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조국을 위하여, 아모르파티
작가 : 아강
작품등록일 : 201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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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작성일 : 17-06-18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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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기까지 들어올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그는 쫄딱 젖어버린 나를 데리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내 방안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담이와 함께 지내던 곳이었다. 아직도 이 안에는 담의 흔적들이 남겨져 있었다. 아주 고스란히, 고여 있는 냄새까지도.

  “아버지를 뵈러 오신 건가요?”

  “처음엔 그러려고 했지. 근데 네가 날 여기로 데려왔잖아.”

  폭우처럼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처음 보는 남자의 품에 안겨 얼마나 서글프게 울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낯부끄러웠다. 겨우 울음을 그친 뒤에는 어린 소녀라도 된 양 그의 소매를 붙들고 방안까지 데려와 버렸다. 그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버지랑 둘이 사나?”

  그는 방안을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그다지 좁진 않았지만 황량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주변을 관찰하는 건 그의 습관인 듯 했다. 나는 울음이 진정되고 이성을 되찾으면서부터 그의 빠른 눈동자 놀림을 줄곧 의식하고 있었다.

  “네. 그마저도 장님이세요.”

  “그건 이미 알고 있어.”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방안에 널브러져있던 뻣뻣한 천을 집어 들었다.

  “머리를 좀 말리는 게 어때.”

  그러곤 무심히 내 머리 위에 마른 천을 얹고 직접 털어 줘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것까진 됐어요.”

  나는 그에게서 한걸음 물러나 머리에 남은 물기를 털어냈다. 고개를 푹 숙인 내 시야에 보이는 거라곤 낯설면서 익숙한 큰 발이었다. 발 모양이 꼭 용이 오라비처럼 길쭉하게 잘 빠져있었다.

  “이건 어릴 때 사진인가?”

  대뜸 질문을 던져오는 그의 말에, 나는 죄를 짓기라도 한 양 얼른 발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는 책상 한구석에 박혀있는 아주 오래된 사진을 보고 있었다. 용이 오라비가 양 옆에 우리들을 두고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하필 그 사진을 찍을 때 쯤 앞니가 빠져서 더 개구진 웃음을 띠고 있었다.

  “정말 담이랑 빼닮았군.”

  그는 사진 앞에서 아주 오랫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사진 속의 어떤 사람에게 그리도 슬픈 시선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굳게 다물어진 그의 입술은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담이는 제 쌍둥이 동생이었어요.”

  나는 왠지 나와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을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되는 대로 입 밖에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는 것이 담이의 얘기였다.

  “네 가족에 관한 건 잘 알고 있어. 이래 뵈도 같이 지낸 세월이 꽤 되거든.”

  그래서 그런가, 그가 영 낯설지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형제들의 이름이 너무나 익숙하게 들리는 탓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름을 부르고 지내던 벗들 같았다.

  “담이가 좀 더 인상이 짙은가?”

  “그런 편이에요. 담이는 어릴 때부터 장군감이라고 놀림 받았거든요. 저랑 얼굴은 똑같은데 말예요. 신기하죠? 저는 한 번도 그런 소릴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사진으로 볼 땐 이렇게 똑같은데…….”

  그는 나를 좀 더 뚫어져라 쳐다봤다.

  “실제로 네 얼굴을 보고 나니까 그다지 닮지 않은 것도 같군.”

  그러곤 나와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시선을 거뒀다.

  “나도 이렇게 사진 좀 많이 남겨 놓을 걸 그랬어.”

  나는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대었다. 물어볼 것은 이쪽이 더 많은데, 오히려 내가 그와 상대해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아이 눈에는 힘이 있었거든. 참 맑았지.”

  그는 이 말을 하며 슬프게 웃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표정에는 명백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짓는 그런 웃음. 나는 그의 얼굴에 피었던 일순간의 열꽃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그것이 담이를 향한 것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나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사진을 다시 가져와 손에 쥐며 말했다.

  “저희 가족이랑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그는 빼앗긴 사진에 오래도록 시선을 머물지 않았다.

  “알아서 뭐하게. 그냥 옛 친구야.”

  “거짓말. 오늘 내 앞에 처음 나타난 거면서 어떻게 ‘옛’ 친구씩이나 돼요. 담이랑도 안면이 있는 것 같은데.”

