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편의공작대(便衣工作隊) 14
“저놈한테 실탄 지급은 하지 마.”
조영관이 군장을 꾸릴 때 이광을 막사 옆으로 불러낸 강동수가 말했다.
“총은 지급했지만 탄약고 근처에는 접근시키지 마.”
“아, 그럼 영창에 넣지 왜 내놓은 겁니까?”
“글쎄 말이다. 제대를 시키든지 했어야지, 시발놈들이.”
건성으로 투덜거린 강동수가 이광의 어깨를 툭툭 쳤다.
“석 달도 안 남았잖아? 부탁한다.”
“시발, 골치 아픈 건 다 나한테 넘기고.”
“앞으로 1분대 부탁은 다 들어줄게. 주부식은 최우선으로 정량보다 5인분은 더 지급하마, 그건 내가 보장한다.“
“선임하사님도 상사 달고 나서 더 얄팍해지셨습니다.”
“야, 이 새꺄.”
“저놈, 내가 쏴 죽여도 되지요?”
그 순간 숨을 들이켠 강동수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정당방위라면.”
몸을 돌린 이광이 조영관에게 갔더니 마침 군장을 이끌고 일어서는 참이다. 그런데 조영관의 화기도 M-1이다. 요즘은 M-2 자동카빈이 편의공작대용으로 지급되었고 신형 무기인 M-16이 월남전 여파로 한국군에도 지급되기 시작된 시기다. M-1은 유효사거리가 3백 미터나 되어서 저격용으로 일부만 지급된 상태다.
중대본부에서 조영관에게는 일반화기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광의 1분대에도 M-1 소지자는 이광뿐이다. 그래서 M-1 실탄은 이광이 따로 관리했는데 M-2카빈과는 실탄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둘러 소대본부를 떠난 둘이 골짜기 입구로 들어섰을 때는 2시간 후인 오후 3시 반 무렵이다. 이제 분대 벙커까지는 3킬로 남짓, 골짜기를 올라가야 한다. 이곳까지 10킬로 가까운 거리를 걸어오는 동안 둘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광이 앞장을 섰고 조영관이 잠자코 뒤를 따라온 것이다. 골짜기로 들어선 이광이 앞쪽을 둘러보다가 문득 머리를 돌려 조영관을 보았다.
“너, 나, 없애고 싶어?”
영문을 모르는 듯 조영관의 이맛살이 좁혀졌고 작은 눈이 더 가늘어졌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다시 발을 뗀 이광이 말을 이었다.
“날 없애고 도망치려면 이곳이 적당해,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북쪽은 아군 벙커로 꽉 막혀 있어서 안 돼, 공비로 오인해서 사살될 거다. 그러니까 여기서 저쪽으로 나가면 돼.”
멈춰선 이광이 골짜기 입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제 입구까지는 3백여 미터 거리다. 이광이 눈만 끔벅이는 조영관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냥 도망가라고 할 수는 없고 날 쏴 죽이고 가라, 물론 나도 쏴야겠지, 그러니까 이곳에서 결판을 내잔 말이다.”
이광이 탄띠에서 M-1 탄창 1클립을 빼내 조영관 앞으로 던졌다. 8발이 끼워진 클립이 조영관 발 앞에 떨어졌다.
“자, 그걸 탄창에 넣어라.”
어깨에 멘 M-1을 앞에 총 자세로 쥔 이광이 몸을 돌려 골짜기 입구로 되돌아가면서 말했다.
“거리가 1백 미터로 되었을 때 시작하는 거야, 서로 맞쏴서 죽이는 놈이 이 골짜기를 나가든가 혼자 들어가든가 하는 것이지.”
10보쯤 거리에서 멈춰선 이광이 몸을 돌려 조영관을 보았다.
“난 네가 또 탈영하려고 날 죽이려고 해서 쏴 죽였다고 할 거야, 그리고 너는 날 쏘면 내 주머니에 돈 1만 원쯤 있어, 그걸 꺼내갖고 도망가.”
몸을 돌린 이광이 이제는 뛰면서 소리쳤다.
“비겁하게 등에 대고 쏘지 마라! 1백 미터 거리에서 시작이다!”
1백 미터는 봐두었다. 커다란 바위다. 바위까지 다가간 이광이 바로 몸을 엄폐하고는 M-1을 겨누었다. 1백 미터 거리에 조영관이 서 있었는데 엉거주춤한 자세다. 숨을 고른 이광이 M-1을 겨누었다. 20일 전에 공비를 쏘았을 때보다 과녁이 더 확실했다. 이 거리에서는 10발 9중이다. 심호흡을 한 이광이 조영관이 머리를 든 순간에 방아쇠를 당겼다.
“꽝!”
M-1의 발사음은 굉장하다. 개머리판이 어깨에 충격을 주었고 총구가 흔들렸지만 총탄이 조영관 옆쪽 20센티 거리의 바위에 맞아 튀었다. 그때 조영관이 M-1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항복! 항복! 항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