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숨기고 싶은 비밀
작가 : 노란선인장
작품등록일 : 201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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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전환점(1)
작성일 : 17-06-20     조회 : 441     추천 : 0     분량 : 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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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유나는 이복 언니인 장안나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장안나는 그녀의 부모가 이혼하여 어린나이에 엄마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도, 새어머니에게 폭언과 체벌을 받아도, 그것을 아버지가 철저히 방관하고 외면해도 담담했다.

 그 모든 것들을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장유나는 혀를 내둘렀다.

 장유나는 그것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장안나는 그런 것들을 묵묵히 견뎌낸다. 내심 자신의 나약함에 열등감이 있던 장유나는 장안나의 그런 강함을 좋아하고 선망했다.

 그래서 장유나는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장안나의 친어머니로부터 거의 십년 만에 연락이 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보고 싶다며 비행기 표까지 보냈다.

 안 돼. 가지마라고 매달리고 싶다.

 이민 온지 오래되었지만 장유나는 아직도 학교에 적응 못하고 있다.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장안나이다.

 이민 온 뒤론 엄마가 안 때리잖아. 나랑 계속 같이 있자.

 입에 계속 머무른 추잡한 말을 장유나는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

 

 인천공항 입국장. D출구 앞 의자에 앉아있는 수현은 연착이 뜨는 걸 보고 혀를 찼다.

 몇 달 전, 오빠와 새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부모 대신이었던 오빠였기에 수현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것도 잠시 뿐, 현실은 매섭게 닥쳐왔다.

 남겨진 조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수현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녀는 가난한 고시생으로, 당장 하루 버티는 것도 힘들 뿐더러 공부로 인해 조카를 돌볼 여력이 안 났다.

 오빠와 조카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롭더라도 수현은 입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힐끔. 수현은 아무런 표정 없이 앉아있는 도준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준아, 아저씨랑 아줌마 오면 같이 밥 먹으려 했는데 비행기가 늦어진대. 그냥 우리 둘이 먼저 먹자.”

 도준은 어떠한 반응도 안 보인다. 지독히도 우울한 아이의 얼굴을 보니 수현은 절로 기운이 빠졌다.

 사고 이후로 원래 없던 말수가 더욱 줄었다. 밥도 거의 먹지 않는다. 오늘도 억지로 아침을 먹이려 했으나 고집스레 먹지 않았다.

 수현은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놔두고 싶지만 그래도 계속 굶길 순 없다.

 복잡한 심경으로 도준을 보던 수현은 건너편 의자에 앉아있는 소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눈에 띄는 미모에 사람들 시선은 자연스럽게 소녀에게 머물렀고 그건 수현도 마찬가지였다.

 수현은 사람 좋게 웃으며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 미안한데 부탁 좀 해도 될까요?”

 안나의 눈에 경계가 서렸다.

 “점심 사와야 하는데 애가 걱정돼서요. 잠시 부탁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어디 안 가게 봐주시면 되요.”

 얌전히 앉아있는 아이를 본 안나는 긴장을 풀었다.

 “네. 그럴게요.”

 어차피 할 일도 없고.

 “고마워요. 도준아, 잠깐만 예쁜 누나랑 같이 있어.”

 수현은 도준의 머리를 쓰다듬고 안나에게 재차 부탁을 한 후 자리를 떴다.

 아이를 보고 잠시 고민하던 안나는 입을 열었다.

 “몇 살이야?”

 “…열 셋.”

 열 살쯤 됐을 것 같은데 많이 작다.

 안나는 눈을 굴렸다. 아이에게 계속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까까지 전혀 못 느꼈던 어색한 침묵에 괜히 초조해진다.

 “사는 게 재미없어?”

 뜬금없는 말에 도준이 안나를 빤히 본다.

 생각만 한다는 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안나는 당혹스러웠다. 아까 많이 놀라긴 했나보다.

 엄마로부터 온 첫 통화는 오빠가 데리러 갈 건데 늦어질 것 같다는 얘기였다.

 오빠라니, 안나는 엄마가 재혼한지 몰랐다. 정작 친자식은 십년 가까이 못 봤으면서 그동안 피가 안 이어진 자식을 키워왔다는 것도 몰랐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안나는 왠지 모를 억울함과 분노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평생 동안 엄마를 그리워했다. 그녀가 당연히 받았어야 할 사랑을 뺏긴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답답하였고 속이 까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아이 특유의 맑은 음성에 안나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냥… 나랑 닮은 것 같아서. 난 네 나이 때 가장 힘들었어.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즐거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남들은 쉽게 가지는 것들이 왜 나한텐 하염없이 어려운지….”

 어린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안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지금은 안 그래?”

 도준의 눈에 흥미가 맺힌다.

 우울해보였던 눈이 사라지자 안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놀랐었다. 그녀가 매일 거울 속에서 보던 눈과 표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계속 견디니까 기적이 생기더라. 요즘은 행복해.”

 억울함은 둘째 치고, 어쨌든 안나는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도준은 안나의 화사한 미소를 유심히 보다 입을 열었다.

 “누난 몇 살이야?”

 “열일곱.”

 “나도 사년 뒤면 기적이 생길 수 있어?”

 “글쎄.”

 안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빈말이라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희망고문하고 싶지 않다.

