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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다 론도
작가 : 녹차양
작품등록일 : 201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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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속의 땅 (2)
작성일 : 17-06-19     조회 : 44     추천 : 1     분량 : 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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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밝자 오셀롯은 단정한 차림으로 다가와 시중을 들어주었다. 귀하게 자란 것 같은데 이것저것 챙겨주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나는 이 성에 사람이 출입해도 되게끔 힘의 제어를 풀었고 오셀롯은 기다렸다는 듯이 성 곳곳을 누비며 새 물건을 갖다놓고 많은 하녀와 기사들을 대동하여 재정비를 시작하였다.

 

 열을 맞춰 성을 경비하는 기사들, 분주히 식재료를 나르고 재잘재잘 웃는 하녀들.

 새삼 신기하고 반가운 기분이 들어 바삐 계단을 내려가자 오셀롯이 빙긋 웃으며 저지했다.

 

 오셀롯은 내가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일에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나를 과보호했고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다음 날에는 새 옷을 짓기 위해 재단사들이 찾아왔는데 오셀롯은 자신이 손수 내 몸의 치수를 재고 재단사에게 알려주었다.

 

 그런 숨막히는 관리와 감시에 몇번 말을 꺼내보자,

 

 '저 역시 믿을만한 자들만을 데려왔으나, 모두들 광신도같은 면이 있어 어떤 행동을 할 지 모르니 어수선한 분위기가 안정될 때까지는 접촉을 삼가하셨으면 합니다.'

 

 

 오셀롯은 조용히 나를 끌어안고 이마에 짧은 키스를 해줄 뿐이었다.

 

 굉장히 무례했지만 생각만큼 나쁜 기분도 아니어서 그런 그를 말리진 않고 묵인했다.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향긋한 왕귤나무 차와 체리를 얹은 케이크.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 아래 책을 탐독하고 화분 몇 개를 가꾸는 일. 요즘의 내 일상이다. 최근 오셀롯은 왕가의 서고를 털어 아주 오래전의 몬테 왕가의 이야기와 금서로 지정된 역사서를 여럿 가져왔는데 모두 과거의 나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처음엔 어떻게 기록되었을 지 두렵고 겁이 나 머뭇거렸으나 크게 마음 먹고 첫 장을 펼쳤다.

 

 

 〔…(전략) 칼페인 몬테는 그 죄목에 대해 심판을 받고 이살롯 국외로 추방당하였다. 죄인의 일가 역시 더 이상 이살롯에 머물 수 없게 되었으므로 칼페인 몬테를 따라 쫓겨났다. 이살롯은 거대했고 가말타 왕국은 사막을 건너야만 했기에 사실상 사형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이샤 사막은 수 십년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척박한 곳이므로 수장 칼페인 몬테는 탈수와 기아로 사망하였고 그의 동생 엘드리치 몬테가 그 일가를 지휘하게 되었다. …(후략)〕

 

 

 〔…… 순간 먹구름과 함께 비가 쏟아지니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언덕 너머 푸른 초원이 생겨나는 것을 목격했다. 사라 몬테가 발이 빠른 자 몇 명을 이끌고 그곳에 다다르자 여신 샤를롯테가 자애롭게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이래로 …〕

 

 

 엉터리! 나는 낯이 뜨거워 얼른 책을 덮었다. 옆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작성하던 오셀롯이 의문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 책, 잘못 된 것이 많아. 이런 걸 그대들은 역사로 알고 배우는가?”

 

 “잘못된 부분을 일러주시면 시정하도록 얘기하겠습니다.”

 

 

 오셀롯은 새로운 양피지를 꺼내더니 즉시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순간 매우 온순한 강아지같다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전제부터 틀렸는데, 난 여신이 아니다. 그냥 정원사야.”

 

 

 펜촉에 잉크를 묻히던 오셀롯이 흥미롭다는 듯 반문했다.

 

 

 “그래서 식물을 가꾸는 일을 좋아하셨던 것이군요. 분수대쪽 화단에 새로운 꽃을 심어두겠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오히려 내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찬양하던 존재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면 보통 화를 내지 않던가?

 

 

 “넌… 이상하구나. 왜 일개 정원사가 몬테 왕가의 건국 서사시에 등장하는 지 궁금하지도 않느냐?”

 

 “제겐, 그것이 더 이상한 질문입니다. 당신의 신비로운 힘과 수많은 업적들이 사실인 것을 이 성의 모든 이들이 체감하고 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거짓이 될 리 없지 않습니까. 결국 당신에게 선택받은 인간은 몬테이고 당신의 힘을 빌어 이 나라가 세워졌으니 충분히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다. 내가 살던 아델론에서는 모두 나를 비웃었다. 론도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고작 하는 일이 정원사라니, 아둔하고 멍청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내 수긍했다. 이름도 없는 론도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겠지.

 

 그런 나를 사랑해준 것은 몬테였다. 내 보잘것 없는 일이 사실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얘기해주었던 것도 이 땅의 사람들이었다.

 

 

 “이살롯과의 전쟁 부분은 어떻습니까? 그 전쟁에 대해 기록된 것이 별로 없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 부분은 오히려 내가 궁금했던 것이었다. 책을 팔랑 넘기자 증오스러운 그 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살롯의 왕, 헤일 이살롯!

 

 

 

 〔죽음을 두려워 한 헤일 이살롯은 십 수 년간 늙지 않는 젊은 여왕의 소식을 듣고 그곳에 비로소 자신이 원하던 불노불사의 비밀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즉시 군대를 일으켜 이샤숲을 침략했다.〕

 

 

 “…….”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자 오셀롯도 더 묻지 않았다.

