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머리 위에 꽃 한 송이가 올려졌다. 7갈래로 갈라져 등허리를 쫙 핀 꽃잎은 그 끝이 동그랗게 말려져 있었다. 빨간색도 주황색도 아닌 게 다홍색인 것 같으면서도, 햇빛을 받으면 어느새 반짝이며 금색을 띄었다. 줄기는 참으로 올곧아서 이미 꺾여버린 후였음에도 꼿꼿이 서선 품위를 잃지 않았다.
눈앞에 작고 하얀 손이 보였다. 오빠- 하고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도 상냥하게 들려왔다.
꿈인가?
내가 조용하게 읊조렸다. 처음부터 흐릿하게 보였던 광경은 점차 환한 빛으로 변해가며 내 정신을 좀 더 몽롱하게 만들었다. 그 빛 속에서는 왠지 그리운 얼굴이 나타나는 듯싶었다.
하나로 질끈 올려 묶은 멋없는 짧은 머리, 하얀 피부에 종종 보이는 발그레한 홍조, 얇게 쌍꺼풀이 진 동그란 눈, 그리고 작은 입술까지…….
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팔다리를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그녀를 잡으려 했다.
가지마라……, 가지마라……. 무심코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이 가슴에 아프게 박혔다.
그러나 어느새 강렬했던 빛은 사라지고, 깜깜한 어둠만이 나를 뒤덮으며 무섭도록 빠르게 다가왔다. 이 순간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원통하게 우는 것만이 내 유일한 도피처였다. 죽을 것 같은 고독, 죽기보다 더한 아픔…….
나는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그 속에서 울다가, 침전의 숲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번쩍 눈을 떴다.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 한줄기가 내 머리맡에 고여 있었다. 짹-짹- 거리는 아침 새소리가 귓바퀴를 돌았다. 아침이었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
“담……아?”
“아직 잠 덜 깼어요?”
태섭은 미처 뜨지 못한 눈 한쪽을 비비며 낯익은 얼굴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보았다.
허리까지 오도록 길게 늘어트린 머리, 하얀 피부에 덕지덕지 피곤이 붙어 있는 수척한 얼굴, 크게 쌍꺼풀이 진 예쁜 눈, 그리고 작은 입술…….
“너, 누구…….”
“담이 아니고, 연이!”
내가 소리쳤다. 아직도 태섭은 잠이 깨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가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것인지 아까부터 내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예요? 사람 얼굴을 그렇게…….”
“아침부터 그 얼굴을 보는 건 영 적응이 안 되는 군.”
“네? 그건 또 무슨 의미에요?”
내가 되물었다.
“배고프다. 밥 먹자.”
태섭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기지개를 했다.
“또 말 돌리는 것 봐. 아까 그 말 굉장히 무례했다는 거 아시죠? 그리고 아침부터 진짜 배가 고프긴 고파요?”
그는 나의 툴툴거리는 잔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당으로 나갔다. 대야에 미리 받아 놓은 물이 햇빛을 받아 태섭의 얼굴을 비췄다.
‘얼굴이 많이 까칠해졌네. 면도도 좀 해야겠고…….’
태섭은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곤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요즘 느꼈던 피로가 모두 얼굴에 드러나 있던 모양이었다.
“아침 상 간단하게 차려놨으니까 씻고 나서 드세요.”
나는 목에 스카프를 두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디 나가나 봐? 일도 쉬는 날이라면서.”
“아, 어제 일당을 꽤 많이 받았거든요. 이참에 그동안 밀렸던 외상도 해결해야하니까…….”
“그래? 그럼 같이 갈까?”
“아, 아뇨! 저 혼자서 갈게요!”
태섭은 강하게 부정하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뭐야. 너 정말 외상 값 해결하러 나가는 거 맞아?”
“그럼요-오!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
물론 외상값을 처리하러 간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태섭에게 둘러대기 위한 명목상의 핑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오늘 정말 들러야할 곳은 따로 있었다. 외상값 문제는 그 다음 일이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바둑이 약방’으로 가는 길을 되뇌었다. 저번에 태섭이 하도 이리저리 골목을 옮겨 다녀서 제대로 기억나는 길이 없었다. 꽤 괜찮은 약방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서 익히 들어왔지만, 제대로 된 위치까지 알고 있던 건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약방에서 <아모르파티>까지 꽤 오랫동안 헤매다 겨우 도착했었다.
사탕가게가 있는 익숙한 골목길을 지나서 벽돌로 된 건물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왔다. 꽤 늦은 아침이었음에도 여기 저기 널브러져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최대한 그들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으려 살금살금 그곳을 지나쳤다. 이런 곳에서 발목이라도 잡혔다간 못된 짓을 당하기 일쑤였다.
골목은 끝이 없었다. 이곳에 이렇게 까지 많은 골목길이 있었는지 의아해질 참이었다. 이쯤 되니 저번에 태섭이 일부러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문득 들었다. 아무리 봐도 비슷한 길들 뿐이라 길을 찾는 건 포기해야하나 싶었을 순간이었다.
