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차의 불빛이 너무나 밝아서 인지 그 순간만큼은 어딘가로 피할 수가 없었다.
--
이은비 23살 백수. 이력서 100장은 이제 남들 눈엔 껌이라고 하던가. 취업도 어렵고, 놀고먹기도 힘든 오늘 이었기에
“너무 배고파~.”
취직자리를 알아보려 인터넷을 몇 번이고 달칵거리던 은비는 꼬르륵대는 뱃소리에 입맛을 다시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디 갈 곳도, 그렇다고 누가 날 원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오늘따라 냉장고가 그렇게도 미웠다.
“아무것도 없네.”
배에서는 고동소리가 진동을 했고, 그런 배를 부여잡고 몇 푼 들어있지도 않은 지갑을 들고는 눈물을 감추며 밖으로 나왔다.
취업을 못 한 딸이라. 이 나이에 엄마에게도 미안하고, 아빠에게도 미안하고…
꼬르륵-
와중에 내 위는 충실하구먼.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간 은비는 라면과 삼각 김밥을 들고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요즘 가격이 융통성이 없어! 라면하고 삼각 김밥 둘이 딱 해서 천오백 원 만 됐어도 좀 좋아? 하나에 천오백 원 이라니… 취업이 안 돼서 돈도 없고.”
시무룩한 얼굴 표정을 자아내며 들고 있던 라면을 내려놓고 아무렴 좋다는 듯 잡고 있던 고추장 삼각 김밥을 그대로 카운터 앞에 가져다 놓았다.
“천오백 원입니다.”
“여기요.”
바들거리는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동전들에 그만 울상을 짓다 곧 이어 울먹이기 시작했다.
“소… 손님?”
“잘 가라… 내 돈 들아.”
“울… 지 마세요. 손님~!”
“그렇지만, 나는 쓰레기라고요!”
은비의 훌쩍이는 모습에 편의점 알바는 머리를 긁적이며 식은 땀 만을 흘려댔다.
“아니에요!”
“아니! 난 쓰레기예요!”
허어엉~ 하고 우는 소리가 검은 저녁을 한층 시끄럽게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알바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는 이를 바득거리며 묻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인데요.”
“모든 거요! 차라리 내가 어디 웹툰 이나 소설처럼 금 수저에 아가씨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 난 삼각 김밥에 라면도 못 말아 먹는 다고요! 그래, 그냥 내가 신데렐라가 됐으면 좋겠어~.”
대낮부터 술을 마셨나. 중얼거리던 편의점 알바는 유비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걱정 말고 기운 내요. 잘 될 거예요.”
“정말요?”
“그럼요.”
“정말, 정말 정말요?”
“그렇다니까.”
“으… 으허엉~.”
계속 된 편의점 알바와의 몇 분간의 분풀이 겸 고민 상담에 눈물을 그치고 겨우 진정 된 유비는 삼각 김밥 하나를 검은 봉지에 집어넣고는 터벅거리며 걸어 나왔다.
“크응… 너무 울어댔다.”
퉁퉁 부운 눈에 추해보이는 낡은 잠옷, 감지 않아 떡이 져버린 머리.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유비는 계속해서 코를 훌쩍이며 신호등 앞에 서서는 중얼거렸다.
“진짜, 신데렐라가 되고 싶네.”
신호는 어느 순간 파란 불이 되었고, 은비는 팔을 가볍게 저으며 그 곳을 건너기 시작했다.
아주 붉고 하얀 빛이 나를 덮쳐왔을 때. 너무도 경이로운 기분이 들었다.
끼익-
큰 소리가 울렸고,
그 순간이 너무도 비참해서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
“다 큰 계집이 무슨 그런 질문을 해.”
“아직 고딩이거든?”
“내가 고등학생 이었을 땐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 참~ 그래서 어디 가는데~.”
“허 글쎄다, 천국 가겠지. 엄마 말 잘 들으면.”
“그래? 그럼 난 천국 못 가겠다.”
“이 자식이 벌써부터 지어미 속을 썩일라고.”
“아이 왜, 다 커서 못 듣는다는 거지.”
결국 스물셋 나 이렇게 가구나~ 아르바이트 하나 착실하게 못하고, 취업도 못한 채 이렇게 끝까지 불효녀다. 내가 누워있을 어딘가. 그 옆에는 울고 있는 엄마, 아빠, 동생이 있겠지.
약간 죄송하고 미안하네. 그다지 착하지도 않고, 말썽만 피워대는 데다 고집 세고 고민만 산처럼 늘어놓는 딸이어서…
“정신 차려 봐요.”
