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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빛나라
작품등록일 : 201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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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귀환 (1)
작성일 : 17-07-31     조회 : 408     추천 : 0     분량 : 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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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크나르 대공의 성에서 청마가 갈귀를 휘날리며 빛의 속도로 내달렸다.

 말 위에는 성의 주인, 이 나라의 왕제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현 황제인 레노만 퓨리어 아크나르가 타계하게 되면, 병약한 황자 파디앙 퓨리어 아크나르라 황좌를 물려받기는 어렵다.

 레노만 황제가 적어도 파디앙 황자가 18세가 되는 해까지는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데몬은 절대로 황위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제국의 통치보다 인간계로 침입하려는 지옥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이 세상에서 신이 내린 임무를 수행중이라 하더라도 데몬의 현재 신분은 아마다스 제국의 황위서열3위인 대공이었다.

 주어진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가 봐도 지체 높은 분들만이 소유할만한 명마가 조각같은 사람을 태우고 황성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지?”

 황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는 청마와 주인을 보고 말했다.

 

 “문 열어! 빨리!”

 코 앞으로 다가온 청마의 가슴에 그려진 상징을 확인한 한 병사가 소리쳤다.

 외성의 문이 열렸고, 그림같은 풍경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거 실화야? 영광의 퓨리어, 황족의 상징이잖아! 누구시지?”

 최근에 입단한 어린 병사가 혼잣말을 했다.

 병사는 태어나 그렇게 멋진 말과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봤다.

 

 “설마, 왕제가 다시 나타나실 줄이야. 황성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인가.”

 병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자가 멀어져가는 청마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황제의 침실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죽어가는 사람이 머무는 곳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썩어가는 것보다 더 지독한 냄새.

 그 뿐이면 좋으려만 시녀들이 뿌려댄 향수와 악취가 뒤섞여 들어서자마자 지독한 두통이 몰려왔다.

 

 임종이 멀지 않았다 생각되는지, 침실 곁에 딸린 넓고 화려한 응접실엔 재상과 대법관, 서기, 왕자와 공주가 모두 모여 있었다.

 

 공주 클레오가 침대 곁의 의자에서 일어나 데몬을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숙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퓨리어 그 영광의 성 아래 아버지와 피를 나눈 적통 황족.

 예를 갖춰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올리는 공주를 데몬은 그대로 지나쳐 병석의 황제에게로 다가갔다.

 

 클레오의 표정이 찰나의 순간 굳었으나 곧 평정을 되찾곤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형님.”

 

 데몬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죽은 사람처럼 잠들어 있던 레노만 퓨리어 아크나르의 눈이 무겁게 떠졌다.

 

 “저 왔습니다. 데몬입니다.”

 

 어렵게 실눈을 떴던 황제 레노만의 눈이 놀랍다는 듯 조금 더 커졌다.

 고열로 인해 얼굴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열꽃이 피어있고 약한 피부인 눈꺼풀은 온통 누런 고름으로 덮여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건강이 안 좋아지신겁니까.”

 

 황제가 거친 숨만 몰아쉬며 허연 각질이 뒤덮인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시녀가 얼른 가까이 다가와 물을 건내려하자, 데몬이 물잔을 뺏어 들었다.

 

 그는 망설임없이 시녀가 건넨 물컵을 받아 벌컥 물을 들이켰다.

 시녀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쟁반을 떨어뜨렸다.

 

 “무슨 짓입니까.”

 클레오가 데몬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공주의 눈빛을 깡그리 무시한 체 데몬은 방금 삼킨 물맛을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이건......!

 

 데몬의 눈빛이 날카롭게 벼려진 칼처럼 매서워졌다.

 그는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로 벌벌 떠는 시녀를 향해 물었다.

 

 “네가 계속 폐하의 물 시중을 들었던게냐?”

 “네? 아...... ”

 

 어쩐지 시녀는 질문을 한 데몬보다 클레오의 눈치를 보며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녀는 애처로울 정도로 안색이 새파래지더니 결국,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클레오 공주가 고갯짓을 하자, 다른 시녀들이 쓰러진 시녀의 양팔을 붙잡고 황제의 침실을 나갔다.

 

 데몬은 방금 마신 물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감별하지 못했을 아주 미묘한 향과 맛을 찾아냈다.

 

 정확한 것은 황궁 의원을 만난 뒤에 확인해야겠군.

 지금은 15년만에 만난 형제의 말을 듣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아...하아... 데......몬.”

 “네. 저 여기있습니다. 형님.”

