이 분명했다.
두위의 눈빛이 심상치 않고 마석산의 모습이 더욱 괴이쩍게 보였던지 놈들은 선뜻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우리도 여기서 요기를 하고 쉬었다 가자.”
우두머리가 그렇게 말하고 두위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참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눈치를 보았다.
수하들이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포대 자루를 내팽개치듯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늘어진 포대 자루의 형체로 보아 그 안에 사람이 들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들이 그것을 힘들게 산 아래에서부터 지고 왔는지 궁금하기도 하련만 두위는 모르는 척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긴 탓이기도 했고, 옛 생각들로 심난해진 마음에 모든 것이 귀찮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둥글게 모여 앉은 놈들의 앞에는 금방 푸짐한 먹거리들이 넘쳐 났다. 바람에 실려오는 술 냄새는 향기로웠고 구운 오리 고기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린 야채와 볶은 쇠고기에 주먹밥까지 더해지자 마치 들놀이라도 나온 행락객들의 식사 채비인 듯 요란스러워졌다.
마석산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연신 군침을 삼켜댔다.
‘좀 나누어달라고 해볼까?’
두위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쓰게 웃어 보인 두위는 말없이 다시 한 조각의 건포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마석산이 떫은 얼굴로 독한 화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못마땅한 얼굴로 잔뜩 인상을 쓴 채 사내들을 흘끔흘끔 훔쳐보던 마석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포대 자루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안에서 미약한 신음 소리도 들렸다. 둔한 마석산은 그제야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들고 있던 술병을 두위에게 건네준 마석산이 성큼성큼 걸어서 포대 자루로 다가갔다.
그것을 본 우두머리 사내가 뜯고 있던 고깃점을 팽개치고 벌떡 일어섰다.
“너, 못생긴 곰 같은 놈아. 뭘 하려는 거지?”
“너, 이, 이, 이…… 이게…….”
뭐냐고 따져 물으려는 것이었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얼굴이 벌게진 채 씩씩거리는 마석산을 어리둥절하여 바라보던 사내들이 일제히 와, 하고 웃어댔다.
“저놈 좀 봐. 지 엄마를 부르는 데만 한나절이 걸리겠다.”
“어, 어, 엄마, 나 바, 바, 밥 주어…….”
한 놈이 마석산의 말투를 흉내 내어 떠듬거렸다. 마석산의 얼굴이 이제는 하얗게 탈색되었다.
“멍청한 놈들.”
그들의 하는 꼴을 바라보고 있던 두위가 혀를 찼다.
염라대왕의 콧수염을 잡아당기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놈들이 한편으로는 가엽기도 했던 것이다.
“우워억!”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마석산의 입에서 쩌르릉 울리는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 큰 몸집이 쿵쿵거리며 내닫는 것이 믿을 수 없도록 재빨랐다.
앞에서 방해가 되는 놈을 차버린 그가 자신의 말더듬이를 흉내 내던 자에게 달려들어 와락 멱살을 잡아챘다.
당황한 놈이 어, 어? 하고 새된 소리를 낼 뿐 어떻게 손써 볼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여느 장정들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덩치도 우람한 놈이었지만 마석산 앞에서는 어른에게 붙들린 작은 꼬마에 불과했다.
놈을 번쩍 들어 올려 머리 위에서 두어 바퀴 휘돌린 마석산이 힘껏 던져 버렸다.
퍽!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던져진 돌멩이처럼 날아간 놈이 아름드리 참나무 둥치에 머리를 처박았다.
잘 익은 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