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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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설렘주의보(3)
작성일 : 17-07-11     조회 : 38     추천 : 1     분량 : 5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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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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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도준 씨."

 "......"

 "헤이, 저기요?"

 

  우리가 앉은 벤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자그마한 폭죽놀이가 한창이다. 엄마에게서 막대 폭죽을 받은 아이는 드디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밀가루는 아이가 들고 있는 폭죽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꽤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폭죽놀이 하고 싶어요?"

 

  나의 물음에 잠시 멈칫한 그가 도리도리,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는 순진한 표정으로 별을 찾는 척, 하늘로 시선을 돌린다. 거짓말인 거 다 보이거든?

 

 "하고 싶구나."

 "아니에요."

 "여기 이렇게 쓰여 있는데? 하.고.싶.다."

 

  나는 그의 얼굴 앞에 바짝 다가갔다. 그는 눈을 어색하게 굴리며 얼굴을 뒤로 뺀다.

 

 "아, 아니라니까."

 "아니라면서 왜 시선을 못 맞추는데?"

 

  내가 밀가루의 이마와 양 볼, 턱을 하나씩 가리키며 한 자, 한 자 읽어가자 그가 한 손을 펼쳐 볼을 가렸다. 발그레해진 얼굴을 가리며 개미만한 목소리로 묻는다.

 

 "티 나요?"

 "많이요."

 

  투명한 얼굴에 핏줄만 비치는 줄 알았더니 마음속 글자까지 훤히 드러나 보인다.

  피부가 하얘서가 아니라 이 남자가 순진해서 그런 건가? 에이, 순진은 무슨. 나이가 몇인데. 게다가 능글능글 열매를 수십만 개는 먹었을걸.

  그래도 아까 아이를 바라보던 부러운 눈빛은 거짓이 아닌 듯싶다. 해온이가 어렸을 때, 한창 유행하던 바퀴 신발을 신은 친구들을 볼 때의 표정과 많이 닮아 있었다.

 

 "까짓거 한바탕 해보죠, 뭐. 어차피 30분은 더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다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떤 거 하고 싶어요? 손에 쥐고 있는 거? 아님 파바박 소리 나는 거?"

 "둘 다요. 그리고 저기 연기 나는 것도."

 

  하고 싶은 것 아니라더니 둘 다란다. 거기다 소심하게 '연기 나는 것도'라니. 능글맞고 자신감 가득하던 문도준은 어디로 간 거야?

  그러고 보니 해온이랑 동갑이지? 동생 또래라 그런지 귀여운 면도 보이네. 나도 오랜만에 신나게 폭죽놀이 해봐야겠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가서 사올게요."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발을 내딛는데 그가 잡고 있는 손에 오히려 힘을 줬다. 정작 그도 자신의 행동에 놀라 말을 잠시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이 마치 엄마를 보내기 싫은 어린아이 같아 내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나는 엄마라도 되는 양 그의 손에 힘을 꼬옥 주고 안심시켰다.

 

 "다녀올게요."

 "빨리 와야 해요."

 "알았어요. 문도준 어린이."

 

  그의 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준 나는 모자로 가린 머리를 살짝 토닥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얼굴의 절반을 가렸지만, 입가에 달린 미소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밀가루 어린이가 기다리지 않도록 나는 가까운 가게에 뛰어들어가 폭죽을 종류별로 샀다.

  용접봉을 닮은 막대 폭죽, 하늘로 쏘아 올리는 로켓 폭죽, 박쥐 모양의 따닥 폭죽, 주인아주머니가 강력추천 해주신 오색연기 폭죽까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 심심한 입을 달랠 캔커피도 사 가야겠다. 밀가루는 단 걸 좋아한댔지?

 

 "우와, 이렇게나 많이?"

 "이렇게 많아도 아마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날 걸요?"

 

  밀가루는 폭죽을 하나하나 꺼내 설명서를 읽어내려갔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해 주니 사온 내가 다 뿌듯하다.

  한참 동안 이것저것 골라보던 그가 따닥 폭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 있게 라이터 불을 피웠다. 드디어 시작인가?

