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필 : 공작 부인의 은밀한 집필
작가 : 코딱지
작품등록일 : 2017.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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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작성일 : 17-07-15     조회 : 910     추천 : 2     분량 : 3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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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작가 필

 

 

 콰르르릉!

 “크아아아아악! 끅!”

 털썩.

 천둥소리와 맞물린 마물의 포효소리가 숨과 함께 멎었다. 검은 피를 흠뻑 뒤집어 쓴 레이던이 쓰러진 마물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바닥에 검을 던졌다. 마지막 한 마리였다. 하지만 레이던의 표정은 쉽게 풀어지지 못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이 지친 상태였다.

 “……드디어 끝이군.”

 회귀의 대가, 그녀를 살리기 위한 대가로 받은 마물 전멸이 드디어 끝이 났다. 레이던의 뒤로 천천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리턴 나이트 19권 끝-

 

 

  안녕하세요. feel입니다.

 저는 이번 권을 마지막으로 무기한 집필을 접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작가 feel

 

 

 

 "……뭐지?”

 

 끝인가? 이게?

 20권까지 나온다더니?

 성녀 엘리자베스는? 살린 건가? 다시 만난 건가?

 골드 드래곤과의 계약은 어떻게 됐지?

 그동안의 엘프 레고리아스의 떡밥 회수는?

 

 항상 여유로움을 달고 다니던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뻗는 콧대가 씰룩거렸다. 뭇 여성들을 홀렸던 눈은 혼란으로 인해 파르르 떨렸다.

 

 “아니! 결말을 말해주고 접든지 말든 해야 할 것 아니야! 망할 작가 같으니!”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집무 책상을 쾅! 내리쳤다. 검은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기고 금안을 희번덕이는 이 남자는 소뷔르 제국 황제의 셋째 동생 리바이어던 아르문트의 장남인 레사 공작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혼담이 들어올 정도로 매력적인 외모를 타고난 그는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며, 어딜 가든 과묵하고, 사촌인 황태자와 둘도 없는 벗으로 일 처리에도 전혀 흠이 없었다.

 

 이 차가운 얼음과도 같은 남자가 유독 관심과 집중을 주는 곳이 있었다. 그게 바로 제국의 가장 뜨겁다는 그 소설, <리턴 나이트> 시리즈를 볼 때 라는데. 시리즈를 모두 모은 것도 모자라 모두 고급 가죽으로 둘러 보관할 정도로 아끼고 있었다. 이번 19권도 나오자마자 비서인 데임을 시켜 사오게 했다. 일과를 마무리하고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읽고 있는데 마지막에 저런 작은 글귀로 레사를 혼란스럽게 했다.

 

 ‘완결이라는 말도 없이, 뚝 끝내서는 무기한 집필 중단? 중다안?’

 

 그는 몇 번이고 그 글귀를 노려보다 이내 책을 덮어버렸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유일했던 취미가 오늘로 무기한 중단되었다. 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각하.”

 “……왜.”

 

 한참 뒤, 문을 열고 들어온 데임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편지를 하나를 가지고 그의 앞까지 와 책상 위에 조심히 올려놓았다. 레사는 보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아 그냥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영감이 또 시작했군.”

 “이번엔 정말이시랍니다.”

 

 레사는 책상 위에 올려둔 편지를 뚱하니 바라보다 손으로 집어 봉투에서 꺼냈다. 여는 순간 어제까지 건강했던 아버지가 몸져누워 빨리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빽빽하게 적혀있을 것이다. 1초도 안 되어 편지를 여니 역시나 같은 레퍼토리였다.

 

 저번엔 기침이 너무 심해 피가 나올 것 같고, 열이 펄펄 끓어 도저히 손을 얹을 수 없다고 쓰여 있었다. 이번엔 간지러움이 도가 지나쳐 잠을 이를 수가 없고, 온몸이 붉게 올라와 밖을 나갈 수도 없다고 되어 있었다. 이번엔 가나보다고,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새빨간 거짓말이 가득했다.

 

 “저번엔 감기더니, 이번에는 벌레가 물리셨군. 다음번엔 역병이 돌아서 가문이 정·말 큰일 나겠어.”

 

 데임이 레사의 빈정거림을 들으며 숨죽여 웃었다. 안 그래도 본가에서 편지를 받을 때 이미 리바이어던 선대 공작을 직접 보고 온 터였다. 껄껄 웃으면서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 그저 부자간의 장난으로 보였다.