나 안 죽었어?
“아가씨 일어날 시간입니다.”
아가씨?
“아직도 자고 있는 건가.”
“그렇네요….”
“쯧, 항상 이런 식이군.”
“아가씨 몸이 안 좋아서 그러신 거예요, 어제 하루 종일 누워만 계셨…”
“뭐? 누워만 있었다고?”
태하는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 시녀를 쳐다보았다.
“곧 내 집 사람이 될 여자야. 네가 뭔데 이 여자의 스케줄 관리를 소홀히 하는 거지?”
“아… 아니 그…게 아가씨가 너무나 아파하셔서…”
“꾀병이군. 내 앞에서는 그렇게도 고분고분 한 척 하면서 뒤에선 꾀병이라.”
“도련…님.”
태하는 한숨을 쉬고는 은비가 누워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가 은비의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일어나서 변명이라도 한 번 해봐.”
무슨 소리지? 나 안 죽은 게 확실 한 것 같아!
“나 살아있어!”
큰 소리가 집 안에 울렸고 그 소리를 들은 태하는 귀를 막으며 은비의 턱을 가볍게 쓸어 올렸다.
“그래, 이제는 연기까지?”
“넌 뭐야?”
은비는 난생 처음 보는 태하의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태하는 가볍게 은비의 턱을 만진 쪽의 손을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지 서방 될 얼굴도 몰라보는 척이라니. 이제는 상대조차 하기 싫어지는 군. 차라리 고분고분 잘 따라줄 때가 널 훨씬 더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그래, 사랑은 아니지. 미래를 위한 투자지.”
“그러니까 무슨…”
“그런데, 네가 오늘 할 일이 자는 것뿐이었나?”
“아니 난 오늘 나가 있었…”
“끝까지 사람 말을 못 알아먹는 군. 이젠 말대답에 거짓말 까지. 너 오늘 계속 누워만 있었…”
“아니! 말 좀 끊지 마! 이 삼각 김밥에 라면 말아 먹고 있는데 옆에서 파리가 날아와 퐁당 하고 들어가는 것 같은 놈아!!!”
--
“혜린 님 이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아, 그 여자 결국 일어났어요?”
“확실한 약 이었는데….”
“아. 약 좀 줄였어요.”
“네?”
“덜 넣었다고요. 태하 오빠가 그 집에 들른다고 들었거든요.”
“아….”
“얼마나 상처가 많은 사람인데요. 적어도 태하오빠 앞에서는 죽이지 말아야지,”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음, 약 넣은 시녀는 처리 했어요?”
세라는 거울 안에 비쳐지는 차비서의 모습을 보며 물었고,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 했다.
“네. 손톱 하나 발견 할 수 없게 처리 했습니다.”
“그럼 됐어요. 차비서는 항상 일 처리 잘 하니까. 음, 이제 우리 일 아는 사람은 없는 거잖아.”
“네.”
비서의 끄덕임에 세라는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거창한 발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Failure is the mother of success’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래요. 그러니까 우리… 나중을 노려요.
“유학을 다녀오시니 한 층 더 발음이 좋아지셨네요.”
비서의 말에 세라는 움직이던 립스틱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 여자를 쳐다 보며물었다.
“우리 그런 것 까지 신경 써야 할 관계인가요?”
“아… 죄송합니다.”
“뭐, 괜찮아요. 오늘은 기분 좋으니까. 이제 나가보세요.”
“네. 편히 쉬세요. 세라 아가씨.”
차비서가 문을 열고 나가자 세라는 하얀 가운을 반 쯤 벗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젖은 머리를 가볍게 수건으로 털고 둥근 와인 잔에 붉은 와인을 반 쯤 따라 마시며 휴대폰에 있던 앨범 사진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태하오빠가 불쌍하네. 원수 집안과의 결혼. 그니까… 나한테 오라니까.”
곧 노크소리가 들렸고, 세라는 휴대폰의 종료버튼을 가볍게 누르며 살짝 웃었다.
“들어와요.”
“유학은 어땠어?”
검은 넥타이를 풀며 세라의 앞에 선 남자에 세라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의 허리를 만지며 말 했다.
“난 우리 남편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왜, 세라라면 충분히 즐겼을 것 같은데 말이야?”
성우의 말에 세라는 방긋 웃으며 말 했다.
“음~ 역시 우리 남편한텐 못 당하겠네요? 하지만 진심이었어요. 빨리 씻고 와요.”
“그래 여보.”
성우는 세라의 이마에 짧게 입맞춤하며 욕실을 향해 들어갔고 세라는 이마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진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