 

 *

 

 

 “오늘은 이살롯에 모시고 갈까 합니다.”

 

 이살롯. 또다시 어두운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걱정마십시오. 샤를롯테님이 생각하시던 그 때의 이살롯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오셀롯이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이끈다. 그는 알 수 없으리라. 그는 지금의 사람이고, 나는 천 년 전의 과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난 밤마다 피투성이의 병사들의 절규를 듣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자신의 아내와 딸이 죽었다고 매달리던 그 소리들. 울부짖던 그 얼굴들이 자꾸 떠오른다. 마치 어제의 일인 것처럼 생생한데, 눈을 뜨고 일어나면 무서울 정도로의 평온이 날 현실로 잡아끌었다.

 

 

 “그곳에 가서, 뭘 어쩌라는 거지? …내키지 않는구나.”

 

 샤를롯테님.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그는 그저 가만히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분명 무례한 일인데, 저 얼굴을 보면 또 한없이 마음이 약해진다.

 

 

 “당신이 주무시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아주 많은 것들이요. 당신은 그걸 알아야 하고 그 속에서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는 내가 아직도 누락된 기억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셀롯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난 중요한 무언가를 잃은 것처럼 공허했고, 과거와 현재의 괴리로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제가 당신의 곁을 지킬 것입니다.”

 

 따뜻한 손, 상냥한 말투에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다.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자 또다시 얼굴이 발개져서 고개를 휙 돌려버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성문을 열었다. 첫 외출이었다.

 

 

 

 

 셀다 론도의 성은 이샤 숲 끄트머리 언덕 위에 있다. 나의 침실은 성의 가장 안쪽에 있었기에, 창밖으로 숲과 마을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상황은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내 기억 속의 이샤숲은 자작나무가 빼곡이 들어차 하늘을 가린 거대한 지붕 같았다. 울창한 나무 때문에 숲은 늘 그늘졌고 싱그러운 숲의 향기와 하얀 나무들 사이에 피어난 야생화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이샤숲은 불모의 땅이라 불리게 된 지 수 백년이 지났습니다. 오래 전에 커다란 화재가 있었다고도 하고, 용의 저주로 인해 황폐해졌다고도 하는데… 글쎄요.”

 

 

 잿빛 벌판이었다. 너무도 건조해서 실바람에도 바닥의 모래가 흩날렸다. 모래라고 하기에는 짙은 회색빛이었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다. 살아있는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귓가에 웅웅거리는 바람소리만 남았다. 마치 처음 이 곳에 내려왔을 때의 이샤사막을 보는 것 같았다.

 

 실의에 빠진 나를 위로라도 하듯 오셀롯은 자꾸 주절거렸다.

 

 

 “이상하게도 동물들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아무리 목줄을 잡아끌어도 발광하고 날뛰다 결국 도망가 버리더군요. 그래서 사람들도 이곳에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차 역시 숲 밖에 준비시켜 두었습니다.”

 

 오셀롯이 무어라고 더 말했던 것 같은데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리적인 충격은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계속 되었다. 마차 밖의 풍경이 서글플 정도로 비참했기 때문이었다. 옛 광장이었던 곳, 시장이었던 곳, 주택가였던 곳…

 

 ‘-였던 곳’,

 잿빛 모래로 뒤덮인 폐허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정말, 이제 이곳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무도.

 

 

 분위기가 자꾸 침울해지자 오셀롯이 당혹스러운지 허둥지둥 거렸다. 하기사 그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곳은 ‘원래 그런 곳’으로 알고 자랐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지. 상처받고 슬퍼할 이는 나밖에 없다. 결국 또다시 자책에 빠져 쓸데없이 치맛자락을 구깃구깃 접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거대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또 그 속에 던져진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작고 비참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마치 내 존재의 의미가 없었던 것이 된 것만 같은, 나만 동떨어진 무언가가 된 듯한 그런 기분.

 

 

 마차는 한참이나 더 달리더니 노을이 질 무렵에야 멈추었다. 오셀롯은 마차의 문을 열려던 나를 제지하고는 쪽창으로 마부에게서 어떤 상자를 건네받았다. 굽이 높은 비단구두. 반 뼘보다 살짝 더 높아 보이는데.

 

 

 “이샤숲에서 가장 가까운 이살롯의 도시, 메라튼입니다. 이살롯 왕가가 가장 먼저 손을 놓아버린 곳이기도 해서… 다소 더러울 수 있습니다. 얕은 구두로는 오물이 튈 수 있으니 이것을 신겨드리겠습니다.”

 

 

 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오셀롯이 대뜸 내 발을 자신의 무릎에 올려 구두를 벗겼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인간의 예법이라는 게 많이 바뀌었나? 안그래도 요즘 너무 잦은 스킨십에 오셀롯이 손만 들어도 몸이 어색하게 굳어버린다.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도 그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럽고 시선이 마주치면 늘 해사하게 웃어버려서…

 

 “그대는…,”

 

 “예, 말씀하십시오.”

 

 또다. 저 얼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단정하게 웃는.

 차마 ‘나를 너무 자주 만지는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또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다. 이제 가지.”

 

 황급히 발을 빼내자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날 또 바라본다. 괜히 낯 뜨거워질까 딴청을 피우자 마차의 문을 열고 손을 내민다. 스스로 내릴까 했는데 나는 또 핑계를 대면서 그 손을 잡는다. 높은 굽은 처음이니까, 넘어질 것 같아서 잡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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