  그런데 눈을 반짝이며 폭죽에 불붙이기를 시도하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불이 옮겨붙지 않는 것이다.

 

 "이얍, 이얍!"

 "그게 뭐야. 이리 줘봐요."

 

  건실하게 생긴 청년이 불도 제대로 못 붙이고 소리만 지르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다.

 

 "대체 저 근육은 어디다 써먹으려고 키운 거래?"

 "일단은 관상용이라고 해두죠."

 "말이나 못 하면."

 "헤헤."

 

  내가 불을 붙인 폭죽을 발밑에 던지자 곧이어 폭죽이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폭죽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밀가루가 벤치 위로 풀쩍 뛰어 올라가 앉았다.

 

 "우와, 우와!"

 "뭐야, 촌스럽게. 누가 보면 처음 하는 줄 알겠어요."

 

  나는 따닥 폭죽이 다 꺼진 후에도 벤치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계속 불안한 눈으로 폭죽을 노려보는 밀가루의 손에 막대 폭죽을 쥐여주었다.

  파바밧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막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비치는 환한 불빛만큼 밝은 미소가 걸렸다.

 

 "나 사실은 폭죽놀이 처음 해봐요."

 "응? 거짓말."

 "어렸을 땐 할머니가 싫어하셔서 못 해봤고, 데뷔하고 나서는 무대에서 터지는 불꽃만 봤지 갖고 놀아본 적은 없어요."

 "정말?"

 "아이돌이라고 별거 없어요. 오히려 못 하는 것 투성이에요."

 

  그가 미처 다하지 못한 말이 억지로 들어 올린 입꼬리에 맺혔다. 나는 그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척,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힐끔 들여다본 밀가루는 여전히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둥글게 올라가 있던 입술이 일자로 다물어졌다.

 

 "하고 싶은데 못 해본 것, 더 있어요?"

 "같이 해주려고요?"

 "하는 거 봐서."

 "엄~청 많아요."

 

  그러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막대를 동그랗게 휘두르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의 진지한 밀가루는 어디 갔는지, 목소리도 표정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기다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는 그의 눈에 폭죽을 닮은 작은 빛의 파편이 반짝인다.

 

 "길거리 떡볶이 먹기, 찜질방 가서 구운 달걀이랑 식혜 먹기, 야구장에서 경기 보면서 치맥 먹기, 마트 시식코너 돌기, 그리고..."

 "죄다 먹는 거네."

 "아, 그런가? 하하."

 

  고개를 갸웃한 그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울렁이는 목울대가 한껏 올라간 그의 기분을 대변해주었다.

  상상만으로도 저리 좋은가보다. 얼굴까지 발갛게 물들인 그가 만약 해온이였다면 볼을 꼬집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음, 그리고 가로수 오렌지 털기?"

 "그건 이미 해봤잖아. 그리고 난 다신 안 할 거예요."

 

  내 앞에서 다신 오렌지의 '오'자도 꺼내지 말라고. 이제는 길가의 은행나무도 안 쳐다볼 거야.

  그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눈썹까지 찡그리며 큭큭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스물여섯 청년이다.

  그러고 보면 그가 바란 건 소원이라기에는 허무할 정도로 일상에서 충분히 해봄 직한 일들.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이 사람도 포기해야 하는 게 참 많구나.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이 그토록 꿈꾸는 것이 가장 소박한 것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 사람과 만나려면 나도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건가?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추워요? 옷 벗어줄까?"

 "아니, 아니. 괜찮아요."

 

  순간, 내가 정말 그와 사귀는 줄로 착각할 뻔했다. 그는 아무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바보 같아."

 

  나는 그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나 자신에게 핀잔을 주었다.

  하고 싶은 걸 하든 못 하든 그건 지켜주고 싶다는 그 사람과의 이야기지 나완 상관없잖아. 난 그저 명의만 빌려주었을 뿐인걸.

  나는 고개를 붕붕 흔들고 막대의 끝에 다다라 점차 사그라지는 불꽃을 응시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

 

 "꺼져가는 불꽃이 꼭 내 기분 같네."

 

  사뿐-

  그때, 등 뒤로 부드러운 온기가 내려앉았다. 밀가루만 낼 수 있는 달콤한 비누 향이 얇은 카디건과 함께 내 몸을 감쌌다.

