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편의공작대(便衣工作隊) 8
인간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일상생활을 한다. 그 일상(日常)생활이란 것은 날마다 하는 일, 항상 하는 일을 말한다. 먹고, 자고, 싸고, 생각하고 욕구까지 발산하는 일. 이광이 편의공작대 생활을 해오면서 느낀 것이 그것이다. 느꼈다기보다 몸에 배어들었다고 봐야 옳다. 편의공작대 생활이란 군복 대신으로 군에서 던져준 사복- 그것이 미제(Made in USA)사복이 많았다. -을 입고 분대별로 벙커에 떨어져서 만날 까마귀 사냥이나 하고 가끔 내려오는 공비를 쏴서 잡는 한가한 생활이 아니다.
그 일상(日常)을 실제로 설명하면 주, 부식이 쌀과 보리가 절반씩 섞인 잡곡밥, 된장과 거의 흰색인 김치, 일주일에 한 번 지급되는 1인당 닭 반마리를 먹고 하루 12시간씩 흙과 돌로 만든 매복 초소에 쪼그리고 앉아 감시를 하며 벙커는 바닥에 마른풀과 농가에서 얻어온 짚, 그 위에 모포를 깔아 추위를 막았다.
바깥소식은 1주일에 한 번씩 소대에서 주, 부식 수령을 해올 때 들었으며 생리적인 욕구는 숲 속에 들어가거나 벙커에 혼자 있을 때 해결했다. 대부분 1년 가깝게 휴가를 못 갔으며 가족 만난 적도 없다. 그것이 군바리 일상이다. 그런데도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싸고, 자고, 그리고 국방의 의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끼는 M-1소총을 버릇처럼 분해해서 닦던 이광이 신병 고춘식을 보았다. 오후 12시 반, 고춘식은 매복을 마치고 돌아와 휴식 중이다. 다시 오늘 밤 12시부터 12시간 동안 매복을 나가야 한다.
“야, 너 누구한테 맞은 적 있어?”
이광이 묻자 고춘식이 벌떡 상반신을 세웠다.
“옛, 이병 고춘식! 없습니다!”
“관등성명 빼.”
“옛!”
“여긴 때리는 놈은 없다.”
M-1을 결합하면서 이광이 말을 이었다.
“난 졸병 때 존나 맞았지, 시발놈들이 번갈아서 치더만.”
“옛!”
“대답하지 마.”
결합한 M-1의 방아쇠를 당겨보면서 이광이 말을 이었다.
“그중에 악질이 하나 있었지, 사회에서 자전거포 하던 놈인데 병신같이 생긴 놈이 아주 악랄했다. 내 밥에 침을 뱉고 잘 닦아놓은 군화에 오줌을 싼 놈이었지.”
“…….”
“내가 일병 때야, 그놈은 병장 고참이었고.”
벙커 안에는 조백진과 백윤철까지 넷이 있었다. 그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M-1을 세워놓은 이광이 셋을 둘러보고 웃었다.
“내가 그놈하고 둘이 사역을 갔는데 그때 팼다. 아주 절반은 죽였지.”
모두 숨을 죽였고 이광의 말이 이어졌다.
“2년 반 전이구만, 그놈은 갈비뼈 넷이 나갔고 이가 세 개 부러졌어, 코도 뭉개져서 반은 죽었지. 나중에는 살려달라면서 두 손으로 비비면서 울더구만.”
“…….”
“그놈 제대 3개월쯤 남았을 때야, 지금 나하고 비슷했을 때다.”
눈을 가늘게 뜬 이광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때 선임하사가 하사 말년으로 제1분대장 이었을 때야, 나는 2분대 졸자였고.”
“…….”
“선임하사한테 현장을 들켜버렸다. 취사장서 나오다가 본 거야, 그놈은 엎어져 있고 내가 밟고서 가는 장면을 본 것이지.”
이제 조백진과 백윤철이 바짝 다가앉았다. 선임하사 강동수까지 연루된 사건인 것이다. 둘의 시선을 받은 이광이 빙그레 웃었다.
“선임하사가 못 본 척하더니 나를 부르더구만, 그리고 뭐라고 한 줄 아냐?”
“뭐라고 했는데요?”
조백진이 묻자 이광의 시선이 고춘식에게로 옮겨졌다.
“뭐라고 했겠냐?”
“모르겠습니다.”
고춘식이 눈을 크게 뜬 채 대답하자 이광이 쓴웃음을 지었다.
“졸병한테 맞는 놈은 군인이 아니다. 그러더군, 힘이 없으면 짬밥으로라도 눌러야 된다고.”
세 쌍의 시선을 받은 이광이 말을 이었다.
“그놈은 제 입으로 골짜기에서 떨어졌다고 하고 육군 병원에 있다가 제대했어.”
“그렇군요.”
조백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선임하사님이 분대장님을 봐주셨군요.”
“얀마, 봐준 건 없다. 나한테 자꾸 말뚝박으라고 한 것밖에, 3사관학교 가라고도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