 “진정 네가 나의 하나뿐인 동생, 데몬이 맞느냐.”

 “너무 멋지게 커 버려서 몰라보시겠습니까.”

 

 데몬이 농을 섞어 말하며 황제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의 손은 앙상하게 가죽만 남아 있었고, 그마저도 지독한 열로 인해 짓물러 있었다.

 “많...이 달라졌구나.”

 

 어릴적의 데몬은 벙어리가 아닐까 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지금의 클레오 공주보다 훨씬 더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어린 아이답지 않는 세월의 눈빛을 뿜어냈었다.

 

 레노만은 본래 성품이 평화적이었고, 신을 극진히 섬기는 황자였다.

 그는 처음 데몬이 태어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갓난아이가 나오자마자 눈을 또렷하게 뜨고 사물을 관찰했었다.

 그런 은회색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레노만은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었다.

 인간 세상사의 모든 것을 초탈한 꿰뚫는 눈빛.

 웅장한 대성당에서 처음 신의 조각상을 마주했을 때의 두근거림이 데몬과의 첫 만남에서 동일하게 뜀박질했다.

 

 “난...... 여기가... 끝....인 것 같다.”

 “......”

 “미안...하구나. 진작 너를 ...... 불러들이지 않아......흐억......쿨럭!”

 

 힘겹게 목소리를 짜내던 황제가 또 피를 울컥 토해냈다.

 레몬만 황제의 피를 수건으로 닦아낸 데몬은 또다시 그커먼 핏속에서 묘하게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다시 힘겹게 숨을 고른 레노만 황제가 본론을 말했다.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지면 다 죽어가던 환자도 벌떡 일어나고, 깨끗한 정신과 맑은 목소리로 가족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다 했던가.

 

 바람앞에 촛불처럼 꺼질 듯, 꺼질 듯, 위태롭게 말을 이어가던 레노만 황제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근엄함이 서렸다.

 

 “재상과 서기는 똑바로 듣고 이행하라. 나 아마다스의 황제 레노만 퓨리어 아크나르는 영광스런 퓨리어의 이름을 신 앞에 걸고 명한다. 나의 유일한 형제인 데몬 퓨리어 아크나르에게 황위를 물려준다. 대공 데몬 퓨리어 아크나르는 황명을 받으라.”

 

 “아바마마!”

 “폐하!”

 

 재상과 클레오 공주가 동시에 소리쳤다.

 서기는 자신의 본분대로 황제의 유지를 그대로 황가유언장에 기록했고, 대법관은 의외의 유언에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생각이 깊어진 듯 턱을 매만졌다.

 

 클레오 공주는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분노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껏 병상을 지켜온 것은 공주 자신.

 까마득한 옛날에 황궁을 나가서 이제야 슬렁슬렁 기어들어온 어린 왕제 따위에게 황위를 물려주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데몬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가 이내 똥 밟았을 때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다 죽어가는 형님의 소식을 듣고 미친 듯이 달려온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황위라니!

 

 데몬은 얼른 허리를 숙여 레노만 황제의 귓가에 재빨리 속삭였다.

 “이럴려고 15년만에 저를 황성으로 불러들이신겁니까. 형님을 좋아하지만 이번 명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놈의 황위, 아드님께 넘기세요. 제가 보필은 하겠습니다.”

 

 고개를 움직일 힘도 없는 레노만 황제가 눈동자만 떼구르르 굴려 데몬을 노려봤다.

 “가까이......”

 데몬이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레노만 황제의 입가에 가까이 가져갔다.

 “너여야 한다. 아마다스가...... 위험하다.”

 

 레노만 황제의 말은 데몬의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로 작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데몬도 황제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 반문했다.

 “보았다. 그...... 여자를......”

 

 여자?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지?

 

 “누구를 말씀하시는겁니까?”

 방 안, 모든 이의 귀가 데몬과 황제의 대화를 듣기 위해 커졌으나 그들은 복화술에 가까운 모기만한 소리로 서로만의 대화에 집중할 뿐이었다.

 

 “또 보았다. 천사가...... 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그렇게 말하며 레노만 황제는 그윽한 눈으로 데몬을 바라봤다.

 이번에야말로 데몬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녀가 아마다스에 있다. 이...... 세상을 노리고...... 열어서는 안될 문을 여는 것을...... 쿨럭!”