  나는 어느새 등 뒤로 가서 선 그를 올려다봤다. 내 얼굴을 따스한 손으로 감싸올려 눈을 맞춘 그가 싱그러운 웃음을 내리며 말했다.

 

 "상냥한 남자친구 연기."

 "아, 그럼 나도 설레는 여자친구 연기를 해야 하나? 어머!"

 "발연기."

 

  이 시키가. 죽고 싶나.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일어서서 밀가루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가 한 것처럼 싱긋 웃음을 던졌다.

 

 "그럼 이건 어때요? 내가 때리는 연기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그건 사양할게요."

 

  내가 주먹을 쥐고 달려들자 그는 자기방어를 위해 내 손목을 잡고 몸을 감쌌다.

 

 "어엇!"

 

  그랬더니 나는 얼떨결에 벤치를 사이에 두고 이 남자에게 안긴 모양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우리 두 사람 모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 오직 하나, 심장만이 뛰고 있다. 불규칙한 박동에 온몸에 뜨겁게 열이 올랐다.

 

 "......"

 "......"

 

  하지만 내 가슴은 아까와 달리 두근거리지 않고 시큰거렸다. 나는 손을 들어 남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만 그를 밀어냈다.

  밀가루는 내 손짓의 의미를 알아듣고 바로 몸을 떼어냈다. 가만히 모자를 고쳐 쓴 그가 내 모자도 매만져주었다.

 

 "이제 슬슬 가볼까요? 갈 때는 내 차로 바래다줄게요."

 "좋아요. 안 그래도 슬슬 집에 가고 싶은 참이었어요."

 "지금 날 옆에 두고서 집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짐짓 심각한 척 연기하는 밀가루가 내 어깨를 잡고 물었다. 어서 아니라 말하라고 재촉하는 그의 눈빛을 사뿐히 무시한 나는 즐거운 시간의 흔적을 모아 휴지통에 버렸다.

  어느새 벤치를 돌아 내 옆으로 다가와 선 그가 내 손을 깨끗하게 털어주었다. 이런 세심한 면도 있네.

 

 "나도 집에 가서 연기연습 좀 하려고요."

 "오, 로맨스?"

 "아니. 액션으로다가."

 

  밀가루는 또다시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해맑고 시원한 그의 웃음을 보자 다시 한번 심장이 시큰하게 설레기 시작했다.

  바로 위에서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조심하라 주의를 주는 것 같다.

  조심해? 무엇을?

  겨우 웃음을 멈춘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손을 잡았다.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을 감싸오는 온기에 움찔한 건 나뿐인가보다.

 

 "아, 이렇게 웃어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왜요? 도준 씨 잘 웃잖아요."

 "사실 해연 씨 만나기 전까지 기분이 정말 안 좋았는데, 덕분에 훨씬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여자친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 걸요."

 

  우리는 가로등을 벗어나 처음 만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 전과 같은 길, 같은 공기, 같은 사람. 그런데 묘하게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그가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공중에서 흩어진다. 흩어진 소리는 다시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초콜릿처럼 귀를 감아온다.

  나 혼자 달콤하게 설레다 쌉싸름하게 끝나고 싶진 않다.

 

 "그래, 진짜로 설레지만 않으면 돼."

 

  나는 차가 보일 때까지 내 몸을 덮은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고 걸었다.

 

 

 ♬♪

 왠지 모를 일이 생긴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연락하고파

 그래 오 그래 내 맘은

 

 왠지 너를 보면 웃음이 나와 그래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나 봐 그렇게 그렇게

 

 왠지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그래

 난 아무것도 모른 척했어 바보같이 바보같이

 

 Shiny daylight

 sweetest chocolate, it's you

 보이니 내 설레는 눈빛

 조금 더 가까이

 

 Shiny daylight,

 sweetest chocolate, it's you

 너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날아가 날아가

 

 ♬♪설렘주의보 - 설렘주의보

과하객 17-07-12 12:41
 
근들즈므르! 설렘주의보! 말 정말 잘 만들어내시네요. 유행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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