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편의공작대(便衣工作隊) 23
“야, 총 내려놔!”
이광이 버럭 소리치자 조영관이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어깨를 부풀렸지만 경솔하게 총구를 이광에게 돌리지는 않았다. 그때 이광이 다시 소리쳤다.
“이 새끼! 또 정신병이 발작한 모양이네! 할아버지! 총 내려요!”
그때 눈을 치켜떴던 조영관이 M-1을 땅바닥에 던졌다.
“어, 내 손주가 여기 웬일이냐!”
“할아버지 만나러 왔지요.”
씹어뱉듯이 말한 이광이 머리를 돌려 고장남, 백윤철, 허상도를 보았다. 그들 뒤에 AR자동소총 사수 조백진까지 와있었다.
“야, 너희들, 할아버지 데리고 내려가!”
버럭 소리치면서 이광이 커다랗게 눈을 끔벅였다. 아예 두 눈을 치켜떴다가 감는 것을 두 번이나 한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눈치 빠른 고장남이 소리치더니 곧 셋이 조영관에게 달려들었다.
“할아버지, 갑시다!”
고장남이 소리치면서 한쪽 팔을 잡았고 허상도가 다른 쪽 팔을 쥐었다. 백윤철이 조영관이 떨어뜨린 M-1을 잡더니 어깨에 걸쳐 메었다. 모두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아직도 가쁜 숨을 뱉고 있다. 그때 이광이 숲 속에 대고 소리쳤다.
“모두 벙커로 철수! 난 소대장님하고 좀 있다 내려간다!”
“옛!”
누군가 숲 속에서 대답했고 곧 산 중턱에 정적이 덮여졌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이광이 최용식을 보았다. 최용식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M-2카빈을 집어 들고 있었는데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맛살을 찌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눈동자의 초점이 멀다. 얼굴은 누렇게 굳어졌고 입술은 꾹 닫혀졌다.
이런 일은 상상한 적도 들은 적도 없을 것이다. 2년 동안 장교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부딪치는 상황은 다르다. 이광이 최용식 앞으로 다가가 섰다.
“조영관은 가끔 정신착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는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지요, 남한산성에서 3년이나 있었으니까요.”
최용식은 이광의 가슴께에 시선을 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도 가끔 저한테 달려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제가 쏴 죽일 뻔했지요.”
“…….”
“그 전날에는 제가 총에 맞을 뻔했구요.”
“…….”
“나이가 서른여섯입니다. 무학이구요, 교대자 이름도 못 읽어서 자는 분대원을 깨워서 읽어달라고 해야 됩니다.”
“…….”
“그래놓고 바로 잊어버리지요, 저런 놈을 보낸 육본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하사.”
최용식이 불렀으므로 이광이 시선을 주었다. 그때서야 눈동자의 초점을 맞춘 최용식이 이광을 똑바로 보았다. 눈이 맑았으므로 이광이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 하면 되지?”
그 순간 이광이 다시 긴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미친놈을 보낸 육군본부 책임이죠, 소대장님은 없던 일로 하시는 게 나을 것입니다.”
“…….”
“저 미친놈도 곧 잊어버릴 테니까요, 분대원들이 미친놈이 소동을 부렸다고 소문낼 일도 없습니다.”
“…….”
“그랬다간 제가 죽여버릴 테니까요.”
“…….”
“만일 이 사건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항명이니 뭐니 해서 소대장님 고과에 불이익이 올 겁니다. 높은 놈들은 무조건 지휘관 책임으로 몰아붙이니까요.”
“…….”
“소대장님 경력에 흠집이 나면 되겠습니까? 저한테 맡겨 주시지요.”
“선임하사가 그러더구만.”
어깨를 늘어뜨린 최용식의 목소리가 더 가라앉았다. 이광을 보는 눈빛도 부드럽다.
“이 하사가 믿을 만한 분대장이라고 말야.”
“저 60일 남았습니다. 소대장님.”
“나하고 더 오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아이구, 그런 말씀 마십시오.”
최용식이 산 아래로 발을 떼었으므로 이광이 옆을 따르면서 말을 이었다.
“저 영감, 앞으로 두 번 다시 소대장님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구요.”
최용식은 대답하지 않았고 이광은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10년 감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