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라뇨?!”
데몬의 수행비서인 넬슨이 뜨악한 표정으로 제 주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사진기? 기자라도 된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런 상황을 이렇게 태평하게 말씀하십니까?”
“그래서 이렇게 자네에게 어쩌면 좋을지 의논중이잖아.”
데몬이 저녁 식사 메뉴를 얘기하듯 평이한 말투로 답변하며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댔다.
넬슨은 매우 냉정하고 업무처리가 깔끔한 비서였다.
성격답게 사건 해결을 위한 질문을 시작했다.
“각하. 목격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니.”
“인상착의는 정확히 보셨습니까?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봤지. 사내 녀석인데 선이 가냘프고 콧수염도 있었어. 피부가 매우 하얗더군. 사진기를 들고 있던 손가락도 가늘고 길었지.”
“목소리는 들으셨습니까?”
“전혀. 그 놈은 얼빠진 얼굴로 미친 듯이 사진기 셔터만 누르다가 도망갔어.”
“왜 바로 따라가지 않으셨습니까?”
“먹은 것을 소화중이었어.”
“......”
주인만큼이나 표정에 큰 변화가 없는 비서지만 그 와중에 미세하게 한심해 하는 기운이 전달됐다.
데몬이 덧붙였다.
“정말 역겨웠어. 소화시키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넨 모를 거야.”
“그러셨겠죠. 그래서 사진기까지 소지한 놈을 멀쩡히 나가도록 두셨군요.”
그랬다.
제 주인은 목표물의 혈액과 기를 함께 흡입하고는 거기서 필요한 어떤 조각만을 걸러내어 자신의 몸에 저장한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한 존재의 흩어진 한 조각을 수거하는 과정이다.
물론 그 목표물은 목숨을 잃는다.
어젯밤도 ‘티파니’에서 시체 하나를 처리했다.
동부 외곽 숲 속에 시체를 버리고,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수도 경비대에 신고하도록 지시했었다.
사체의 신원은 클린턴 블라디아 자작이었다.
역시나 자신들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죽어 마땅한 더러운 인간이었다.
미망인은 자신의 배우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놈은 그만큼 철저하고 교활했었으니까.
넬슨은 데몬의 추가적인 설명을 들으며 초상을 완성했다.
“완벽하군. 마치 자네가 직접 본 듯 정확하게 그려냈어. 그럼 금방 찾겠지?”
“놈이 그 사진을 들고 경비대에 신고하지 않았길 바래야죠.”
데몬이 서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신고하지는 못했을 거야. 살고 싶다면.”
데몬은 분명 놈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담아 경고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사진기로 무언가 할 생각이라면 옆의 시체처럼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암시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냈던 것이다.
“역시 찾아내서 죽이는 편이 깔끔하겠지요.”
“죽이진 마.”
“어째서 그러십니까?”
“확인할 것이 있다.”
지난밤, 블라디아 자작의 피를 흡입하자 곧바로 몸에 좋지 않은 반응이 왔었다.
넬슨에게 말한 ‘역겹다.’는 과장하여 힘들다고 말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이쟈니아의 영혼이 스며든 인간들은 하나같이 악마의 신하라도 되는 듯 악행을 일삼았는데, 이번 목표물이었던 블라디아 자작은 아주 잔인하고 더러운 인물이었다.
그만큼 흡입하는 피도 맑지 못하니, 그 후유증은 언제나 데몬이 감당해야 하는 벌이었다.
점점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으나, 지난밤 블라디아 자작의 혈액을 흡입할 때는 몸이 빳빳하게 굳을 정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놈이 방으로 들어왔다.
문을 잠그지 않았던가?
평소 그답지 않게 부주의한 실수를 한 듯했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목격자를 잡아 처리해야 했으나, 더러운 핏속에 스며든 영혼을 걸러 다시 자신의 속 깊은 비밀공간에 봉인하는 일은 그 날따라 더디고 힘들었다.
마비된 몸이 풀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하여 욕지기가 절로 튀어나오려는데 어쩐 일이지 갑자기 몸이 부드럽게 순환되기 시작했다.
어깨 위 부위부터 자유로워지자, 굳었던 근육을 풀기 위해 고개를 까닥 젖히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 벌벌 떠는 놈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차갑게 굳은 몸 안에 한줄기 따스한 온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 겪는 생소한 느낌이라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지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목격자는 도망가버렸다.
그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몸속에 돌아다니던 따뜻한 한 점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다시 몸이 빳빳해졌고, 겨우 삼킨 영혼조각들을 갈무리하여 소화를 끝냈을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절대로 잊을 수 없었던 느낌.
분명 그것은 '정화의 힘'이었다.
오랫동안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쌓여가는 악한 독소들은 정화되기 어려웠다.