  그는 굳이 내 말에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답답한 가슴만 쳐야했다.

  “내 형제들이 죽었어요. 그 쪽은 알고 있죠? 울 오라비랑 담이가 왜 죽었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 말예요.”

  이번에도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제발 대답해 주세요.”

  그친 줄만 알았던 눈물이 또다시 뚝뚝 흘려 내렸다. 내 눈은 이미 부을 대로 부어,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눈꺼풀이 따끔거렸다. 보나마나 빨갛게 상기된 내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을 것이다.

  “당신이 오늘 같은 날 이 집에 발을 들였다면 적어도 그런 것쯤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난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단지 네 오빠와 동생은 형무소에서 죽었고, 나는 용이의 부탁대로 이 집에 온 것뿐이다.”

  “왜 우리 집에 찾아왔어요? 오라비랑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혼자 얼마나 울고 있을지 궁금해서 보러왔어요? 아님, 혼자서 얼마나 오래 버틸지 세어보려고 구경 온 거예요?”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잖아.”

  “난 한 번도 오빠가 무엇을 하는지, 담이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해본 적 없어요.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강한 사람들이니까 분명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그게 나쁘거나 천한 일은 아니겠지, 하고 지레 짐작했거든요.”

  내 얼굴은 이미 눈물 콧물로 얼룩져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근데 이게 뭐야……. 감옥이라니……감옥에서 죽었다니……. 그곳이 얼마나 무섭고 쓸쓸한 곳인데……. 어떻게 그런 곳에서 죽게 내버려 뒀어요…….”

  나는 기어코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왜놈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먹을 게 없어 하루 종일 쫄쫄 굶어야 했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지독한 절망이었다.

  바닥에 닿은 이마는 아프도록 시렸다. 울음소릴 내려 입을 벌리면 탁하고 끈적거리는 침이 떨어졌고, 콧물은 이미 눈물과 섞여 제대로 분간할 수도 없었다. 막 태어난 갓난쟁이와 같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눈물은 아주 처절한 절규로부터 왔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저는 가족이잖아요…….”

  “어느 누구의 슬픔도 저울질 할 수 없어. 그럴 자격은 없다. 용이는 좋은 사람이었어. 그의 주변에 넘쳐났던 사람들 모두가 마음 속 깊이 애도하고 있다. 난 너와 이런 대화를 나누려고 온 게 아니야.”

  “그럼 날 찾아온 이유를 말해요.”

  “용이가 말했다. 종이에 적힌 주소를 찾아가면 자기가 살던 집이 나올 거라고. 거기에 아주아주 귀여운 여동생 한명이랑 아픈 아버지가 살고 있으니,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가서 살펴주라고 하더군. 막상 보니 ‘귀여운’ 까진 모르겠지만.”

  그는 집 주소가 적힌 꼬깃꼬깃한 쪽지 한 장을 펼쳐보였다.

  “콧물이나 좀 닦지?”

  그러곤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 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아무 무늬도 없는 단색 손수건이었다. 생전에 오라비가 종종 챙기던 것과 비슷했다.

  “시신을……돌려받긴 힘들 것 같아. 우리 쪽에서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말이야.”

  “그건 절대, 절대 안돼요.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은 건지, 감옥에는 무슨 일로 들어가게 된 건지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으면서 장례도 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건 너무……잔인한 거잖아.”

  “우리도 시신을 빼내올 방법을 찾고 있어. 난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여기에 머무를 생각이다. 길진 않을 거야. 아버님께는 나가자마자 인사드릴 거고.”

  그의 입에서 ‘아버지’란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엔 밥도 혼자서 잘 드시지 못하는 분이셨다. 하루아침에 장남과 담이가 죽었단 소식을 듣는다면 정말 몸 져 누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럴 순 없었다. 아버지까지 없으면 난 정말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질 뿐이었다.

  “……아부지께 용이 오라비랑 담이가 죽었단 사실은 나중에 말해요.”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영영 거짓말을 할 순 없어.”

  난 그의 말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네가 바란다면 그렇게 해주지.”

  나는 그제야 한숨 섞인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낼 수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태섭. 우태섭.”

  태섭……. 나는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맴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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