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셀다 론도’ 그곳은 왜 사라져야 했으며 어디에 있는가.
많은 이들은 그저 신화 속 허구라 믿고 있지만, 그렇다면 위대한 현자 엘가 E. 베르그는 왜 그의 회고록에 셀다 론도에 관한 숱한 기록을 남겼으며 그의 제 3 시간이론은 어떻게 탄생했단 말인가.
지혜로운 여왕과 천년의 기사.
우리들은 아직도 그들을 쫓고 있으며, 여기 바로 그 연구결과를 기록해놓는 바이다.
─ <잊혀진 나라와 여왕에 관하여>(981) 서문, 고고학자 스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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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견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살롯의 왕은 흘긋 건너편의 상대를 훑어보았다.
젊은 몬테의 왕, 왕위를 이은 지 3년 밖에 되지 않았고 새파랗게 젊은 나이였기에 고작 애송이라고 생각했건만…
시선을 느낀 몬테의 왕이 지긋이 시선을 맞추자 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보았다. 굳은 살 없이 주름진 손. 많은 백성의 목숨줄을 쥔 손. 이미 피로 물든,
“이만큼 주겠소.”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몬테의 왕이었다. 그가 두어번 손을 휘젓자 옆에 선 보좌가 면보를 들어 커다란 상자를 보여준다. 이살롯의 왕은 그것이 금괴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절대 거절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2년간의 흉년과 전염병으로 나라 전체가 파탄이 났다. 길거리에 백성들의 시체가 거리의 낙엽처럼 쌓였고 국고는 텅 비어 더 이상 배급할 빵과 우유조차 없다.
“다시금 말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샤숲 하나이오.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도 좋소.”
벌써 5년째 되풀이 된 흥정이다. 몬테의 왕은 불모의 땅이라 불리는 이샤숲을 원한다고 수차례 뜻을 보였고 이살롯의 왕은 그곳을 쉽게 내어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없지만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선왕으로부터 내려온 유훈 때문이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조차 모른다. 아마 선대왕도 모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목적도 의미도 모를 유훈? 아니면 지금도 죽어가고 있을 백성? 그는 그 갈등으로 버텨왔고 지금은 한계에 부딪혔다. 상황은 절망적이었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곳을, 넘기겠소. 다만 의사 300명과 곡식을 더 내어주길 바라오.”
깊은 한숨과 함께 펜을 들어올린 그 손은 더없이 처량했고, 조용히 응시하던 몬테의 왕은 희미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이살롯. 그대의 선왕들이 피와 눈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을 이렇게 무너뜨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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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성사되어서 다행입니다, 전하. 예정보다 빨리 일을 진행할 수 있겠군요."
보좌 탈리스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막사에 들어섰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오셀롯은 휘황찬란한 의장을 대충 벗어던지고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이제 시작이지. 어쨋든 군을 움직일 필요는 없게 되었으니 싸게 먹히긴 했군."
오셀롯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이럴 때 일수록 진중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의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렸다. 아주 오랫동안 고대해왔던 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꿈꾸어 왔다.
"저희의 손으로 여신님을 깨울 수 있다니, 백성들도 신도들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저 역시 가문의 영광이구요. 얼른 숲에 가보고 싶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떠드는 탈리스를 보며 그 역시 미소지었다.
몬테의 왕궁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국고, 그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한 장의 초상화. 마치 햇살이 내려앉은 듯 밝은 금발과 하늘을 담아낸 듯 푸른 눈동자, 우아하게 올라간 눈썹과 아름다운 미소. 몇번이나 들여다 보았는 지 모른다.
몬테 왕국의 전신, '셀다 론도'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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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이 맺어지고서 한달 뒤, 태양력 1500년 1월.
커다란 굉음과 강한 지진이 이살롯을 덮쳤고 이샤숲에 거대한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