 

 “말씀을 하나 더 남기시긴 하셨는데…….”

 “왜, 이번엔 너무 많이 주무셔서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던가?”

 “그게 아니고, 이번 해에 안 하면 직접 고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덧붙여 마을에 참한 과부가 하나 있다고…….”

 

 데임은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그제야 레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 걱정 없이 해변에서 편안히 지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편히 지내고 계시면서 잔소리가 심하시군.”

 “아무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으시니 걱정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결혼 따위 귀찮기만 할 뿐.”

 “당장 연애부터 시작하신다면 기다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니면 손주부터 데려와도 괜찮다고…….”

 “네 속마음을 말하는 건 아니고?”

 “……철야만 하지 않는다면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

 

 야근은 매일 하니까요.

 뒷말을 숨겼지만, 그 속내까지 다 파악한 레사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할 때가 됐긴 했지.”

 

 공작 작위를 물려받은 지 어느덧 일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리가 그냥 자리가 아닌 만큼 그도 점점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하지만 그나마 연회나 무도회도 벗인 황태자 손에 이끌려 꾸역꾸역 나가고 있는 저로서는 여자와 말을 섞는 건 꽤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에너지소모라고만 치부됐다. 그 에너지로 일을 더 하거나, 운동 또는 책을 읽는 것이 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점점 생각을 바꿔야 할 때인 것 같다.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고, 취미 생활을 건들지 않으며, 애정을 바라지 않고, 알아서 잘해나갈 아내를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인데……다시 한번 레사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여인이 있을 리 없지…….”

 

 ***

 

 ‘이제 더 늦기 전에 사교계에 발이라도 들여놓는 연습을 하렴. 가문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줄 테니. 그때 까진 금지다. 네가 후원하던 보육원은 가문에서 돕도록 하마.’

 

 “하아……자유는 무슨. 평생 남편 뒷바라지를 하라는 거지 그게 무슨 자유야.”

 

 반투명한 커튼 사이로 햇빛이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새하얗고 하늘하늘한 천이 흘러내리는 캐노피 침대는 그녀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순전히 어머니의 취향으로 딸이 여성스럽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침대 위에는 옅은 분홍빛이 감도는 풍성하고 밝은 금발이 베개를 베고서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장미 잎사귀 같은 눈동자가 샹들리에에 머물렀다. 눈을 뜬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잠이 달아나지 않아 계속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어느 정도 잠이 깨자 엘리샤가 벌떡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전혀 여성스럽지 못하게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거친 손길에 가뜩이나 흐트러진 머리가 벼락 맞은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유일한 취미가 벽에 막혔다. 한 달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하니 답답해서 밤새 머리를 쥐어뜯다가 아침에서야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정오가 훌쩍 지나있었다.

 

 시녀 릴리가 기다린 듯 익숙하게 간단한 끼니를 준비해 방으로 들어왔다. 보통은 아침에 목욕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식당에 내려가 식사 예절에 맞추어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게, 보통의 영애들이지만 오히려 그녀는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더 드물었다. 밤새는 일도 많았으니까.

 

 오늘은 릴리가 그녀의 기분을 맞춰준다고, 또 삶은 고기를 얹은 샐러드를 가져온 모양이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가 좋아하는 고기의 고소한 냄새와 새콤한 레몬 소스 냄새가 풍겼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어머니는?”

 “내일부터는 제대로 예법교육을 받으라고 하고 나가셨어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고요. 오늘까지만 낮잠을 봐주신대요.”

 “끄응.”

 

 달이 휘영청 떠야 글이 써지는데. 아아, 나 이제 글 못 쓰지.

 어차피 써도 이젠 출간도 하지 못한다. 출판사에 글을 내놓는 순간 머리채가 잡힐지도 모르니. 아직 마지막 결말을 다 쓰지 못했는데. 독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화를 내고 있을 텐데. 눈앞이 캄캄했다. 그나마 인세로 후원하던 보육원은 가문에서 돕기로 했으니 다행이지만.

 

 ‘내 유일한 낙을 건들지 않고, 귀찮게 하지 않고, 알아서 잘 해나가는 남편감 어디 없나.’

 

 하아.

 엘리샤의 입에서 계속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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