 아까 그 여자는 도준에게 입양 보내서 미안하다고, 분명 좋은 분들일 거라고 끊임없이 반복했고 그것이 그녀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물론 안나도 그러길 바라지만 안 좋은 사례를 많이 봤기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모는 내가 다른 애들처럼 밝았으면 좋겠나봐. 나 이상한 거야?”

 “전혀. 어리다고 마냥 행복할 수 있나.”

 순간 도준의 눈에 이채가 스친다.

 “아, 너희 이모 오신다.”

 안나는 걸어오는 수현을 보고 눈인사를 하였다.

 “고마워요. 별건 아니지만 이거 좀 먹어요.”

 수현은 민망해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계속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게 없어서 결국 만만하고 냄새 안 나는 빵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와,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안나는 빵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도준아, 너도 먹어야지.”

 수현은 도준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에도 안 먹으면 억지로 먹여야 하나.

 갈등하던 수현이 무색하게도 도준은 맛있게 먹고 있는 안나를 보더니 봉투를 뒤적여 같은 빵을 찾아낸 후 먹기 시작한다.

 놀라운 모습에 눈을 크게 뜬 수현은 이내 웃으며 도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소한 얘기를 주고 받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고 드디어 수현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봐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수현은 스케치북을 들고 손을 흔들었다. 인자한 인상의 백인 부부는 수현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온다.

 안나는 표정을 굳혔다. 아이 둘이 부부를 따라오고 있다.

 아시아계 아이들의 빼빼 마른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안나는 간신히 참았다. 작은 아이는 속옷만 입고 있고, 도준과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는 아이는 겨울외투를 걸치고 있다.

 “제 말 이상하게 들릴 거 아는데요. 저 사람들한테 도준이 입양 시키면 안 돼요.”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안나의 말에 수현은 뒤를 돌아봤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습관적으로 아이를 입양하고 죽이는 사람들이에요. 그것도 동양인으로만, 남자아이 둘을 죽였어요. 한 번 알아보세요. 같은 동네에 산 적이 있어서 알아요.”

 오늘 처음 본 인간들이라 당연히 어디 사는지 모르지만, 안나는 굳이 거짓말을 하였다. 그렇게 해야 수현이 그녀의 말을 믿을 것 같아서다.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에 수현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Oh, it’s you. what a pretty little boy!”

 도준 앞에선 백인 남자는 곧 입양할 아이를 안으려 했다. 그 모습에 수현은 재빨리 도준을 뒤로 숨긴다.

 못 참고 수현에게 살벌한 시선을 보낸 남자는 곧 정신을 차리고 선량하게 웃어 보인다.

 안나는 숨이 막히는 걸 느꼈다. 그들이 두렵다.

 “절대 안 돼요. 분명 나중에 후회하실 거예요. 끔찍한 살인자들이에요.”

 안나는 수현을 설득하는 동시에 도준에게 경고했다.

 네가 만약 살고 싶으면 누나 말 허투로 듣지 마. 내 말을 찝찝하게 여기고 필사적으로 네 이모한테 매달려.

 “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제 가볼게요. 도준아, 가자.”

 얼이 빠진 수현은 아무렇게나 중얼거리고 넋을 놨다.

 패닉에 빠진 수현과 다르게 평온한 도준은 안나를 뚫어져라 보며 입을 열었다.

 “누난 좋겠다. 볼 수 있어서.”

 “뭐?”

 작게 중얼거린 도준의 말을 못 알아들은 안나는 반문했다.

 안나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보인 도준은 뒤돌아 수현을 따라간다.

 도준이 다가가자 여자는 아이를 손을 잡으려 했고 그걸 수현이 막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안나는 안심했다.

 다행히 입양 안 보낼 것 같다. …한국까지 온 저 부부가 빈손으로 가진 않을 것 같지만.

 안나는 기분이 안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봐왔지만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특히나 저런 어린 아이들은 더욱 그녀의 마음을 저미게 하였다.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피로에 안나는 쓰러지듯이 의자에 앉았다.

 십분 동안 미친 듯이 생각하고 깔끔하게 잊자.

 어렸을 때부터 끔찍함을 느낄 때마다 썼던 방법이다. 안나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버스 탔을 거다.

 이거 일부러 엿 먹이는 거 아냐?

 안나는 발을 굴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멍 때리며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안나라도 두 시간이 넘어서면 질린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피곤한 얼굴로 캐리어를 끄는 아저씨. 아이 챙기느라 정신없는 엄마. 이어폰을 끼고 모자를 꾹 눌러쓴 여자. 안나는 아무생각 없이 그들을 지켜봤다. 그때, 멀리서 성인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바쁘지만 고요하던 공간에 난데없이 들어선 그의 다급함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시선을 준다.

 설마 떠나는 연인을 잡는 건가. 안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3층으로 올라갈 줄 알았던 그는 1층에 머물러있다.

 휙휙.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보던 남자는 안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멈춘다.

 몰려오는 민망함에 안나가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설마, 안나는 긴장으로 굳었다.

 “안나 맞지? 늦어서 미안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 거칠게 몰아쉬는 가쁜 숨. 긴장을 풀게 만드는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

 이것이 안나가 기억하는 이서후의 첫인상이다.

 이때부터 막연히 그가 좋았던 거라고, 안나는 가끔씩 회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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