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편의공작대(便衣工作隊) 21
소대장이 갈렸다. 전임 소대장은 서울 육군본부로 전출되었고 신임으로 이번에는 3사 출신 소대장이 부임했다.
통신병들은 자주 저희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았는데 고장남의 보고에 의하면 신임 소대장은 21세, 고졸 후 3사에 들어가 2년 교육을 마치고 소위가 된 지 5개월째, 성질이 지랄이어서 소대본부에 온 지 5일밖에 안 되었는데 ‘비상’을 다섯 번 걸었고 ‘완전군장’ 행군을 세 번이나 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각분대 벙커 순시다. 하루에 한 곳씩 순시를 한다고 일정을 통보했는데 이광의 1소대 3분대, 즉 고구마3은 사흘째 되는 날 순시 계획에 잡혔다. 그것이 이제 내일로 다가온 날 저녁.
“오늘 2분대도 ‘분대공격’을 두 번 했다고 합니다.”
통신병 고장남이 벙커 안에서 말했다. 주위에는 분대원 넷이 둘러앉았는데 모두 가라앉은 분위기다.
“근무자도 모두 집합시켜서 4시간 동안 3백고지를 두 번 올라갔다는 겁니다.”
‘분대공격’은 분대원 9명이 횡대를 벌려 서서 고지를 공격하는 훈련이다. 말이 횡대로 고지 공격이지 강원도 산이 오죽 험한가? 앞에 절벽이 있으면 기어올라야 하고 벼랑이 있으면 건너야 한다. 그래야 열이 흩어지지 않는다. 험하다고 종대로 서면 ‘전멸’이다. 따라서 산속에서의 ‘분대공격’ 훈련은 가장 혹독한 기합이나 같다. 그런데 신임 소대장은 벙커 순시할 때 ‘분대공격’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1분대는 2번, 오늘 2분대도 2번을 시켰다.
“시발, 여기서 ‘분대공격’을 하면 ‘죽음’인데 좃까는군.”
부분대장 양만호가 대놓고 투덜거렸다. 이곳 고구마3의 위치는 가장 험한 지역이다. 그래서 사방 어떤 고지를 향해 ‘분대공격’을 해도 그야말로 ‘똥’을 싸면서 올라가야만 한다. 6, 7백 고지들인 데다 산이 험했기 때문이다. ‘분대공격’은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이 불문율인 것이다. 이광이 가만있었더니 양만호가 다시 불평을 했다.
“지난번 농땡이 소대장 놈이 차라리 낫구만, 이건 셋째 동생뻘 같은 놈이 소대장으로 와서 군기 잡으려고 개지랄이야?”
“시끄러, 인마.”
말을 막은 이광이 분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내일 열외자 없다. 알아들어?”
“예.”
모두 대답은 했지만 분위기는 무겁다. 다음날 오전 10시, 신임 소대장 최용식이 벙커 앞에 집합한 분대원들을 둘러보며 서 있다. 벙커 감시도 남겨놓지 않고 9명 전원이 모인 것이다. 최용식은 건장한 체격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고 입은 꾹 닫혀졌다. 편의공작대여서 소대장도 사복 차림이었는데 미제 작업복 바지에 점퍼를 입었다. 명동에서 놀다 온 부잣집 아들 같다. 그러나 어깨에는 M-2카빈 소총을 메었고 허리에는 권총까지 찼다.
머리에 카우보이모자를 쓰면 어울릴 것 같다. 최용식이 이광의 집합 보고를 듣더니 대뜸 뒤쪽 산을 가리켰다. 3면이 산으로 싸였지만 뒤쪽이 가장 험하고 높다. 750고지다.
“지금부터 분대공격이다.”
최용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골짜기를 울렸다.
“나도 참가한다. 분대장, 분대공격 준비.”
“준비!”
복창한 이광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분대원을 돌아보았다.
“분대공격 대형으로!”
그러자 9명이 뒤쪽 산을 향해 횡대로 펼쳐졌다. 분대장, 1번 소총수, 2번, 3번, 4번, 5번 유탄발사기 사수, 6번 AR자동소총 사수, 부사수, 그리고 부분대장 순서다. 그때 소대장이 이광 왼쪽에 붙었으므로 공격대는 10명이 되었다.
M-2카빈 소총을 앞에 총 자세로 쥔 소대장이 느긋한 표정으로 이광을 보았다.
“공격!”
“분대공격!”
복창한 이광이 앞에 총 자세로 앞으로 나아갔다. 횡대로 벌려선 각 분대원과의 거리는 10미터 정도, 끝에서 끝까지는 1백 미터가 되겠지만 그것은 평지에서의 경우다. 가파르고 험한 산에서는 2, 3미터로 좁혀질 수도 있고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때 최용식이 소리쳤다.
“구보!”
달리라는 말이다. 산에서 달려? 숨을 들이켰던 이광이 이를 악물었다가 복창했다.
“구보!”
분대원들이 산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