검은색 점이 곳곳이 박힌 바둑이 한 마리가 혓바닥을 내밀고 전속력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순식간에 내 몸을 덮치는 바둑이의 무게에 한 번 놀랐고, 생각보다 몸집이 큰 녀석이었다는 것에 또 다시 놀랐다.
“동구야!”
내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러지 말라고 했지!”
목소리의 주인은 내 몸을 짓누르던 바둑이를 억지로 떼어냈다.
“괜찮아?”
나는 그가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나 흙이 잔뜩 묻은 치마를 툭툭 털었다.
“괜찮아요.”
내가 영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쁘게 입고 왔는데 엉망이 됐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바로 응시했다. 비장한 얼굴을 한 채였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수고를 덜게 되었어요.”
내 말에 그는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당신을 찾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주홍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날 따라와.”
그러곤 바둑이를 품에 안고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마른 침을 삼켰다.
두 번째로 온 바둑이 약방은 왠지 더 왜소해보였다. 작고 허름한 초가집에, 들어가는 입구도 너무 좁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래도 쌉사름한 한약재 냄새는 여전히 코를 찌를 만큼 강하게 풍겨져왔다.
주홍은 마당에 바둑이를 묶고 나에게 따라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건넸다. 나는 별 말 없이 그를 따라 약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너무 낮아 허리를 잔뜩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방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이 낮지도 않았을 뿐더러 깔끔하게 잘 정돈 되어 있기까지 했다. 이곳저곳에 매달아 놓은 한약재들이 눈에 띄었고, 약초와 침들이 즐비해있었다. 책상 위에는 꽤 이름 있는 작가들의 시집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쓰고 지운 흔적들이 남은 색이 바랜 원고지 묶음도 몇 개 보였다. 의외의 풍경이었다. 태섭의 말로는 못 말리는 글쟁이라던데, 이제야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여기 앉아.”
그는 작은 상을 피곤 내 자리에 푹신한 방석을 깔았다.
난 가져온 손가방을 조신하게 옆에 놓은 뒤, 최대한 예의바른 태도로 그와 마주보았다. 주홍은 그런 내가 웃기기라도 한건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날 찾아온 이유가 뭐니?”
“용이 오빠랑 담이 때문이에요.”
이번에도 주홍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봐, 특유의 여유로운 듯한 표정은 태섭과 비슷했다. 거기다 주홍은 태섭보다 좀 더 사람을 꿰뚫어 보는듯한 얼굴이었다.
“그쪽 친구 분께서는 도무지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여서 말예요.”
“음……. 나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어서.”
“그냥 사실을 말해주는 것뿐인데 뾰족한 수 같은 게 필요한가요?”
나의 날이 선 말투에 주홍이 손을 내저었다.
“태섭이 말하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야. 나라고 해서 그 애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해버릴 순 없어.”
나는 그의 대답에 온 몸의 힘이 쫙 풀린 듯 맥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결국 당신도 말해주지 않겠다는 소리군요.”
나를 보는 주홍의 표정도 좋지만은 않았다.
“정말 너무들 하시네요. 이정도 까지 제가 애원하면 들은 체라도 해주실 줄 알았어요. 전 가족이잖아요.”
나는 예전부터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더 담담해지곤 했었다. 이번에도 주홍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더 이상의 떨림이란 없었다.
“3년도 더 된 일이에요. 용이 오라버니가 갑자기 어딘가로 떠날 거라며 사탕 하나를 건네주신 적이 있어요. 그 때 전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였지만, 담이는 저랑 달랐어요. 그 애는 오라비가 떠나는 이유를 꼭 알고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방 안에는 내 목소리만 조용히 감돌았다.
“담이가 그 때 그랬어요. 오빠는 싸우러 가는 거라고. 자기가 그걸 모를 줄 아냐고.”
나를 보는 주홍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이내 평정을 찾긴 했지만, 나는 예전부터 이런 사소한 감정의 변화를 잘 파악하곤 했었다.
“담이와 오라버니가 죽고 나서, 그 말의 의미를 처음으로 생각해 봤어요. 그동안 전 몰라도 너무 몰랐었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 저 혼자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내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고, 무서우리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그냥 제 착각이었으면 좋겠지만, 한 가지만 물어 볼게요. 솔직하게 대답해 준다고 약속해요.”
주홍은 끝까지 대답이 없었다.
“운동……같은 걸 한 건 아니죠?”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어떤 생각으로 이 말을 내뱉은 건지는 나도 몰랐다. 어느새 내 손금 사이사이에는 땀이 스며들어 있었다.
“달리기나 줄넘기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란 것쯤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주홍이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저 그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연이라고 했지?”
주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아, 난 여전히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정말 끝까지……!”
내가 발끈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곧이어 주홍이 꺼낸 말은, 나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이 만들었다.
“하지만 네 생각이 얼토당토않게 틀린 거라곤 하지 않을게.”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게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