 

 레노만 황제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앞전에 토한 각혈의 몇 배는 많은 양의 피를 흘리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대기중이던 의원이 재빨리 침상으로 다가왔고, 황제의 맥박과 호흡을 확인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한꺼번에 너무 기력을 쓰시어 버티지 못하고 잠시 혼절하셨습니다.”

 

 의원의 말에 데몬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클레오 공주가 참지 못하고 데몬에게 다가와 따지듯 물었다.

 “폐하께서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데몬은 가라앉은 눈으로 조카를 바라봤다.

 “뭐라 하셨냐니까요! 설마 황위를 진짜 받으실 생각은 아니시죠?”

 “지금 공주의 태도는 이해가 가지 않는데?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

 “몰라 물으십니까. 이 나라 아마다스를 10년 넘게 떠나 있던 분이 갑자기 황성에 들어와 황위를 이어받다니요. 이런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황제폐하의 유언이라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평소와 다른 공주의 모습에 숨을 죽였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늘 차갑게 이성적으로 정사를 대무하던 공주의 모습은 없었으나 모두들 그녀의 말에 일부 동의하고 있었다.

 

 특히, 공주 쪽으로 줄을 대고 있던 재상은 황제의 유언에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노련한 재상은 차분한 음색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황제 폐하의 유언은 승하시에 이행되어야 하는 것이 맞으나, 지금의 상황은 예외로 두어야할 듯 합니다. 아마다스의 제국법에 황위를 승계하는 일에 있어 현 황제의 유언이 이행되려면 유지를 남기는 시점에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태이셔야 합니다. 하나, 지금의 폐하께선 수 개월동안 온전한 정신 상태가 아니셨습니다. 안 그런가, 큐레인?”

 

 재상의 물음이 수석 황성의원인 큐레인에게로 향했다.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열에 시달리면서 환각을 자주 보시고, 의식이 뚜렷하지 않게 되신 지 오래 되셨긴 하지만......”

 “들으셨습니까. 젠타르 라제이르 대법관, 제가 말한 내용이 아마다스 제국법에 어긋남이 있습니까?”

 

 의원의 대답에서 원하는 부분을 들은 재상이 말을 자르고 바로 대법관에게 자신의 의견을 확인했다.

 

 “글쎄요. 이례적인 일이라 수석 법관들과 상의를 해봐야 될 듯합니다. 황위와 관련된 일이니만큼 가벼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 말입니다.”

 

 젠타르 라제이르 대법관은 데몬을 주시하며 에매모호하게 대답하여 재상의 얼굴을 구겨지게 만들었다.

 

 얍삽한 여우와 백년묵은 능구렁이라.

 드레이코 판테인 재상이 클레오 공주를 옹호하는 것은 데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백작가의 가주이자, 이 나라 아마다스의 재상인 드레이코는 자신의 외아들인 로이젠 판테인을 황제의 사윗감으로 황성에 들이려는 중이었다.

 황제가 병중이라 약혼식을 거행하진 않았지만, 클레오 공주와 드레이코 재상은 정략결혼을 전제로 거래를 확고히 맺은 상태였다.

 

 병약하고 어린 파비앙 퓨리어 아크나르보다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영특한 공주는 누가봐도 여왕감이었다.

 다만 이 나라 아마다스의 역사상 여왕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클레오는 자신의 뒤를 후원할 막대한 권력의 가문이 필요했다.

 괜찮은 거래였다.

 로이젠 판테인이 황제의 승인을 받아 정권을 이어받고, 클레오 공주가 실질적인 아마다스의 주인으로서 이끌어가는 것.

 

 거의 성사된 일로 보였다.

 게임의 마지막에 생각지도 못한 조커가 등장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클레오 공주가 이를 으득 깨물었다.

 병약한 동생 파비앙을 제외한 모든 퓨리어 황가의 남자는 죽었다.

 오래전 황성을 떠나 잊혀졌던 데몬 퓨리어 아크나르만 제외하고.

 그의 흔적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왕제를 찾아 떠난 이들은 모두 아마다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붉은 적안이 데몬을 태울 듯 노려봤다.

 데몬은 천천히 황제의 손을 이불 안으로 고이 넣어주고, 조용히 구겨진 이불을 가슴 위로 반듯하게 펴드렸다.

 이윽고 일어난 데몬은,

 

 “아직, 황제께서 승하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엄중한 말투로 그 자리에 있는 자들 하나, 하나를 주시하며 말했다.

 

 “황위를 거론하기 전, 더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던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더군요. 지금부터 퓨리어 아크나르 왕제의 권한으로 ‘황제 독살 시도’에 관한 철저한 조사를 시작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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