만약 어젯밤, 놓친 목격자가 정화의 힘과 관련된 인물이라면 반드시 그를 다시 만나야 했다.
가늘게 내리깐 은회색 눈동자가 넬슨이 그린 초상화를 내려다봤다.
아름다운 입술이 사라져버린 그림자를 쫓아 말했다.
“대체 누구냐, 넌.”
***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친 셀린느는 어스름한 빛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새벽이 되어서야 아주 잠깐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있었다.
“아가씨. 일어나서 나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유모 실비아의 조심스럽고도 우울한 목소리에 셀린느가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짐작하고 있던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팔다리가 저릿해졌다.
“수도 경비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쿵!
심장이 저 아래 심연으로 떨어졌다.
진정 어젯밤 내가 본 것이 환상이나 신기루가 아니었단 말인가.
셀린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자작님께서……. 세상에 흑흑흑.”
실비아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털썩.
셀린느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침대 위로 주저앉았다.
악몽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남편 블라디아 자작이 살해당했다!
응접실엔 수도 경비대장과 수사관이 자작가의 안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창백한 얼굴로 난간을 잡고 2층 계단을 내려오는 미망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모자를 벗어 잠시 목례를 했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부인.”
“어떻게 된 거죠?”
“동부 외곽 숲속에서 새벽에 부군의 시신이 발견되어 신고 받았습니다.”
“숲 속에서요?”
셀린느가 깜짝 놀라 물었다.
“술에 만취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가지고 계신 금품이 모두 도난당한 듯 보였구요. 불한당들 소행으로 짐작됩니다. 취객만 노리는.”
셀린느는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두 손을 꼭 잡고 이들의 말을 들었다.
그 살인자가 남편을 숲 속에 버리고, 그렇게 처리한 거구나.
소름 끼치도록 치밀한 범죄자가 아닌가.
“일단 함께 가셔서 확인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제…. 제가요?”
“집 안에 다른 남성분이 계십니까?”
“아니요.”
집사와 하인들 외 가족 중 그의 신원을 확인할 가족은 없다.
너무나 두려워 기절할 것만 같았지만 직접 확인을 해야 했다.
“이런. 안색이 안 좋으시군요. 많이 힘드시다면…….”
“아니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가겠습니다.”
셀린느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그녀는 목과 팔까지 모두 가려지는 검정 드레스를 입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 안치실에 새파란 주검으로 누워 있는 남편은 그 피부색만 아니라면 잠들어 있는 듯 보였다.
“금품을 노린 불한당이 이 사람을 살해했단 말인가요?”
“머리에 상처가 있습니다. 과다출혈 및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찍 발견되었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수사관은 셀린느의 반응을 보며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다.
시신을 보자마자 오열하며 쓰러지거나 기절할 줄 알았는데, 침착하게 질문을 하며 시신을 살피는 모습이 어린 미망인답지 않게 대담해 보였다.
“그 불한당은 잡을 수 있을까요?"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셀린느는 수사관의 대답을 신뢰하지 않았다.
수도 유흥가 주변의 소매치기, 마약범, 강도들은 한둘이 아니다.
“부군의 그 날 저녁 일정을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정확한 방문지라던가.”
수사관이 추가적인 질문을 했다.
남편이 비밀 가면무도회에서 용납되지 않을 은밀한 만남을 가지다가 살해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마다스 제국은 동성애 범죄자는 신을 모독한 중죄로 사형에 처한다.
이미 죽은 자작을 그렇게 두 번 죽여봤자 가문의 이름만 사장될 것이다.
“아니요. 남편은 아주 바쁜 사업가입니다. 일일이 행선지를 가족에게 보고하고 다니진 않습니다.”
“그렇군요. 수사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습니다.”
“이해합니다.”
대답과 동시에 셀린느의 몸이 휘청했다.
“부인!”
수사관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이만 집에 돌아가도 될까요? 많이 힘드네요.”
가까이서 본 어린 자작 부인의 얼굴이 파리해서 안쓰러워진 수사관이 마차까지 부축해 나갔다.
침착하다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너무 심한 충격을 받으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 법이지. 안되셨어.”
멀어져 가는 마차를 보며 수사관이 혼자 중얼거렸다.
마차에 쓰러지다시피 기댄 셀린느는 수사관의 질문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힌트를 얻었다.
증거물인 사진이 있으나 수도 어느 사진관에서든 그 필름을 인화할 수는 없었다.
남편이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이 모두 찍혀 있었으니까.
자작을 죽인 살인자가 이 도시를 그대로 활보하고 다니도록 둘 수 없었다.
변장했다지만 그놈은 자신을 똑똑히 보았다.
언제 목격자인 자신을 찾아내 똑같이 죽일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놈을 두려워하며 남은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유모.”
“네. 아가씨.”
“티파니의 마담을 만나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