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 돌아가는 익숙한 선풍기 소리가 탁 소리를 내며 꺼졌다.
'타이머를 2시간에 맞춰놨었지'
의미없는 물음도 아닌 생각을 뒤로하고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칸 남짓한 이곳은 고시원 빛한점 들지 않는 곳에서 그는 익숙하게 머리맡에 있는 세면도구를 챙겼다.
빛한점 들지 않지만 그의 방엔 문제집과 갈아입는 옷 몇벌을 제외하곤 그의 것은 없었다.
그러니 그가 세면도구를 빛 없이도 찾는건 너무나도 당연한일
그가 씻는 시간엔 개미새끼 한마리도 없었다.
아니 없는게 당연한 시간 새벽 3시에 그 누가 일어나 씻을까?
그러나 그는 이시간을 사랑했다.
초저녁의 시간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세면장을 독점하고 그가 하고 싶은 시간껏 그의 시간을 즐기면 되었다.
미지근한 물 온도가 3시간만 자던 그의 몸을 서서히 깨워주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의 몸은 한국인의 평균 몸매
다만 그 평균이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에 가까운게 흠이랄까
몸을 씻고 세면장 거울을 보며 그도 한숨을 쉬었다.
두툼하게 오른 가슴과 개구리마냥 튀어나온 배
'에휴~ 이놈의 몸뚱이 무겁게도 생겼다.'
그도 잘나고 싶었다. 외모도 잘 생겼음 좋겠고 몸매도 좀 좋았으면 좋았겠지만, 그에겐 그럴 시간은 부족했다.
대충먹는 인스턴트 오로지 책상에서의 삶은 20대의 그의 몸과 마음을 중년의 아저씨로 만들고 있었다.
무기력했다.
무기력한 삶 그도 인 서울 대학만 들어가면 그래도 어느정도 괜찮은 직장에서 연애도 하다 결혼도 하다 주변의 아버지들 처럼 그리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리 살 줄 알았다.
'지겹다.'
그는 숨이 막혔다.
3년째 계속되는 공무원시험준비
이번엔 이번엔...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부모님께 더이상 경제적으로 빌붙을 자신도 없었다.
그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시험운이 없었던 것이라 생각했었다.
한번 두번 그리 되고나니 이처럼 못난이가 있을까 싶고 죽고만 싶었다.
숨이 막혀 그저 고시원 밖을 나왔다.
잠옷과 외출복 겸용으로 입은 회색 추리닝으로 고시원 근처를 가볍게 뛰어볼까 하다 그는 그마저도 버겁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주머니속을 뒤져 한개피만 남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일까 말까를 고민했다.
여기가 금연지역이라서가 아니라 그건 하나남은 돗대였고, 왠지 지금 피우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이상 남아있는 돈은 없었다.
지금의 그에겐 담배는 사치품일뿐이었다.
기호품? 훗 괜시리 허탈한 웃음이 나오며 그저 삼색 슬리퍼를 끌며 새벽공기나 맘껏 먹고 들어가서 어제 강의 내용을 모조리 외울생각을 했다.
그래봐야 다 못외우겠지만, 매번하는 다짐이었다.
새벽공기 시골에선 풀내음이 나겠지만 여기선 그저 간간히 들리는 소음과 아스팔트의 열기를 이제 식힌 미적지근한 공기가 다였다.
미적지근한 공기 때문인지 두툼한 체형을 가진 그는 이제 고작 몇분을 걸었건만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아 씨 이러면 다시 샤워해야하는데...'
그도 그럴것이 곧 5시가 되면 부지런한 새벽형 고시생들은 샤워장으로 속속들이 들어가기 시작했기에 그의 나름 쾌적한 샤워시간을 방해받을게 뻔했다.
이제 땀은 그의 살이쪄 두툼해진 코로도 흘러내려 안경을 자꾸만 밑으로 내렸다.
손가락으로 안경을 치켜올리며 그는 몇십분의 산책을 끝내려 할때 앞에 보이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연인들이 싸우는건가?'
가끔 그는 연인들이 길에서 싸우는걸 봤었는데 개중에는 정말 무협지에서 나올법한 몸놀림으로 싸우는 연인들도 있었다.
그 개중이 다만 삼각관계에서 여자들끼리의 싸움이었지만,
뭐 어떠냐 이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게 남의집 불구경하고 쌈구경인데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나에겐 이것은 이것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 대놓고 보면 안돼기에 그는 적당히 건물 근처에서 마지막 남은 담배를 꺼내물었다.
'이건 마치 난 담배를 피우러 나왔을 뿐이고, 난 다른곳에서 피고싶지 않으며, 너흰 그곳에서 할일들을 해' 라고 보여주는 설정같이 보이려 애를 썼다.
물론 자세히 보고 들으려 더욱 애를 쓰고 있었지만,
힐끔 힐끔 곁눈질로 보니 그들은 연인이 아니었고, 남남둘이서 치고 박고 하는것이 보였는데 옷차림이 뭔가 묘했다.
한 사람은 회사원이라 하기엔 좀더 고급스런 양복에 코트 차림이고 한사람은 신부복처럼 보였는데 싸우는것도 뭔지 묘했다.
기도도 아니고 주문도 아닌 이상한 언어를 읆조리며, 신부가 은빛의 날카로운 칼로 회사원에게 달려들자 그는 양팔로 엑스자를 만들어 그의 손목을 막았다.
반동으로 튀어나간 신부가 빠른 속도로 칼을 찌르며 들어가자 회사원은 발로 그의 손목을 후려찼다.
마치 칼에 닿는것이 무척 불쾌한듯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어 어 핸..핸폰...경찰..경찰전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곳에서 칼로 사람을 찌르려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일보직전인데 나는 뭘지금 구경을 하고있는지 나는 사고가 정지된 머리를 얼른 추스르고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그러나 핸드폰은 주머니가 무거운게 싫어서 고시원에 두고 나왔었다.
딱히 전화가 오지도 하지도 않아서 생긴 버릇이었다.
소리를 지를까? 젠장 처음보는 광경에 어찌해야할바를 몰라 당황해 하는 순간 어느새 신부가 회사원 발차기에 밀려 벽까지 밀렸다.
벽까지 밀린 신부가 칼을 고쳐잡고 얼마 거리가 되지않은 벽을 향해 발을 내딛으며 벽을 디디며 올라차고는 회사원의 키를 넘어 그의 등뒤로 텀블링을 하고는 칼로 그의 등을 찍어 누르며 말했다.
' 아몬 너는 너의 세계로 돌아가 너의 그 주인께 전하라 이곳은 너히가 더럽힐 곳이 아니며 너히가 발 디딜곳은 그곳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