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편의공작대(便衣工作隊) 5
분대용 포터블 무전기 RPC-77은 벙커에 두고 PRC트랜시버를 백윤철 일병에게 메게 한 이광이 정찰을 나갔다. 공비를 사살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오전, 이틀째 되는 날에 양만호 병장이 휴가를 갔으므로 분대원은 7명 남았다. 벙커를 지키고 있는 상급자는 경기관총 사수 조백진 상병이다. 아래쪽으로 2킬로쯤 내려갔더니 긴 안테나를 달았는데도 PRC가 찍찍거렸다. 오전 9시 반쯤 되었다.
“시발, 이거 왜 이래?”
핸드세트를 귀에 붙인 이광이 투덜거렸을 때 고장남의 목소리가 울렸다.
“분대장, 소대본부에서 보충병 둘을 보냈답니다. 서 상병이 인솔하고 B-17지점까지 온다는데요.”
“그래? 잘됐다.”
두 명이 오면 총원 9명이 된다. 지금도 2명 1개 조로 매복을 해야 되는데 인원이 없어서 1명씩 나갈 때도 있다.
“내가 B-17로 가지, 언제 떠났다는 거냐?”
“두 시간 전에 떠났다니까 30분쯤 후면 B-17에 도착할 겁니다.”
“알았어.”
통신을 끈 이광이 방향을 바꿔 골짜기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B-17지점은 바로 화전민 4가구가 있는 마을이다.
“내가 제대할 것에 대비해서 보충병을 하나 더 보내는구만.”
앞장서 걸으면서 이광이 말했다.
“오랜만에 졸병들이 오는군요.”
백윤철은 신바람이 나는 표정이다. 22세, 입대 17개월, 분대원 중 서열이 밑에서 두 번째니 반가울 만했다. 1킬로쯤 더 내려가자 이제 PRC는 먹통이 되어서 분대하고 통신이 되지 않았다. PRC트랜시버는 긴 안테나 장착 시 통신 거리가 3킬로까지 되지만 넘은 것 같다.
화전민 가구는 두 집에 노인 부부가 살고 나머지 두 집은 할머니뿐인데 그중 한집에 도시여자가 있다고 했다. 맨 윗집이다. 양만호가 하도 노래를 불러서 앞장선 백윤철이 집 앞을 지나면서 힐끗거렸다.
그때 이광은 집 옆쪽 산비탈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았다. 소나무 둥치에 기대앉아 있어서 얼른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걸음을 멈춘 이광이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직선거리는 5미터 정도, 여자도 이광을 내려다본다. 흰 얼굴, 단발머리, 검정색 스웨터를 입고 있어서 얼굴이 더 희게 보이는 것 같다. 곧은 콧날, 맑은 눈, 입술은 꾹 다물었고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쥔 자세다. 시선이 마주쳤어도 여자는 눈도 깜박이지 않았으므로 이광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기 사십니까?”
“네.”
맑은 목소리, 그때는 백윤철도 이광 뒤에 붙어서 있다. 이광이 다시 물었다.
“서울서 오셨다구요?”
“네.”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이었지만 대답은 바로 한다. 이광이 산비탈로 바짝 다가가 섰다. 거리가 4미터쯤으로 가까워졌다.
“며칠 전 총소리 들으셨지요?”
“네.”
“헬리콥터 오는 것도 보았지요?”
“네.”
“공비 잡았다는 뉴스 봤습니까?”
“방송 들었어요.”
“그거, 우리가 잡은 겁니다.”
“네.”
“공비 둘이 이쪽으로 내려왔을 겁니다. 우리가 잡지 않았다면요.”
“네.”
“난 이광이라고 저기 위쪽 벙커 사령관이죠, 군복을 입지 않은 건 우리가 편의공작대라 그래요.”
“알아요.”
“이름이 뭡니까?”
“아셔서 뭐하게요?”
“사귀려고 그럽니다.”
그러자 여자가 처음으로 얼굴에 변화가 일어났다. 픽 웃은 것이다.
“저 봐, 처음으로 웃는군요.”
이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좀 사귑시다.”
“조금요?”
“많이 사귀어도 좋고.”
“아까 사령관이라고 했어요?”
“그래요.”
“계급이 뭔데요?”
“대위.”
“거짓말.”
그때 뒤에서 백윤철이 말했다.
“분대장님, 저기 보충병이 옵니다.”
이광이 머리를 돌렸을 때 여자가 물었다.
“분대장이 대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